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20화 (20/175)

[Episode 05] 세력 확장 (2)

[2902 호]

당연한 말이지만 초인종을 누른다거나 하는 일 없이 곧바로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현관문의 잠금을 해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집구석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전자기기를 다루는 것쯤이야 쉬웠으니까.

그러나.

철컥!

아날로그식 잠금 장치는 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젠장!’

철컥- 철컥―!

‘뭔가 방법이 없나?’

순간적으로 위층 창문을 통해 내려오는 방법이 떠올랐지만, 불가능했다.

집구석 영역의 제한 때문에 창밖으로 완전히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실 창밖으로 손을 내밀거나 고개를 내밀 정도의 공간은 확보되어 있지만, 밖으로 아예 나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맞아. 새로 얻은 스킬!’

경황이 없어 확인하지 못한 새로운 스킬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집구석 절대자의 보이지 않는 손 Lv. 1

-보이지 않는 손을 소환하여 조종한다.

‘빙고!’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봤다.

품위 유지 스킬이나 절대자의 눈 스킬을 사용하며 느낀 것이 있는데, 스킬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딱 하나였다.

‘내 의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현관문 안전 고리를 해제하는 이미지를 그리는 순간, 내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오는 감각과 함께 안전 고리를 덮쳤다.

쿠웅— 빠각!

“······.”

보이지 않는 손은 너무나도 쉽게 안전 고리를 박살내 버렸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강제로 안전 고리가 뽑혀나간 현관문의 일부가 휘어져 있을 정도였다.

심하게 훼손된 채 열린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뒤늦게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가신 소환 스킬을 썼으면 됐는데.’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최형준을 안쪽에서 소환시켜 문을 열었으면 됐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사람부터 구하고 생각하자.’

어둠으로 물든 집안에 불빛을 밝혔다.

환한 빛이 집안 전체를 비췄고, 거실 중앙에 잠에 빠진 듯 기절해 있는 김다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쁜 사람이었다.

삶의 한계치에 도달해 초췌한 모습임에도 빛나는 그 미모가 다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도대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어째서 하필이면 거실 바닥인 걸까.

안방과 작은 방에는 멀쩡한 침대도 있는데 말이다. 딱히 거실에 이불이 깔려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봐요. 정신 좀 차려 봐요.”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볼을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몸도 흔들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힘없이 흔들리기만 할 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간신히 붙어 있는 숨만이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상태가 생각보다 더 안 좋아.’

푸석푸석해진 피부, 움푹 들어간 눈, 메마른 입술. 약간의 미열도 있었다.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미모는 정말로 비현실적이어서, 동화 속 공주님을 보는 것만 같았다.

‘심각한 탈수 증세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방에만 해도 물이든 물병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300ml정도로 용량은 작았지만,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아이시스 생수 수십 개가 있었다.

저것들만 제 때 잘 챙겨 먹었어도 이렇게까지 심각한 탈수 증상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과자나 초콜릿등도 있었고, 찬장에는 종류별로 라면이 들어있기까지 했다.

식량도 있고 식수도 있는데, 이렇게 죽기 직전까지 오다니.

‘뭐하자는 거지, 이 여잔.’

정말로 죽을 작정이었던 건가.

그러고 보면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본인이 죽으려고 마음먹었다고 해도 나는 그녀를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반드시 살린다.

‘어떡한다.’

이런 심각한 탈수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게 무턱대고 물을 마시게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군대에서 배웠다.

특히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는 기도가 막힐 위험이 있어 굉장히 위험하다고 알고 있었다.

‘정석은 응급실에 보내는 건데.’

정맥 주사를 통해 체내 혈액을 늘려 주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망해버린 세상에 멀쩡히 돌아가는 병원이 있을 리도 없었고, 여기까지 출동해줄 구급대원 또한 없었다.

일단은 응급처치로 김다정의 다리를 들어올렸다.

다리에 있는 피를 심장으로 몰아주어 주요 장기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길게 유지하며 시간을 끌기 위함이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면 진짜 죽는다.’

힐 능력을 가진 여자였다.

이렇게 쉽게 보낼 수는 없었다.

‘반드시 살려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가지고 있는 스킬을 하나하나 낱낱이 살폈다. 상점에 등록된 물품 중에서도, 창고에 있는 물건 중에서도 김다정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절묘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설마 이렇게 활용하는 것도 가능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당장 실험해보면 그만이었으니까.

‘퀘스트 부여, 보상은 탈수 증세 회복.’

퀘스트 내용은 1회 숨쉬기였다.

그리고.

[시민 김다정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1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성공했다!’

퀘스트 비용으로 무려 천만 원이 소모되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으음.”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김다정은 천천히 눈을 뜨다 거실 불빛을 바라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팔을 들어올렸다.

“이봐요, 김다정씨. 정신이 드세요?”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시민 김다정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신뢰도가 상승했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또 이러네.’

만나자마자 신뢰도가 상승했던 것은 비단 김다정의 경우뿐만은 아니었다.

오언주도 그랬고, 하동건 파티도 전부 그랬다. 최형준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첫 만남에서부터 신뢰도가 상승했다는 알림이 나타났었다.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신뢰도 상승이 빠르다.’

당연한 소리기는 했다.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보다, 아는 사람인 쪽이 신뢰도가 더 빨리 올라가는 것이야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는 것과 동시에 이렇게 신뢰도가 올라가는 것은 조금 다른 경우였다.

그건 너무 비정상적이었으니까.

비정상적인 신뢰도 상승은 스킬의 영향이 분명했다.

‘품위 유지 스킬 때문인가.’

김다정이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김재현이라고 합니다. 윗집 사람이에요.”

“······네?”

슬슬 그녀의 눈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내 품에서 벗어났다.

“누, 누구시죠?”

“방금 말씀드렸듯이 윗집 사람입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그쪽 상태가 심각해 보여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게 무슨···.”

김다정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집안 풍경을 둘러봤다.

그러더니.

“아······.”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아···!”

김다정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었다.

가녀린 어깨가 옅게 떨렸다.

“······.”

숨 죽여 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위로라는 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말을 해야 저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가서 닿을까.

알 수 없었다.

말없이 안아주거나 하는 일도, 슬픔을 공감하는 일도 전부 어느 정도는 친해야 가능한 위로였다.

나는 거기에 해당사항이 없었고,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김다정씨.”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눈물범벅인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도와주세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는 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굳이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보다는 다른 곳으로, 지금 현실로 시선을 돌리는 게 덜 슬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제 동료가 크게 다쳤습니다.”

***

김다정은 자신을 김재현이라고 소개한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 남자,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도와달라고, 동료가 크게 다쳤다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새 자신에게 특별한 힘이 있다는 소리까지 진행되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초능력이라니.

그것도 힐 능력이란다.

사람이 다쳤다는 소리에 반응해서 진지해졌던 스스로가 괜히 바보처럼 느껴졌다.

‘힐이라니. 내가 간호사라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 남자,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게 아닐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의 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는 이 남자가 실은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고.

남자들의 호의를 지겹도록 받아본 그녀였기에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흐음.’

친절한 사람.

호감이 생기니 동시에 이 남자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다.

자연스레 아까 얼핏 봤었던 얼굴이 생각났고, 김다정은 열심히 떠들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잘 생기긴 했네.’

그의 서툰 방식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프흡.”

“···왜 웃으시죠?”

신기했다.

보통 자신이 울 때 옆에서 위로하던 남자들의 눈에는 사심이 가득했었는데, 눈앞의 남자에게서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남자의 목적이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적당히 어울려주자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잠시만요.”

[퀘스트를 부여 받았습니다.]

퀘스트 내용 : 힐을 사용하여 부상당한 오언주를 치료하기

제한 시간 : 1시간 00분 00초

보상 : 힐 숙련도 강화

실패 페널티 : 없음.

“어?”

눈앞에 뜬 홀로그램 창을 멍하니 읽고 있는 동안 남자가 말했다.

“움직이실 필요 없습니다. 김다정씨는 몸이 많이 약해지신 상태이니 여기서 이거라도 좀 먹으면서 쉬고 계십시오. 오언주씨는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허공에서 귤 하나가 나타나 그녀의 앞에 떨어졌다.

“···어?”

“그럼 쉬고 계세요.”

김다정은 등을 보이고 떠나려는 남자를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무슨 일이시죠?”

“이게 뭐예요?”

그는 김다정이 내민 귤을 내려다보더니 대답했다.

“귤인데요.”

“그게 아니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홀로그램, 허공에서 생겨난 귤 등 물어보고 싶은 건 많은데,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일어서려는 순간,

“앗―!”

그만 스스로의 발에 걸려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두 눈을 감으며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는데.

“······?”

아프지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던 김다정이 천천히 눈을 뜨자,

“!!!”

허공에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언가 자신의 몸을 떠받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김다정은 토끼 눈을 한 채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투로 말했다.

“지금은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이니 조심해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다쳐요.”

땅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온 김다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리고 계세요.”

한동안 남자가 떠난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다정은 자신의 손에 남겨진 귤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

[시민 김다정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김다정을 진정시켜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또 신뢰도가 올랐다는 알림이 나타났다.

그녀의 신뢰도는 벌써 30을 돌파해 있었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실제로 능력을 보여줬던 게 잘 먹힌 것 같았다.

‘역시 못 믿고 있었던 거구만.’

서럽게 울다말고 갑자기 웃었을 때부터 왠지 그럴 것 같기는 했다.

갑자기 초능력이니 힐이니 하니까 우스웠던 거겠지.

‘하긴. 그런 건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기 힘들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런 건 역시 직접 보여주는 게 더 나았다.

♩♬―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1층에 도착한 나는 복도를 걸어 1층 정문에까지 하동건 파티를 마중나왔다.

하동건 파티가 샛길 근처까지 왔던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다.

‘저기 오네.’

할머님을 업고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문병호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장하다, 우리 병호.’

오늘 하루 문병호 덕분에 얻은 것만 해도 산더미처럼 많았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는데 문득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왜 저렇게 급하게 달려오고 있는 거지?’

문병호의 뒤를 이어서 달려오는 강덕수, 하동건, 김가영, 유혜린, 김 건 모두 이를 악물고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뭔가에 쫓기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정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밝혀졌다.

‘저건···?’

하동건 파티의 뒤쪽으로 거대한 덩치의 적색 호랑이 한 마리가 그들을 바짝 추적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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