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3화 (13/175)

[Episode 03] 몰이사냥 (3)

으적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짙은 그림자 속에서 붉은 안광이 흉흉하게 빛난다.

까득!

북쪽 샛길.

그곳의 주인은 한 마리 인간형 마수였다.

칠흑과 같은 검은 털이 전신에 거칠게 돋아난 괴물이었다.

으적!

놈은 고블린의 목뼈를 박살내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죽인다.’

놈의 주변으로 널브러진 수십 마리의 고블린 시체가 썩은 내를 풍겨댔다.

까드득―

단순히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한 사냥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놈의 주변에 깔려있는 수십 구의 사체에는 악의가 가득했다.

지금도 고블린의 신체를 부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은 사냥이라기보다는 화풀이에 가까웠다.

‘죽인다.’

고블린의 시체는 하나 같이 멀쩡한 게 없었다.

모두 심하게 훼손 되어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있었다.

“크르릉.”

조금 의외인 것은 주위에 인간의 사체가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놈의 주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은 오로지 고블린들의 사체뿐이었다.

‘더.’

마침 입에 물고 있던 고블린을 해체하는 일을 끝마친 놈은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다음 사냥감을 탐색했다.

‘더 필요해.’

그런 놈의 귀로 증오스러운 고블린 놈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끼에에엑―! 끼에에엑―! 끼에엑―!”

잔뜩 흥분하여 발광해대는 고블린들의 울음소리를 듣자 짐승의 본능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지하주차장.’

일전에 한 번 놈들의 소굴에 쳐들어가 수많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그 상처들은 모두 말끔하게 회복된 지 오래.

‘죽인다.’

사냥의 시간이다.

***

슈슉-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최형준이 나타났다.

‘후. 큰일 날 뻔 했네.’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절대자의 눈으로 최형준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혹여나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가신 소환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일이 생기질 않았으면 했지만, 결국 사고가 생길 뻔 했고, 곧바로 가신 소환스킬을 사용했다.

‘그런데 스킬을 시전 하는 데 3초나 시간이 걸릴 줄이야.’

스킬 시전을 위해 절대자의 눈까지 꺼야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보다 조금 더 걸렸다.

“허억! 헉!”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나타난 최형준이 나를 확인하고는 울상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재, 재현님! 크윽!”

“다친 곳은 없으세요?”“흐윽. 저는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응?”

말과는 달리 최형준의 종아리에서 핏기가 배어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 시선을 따라 자신의 종아리를 확인한 최형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게 언제···. 괜찮습니다. 이 정도 상처는 금방 낫습니다.”

피가 배어나오는 정도가 미미한 것을 보면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아 보였다.

고블린의 손톱에 긁힌 것으로 보였는데, 고블린의 손톱은 굉장히 더러울 게 뻔했다.

2차 감염을 막기 위해서라도 빠른 처치를 해야만 했다.

‘약품도 등록해 놔야겠어.’

등록해야하는 물건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요.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예···.”

집으로 들어간 나는 의약품이 보관되어 있는 서랍을 열었다.

‘생각보다 쓸 일이 많을 수도 있겠어.’

앞으로 계속해서 몬스터들과 전투를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잘한 상처는 기본이었고, 그를 안전하게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약품들이 필요했다.

빨간약이나 후시딘 그리고 데일밴드, 감기약, 소화제, 타이레놀 등등.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팠던 탓인지 웬만한 것들은 모두 갖춰두려고 하는 편이었다.

‘항생제도 있었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 몸에 종기가 나서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한동안 병원을 열심히 다녀야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 낫고 난 뒤로는 가질 않았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도 먹다가 까먹었는데, 그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

‘페니실린.’

페니실린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위대한 약으로 꼽힐 만큼 효과가 굉장한 약이었다.

인류 의학 역사는 페니실린이 있기 전과 후로 나누어진다고 할 정도다.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자잘한 상처가 동반될 게 뻔한 지금 가장 필요한 약이었다.

‘등록할 게 너무 많은데.’

상점에 남은 슬롯은 몇 개 없었다.

겨우 40개의 슬롯으로는 생필품을 채워넣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언제 스킬 포인트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이상 최대한 남은 슬롯은 아끼는 게 맞았다.

언제 꼭 필요한 물품을 얻게 될지 몰랐으니까.

‘될까?’

상점 슬롯을 아끼는 꼼수가 하나 있기는 했다.

최형준이 들고 왔던 공구상자가 한 번에 등록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공구상자 안에 망치, 드라이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물품이 있었음에도 하나의 상품으로 분류가 된 것이다.

‘처음부터 세트로 팔았던 상품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여기 있는 의약품들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모두 따로 사서 모은 물건들이어서 한 세트로 인식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시도 해 보자.’

서랍 안에 있는 구급상자 안에 의약품들을 최대한 욱여넣은 다음, 상점에 등록을 시도했다.

조잡한 중고 의약품 구급상자 (77,330 원) ▶수복하기

‘···된다.’

쓸데없이 비싼 데다 수복하는 가격도 말도 안 되게 비쌌지만, 일단 임시로 만든 물건도 세트등록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수복은 나중에 해야겠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아니니까.’

쓸데없이 비싸다는 점만 빼면 양호했다.

나중에 필요하다면 그 의약품만 꺼내서 따로 상점에 등록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어설프게 만든 구급상자와 물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가니 얌전한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최형준이 보였다.

“상처 좀 보여주세요.”

“정말 괜찮은데···.”

바지를 걷어 올리니 확실히 고블린의 손톱에 의한 열상으로 보였다.

상처가 크진 않았지만, 상처 주위가 벌써 빨갛게 부어 있는 게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소독할게요.”

“아, 네.”

알콜솜으로 피를 닦아내고 소독약을 발랐다. 따끔한지 최형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이내 연고를 발라주자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시민 최형준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최형준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감사합니다.”

“이것도 드세요. 항생제예요. 여기 물.”

“네, 넵.”

처지가 끝나자  타이밍 맞춰서 비상계단 아래쪽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왔군.’

하동건 일행의 다급한 발소리 뒤로 수십, 수백 마리의 고블린들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 왔어! 조금만 더 뛰어!”

90명이 넘는 인원을 시민으로 받아들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성인 남자의 평균 레벨이 7~8정도이다.

그런데 하동건 파티는 여자인 김가영과 유혜린까지도 두 자리 수 레벨을 가지고 있었다.

운동부 출신이라 그런지 일반인보다 월등히 체력이 좋은 것이다.

“허억! 헉!”

그런 그들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전속력으로 30층을 올라오는 것도 충분히 힘든데, 뒤쪽에 살의가 가득한 고블린들이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강아지처럼 네 발을 모두 사용하여 달려오는 고블린의 속도는 심상치 않았다.

그나마 여기까지 무사히 도망쳐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동건 파티의 빛나는 팀워크 덕분이었다.

“흐-읍!”

콰직!

제일 후미에 있던 문병호가 배트를 휘두르자 고블린 두 마리가 계단을 구르며 뒤에 있는 고블린들을 덮쳤다.

도미노처럼 피해가 확산되는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고블린들은 금세 진형을 회복하며 그들을 추격해왔다.

“병호야! 달려!”

문병호가 달리는 동안 먼저 올라온 김가영과 하동건이 엄호사격을 가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고블린의 배나 어깨 등을 노렸다.

푹!

“꽤액!”

부상을 당한 고블린들은 그대로 장애물이 되어 다른 고블린들의 진격을 늦춰주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팀워크.

결국 모두가 무사히 30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두두두두!

여섯 명이 우르르 쏟아지듯 비상구를 통과했다.

그 모습이 마치 단거리 달리기 결승점을 지나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그 직후, 뒤따라오던 고블린들도 속도를 멈추지 않고 비상구를 통과하려 했다.

하지만.

쿠구구궁!

“꽤애액―!”

“끼이에엑?!”

“끼이이익!”

투명한 벽에 막힌 고블린들은 영문을 몰라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헥! 흐읍!”

모두가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던 그 때, 단 한 명만이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남아 있는 듯 고블린들을 향해 배트를 열심히 휘둘러대고 있었다.

그는 바로 직전에도 활약을 보여주었던 문병호였다.

콰직!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0,085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문병호가 고블린 한 마리의 머리를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경쾌한 알림이 울려댔다.

‘효율 좋고.’

가신이 된 그가 고블린을 잡을 때마다 만원에 가까운 돈이 지급되고 있었다.

시민의 숫자가 90명을 돌파하며 얻은 90% 추가 효과와 더불어 가신의 2배 특전으로 인해 총 380%의 정산급을 지급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험치로 마찬가지로 380% 버프 된 상태였다.

“허억! 아니, 병호야. 넌 숨차지도 않냐? 후욱.”

강덕수가 문병호를 괴물 보듯이 하고 있었다.

문병호는 계속해서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 요!”

퍼억!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2,71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문병호가 배트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고블린의 머리가 박살났다.

그 모습을 본 김 건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미친.”

“병호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근데 병호가 원래 저렇게 체력이 좋았나?”

하동건 파티 모두가 문병호를 보며 경악하는 중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유독 문병호만 멀쩡해 보이는 이유는 내가 그를 가신으로 등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름 : 문병호 (Lv. 30) [+]

칭호 : [두 번째 종]

신뢰도 : 55   충성도 : 88

각성 능력 : 텔레포트

★퀘스트 부여 』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신 등록된 문병호의 레벨이 무려 30까지 치솟았다는 점이 주효했을 것이다.

덕분에 체력이나 근력도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 것이다.

화룡점정은 각성 능력이었다.

텔레포트 (A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공간을 이동한다. 시야가 확보된 곳으로만 가능하며, 동행자의 숫자와 거리에 비례하여 정신력 소모가 늘어난다.

‘가신 등록하길 잘했어.’

솔직히 로또에 맞은 기분이었다.

비록 시야가 확보된 곳이라는 제한이 있긴 했었지만, 이 능력은 부모님을 구하는 데 핵심적인 능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문병호만 보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콰직!

“꽤애액―!”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9,902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착실히 고블린을 제거하며 경험치와 정산금을 벌어다주는 모습이 정말이지 기특했다.

물론 고블린들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꾸준히 처리한다고 해도 하루 종일 걸릴 것이다.

다행히 나에게 방법이 있었다.

이제 몰이사냥의 스텝 쓰리로 넘어갈 타이밍이었다.

“다들 정말 잘 해주셨습니다.”

내가 입을 열자 모두가 나를 바라봤다.

고블린을 열심히 두들겨 패던 문병호도 뒤로 돌아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문병호를 향해 말했다.

“위험하니까 뒤쪽으로 나와 주세요.”

문병호는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내 지시에 따랐다.

모두가 비상구 계단 쪽에서 충분히 멀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비상구 계단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창고 개방. 안에 있는 물 모조리 뱉어네.’

지이잉―

창고의 한계치까지 넣어두었던 물이 폭포수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촤아아아아!

“끼긱?”

“끼이익!”

갑작스러운 샤워 세례에 놀란 고블린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최형준 씨. 지금이에요.”

“옙!”

최형준이 내 집에서부터 이어져 나온 멀티탭의 전원을 올렸다.

파직-

비상계단 바닥에는 최형준이 촘촘하게 깔아둔 피복이 벗겨진 전선이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마침 물에 젖은 고블린들이 뒤엉켜있었다.

피복이 벗겨져 여러 갈래로 찢어진 전선에서 강렬한 전류가 방출되었고, 이내 비상계단 전체에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파지지지지직―!!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

······

고블린 수십 마리가 순식간에 전기구이가 되었다.

‘됐다.’

물론 전기 공격으로 즉사하는 것은 고작해야 가까이 있는 수십 마리 정도였다.

적어도 수 백 마리가 넘는 고블린들이 이 뒤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문제 될 건 없었다.

‘이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하면 그만이다.’

꽤나 많은 양의 전류가 방출되면서 지갑에 있는 돈이 빠르게 깎여나갔지만, 그보다 더 많은 양의 돈이 새롭게 들어왔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334,46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막대한 양의 경험치를 한 번에 받아들인 순간.

‘음?’

강제로 절대자의 눈이 발동되었다.

그와 동시에 덮쳐오는 격렬한 고통.

‘크윽!’

그때와 같았다.

집구석의 영역이 넓어질 때 겪었던 격통.

몸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감각과 함께 폭발하듯 영역을 확장시켜나갔다.

다만 그 방향이 이번에는 조금 특이했다.

감각이 확장된 방향은 비상계단이었다.

비상구를 통해 내뻗어진 감각은 이내 곧장 지하 2층까지 쭈욱 이어졌다.

고블린들로 가득 들어 차 있는 비상계단의 모든 것이 세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간결한 알림과 함께,

퍼억!

비상계단을 가득 메우던 모든 고블린들의 머리가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6)을 사냥하셨습니다.]

······

······

────────────────────────────────────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