[Episode 01] 집구석 절대자 (4)
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공포가 전신을 휘감으며 발이 딱딱하게 굳었다.
가까이서 마주한 놈의 거대한 덩치와 살기가 담긴 눈은 전형적인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다음 순간, 켈리칸은 기습적으로 나를 향해 아가리를 들이밀었다.
콰직!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보이지 않는 벽이 놈의 이빨을 막아서고 나서야 나는 놈이 나를 덮치려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허억!”
투명한 벽에 진입이 차단된 놈은 그대로 아래로 미끄러졌지만, 이내 다시 날개짓 하여 올라왔다.
그리고 그 상태로 벽면에 딱 달라붙어서는 나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까드드득!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
······
바로 앞에서 녀석의 이빨과 아가리 안쪽을 라이브로 관람하고 있던 나는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뚫고 들어오는 건 아니겠지?’
녀석의 사나운 이빨이 보이지 않는 벽을 뚫고 내 목까지 닿을 것만 같다는 불안감.
거기까지 상상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든 해야 해!’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 전에 뭐라도 해야만 했다.
곧바로 부엌으로 달려간 나는 식칼을 손에 들고 켈리칸의 앞에 섰다.
놈은 내가 움직이던 말던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벽을 씹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동안 칼의 길이와 놈과의 거리를 가늠해보던 나는 결론을 내렸다.
‘칼이 너무 짧아.’
평범한 부엌칼의 도신은 겨우 20센티 정도였다.
투명한 벽에 내 몸이 막히는 것을 생각하면 칼이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은 겨우 한 뼘 정도인 것이다.
당연히 놈에게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투명한 벽에 바짝 붙어 있는 곳을 공략해야만 하는데, 그런 곳이라고는 투명한 벽을 갉아먹고 있는 놈의 아가리 밖에 없었다.
단단해 보이는 부리와 그 안에 자라난 이빨들.
저기에 부엌칼을 쑤셔 넣는다고 해서 딱히 큰 효과는 없을 것 같았다.
‘목에 박아 넣으려면 창처럼 만들어야 해.’
마침 적절한 재료는 다 있었다.
다이소에서 구입한 밀대 끝부분에 부엌칼을 고정시키고 테이프로 마구 휘감았다.
그러자 그럴듯한 무기가 완성되었다.
식칼이 잘 고정됐는지 확인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까드드득!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녀석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로 투명한 벽에 몰두하고 있었다.
‘지금!’
푸욱!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창은 놈의 목덜미에 반쯤 파고들었다.
-끼에에엑!!
놈은 기겁하며 몸을 뒤로 뺐고, 그 반동으로 창이 빠져나오며 놈의 상처를 한층 더 벌려놓았다.
푸확!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투명한 벽에 막혀 흘려 내렸는데, 그 양이 꽤 많았다.
‘됐어!’
그러나.
-끼에에엑―!!
놈은 목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쿵! 쿵!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대가리로 투명한 벽을 들이받으며 화풀이하는 모습은 상처 입은 맹수 그 자체였다.
사납게 들이받는 그 모습은 자기가 죽는 한이 있어도 꼭 나를 죽이고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듯 했다.
“하, 한 번 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창을 내뻗었다.
그러나.
휘익!
“엇!”
이번에는 놈이 내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고, 창을 찌르는 순간 오히려 부리로 창대를 붙잡고 잡아당겨 버렸다.
빠직!
다이소에서 구입한 플라스틱 창대는 켈리칸의 부리 속에서 개박살이 나버렸고, 그 결과 앞부분에 달려 있던 식칼을 잃어버렸다.
“이러면 나가린데···.”
-끼에에에에―!
자그마한 과일칼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그건 식칼만큼 날카롭지는 않았다.
아마 거의 피해를 주지 못하겠지.
‘게다가 놈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이상 내 공격이 통할 거 같지도 않고.’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놈이 지랄발광을 해대는 순간에도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저대로 놔두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았다.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투명한 벽은 녀석의 침입을 완벽히 차단해주고 있었으니 이젠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차분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투명한 벽에 녀석의 피가 범벅이 될수록 놈은 확실하게 지쳐가고 있었다.
이윽고 아예 움직임을 멈춘 놈은 더 이상 투명한 벽을 공격하지 않고 나를 조용히 노려볼 뿐이었다.
무언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놈의 눈을 마주 노려보고 있던 나는 한 가지 좋지 않은 가설이 떠올랐다.
‘잠깐만.’
녀석도 투명한 벽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한 듯 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녀석이 포기해버리면?
과다출혈로 죽기 전에 하늘로 날아 떠나가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전리품 정산은 사체가 근처에 있을 때만 발동된다.’
내가 이런 가설을 세운 이유는 간단했다.
그동안 고블린들을 사냥하면서 무조건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아령이 몸이나 다른 곳에 맞은 놈들도 있었고, 그 중에는 분명 죽기 직전의 상태였던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같이 있던 무리가 놈을 데려갔고, 그 놈은 전리품 정산이 되지 않았었지.’
분명 죽었을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팍에 아령을 명중 당했던 그 놈이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이놈도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전리품 정산이 안 된다는 소리다.’
그럴 순 없었다.
돈이 얼마짜린데 이대로 놓아준단 말인가.
그것도 다 잡은 사냥감을.
‘마무리 할 방법이 없나?’
나는 다급하게 집안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런 내 두 눈에 식용유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거라면 놈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상점 오픈! 카놀라유 10세트 구입!”
[정말로 구매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
지이잉―
순간 거실 바닥에 카놀라유 900ml를 담은 식용유 통 스무 개가 나란히 생겨났다.
“창고 오픈! 플라스틱 통 빼고 식용유만 넣어줘!”
지이잉―
그렇게 모든 식용유를 창고에 보관한 나는 계속해서 부지런히 움직였다.
놈이 부러뜨린 창대 끝에 키친타올을 둘둘 만 다음 테이프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주방으로 달려가 가스 불을 켰다.
“식용유 소환!”
그리고 커다란 냄비를 올리고 그 안에 모든 식용유를 부어냈다.
타다다닥- 화르륵!
식용유가 충분히 가열될 때까지 내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었다.
카드드득! 카드득!
‘이 정도면 됐나?’
기다림의 시간은 무척이나 길었다.
“보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식용유를 창고에 보관하고, 키친타올에 식용유를 적신 다음 그대로 불을 붙였다.
화르륵!
가스불은 그대로 창대 끝으로 옮겨 붙었고, 나는 그것을 가지고 거실 창가로 달렸다.
놈은 여전히 내 모습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불이 붙은 창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놈의 머리 위를 노려보며 말했다.
“식용유 소환!”
그 직후.
지이잉―
켈리칸의 머리 위에서 소환된 펄펄끓는 식용유 18L가 그대로 놈의 몸을 적셨다.
-키에엑?!
갑작스러운 식용유 공격에 당황한 놈의 시선이 하늘을 향한 순간.
“뒤져!”
부러진 창대 끝의 활활 타오르는 부분을 놈의 몸에 찔러 넣었다.
-끼에에엑!
기습에 놀란 것인지 놈은 아파트 벽면에서 떨어지며 날갯짓 했다.
놈이 떠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미소 지을 수 있었다.
‘됐다.’
식용유는 발화점이 높아서 불이 잘 붙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발화점이 높을 뿐이지, 기름이기 때문에 한 번 불이 붙으면 아주 잘 타오르기도 한다.
때문에 가끔씩 나는 주방 화재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켈리칸의 몸통에는 불붙은 창이 꽂혀 있었다.
자그마한 불길은 놈의 몸을 흠뻑 적신 식용유에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옮겨붙기 시작했다.
화륵-
처음에는 천천히 퍼지던 불길은 이내 켈리칸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화르르륵!
불길이 거세지는 것과 동시에 당황한 켈리칸이 허둥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불을 끄기 위함인지 다급하게 날개를 퍼덕여보지만, 그런 행동은 오히려 불을 더 크게 만들 뿐이었다.
-케에에에엑―!
외마디 비명과 함께 놈은 아파트 산책로로 추락했다.
콰직! 쿠우웅!
육중한 몸이 추락하며 산책로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완전히 박살내었다.
나무가 쿠션 역할을 해 준 것인지 놈은 아직까지도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꽤애애액!
몸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굴러다녀보지만, 주변에 불을 옮겨 붙이기만 할 뿐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화르르륵!
녀석의 발버둥은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켈리칸(Lv. 27)을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시스템 알림창이 켈리칸의 숨통이 끊어졌음을 알려왔다.
[조건에 충족되는 전리품이 근처에 있습니다.]
[전리품을 정산을 시작합니다.]
정산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아래쪽에서 불타고 있던 켈리칸의 시체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부가 남았던 저번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에는 확실하게 전부 사라지고 나서야 알림이 나타났다.
[전리품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9,347,487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 액수를 본 나는 놀라 자빠질 수밖에 없었다.
“구, 구, 구백만원?!”
레벨이 높은데다 이번에는 온전히 내 힘으로 사냥한 것이어서 정산 금액이 높으리라고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거의 천만원이잖아?’
사실상 남아 있던 돈까지 합치면 천만원이 넘는 금액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이것도 나름 직접 번 돈이라고 만족감이 굉장했다.
“하하.”
그러나 켈리칸이 준 선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집구석 영역 확장이 시작됩니다.]
“음?”
우우웅
처음 보는 메시지와 함께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집 전체가 옅게 요동치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절정에 이른 순간.
“!!!”
갑자기 시야가 확장되었다.
우웅!
처음에는 거실에 주저앉아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건··· 나?’
그 이후 시야는 빠르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거실 전체의 모습과 주방, 안쪽에 있는 방과 화장실의 모습까지 구석구석 보였다.
아니, 보인다기 보다는 느껴졌다.
집의 전체적인 형태와 실시간으로 흐르는 전기. 가구들의 배치와 바닥의 자잘한 먼지들까지.
그 모든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내가 집 그 자체가 된 듯한 기분.
우우웅!
‘으윽!’
그때 전신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몸 전체가 부풀어 오르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이건!’
실제로 몸이 확장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몸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곳의 영역이 늘어나고 있었다.
현관문을 너머서 복도로, 복도를 너머서 엘리베이터를 감싸고, 심지어는 옆집까지.
이윽고 옆집의 상황이 훤히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사람?’
옆집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부부와 아이 둘.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남편은 아는 얼굴이었다.
가끔 편의점을 갈 때나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마주치곤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옆집 사람들?’
그들이 대화 내용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려왔다.
“여보, 어떡해요? 타는 냄새가 나는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여긴 30층이잖아. 웬만한 괴물들은 절대 못 올라와.”
“아까부터 쿵쿵거리는 소리도 들렸잖아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아빠아아. 무서워어.”
“서연아, 쉿!”
“흐윽.”
그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켈리칸이 만들어낸 소음 때문이겠지.
그때였다.
“허억!”
집구석의 영역이 30층 전체로 확장된 것을 느낀 순간, 다시 내 몸의 통제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방금 그건···.’
생각을 정리하려 하는데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나타났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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