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4화 (14/175)

[Episode 03] 몰이사냥 (4)

“끼에에엑―! 끼에에엑―! 끼에엑―!”

고블린들의 울음소리에 이끌린 검은 짐승이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아파트의 비상계단 앞이었다.

고블린들은 어찌나 흥분한 것인지 자신을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에 분노한 짐승이 울부짖었다.

“크워어어어!”

검은 짐승이 고블린들을 향해 포효하자 그제야 고블린들이 반응해왔다.

“끼이익!”

갑자기 들이닥친 불청객을 향해 고블린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으적!

검은 짐승은 돌진해오던 고블린 한 마리의 목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끼긱!”

어찌나 턱 힘이 강력한지 단 한 방에 고블린 한 마리가 즉사하고 말았다.

그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서걱!

검은 짐승의 손톱이 할퀴고 지나간 곳에서는 고블린의 피륙과 내장을 쏟아져 나왔다.

“끼에에엑!”

놈의 이빨이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손톱이 훑고 지나갈 때마다 고블린 한 마리의 목숨이 사라졌다.

“크르릉!”

포식자의 등장에 기겁한 고블린들이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사방 천지에 고블린들로 가득한 비좁은 비상계단에서 도망칠 장소란 없었다.

“끼긱?”

“끼익!”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캬아아악!”

“캬악―!”

고블린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검은 짐승을 향해 달려들었다.

“케에엑!”

손톱으로 할퀴고, 이빨로 물어뜯고, 털을 쥐어뜯으며 몸을 기어오르고.

열댓 마리의 고블린들이 힘을 합쳐 공격하는 것은 충분히 위협적이었지만, 검은 짐승은 전혀 타격이 없었다.

전신을 둘러싸고 있는 두꺼운 지방층 덕분이었다.

“크아악!”

서걱!

고블린들이 무슨 짓을 하던 간에, 단지 한 마리라도 더 많은 고블린을 죽이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러나 고블린들의 힘이 고작 이 정도였다면, 이 아파트에 자리 잡은 고블린들은 이미 진즉에 검은 짐승에 의해 몰살당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고블린들은 검은 짐승에게 피해를 줄 수 없었다.

놈들의 손톱이나 발톱이라고 해 봤자, 검은 짐승이 가지고 있는 두꺼운 지방층을 뚫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고블린들은 굉장히 영악했고, 도구를 활용할 줄 알았다.

그들이 약탈한 인간들의 집에는 위험한 물건들이 많았고,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고블린들은 검은 짐승에게도 커다란 위협이 되는 것이다.

푸욱!

날카로운 식칼 하나가 검은 짐승의 등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검은 짐승은 신경질을 내며 벽에 들이받았다.

쿠웅!

칼침을 놓은 고블린은 대가리가 깨지며 즉사했지만, 그를 대신할 고블린은 얼마든지 더 있었다.

푸욱!

이번에는 송곳 하나가 허벅지에 박혔다.

검은 짐승은 신경질 내며 발을 굴렀고, 허벅지에 송곳을 박아 넣은 고블린은 그대로 가슴팍이 함몰되며 즉사했다.

검은 짐승의 몸짓 한 번, 발짓 한 번에 고블린들은 죽어나갔지만, 그를 향해 달려드는 숫자는 오히려 늘어만 갔다.

“키에에엑―!”

고블린들은 끊이지 않고 유입되었고, 검은 짐승의 몸에 박혀 있는 식칼, 송곳, 가위 등은 다른 고블린들의 손에서 몇 번이고 재활용되었다.

푸욱! 콱! 푹!

몸통박치기로 더욱 깊숙이 칼을 박아 넣거나, 손잡이를 잡고 체중을 실어 상처를 벌리거나, 가위를 뽑아낸 다음 다시 찔러왔다.

상처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그것은 아무리 괴물 같은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버티기 어려운 것이었다.

“크아아악!”

이제는 한계였다.

증오로 가득 찬 가슴은 더 많은 피를 원했지만, 생존을 향한 본능은 그보다 강했다.

“크륵!”

이제는 슬슬 빠져야할 때였다.

다음을 기약하며 비상계단 밖으로 도망치려던 그 순간,

파지지지직―!

위쪽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크헝?”

그리고 다음 순간.

스르륵―

“!!!”

무언가 압도적인 힘이 자신을 지나쳐가는 것이 느껴졌고, 이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퍼석!

고블린들의 머리가 일제히 폭발했다.

순간 알 수 없는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탓이었다.

지금 자신이 맹수의 아가리 안에 머리를 집어넣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식칼이나 송곳이 몸을 파고드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두려움이 목을 조여 왔다.

마치 거인의 손아귀에 붙잡힌 벌레가 된 기분.

그러던 어느 순간.

[시민권이 부여되었습니다.]

“하아―!”

그를 속박하던 힘이 사라졌다.

파사삭―

동시에 검은 짐승의 겉모습이 녹아내리듯 사라졌고, 그 속에서 나타난 것은 초췌한 얼굴의 중년 여성이었다.

긴장이 풀린 그녀는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

갑작스러운 레벨업.

늘어난 집구석 영역.

즉사한 고블린 수백 마리까지.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지만, 그 중 백미는 이것이었다.

『이름 : 오언주 (Lv. 33)

신뢰도 : 9

각성 능력 : 웨어베어

경험치 분배율 : 0%

정산금 분배율 : 0%

★퀘스트 부여    퇴출』

웨어베어 (A 등급)

수인화(곰)하며 모든 신체능력과 재생력이 극대화된다.

어찌된 영문인지 집구석 영역이 넓어진 직후에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시민이었다.

그런데 그 스펙이 심상치 않다.

레벨 33, A 등급 능력까지.

호박이 넝쿨 째 굴러 들어온 격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시민 하동건의 신뢰도가 50을 달성했습니다.]

[충성도가 개방됩니다.]

[시민 유혜린의 신뢰도가 50을 달성했습니다.]

[충성도가 개방됩니다.]

······

······

하동건 일행 모두가 신뢰도 50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신뢰도 달성과 동시에 충성도 30을 돌파하며 가신 등록 조건을 충족시켰다.

[시민 강덕수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강덕수가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확인해보니 강덕수의 충성도는 31로 아슬아슬하게 최소 기준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가신 등록, 강덕수.’

고민할 것 없이 바로 가신으로 등록시켰다.

우우웅!

『이름 : 강덕수 (Lv. 25) [+]

칭호 : [세 번째 종]

신뢰도 : 52   충성도 : 31

각성 능력 : 강철의 기사

★퀘스트 부여 』

강철의 기사 (B 등급)

전신을 보호하는 강철 갑옷과 할버드를 소환한다.

‘가신 레벨은 각성한 능력의 등급에 비례하나 보군.’

C 등급 능력인 고릴라의 괴력을 가진 최형준이 20레벨, B등급 능력인 강철의 기사를 가진 강덕수가 25레벨, 마지막으로 A등급 능력인 텔레포트를 가진 문병호가 30레벨이었다.

가신 등록을 하는 순간 각성하는 능력의 등급에 따라 레벨이 결정되는 것이다.

‘능력의 등급이 나오는 건 완전 랜덤인 건가?’

세 명의 정보창을 비교해보면 능력의 등급은 신뢰도나 충성도와는 딱히 상관없어 보였다.

만약 문병호가 충성도가 높아서 A등급 능력을 획득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충성도가 더 높은 최형준이 B등급 능력을 획득했어야 맞았다.

그러나 그는 C등급 능력을 각성했고, 정작 충성도가 31로 최소 기준만 간신히 채운 강덕수가 B등급 능력을 획득했다.

‘더 높은 등급의 능력이 나타나는 조건을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10명 제한이 걸려 있는 가신 등록을 최대 효율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등급의 능력을 각성하는 사람을 가신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았으니까.

‘또, 이미 각성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가신으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동건과 방금 시민으로 받아들인 오언주라는 여자.

두 사람은 가신 등록 이전부터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가신으로 등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허어···.”

한창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뒤쪽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경악한 표정의 강덕수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무슨···?”

다른 이들의 표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저마다의 표정에는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경악, 공포, 그리고 경외.

지금 그들의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괴물처럼 보이겠지.’

저들이 놀란 것은 고블린들을 전기 구이로 만들어버린 것 때문이 아닐 것이다.

“방금,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것.

비상계단을 가득 채우던 수백 마리의 고블린들의 목숨이 일순간에 증발해버렸다는 것을 이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저렇게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 거겠지.

그런 그들을 향해 말했다.

“작전은 끝났습니다. 이제 생존자분들은 자기 집으로 모두 돌려보내주세요.”

언제까지고 최형준 가족의 집에 시민들을 모아놓을 수는 없었다.

‘이번 레벨업으로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각 층의 복도가 전부 집구석 영역에 포함됐다.’

덕분에 이제는 마음대로 엘레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 이 아파트는 안전해진 셈이네.’

엄밀하게 따지자면 아직 아파트 전체가 집구석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장악하면서 사실상 위층으로 올라가는 모든 통로를 정복한 셈이었으니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켈리칸처럼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몬스터 같은 게 아니라면 몬스터의 침입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혹시 물이나 식량이 부족하신 분들은 이걸 챙겨 가시면 됩니다.”

물과 라면을 넉넉하게 구입하여 복도에 배치한 뒤, 최형준을 향해 말했다.

“이제 전선들은 전부 치워주세요.”

“예, 예!”

촤라락 촤락

복도에서 최형준이 전선을 정리하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댔다.

‘절대자의 눈.’

스킬을 사용해 새롭게 얻은 영역을 전체적으로 느껴봤다.

비상계단에 기절한 채 누워있는 오언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층이군.’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전원을 공급하고, 호출 버튼을 눌렀다.

우우우웅

엘리베이터는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이내 30층에 도착했다.

♩♬―

[30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태연히 엘리베이터 안에 탑승한 나는 오언주가 있는 1층으로 향했다.

***

김재현이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

“하아―.”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그가 떠나기 전까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막대한 카리스마가 공간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다.

하동건은 천천히 비상계단으로 다가갔다.

철그덕- 철그덕-

최형준이 열심히 전선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뒤로 드러난 비상계단의 상태는 치열했던 순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흥건하게 남아 있는 물, 전류가 흐르며 바닥과 벽에 남긴 그을린 자국들, 완전히 나가버린 비상등 등.

고블린의 사체는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급박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

전기를 이용한 고블린 사냥은 솔직히 놀라웠다.

가능성을 봤고, 저 방식이라면 고블린들의 숫자를 빠르게 줄여나갈 거라 확신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감전사한 고블린들의 시체가 사라지고 난 직후, 일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무언가 어마어마한 힘이 자신을 덮쳐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하동건은 비상구 계단에 있던 고블린들의 최후를 지켜봤다.

‘동시에 머리가 터져나갔었다.’

운 좋게 전기 공격에서 살아남은 고블린들이 있었다. 그놈들의 머리가 어느 순간 일제히 폭발했다.

물론 그것뿐이었다면 하동건도 그리 경악하진 않았을 것이다.

뭔가 특별한 초능력이라도 사용했으리라 여겼을 테니까.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일이 벌어진 직후 비상계단이 고요해졌다는 거지.’

그 많던 고블린들의 존재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 놈들을 세상에서 지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어째서?’

애초부터 이 아파트 전체가 김재현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시험하신 건가?’

하동건은 상황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봤다.

그리고 한 가지 이변에 주목했다.

‘병호.’

이상할 정도로 김재현을 향한 믿음을 보여주었던 문병호. 그의 신체 능력이 급격히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고블린들을 30층으로 유인할 때도 병호 덕분에 몇 번이나 위기를 넘겼었지.’

문병호와는 오래 전부터 알던 사이였지만, 그는 그렇게 존재감이 넘치는 아이가 아니었었다.

일인분 정도는 하지만, 팀의 에이스는 절대 아니었다.

최근 열흘간 고블린과의 전투를 벌일 때에도 그의 활약은 다른 이들에 비해 묻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갑자기 달라졌지.’

그 순간부터였다.

작전이 시작되고, 문병호의 몸이 환한 빛에 휩싸인 직후.

그때부터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맹활약하기 시작했었다.

만약 그것이 그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라면.

문병호가 보여준 그를 향한 충성심에 대한 보답이라면.

‘···두렵군.’

과연 저 남자의 능력의 끝은 어디일까?

정말 그가 가진 능력이 자신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한 초능력이 맞긴 한 걸까?

‘아니, 애초에 재현님은 나와 같은 인간이 맞긴 한 건가?’

미지는 공포가 되고, 공포는 곧 경외심이 되었고 그것은 곧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인간이든 아니든, 결론은 같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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