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7화 (7/175)

[Episode 02] 생존자들 (2)

옆집은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것도 있지만,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것은 거실 창문 전체를 가리고 있는 두꺼운 커튼 때문인 것 같았다.

‘현명하네.’

저렇게 해 두면 켈리칸 같은 비행 몬스터에게 습격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근데 너무 어둡네.’

복도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품위 유지 스킬은 내 영역 안이라면 어디서든지 적용이 가능했다.

그래서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마음대로 열어젖히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집구석 영역 안에서만큼은 모든 것이 내 의지대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하는 거였지, 아마?’

거실 천정을 바라보며 원했다.

‘켜져라.’

번쩍­

불이 들어오자마자 최형준네 가족들이 움찔하며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어? 불 켜졌다!”

이 집에서 제일 막내인 5살 정도의 아이만 영문도 모른 채 감탄할 뿐이었다.

나머지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최형준에게 삼다수를 건네주며 말했다.

“우선 애들 물부터 먹이시죠.”

“아, 네. 감사합니다.”

최형준은 내가 건네주는 물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지나치게 공손해 보이는 모습이 오히려 내가 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첫 등장이 너무 임팩트가 컸나?’

초인종을 누른 것도,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의도한 행동이기는 했다.

최대한 신비주의적 컨셉으로 밀고 나가면서, 동시에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잘 먹힌 것 같았다.

“나연아 서연아. 물마시자.”

두 사람은 아이들에게 물을 먹이면서도 내 눈치를 살폈다. 덕분에 아이들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켈록! 콜록!”

“서연아! 괜찮아?”

아니나 다를까 불편한 분위기에서 물을 마시던 최서연이 사래가 들려 연신 기침을 해댔다.

‘이야기하기 전에 분위기부터 풀어야겠네.’

겁을 준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었던 나는 상자에서 귤 하나를 꺼내 최서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쭈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후 귤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귤 좋아해?”

최서연은 콜록거리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고, 고맙습니다. 콜록.”

꾸벅 인사까지 하며 귤을 받은 최서연은 내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귤을 엄마인 박혜원에게 넘겼다.

“잠시만.”

박혜원은 능숙하게 귤을 까 최서연의 입에 한 조각을 넣어주었다.

단 게 입안에 들어가자 최서연은 금세 긴장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헤헤. 엄마, 또 주세요!”

“맛있어?”

“네!”

네 살 배기 애기가 미소를 짓자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가 빠르게 녹아내렸다.

“엄마 나도, 나도!”

6살쯤 되어 보이는 최나연도 엄마에게 달려들어 귤을 받아먹었다.

그때였다.

[시민 최서연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최나연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박혜원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최형준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연달아 새로운 메시지들이 나타났다.

[시민 최서연의 신뢰도가 50을 달성했습니다.]

[충성도가 개방됩니다.]

[시민 최서연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최서연이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처음부터 신뢰도가 42로 높았던 최서연의 신뢰도였다.

그게 귤 하나로 50을 넘어선 모양이었다.

나는 조용히 시민 관리창을 열어 최서연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 최서연 (Lv. 2)

신뢰도 : 57   충성도 : 33

각성 능력 : 없음

경험치 분배율 : 0%

정산금 분배율 : 0%

★퀘스트 부여    퇴출』

신뢰도가 올랐을 뿐만 아니라 충성도라는 새로운 지수가 생겨났다.

이것도 시작부터 무려 33이었다.

‘어린 아이라서 그런가.’

어쨌든 덕분에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신 등록 시스템은 품위 유지 스킬이 2레벨로 올라가면서 새롭게 등장한 기능이었다.

생기자마자 레벨이 가장 높은 최형준을 가신으로 등록하려 했지만,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실패했다.

신뢰도 50과 충성도 30.

그것이 가신 등록을 위한 최소 조건이었던 것이다.

‘최서연을 가신 등록을 해 볼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빠르게 포기했다.

‘너무 어린데다 레벨도 낮아.’

시민과 달리 가신 등록은 겨우 10명만 가능했다.

처음으로 조건을 충족시킨 시민이니 기념으로 가신 등록을 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 상점창의 경우처럼 취소를 못 할 수도 있었으니까.

시험 삼아 해 보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생각보다 엄청난 효과가 있을 지도 몰라. 그러니까 가신 등록을 한다면 최소 최형준 정도의 수준은 돼야해.’

건장한 30대 남자에 레벨도 9나 된다.

원활한 몬스터 사냥을 위해서라도 최형준의 능력치를 올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최형준 (신뢰도 : 31) (Lv. 9)

그나마 오른 신뢰도가 31 수준이었다.

50까지 올리려면 아직 한참 남은 상태인 것이다.

‘솔직히 최형준에게 써먹기도 조금 아깝긴 한데.’

그때였다.

“저어···.”

최형준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다 방법이 있습니다.”

“···네?”

“잠깐 복도에서 따로 이야기 좀 하시죠.”

“어, 네.”

가족들이 듣고 있는 곳에서 하기에는 껄끄러운 이야기였다.

나는 지금부터 그에게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달라고 할 작정이었으니까.

***

복도로 나와 단 둘이 있게 되자 최형준은 처음 나와 만날 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우선은 긴장을 풀기 위해 가볍게 던졌다.

“시민권은 받으셨나요?”

최형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 허공에 생겨난 알림창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거라면, 네. 받았습니다. 한 삼십 분 전에 저희 가족 단체로 받았어요.”

시민권을 부여하면 시민들도 그것을 인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어본 것이었다.

“그러면 그 알림이 나타나기 전에는 뭔가 특별한 게 없었나요?”

“어, 그게···.”

“있었나요?”

“네. 잠시 동안 몸이 경직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시민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는 일시적인 경직이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몬스터는 어떻게 되는 거지?’

집구석 선포 스킬이 5레벨이 되며 30층 전체가 영역으로 변했다.

당연히 레벨이 더 올라갈수록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영역 내에 인간이 아닌 몬스터들이 있는 경우가 언젠간 찾아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직되거나 내 의지대로 내쫓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흘러갈 것만 같지는 않았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이전의 안정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밥도 해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그런 삶이요.”

“네?”

“뿐만 아니라 집 안에서만큼은 안전을 보장합니다. 제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몬스터도 침입할 수 없을 겁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최형준은 떨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당연히 공짜로 이 모든 것을 해주시는 건 아니겠지요.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잠시 침묵하며 그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부탁드릴 일은 어쩌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진지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최형준의 고민은 의외로 짧았다.

“예. 하겠습니다. 아내랑 자식들이 무사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아니었다면 밖으로 나가서 물과 식량을 구해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목숨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최형준에게 곧바로 고블린 사냥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첫 대면에서 보여준 그의 실망스러운 모습 때문이었다.

‘골프채라도 휘두를 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초인종을 누르던 당시 나는 절대자의 눈을 운용하며 안쪽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최형준의 손에 들린 골프채를 보고 상당히 긴장했었다.

들어가자마자 공격하지말라고 소리쳐야하나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최형준은 공격 한 번 하지 못했다.

‘덩치는 산만한데.’

체격도 크고 골격도 좋았지만, 보기보다 마음이 여린 것 같았다.

현대인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실망스러운 건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집구석 선포 스킬에 많이 의지하긴 했어도 켈리칸을 잡아낸 경험이 있었다.

고블린의 경우 아령을 던져 잡은 것이 전부였지만, 제대로 된 무기만 주어진다면 질 것 같지는 않았다.

‘호전적인 성향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고블린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싸울 정도는 돼야 할 텐데.’

지금까지 지켜본 최형준은 책임감 있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어른이긴 했지만, 무언가를 죽이거나 할 수 있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그의 손에 들려있는 골프채가 눈에 들어왔다.

‘통짜 쇠로 만들어진 거겠지? 확실히 저걸 휘두르면 고블린 머리 정도는 쉽게 박살낼 수 있겠는데.’

나는 최형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 골프채 좀 볼 수 있을까요?”

“어, 이거요? 여기 있습니다.”

골프채를 받은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상점 오픈. 물품 등록.’

아까 절대자의 눈 스킬을 사용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굳이 말을 안 해도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조금 집중력이 필요하긴 해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지이잉―

상점창에서 쏟아져 나온 빛이 골프채를 스캔하더니 상점에 새로운 물건 하나가 등록되었다.

최형준의 반응을 보면 상점창이나 거기서 나오는 빛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중고 골프채 (538,200 원) ▶수복하기

‘뭐?’

더럽게 비싼 골프채였다.

‘53만원이라니.’

그것도 상점 레벨 효과 덕분에 10%할인이 들어간 금액이 53만원이었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최형준에게 물었다.

“이거 얼마예요?”

“어···으음. 한 사십 만원 줬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십이요?”

“네.”

이전부터 느낀 건데, 이놈의 망할 상점은 수복이 필요한 상품들의 가격이 원래 상품가격보다도 높았다.

중고라면 반값으로 할인해줘도 모자랄 판에.

‘수복하기.’

시험 삼아 수복하기를 눌러보니 금방 견적이 나왔다.

[‘중고 골프채’를 수복하기 위해서는 3,870,000 원의 금액이 필요합니다.]

[수복하시겠습니까?]

‘미친.’

수복을 위해서 무려 400만원이 필요했다.

무려 내가 가진 돈의 절반에 가까운 돈이었다.

‘취소! 취소!’

어차피 중고나 새거나 크게 차이 없는 물건이었다.

이런 건 수복하기 보다는 그냥 이대로 조금 비싼 가격에 사는 게 차라리 나았다.

‘수십 개씩 필요하게 되면 또 몰라도···.’

그 전에는 오히려 상품을 수복하는 게 손해였다.

“저어··· 정말로 그거면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다른 골프채들도요.”

최형준은 약간 긴장이 풀린 기색이었다.

그럴만하긴 했다.

목숨이니 뭐니 진지하게 지껄일 땐 언제고 골프채 가격이나 물어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나는 급하게 대화 화제를 돌렸다.

“크흠, 흠. 괴물들이 나타난 날을 기억하시나요?”

“···기억합니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주말이었죠.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겁니다.”

날씨가 워낙 좋았던 탓에 놀러나간 이들도 있겠지만, 그만큼 집에서 쉬고 있던 이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아파트에도 못 해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생존해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그때 당시에 집에 있었던 운 좋게 사람들은 아직까지 생존해 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을 찾아가주세요.”

고블린과 직접 싸워보지는 못했지만, 개체 하나가 그리 큰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덩치도 작고 레벨도 성인 남성보다 낮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고블린의 진짜 무기는 숫자.

무리 지어 다니며 긴밀하게 협력하며 사냥하는 것에 있었다.

하지만 무리를 지을 수 있는 건 고블린 뿐만이 아니다.

예로부터 숫자로 밀어붙이기는 인류의 전통적인 무기 중 하나였다.

최형준 혼자서 고블린을 사냥하기는 힘들다고 판단, 일단은 고블린과 싸울 수 있는 병력 숫자를 늘리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생존자들을 찾아서 여기로 데리고 올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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