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9화 (9/175)

[Episode 02] 생존자들 (4)

그들이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까하는 기대로 산책로를 유심히 관찰하던 와중이었다.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응?”

난데없는 알람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별안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고블린이 남아 있었던 건가?’

최형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절대자의 눈.’

곧바로 스킬을 사용하여 비상구 쪽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익숙한 차림의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 이거 못 들어간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안 보여? 눈앞에 이상한 메시지가 떴는데.”

“뭐? 그럼 저 아저씨는 어떻게 들어간 건데.”

“나도 모르지.”

각양각색의 무기를 손에 쥐고 있는 여섯 명의 남녀.

‘그 사람들이다!’

벌써 이렇게 접촉하게 될 줄이야.

‘생각보다 꽤 하잖아.’

최형준이 내 예상보다 훨씬 일을 잘 해줬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절대자의 눈 스킬을 끄자 눈앞에 새로운 알림창이 나타나 있었다.

절대자의 눈으로 봤던 여섯 명의 사진과 함께.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집구석 근처에 접근하였습니다.]

[시민권을 제의하시겠습니까?]

이것으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민권 부여가 제의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영역 내에 있었던 최형준의 가족과는 달리 저들은 영역 바깥에 있었다.

‘영역 확장 과정에서 포함된 사람들에게는 강제로 시민권을 부여할 수 있지만, 이런 경우에는 선택권을 준다는 건가.’

제의.

말 그대로 시민이 될지 말지 저들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거부할 수도 있다는 소리군.’

어떻게 해야 저들에게서 거절이란 선택지를 머릿속에서 없애버릴 수 있을까.

방법을 고심하던 그때.

♬♪♬♩~

벨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이거다.’

시민권 제의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만들면 된다.

그렇다면 저들도 아무렇지 않게 시민권을 받아들일 것이다.

‘퀘스트 부여.’

[시민 최형준은 이미 수행중인 퀘스트가 있습니다.]

[퀘스트를 재설정하시겠습니까?]

‘그래.’

[퀘스트를 재설정 해 주십시오.]

바뀐 퀘스트의 내용은 간단했다.

‘손님 여섯 명에게 식사 대접하기.’

[퀘스트 내용이 갱신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월패드를 통해 바깥 상황을 확인했다.

초인종을 누르던 최형준은 갱신된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 거리며 비상구 쪽으로 이동했다.

월패드의 스피커에서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네? 하지만 저희는 지금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인데요.)

그때 타이밍을 맞춰 속으로 되뇌었다.

‘여섯 명 모두에게 시민권 제의해.’

[하동건, 강덕수, 김가영, 유혜린, 김 건, 문병호에게 시민권을 제의합니다.]

승부수를 띄운 나는 월패드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오! 투명한 벽이 사라졌어!)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건장한 체격의 남자 한 명이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아까 고블린 무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남자인 듯 했다.

그 뒤를 이어서.

(진짜네? 시민권 획득하니까 바로 들어와지는데?)

여섯 명 모두가 순서대로 시민권을 받아들이고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시민의 숫자가 10명에 도달했습니다.]

[시민들이 벌어들이는 경험치와 정산금이 10% 증가합니다.]

처음 보는 알림이 나타나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보너스 경험치에 보너스 정산금인가.’

본격적으로 몬스터 사냥을 나설 인원의 합류와 동시에 이런 질 좋은 버프라니.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시민 관리.’

새롭게 합류한 여섯 명의 프로필은 한 눈에 보기에도 만족스러웠다.

□하동건 (신뢰도 : 19) (Lv. 23)

□강덕수 (신뢰도 : 28) (Lv. 13)

□김가영 (신뢰도 : 17) (Lv. 17)

□유혜린 (신뢰도 : 30) (Lv. 10)

□김  건 (신뢰도 : 15) (Lv. 11)

□문병호 (신뢰도 : 11) (Lv. 10)

······

······

현재 인구수 ( 10 / 600 명)

과연 고블린 무리를 압살한 파티답게 레벨 단위부터가 달랐다.

놀랍게도 모두가 두 자리 수 레벨을 가지고 있었고, 그 중 한 명은 무려 23레벨이었다.

‘23레벨이면 일주일전에 잡았던 켈리칸과 동급이라는 건데.’

이상하리만치 높은 레벨의 비밀은 그의 시민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름 : 하동건 (Lv. 23)

신뢰도 : 19

각성 능력 : 야구공 투척

경험치 분배율 : 0%

정산금 분배율 : 0%

★퀘스트 부여    퇴출』

‘능력자다.’

각성 능력에 집중하자 그가 가진 능력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떠올랐다.

야구공 투척 (D 등급)

체력을 소모하여 공의 위력을 3배 증가시킨다.

제일 처음 고블린 무리를 향해 공을 던지던 남자가 바로 하동건인 듯 했다.

‘이래서 고블린이 즉사했던 거구나.’

실제 야구공을 만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돌덩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거기다 스킬로 위력이 3배나 증가된다면 충분히 살상무기가 될 수 있었다.

대부분 신뢰도가 낮은 것은 살짝 아쉬웠지만, 그거야 천천히 올리면 그만이다.

‘새로 합류한 여섯 명 모두 경험치 분배율을 70퍼로 설정해.’

[설정 완료하였습니다.]

정산금은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시민들이 돈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배분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됐다.’

이제 이들에게 몬스터 사냥 퀘스트를 부여하기만 하면 앉아서 경험치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자동 사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들을 돈 벌어다주는 기계 취급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적당한 타이밍에 얼굴을 마주보고 인간적인 교류를 해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우리 가족을 구해줄 열쇠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그 전에 어떤 사람들인지 한 번 살펴볼까.’

절대자의 눈 스킬을 사용하려던 찰나.

[시민 하동건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뜬금없이 신뢰도 증가 알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뭐지?’

아직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나에 대한 신뢰도가 오를 수가 있나?

[시민 김가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유혜린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허.”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직접 봐야 할 것 같았다.

***

“들어오시죠.”

“실례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저녁 식사 초대를 받은 하동건의 파티는 우르르 최형준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에 현관까지 마중을 나왔던 박혜원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여보?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나중에 설명해줄게. 밥 좀 준비해 줄 수 있어?”

“밥이요? 새로 해야 하는데···.”

“부탁할게. 그 분의 지시야.”

“조금 걸릴 거예요. 금방 차릴게요.”

최형준이 ‘그 분’을 언급하자 박혜원은 군말 없이 식사를 준비하러 갔다.

하동건은 그 모습을 눈여겨보며 물었다.

“그 분은 어떤 사람인가요?”

“으음. 그게, 저도 잘 모릅니다.”

“잘 모른다고요?”

“네. 이웃집에 살고 계신다는 것 말고는···.”

그의 말에 하동건은 현관문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반대쪽 집이었나.’

자신들의 파티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

그것은 꼭대기 층에서 라면과 김 따위를 던져대는 이상한 남자의 존재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좀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하여튼 신비한 분이십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전기가 들어오는 것도 그 분의 힘입니다. 물이랑 귤을 창조하시는 능력도 가지고 계시죠.”

“흐음.”

하동건은 자신을 밝게 내리비추는 현관등을 유심히 관찰했다.

‘초능력인가.’

그것들이 세상에 나타난 날, 자신도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다.

다른 이들이라고 해서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엄청난 능력이군.’

그가 자신들을 향해 식량을 던져준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분명 그가 창조할 수 있는 것은 물과 귤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던져줬던 라면과 김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분명해.’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창조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에게 붙어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강한 힘을 지닌 사람에게 붙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전기를 공급하고 물과 음식을 만들어내는 능력.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능력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투척 능력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그와 접촉하여 자신들의 능력을 어필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던 와중에 최형준이 말했다.

“밥 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리니 간단하게 샤워라도 하시겠습니까?”

그의 말에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김가영과 유혜린이었다.

“샤워요?!”

“씻을 수 있다고요?”

전기가 들어온다는 것은 알았어도 수도까지 들어올줄이야.

‘하긴 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면 그쯤이야 어렵지 않겠지.’

최형준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예. 따뜻한 물도 나옵니다.”

“따뜻한 물?!”

“이 또한 그 분의 은총이죠.”

김가영과 유혜린이 차례로 말했다.

“다 비켜! 내가 제일 먼저 씻을 거야!”

“그, 그 다음은 나!”

그 옆에서 최형준이 나직이 말했다.

“화장실이 두 개 있으니 두 분이 동시에 씻으시면 됩니다.”

“대박!”

“한 분은 여기 쓰시면 되고, 다른 한 분은 안방에 있는 화장실을 쓰시면 됩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김가영과 유혜린이 저렇게 애써 밝은 척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싶었던 거겠지.

요즘 그들의 분위기는 지나치게 무거웠으니까.

그렇게 두 여자가 사라지고 현관에는 네 명의 남자만 남았다.

김 건이 중얼거렸다.

“···선배. 그 남자도 초능력자인 걸까요?”

하동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것도 내가 가진 능력과는 비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인 거 같아.”

그 말을 들은 강덕수가 하동건에게 어깨동무하며 우렁차게 말했다.

“기죽지 마, 임마! 그깟 놈쯤 내 몽둥이찜질 한 방이면―.”

“미친놈아. 잘 보여도 모자란 판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아? 그런 거야?”

“부탁이니까 제발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주라.”

“아하하. 오케이, 오케이.”

하동건은 작게 한숨 쉬고는 말했다.

“어쨌든 우리 목표는 여기서 될 수 있는 한 많은 식량을 얻어가는 거야. 실수하지 말고 최대한 잘 보여야 돼. 알았지?”

“오케이, 오케이.”

“···네.”

“······.”

한 사람, 하동건의 말에 대답이 없는 남자가 있었다.

하동건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병호야.”

그러자 드디어 반응이 왔다.

“엇, 네, 형. 죄송해요, 못 들었어요.”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문병호가 애써 어두운 표정을 떨쳐내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형. 형이 무슨 잘못이 있어요.”

“후. 미안하다. 내가 괜히 집들이한다고 부르는 바람에···.”

“아니에요, 형. 저도 오고 싶어서 온 건데요.”

하동건 파티가 모이게 된 것은 신혼인 하동건과 김가영의 집들이 때문이었다.

파티 준비가 한창이던 그때, 괴물들이 나타났고 세상이 망했다.

당연히 그들은 다 같이 하동건의 집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할머님은 무사하실 거야. 분명.”

“······네.”

가족들이 걱정되는 것이야 모두가 마찬가지였지만, 문병호는 특히 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할머니는 나이가 드시며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고, 문병호의 간병이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병호가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날, 몬스터들이 나타나자마자 그들은 모두가 함께 문병호의 집을 제일 먼저 들리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열흘간 몇 번이고 외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고블린 놈들에게 막히고 말았다.

그들이 고블린 무리를 익숙하게 잡아냈던 것은 모두 그간의 경험 덕분이었다.

“여기서 식량을 구하고 나면 다 같이 할머님 댁으로 가자.”

“······네에. 감사해요, 형.”

문병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도 아는 것이다.

이미 너무 늦었다는 걸.

그 날로부터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운이 좋아 몬스터의 습격을 받지 않았더라도 문병호의 할머니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굉장히 낮았다.

꾸욱

화가 나는 것은 그의 집은 하동건의 집에서도 보일만큼 바로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당장 주변에 널려 있는 고블린 무리가 너무 많았다. 수십 마리 단위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날 지경이었으니 말 다 했다.

“바로 근처니까 힘을 합치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거야. 조금만 더 힘내자.”

“정말 감사해요, 형. 그런데······.”

이제는 그만하자고.

이제 괜찮다고.

모두에게 민폐인 걸 알기에 그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목에 가시처럼 박혀 아프기만 할 뿐이었다.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던 그때였다.

철컥

“응?”

“어?”

“뭐야?”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가 긴장하며 야구 배트를 들었다.

하동건 또한 주머니에서 야구공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 나타난 남자의 모습과 마주하는 순간, 모두의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뭐, 뭐야. 이 존재감은?’

평범해 보이는 외모의 남자였다.

키가 엄청 크거나, 덩치가 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부드러운 인상에 태양의 그슬림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가 온화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거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듯한 압박감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거대한 맹수의 아가리가 자신들의 모가지를 겨누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죽을 고비를 숱하게 겪으며 날카로워진 그들의 본능이 경종을 울려댔다.

하동건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남자···.’

눈앞에 있는 남자의 손에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 줄이 쥐여져 있다는 것을.

남자가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존재라는 직감이 왔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돕겠습니다.”

겨우 말 한 마디가 문병호의 가슴 속에서 희망을 피워냈다.

그래서인지 홀린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쩌면···.’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라면 이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자신을 구해줄 것만 같다는, 그런 믿음이 생겨났다.

아무런 근거는 없는 확신이.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