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3] 몰이사냥 (1)
식사를 마친 하동건 파티는 제일 먼저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갔다.
“동건아. 1층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아까 보니까 유리창도 다 깨져있고, 상태가 말이 아니던데.”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재현님 말씀 들었지? 우리는 지금 구조대로서 여기 온 거야.”
그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114동 전체에 퍼져있는 생존자들을 모조리 찾아내, 30층으로 올려 보내는 것이었다.
김 건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그런데 굳이 생존자들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작전을 시작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러자 문병호가 그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분을 의심하는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내 말은···.”
그 때 하동건이 나서서 김재현의 의도를 전달했다.
“너희도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작전은 이 아파트 안으로 대량의 고블린을 끌어들이는 게 핵심이야. 작전대로 잘 흘러가서 모조리 처리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잘못하면 각 층에 있는 생존자들이 위험해 질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러니 그 전에 사전 예방을 하시려는 거야.”
실제로 김재현은 그런 설명을 한 적이 없었지만, 하동건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런 깊은 뜻이! 생존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거구만! 오케이, 오케이!”
강덕수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첫인상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대단하신 분인 거 같단 말이지.”
그의 말에 여자 두 명이 호들갑을 떨며 동조했다.
“맞아, 맞아.”
“되게 잘생기신 거 같지 않아요?”
“오올. 뭐야 유혜린~ 관심 있어?”
“으음. 조금?”
“이것 봐라. 진심인 거 같다?”
“언니. 저 솔로 3년 차에요. 이제 슬슬 연애 할 때 됐죠.”
“아하하. 웃겨 진짜.”
김 건은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자신의 일행을 훑어봤다.
‘···다들 이상해.’
알게 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까지 그 남자를 신뢰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사람 좋아 보이고, 능력도 좋은 건 인정하지만···.’
김 건은 평소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감성 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우선시하며, 논리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는 편인 그는 친구들의 상태가 묘하게 이상해 보였다.
‘···특히 문병호 이 새끼.’
그 사람이 할머니를 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한 것 때문인지, 아예 그 남자의 광신도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때 하동건이 입을 열었다.
“잡담은 그만하고 슬슬 시작하자. 언제 갑자기 고블린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오케이.”
“네에~.”
그렇게 생존자 탐색을 시작했다.
“101호부터 시작하자.”
다행히 1층에 있는 세대에 진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101호, 102호 둘 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던 덕분이었다.
“으윽···.”
1층에 있는 세대의 상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한 때 고블린 무리의 터전이었던 101호의 상태는 그야말로 야생굴과 그리 다를 것 없는 상태였다.
놈들이 머문 시간은 겨우 며칠에 불과했지만,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남긴 흔적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다.
“윽. 냄새.”
놈들이 싸지른 배설물과 먹다 남은 사체들이 썩어가고 있어 심각한 악취를 풍겨대고 있었다.
“수색 시작하자.”
하동건이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아서 흩어져 내부를 살폈다.
“여긴 아무도 없어.”
“이 방도.”
“여기도 마찬가지.”
별다른 소득 없이 수색이 끝나려던 찰나.
“우욱. 우웨에에엑!”
안쪽 방을 확인하던 유혜린이 방금 먹었던 저녁을 모두 게워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하게 유혜린의 곁으로 달려간 하동건은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크게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혜린아 괜찮아?”
“어, 언니. 저, 저기에, 저기 사람들 시체가···.”
화장실 안쪽에는 고블린들이 먹다 남은 인간 시체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어찌나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인지 화장실에 있는 사체만 대략 수십 명인 것으로 보였다.
열흘간 고블린들과 싸우며 사람 시체를 본 적이야 있었지만, 이토록 잔혹한 광경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동건이 말했다.
“···여긴 아무도 없는 것 같으니 다음으로 이동한다.”
102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집안 전체가 박살난 물건들로 가득했고, 화장실 구석에는 인간 사체들이 겹겹이 쌓여 썩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색하는 동안 고블린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자.”
2층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밖에서 유리창을 깨면 충분히 침입할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고블린들에게 무방비하게 노출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3층부터는 사정이 나아졌다.
복도 주변에 고블린들의 똥오줌이 가득한 것은 같았지만,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쿵쿵쿵
하동건은 가볍게 노크한 다음 말했다.
“생존자분 안에 계십니까?”
쿵쿵쿵
“안에 계시면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3층부터는 다른 의미로 문제가 생겨났다.
단단한 철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보니 안에 들어가 확인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적당히 시도해 본 뒤 반응이 없다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올라가자.”
그렇게 5층에 도착했을 때였다.
쿵쿵쿵!
“계십니까! 구조하러 왔습니다! 안에 계시면 응답해주시기 바랍니다!”
별 기대 없이 문을 두들기던 그때.
철컥.
처음으로 문이 열렸다.
그러나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었다.
안전 고리 장금장치가 달려 있어 외부에서 강제로 문을 열수 없게 되어 있었다.
살짝 열린 문 틈새로 한 남자가 고개만 내밀고 하동건 일행을 훑어보더니 물었다.
“저, 정말 구조대가 맞나요?”
“맞습니다.”
남자는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 요구했다.
“그, 그럼 물 좀 주실 수 있나요? 목이 너무 말라서요.”
그 말에 하동건은 배낭에서 2L짜리 삼다수를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하동건이 군말 없이 물을 건네주자 남자는 의외라는 듯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진짜 구조대 맞습니까?”
“국가 기관 소속인 것은 아니지만, 이 아파트에 계신 생존자분들을 구조하러 온 것은 맞습니다. 저희와 함께 하시면 물도 식량도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남자는 하동건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
“······.”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문이 열렸다.
철컥
두 번째로 열린 문에는 장금장치가 걸려있지 않았다.
현관문 앞에 선 남자의 등 뒤로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 하나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 한 명이 어색하게 서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믿어보겠습니다. 그쪽을 따라가면 먹을 것 걱정은 할 필요 없게 해 준다는 거죠?”
“물론입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내밀며 말했다.
“홍정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악수를 마친 하동건이 일행들을 향해 지시했다.
“가영이랑 혜린이. 너희는 이분들 30층에 데려다드린 다음 다시 합류하도록 해.”
“응.”
“네.”
그 말을 들은 홍정수가 주춤거리며 물어왔다.
“30층이라니요? 1층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요?”
괴물들이 나타난 이후로 집안에 꽁꽁 숨어만 있었던 홍정수는 지금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 그의 옆에 있던 딸이 입을 열었다.
“아빠도 참. 헬기가 온 거겠죠. 빨리 올라가요.”
딸도 상황을 모르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 그들을 향해 김가영이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만, 올라가시면 따뜻한 밥도 먹고 샤워도 할 수 있거든요.”
그 말에 반응을 한 것은 홍정수의 아들 쪽이었다.
“샤워요?! 정말인가요?!”
그런 그를 향해 김가영이 빙긋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요. 그것도 따뜻한 물로.”
그러자 아들이 홍정수를 재촉했다.
“뭐해 아빠. 빨리 올라가자.”
“어, 으응. 그래.”
***
[시민의 숫자가 90명에 도달했습니다.]
[시민들이 벌어들이는 경험치와 정산금이 90% 증가합니다.]
이것으로 시민들의 숫자가 93명이 되었다.
시민 관리창을 통해 새롭게 합류한 이들의 스펙을 확인해봤지만, 특별한 이는 없었다.
‘93명 중에 능력을 각성한 사람이 겨우 한 명뿐 인건가.’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동건이 유일했다.
‘그래도 제법 쓸 만 해 보이는 사람들은 있는 것 같으니 따로 팀을 꾸려봐야겠어.’
지금까지 하동건이 구출해온 83명 중에는 제법 레벨이 높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죄다 꾸준한 자기관리로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라는 점이었다.
걔 중에는 15레벨인 남자도 있었는데, 보디빌더라도 되는 것인지 전신이 근육으로 들어차 있었다.
‘절대자의 눈.’
스킬을 사용하자 비상구 쪽이 내려다보였다. 그곳에 새롭게 합류한 여섯 명이 숨을 고르며 서 있었다.
“이쪽입니다.”
하동건의 안내를 따라 그들이 향한 곳은 역시나 최형준네 집이었다.
최형준네 집은 현관문을 아예 활짝 열어놨는데, 덕분에 집안의 풍경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현관 전체를 가득 채운 수많은 신발들이었다.
어찌나 그 숫자가 많은지 현관문 밖으로도 신발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마치 대학교 MT 때 특히나 사람이 많이 모인 방의 현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더 가관인 것은 물론 집안의 풍경이었다.
홈 파티라도 벌이는 것처럼 수많은 인파가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기껏해야 30평 남짓의 작은 공간에 90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리가 부족해 제대로 앉거나 누울 수도 없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최형준의 집은 완전히 생존자들의 구호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주먹밥 못 받으신 분?!”
“여기! 저희들 차례에요!”
“여러분 이것 좀 저분들에게 건네주시겠어요?”
더군다나 박혜원은 식당 아줌마가 되어 끊임없이 밥을 하고 있었다.
주방 한쪽 구석에는 원래라면 안방에서 자고 있어야할 최나연과 최서연이 딱 붙어 앉아 졸고 있는 중이었다.
불청객들의 등장으로 졸지에 안방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좀 미안하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들 중 일부를 우리 집에 들이고 싶었지만, 우리 집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와 가신으로 등록된 최형준 뿐이었다.
‘애들이라도 데려와야 하나?’
최형준의 가족은 현재 모두가 가신 등록이 가능한 상태였다.
신뢰도 50은 물론이고 충성도 30까지 돌파했다는 뜻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두 아이를 가신으로 받아들이고 침대에서 재워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너무 아깝지.’
가신으로 등록하는 순간 레벨이 대거 상승하며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시민들보다 경험치나 돈을 벌어오는 효율이 2배였다.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한 애들에게 몬스터 사냥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참아야만 했다.
‘가신 등록은 무조건 하동건 파티에 사용해야지.’
또는 새롭게 합류한 이들 중 레벨이 높은 이들 위주로 가신으로 받을 생각이었다.
♬♪♬♩~
벨소리가 들려와 절대자의 눈 스킬을 해제했다.
그리고는 현관으로 이동해서 문을 열어주었다.
‘열려라.’
벨 소리를 누른 것은 하동건, 그가 현관으로 들어왔다.
아직 가신의 자격을 얻지 못한 그에게 허가된 공간은 딱 거기까지였기에 그곳에 서서 보고를 시작했다.
“지금 합류한 사람들이 마지막 생존자들입니다.”
“벌써 모든 층을 돌아본 건가요?”
“네. 방금 29층을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100명을 채우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93명이면 나쁘지 않은 숫자다.
‘최형준네 집도 거의 가득 찼고,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무려 90%의 보너스 경험치.
하동건의 파티에 각각 70%씩 분배를 해 주어도 120%에 달하는 경험치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잠시만요.”
하동건을 앞에 둔 나는 두 눈을 감고 스킬을 사용했다.
‘절대자의 눈.’
이번에 절대자의 눈을 사용한 곳은 집구석이 아닌 최형준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비상구 계단 쪽에서 무언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자르고 벗겨내고, 다시 그것들을 연결하며 계단 바닥에 깔아두는 작업이었다.
한동안 집중하던 그가 허리를 펴며 일어났다.
‘절대자의 눈 해제.’
준비는 다 끝났다.
나는 하동건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럼 고블린 몰이사냥, 스텝 투로 넘어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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