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4] 퀘스트 보상 (1)
오언주는 꿈을 꾸었다.
모든 것이 평온한 오후.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지켜보는.
행여나 다칠까, 눈을 떼지 못하는 그런 평범한 나날의 어딘가.
그러다 조용히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을 깨달은 오언주는 옅게 헐떡이며 울었다.
달콤한 꿈이었다.
눈물을 참지 못한 것은 그 꿈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오언주씨.”
한 남자가 비상구에 서서 자신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꿈 때문일까, 이상하게 눈앞의 남자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방금 겪었던 알 수 없는 힘의 근원이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라고.
그 위압감이 저 부드러움 속에 감춰져 있는 거라고.
“···당신이 한 건가요?”
“네?”
“고블린들의 머리를 날려버린 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맞습니다.”
정말로, 그런 것쯤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어쩌면···.’
이제 갓 꿈에서 깨어난 몽롱한 정신 탓일까.
아니면 그 꿈의 내용 때문일까.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남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오언주는 처음 보는 낯선 남자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제 아들, 제 아들 좀 제발 살려주세요···. 하루, 단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
오언주와의 첫 만남은 시작부터 강렬했다.
[시민 오언주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신뢰도가 크게 상승하며 시작했었으니까.
그것을 시작으로 겨우 몇 마디 나눠봤을 뿐인데, 다시 한번 신뢰도 상승 알림이 나타났다.
정확히 고블린을 잡은 게 나라는 걸 밝힌 순간이었다.
그 직후 한참이나 멍하니 나를 쳐다보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황당한 부탁을 해 오는 게 아닌가.
“제 아들, 제 아들 좀 제발 살려주세요···.”
“······.”
아들을 살려달라는 말.
그것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을 유추하는 것은 가능했다.
‘고블린에게 아이를 잃은 건가.’
현재 비상계단은 오언주가 죽여 놓은 고블린 사체들로 엉망이었다.
그녀가 시민이 되기 전에 죽인 놈들이라 그런지 사체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는데, 그 상태가 처참했다.
머리가 깨지고, 내장을 쏟아내고, 목뼈가 부러져 있는 등.
한눈에 급박했던 그때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들에서는 농도 짙은 증오가 느껴지고 있었다.
‘살려달라니.’
지금 그녀가 말하는 건 아픈 아들을 회복시켜달라거나 하는 뜻은 아닐 것이다.
말 그대로 죽은 아들을 부활시켜달라는 말이겠지.
“흐으윽.”
터무니없는 부탁이라는 것을 그녀도 아는지, 저 말을 한 이후에는 그저 서럽게 울기만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마음이 울컥했다.
‘뭔가 방법이 없나?’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릴 방법이라니.
예전이라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고민이었겠지만,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지금은 그리 이상한 고민도 아니었다.
어디 몬스터나 초능력자들의 등장은 말이나 되는 이야기던가.
잠시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만약에 이게 가능하다면···.’
처음 퀘스트 부여 능력을 얻었을 때, 페널티의 한계는 시험해 봤다.
그러나 보상의 한계는 시험해 본 적이 없었다.
‘퀘스트 부여. 고블린 천 마리 사냥, 기간 무제한, 페널티 없음. 보상··· 아들의 부활.’
띠링!
시스템 알림 소리를 듣는 순간, 아주 약간이지만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게 가능하다면, 나는 죽은 사람조차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퀘스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기대가 무색하게도 퀘스트 부여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역시 안 되나.’
그럼 그렇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이라고 해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퀘스트 보상 : 부활)을 지급하기 위한 현금이 부족합니다.]
[보유 현금을 늘린 후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어?”
순간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시스템 창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알림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그것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돈만 있으면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는 뜻이야?’
시도해 보면서도 진심으로 이게 가능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맙소사.’
그런데 진짜로 가능할 줄이야.
“흐흑.”
숨죽이며 흐느끼는 오언주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잔인한 말이지만, 나는 울고 있는 그녀를 앞에 두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부활에 들어가는 돈이 어느 정도일지, 아직은 짐작하기 힘들다.’
정확한 건 몰라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요구할 게 분명했다.
‘과연 이 사람에게 그만한 돈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레벨과 보유한 능력만으로도 투자할 가치는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오언주씨. 오언주씨.”
눈물범벅으로 고개를 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아드님을 부활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
오언주는 정신이 번쩍 든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 정말입니까? 제 아들을 살려주신다고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아···.”
실망한 기색이 가득해진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아드님을 되살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지금 그녀는 내 말을 믿는다기 보다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 같았다.
그 절박함이 표정에서부터 묻어나고 있었다.
“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그녀를 가족들이 있는 본가로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가족들을 이 아파트로 데려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지금 그녀는 시민 중에서 가장 강력한 스펙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 혼자 파견을 보내기에는 불안한 점이 너무 많았다.
본가까지 가는 길에 어떤 수준의 몬스터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컸다.
‘한 번 보낼 때 확실한 전력을 갖춰서 보내야 위험이 적다.’
지금 내가 가진 카드 중에 가장 강력한 조합은 오언주를 하동건의 파티에 합류시키는 것이었다.
하동건 파티에는 가신으로 등록된 문병호와 강덕수가 있었다.
각각 30레벨과 25레벨을 달성한데다 준수한 능력까지 각성한 상태였다.
여기에 33레벨인 오언주까지 합류한다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씹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베스트는 일곱 명 모두를 가신으로 만드는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대항할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와 마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걱정 없었다. 그들 모두를 가신 소환으로 불러들이면 그만이었으니까.
전력을 잃을 걱정이 훨씬 덜해지는 것이다.
생각 정리를 마친 내가 오언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저와 함께 올라가시죠. 소개해 드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동건이라고 합니다.”
“오언주라고 해요.”
하동건 일행에게 오언주를 소개하는 자리는 최형준네 가족의 거실이었다.
이곳을 가득 메우던 생존자들은 구호 물품을 가지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지만, 애초에 다른 동에서 온 하동건 일행과 오언주는 받아줄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사람 좋은 최형준이 그들을 받아준 덕분에 지금 여기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언주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구공을 던져서 고블린을 사냥하시던 분이죠? 저 여자분은 활을 쏘시고.”
하동건이 놀란 얼굴이 되어 물었다.
“저희를 아시나요?”
“저 모르시겠나요? 저희 구면인데.”
그들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오언주가 능력을 발휘했다.
쿠드득!
“헙!”
직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아줌마의 모습을 하고 있던 오언주는 어느새 검은 털의 짐승으로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가영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샛길의 늑대인간!”
하동건 파티가 샛길에서 봤다던 늑대인간의 정체는 바로 수인화한 오언주의 모습이었다.
곧이어 사람으로 돌아온 오언주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늑대가 아니라 곰입니다.”
“···곰이요?”
“네, 곰.”
생각보다 나긋나긋한 오언주의 대응 덕분에 분위기가 부드럽게 흘러갔다.
‘이게 어른의 여유인가.’
그때 오언주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몇 번 도와드린 적도 있었는데, 모르셨나요?”
“아―!”
“그때!”
짐작 가는 순간이 있던 것인지 곧바로 반응이 튀어나왔다.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저희를 도와주셨던 게 우연이 아니었군요.”
“의도적이었죠. 고블린의 적은 제 친구니까요.”
단순히 사회성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하동건 파티에 호감을 갖고 있었던 듯했다.
덕분에 이야기가 빨라졌다.
“이미 서로 알고 계시다니 다행이네요.”
먼저 오언주에게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그렇군요. 할머님이···.”
[시민 오언주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문병호씨 할머니 구출 작전은 내일 아침 일찍 시행할 계획입니다. 내일 작전에는 오언주 씨도 함께 투입될 겁니다.”
작전은 따로 특별할 건 없었다.
지하 주차장에 있던 고블린들을 몰이사냥 함으로써 주변에 있는 고블린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그 틈을 타 문병호의 할머니를 구출해온다는 작전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그렇게 내일 작전을 위한 사전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다들 오늘 하루 고생하셨고,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아침 일찍 뵙겠습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던 최형준이 나에게 물었다.
“저··· 재현님.”
“네?”
“혹시 내일 작전에 저도 포함된 겁니까?”
그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도 함께 보낼 생각이긴 했었다.
그러나 이번 고블린 작전 때 보여준 최형준의 모습을 본 이상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괴력을 가지고 있어도 정작 몬스터 앞에서 몸이 얼어버리면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까.’
실제로 몰이사냥에서도 최형준은 꽤 위험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를 작전에 투입 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한차례 고개를 젓고는 대답해주었다.
“아니요. 다치기도 하셨고, 내일은 푹 쉬시면 됩니다.”
“휴우.”
내 대답을 들은 최형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함께 안도하고 있던 박혜원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그런데 어쩌죠? 손님용 이불을 준비해 놓긴 했는데, 넉넉하진 않아서요.”
“많이 부족한가요?”
“그렇진 않은데···. 낑겨서 자면 어떻게 될 것 같기도 하네요.”
보아하니 두 명 정도만 빠지면 모두가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나머지 분들은 여기서 주무시도록 하고, 문병호씨와 강덕수씨만 저를 따라오세요.”
“네?”
“엇, 저요?”
당황해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네, 두 분이요.”
문병호는 생각보다 태연하게 집으로 들어왔고, 강덕수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따라 들어왔다.
“저쪽 작은 방이 손님용 방입니다. 이불은 붙박이장 안에 있으니 꺼내쓰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곧바로 들어가려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제가 왜 두 분만 따로 불러낸 건지 아십니까?”
강덕수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직후 문병호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재현님께 선택받았기 때문입니까?”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나는 두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은 각성했어요. 문병호씨가 얻은 능력은 텔레포트, 강덕수씨는 강철의 기사라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문병호와 강덕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무래도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에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퀘스트 부여. 내 앞에서 능력 선보이기. 제한 시간 한 시간, 페널티는 복도에서 자기. 보상은···.’
퀘스트 보상, 어디까지 가능할까?
‘근력 강화.’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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