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21화 (21/175)

[Episode 05] 세력 확장 (3)

‘한 마리가 더 있었어?’

적호(赤虎)가 분명했다.

다만 절대자의 눈으로 봤던 놈보다 조금 더 덩치가 큰 놈이었다.

어쩌면 아까 잡았던 놈보다 더 레벨이 높을 수도 있었다.

‘돈이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최소 4천만 원짜리 호박이.

그러나 마냥 즐거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위태위태해 보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일 후미에서 따라오던 유혜린이 제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꺄악!”

“혜린아!”

그와 동시에 적호의 기세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빨리 일어나!”

쐐애애액!

피어싱의 기운을 머금은 김가영의 화살이 놈을 향해 날아갔지만, 적호는 달리는 방향을 틀며 그것을 여유롭게 피해냈다.

놈은 부러진 나무를 발판 삼아 뛰어오르더니 이내 정확히 유혜린이 쓰러진 곳을 덮쳐왔다.

“크허엉―!”

날카로운 발톱이 유혜린의 등을 헤집기 직전.

슈슉-

유혜린이 사라졌다.

카가각―!

적호의 발톱이 보도블록을 긁으며 기다란 스크래치를 만들어냈다.

발톱 자국을 따라 깊게 패인 보도블록의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크륵?”

놈은 어리둥절해 하며 유혜린이 사라진 바닥을 확인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놈이 찾고 있는 유혜린은 현재 내 옆으로 순간이동 된 상태였다.

그녀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슬아슬했어.’

0.1초라도 늦었다면 유혜린의 등에 적호의 발톱 자국이 새겨졌을 것이다.

유혜린이 넘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가신 소환을 사용한 덕분에 망정이지 잘못했다가는 그녀가 죽을 뻔 했다.

‘그래도 덕분에 시간은 확실하게 벌었다.’

적호는 사냥 직전에 먹잇감을 빼앗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미련 남은 몸짓으로 유혜린이 사라진 자리를 맴돌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그 사이 하동건 일행은 적호와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그 격차는 적호가 움직이자마자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슈슉!

그때 문병호가 할머니를 등에 업은 채 내 옆에 나타났다.

텔레포트를 사용한 것이다.

‘적어도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그새 숙련도가 제법 늘었네?’

아무래도 신뢰의 힘 스킬 덕분인 듯 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정신력도 증가했겠지.

그 순간.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부여해.’

문병호는 기절한 할머니를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 내게 말했다.

“할머니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금방이라도 적호에게 달려들 기세였기에 그의 앞을 막아섰다.

“기다리세요.”

“네? 하지만···.”

“저를 믿어주실 수 있겠어요?”

문병호는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확답을 받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하동건 파티 일행을 뒤쫓는 적호를 바라봤다.

‘10m정도인가.’

보이지 않는 손의 범위였다.

위력이라면 아까 전에 확인했다.

통짜 쇠로 만들어진 현관문조차도 일격에 우그러뜨리는 위력과 잠금장치를 통째로 뜯어내버리는 악력.

‘이 정도면 충분히 해 볼만 해.’

나는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제일 먼저 보이지 않는 손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 것은 오언주를 업고 있는 강덕수였다.

그 뒤를 이어 김가영, 김 건 마지막으로 하동건이 줄줄이 선을 넘어왔다.

집구석 영역이 발동되는 안전지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하동건이 뒤로 돌아 적호를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쐐애액!

어느새 적호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크허엉!”

아까부터 적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하동건이었고, 적절한 타이밍에 선공을 날린 것이었다.

하동건의 의도대로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 수 있었다면 모두 무사히 안전지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놈은 오히려 더 매섭게 돌진해왔다.

그 과정에서 하동건이 쏘아낸 화살은 적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상 생체기 하나 못 낸 공격이었다.

“동건아!”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김가영이 소리쳤다.

그러나 적호와 하동건의 거리는 이미 지척.

너무 늦었다.

“전부 달려!”

하동건은 일행들에게 소리치고는 아파트 입구가 아닌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짧은 순간에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적호를 한 발짝이라도 더 떼어놓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과감하게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 셈이었다.

‘사람 하나는 잘 봤다니까.’

리더로서의 책임감.

현명한 상황 판단력.

과감한 실행력.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이런 것들을 모두 갖춘 인재는 흔치 않았다.

‘잡아.’

적호의 이빨이 하동건을 덮치기 직전.

“케헥!”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적호의 모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놈의 육중한 몸을 들어올렸다.

“크아아앙―!”

적호는 신경질 내며 허공에 발길질을 해댔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놈의 발길질에도 흔들림 없었다.

분노에 가득 차 있던 발길질이 살기위한 몸부림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

하동건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적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김가영씨.”

“네, 네엣?”

“마무리해주세요.”

“아.”

보이지 않는 손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죽여버릴 수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커다란 손해였다.

당장 시민 보너스도 받을 수 없었고, 가신 특전도 없었으니까.

당장 김가영이 사냥하면 전리품이 4배가 되는데, 굳이 내가 마무리 할 이유가 없었다.

내 말 뜻을 알아들은 김가영은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적호의 머리통을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우웅-

희미한 빛이 그녀의 화살을 휘감았고,

쐐애애액―! 푸슉!

그것은 단숨에 적호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적호(Lv. 28)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63,211,776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점점 더 시끄럽게 변해가던 적호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나니 급격히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민 문병호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가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가영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유혜린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유혜린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

······

하동건 파티의 신뢰도와 충성도가 올라간다는 알람이 어지럽게 울려댔다.

그리고.

[시민 하동건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하동건이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드디어, 하동건이 내게 마음을 열었다.

‘가신 등록, 하동건.’

띠링!

***

우우웅―

김다정의 손에서 흘러나온 초록빛 광채가 피투성이가 된 오언주의 옆구리로 흘러들어갔다.

꽤나 심각해보이던 오언주의 상처는 금세 피가 멎고, 새살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상처가 호전됨에 따라 힘겨워 보이던 오언주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고 있었다.

‘때마침 김다정을 발견해서 천만 다행이지.’

오언주의 상처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변신이 풀린 상태여서 수인화의 재생 능력이 적용되지 않는데다, 일일 퀘스트를 모두 끝내버린 터라 퀘스트 부여를 통한 상처 회복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자칫하면 오언주를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나는 하동건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 붉은 색 호랑이는 뭔가요?”

“병호네 할머님이 계신 집이 그 녀석들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님을 구출하고 밖으로 나오는 길에 한 마리와 마주쳤고,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가 더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놈이 저희를 쫓아온 것이고요.”

그의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가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그 골목길은 너무 깨끗했다.

눈 씻고 찾아봐도 고블린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그곳에 고블린들이 있었다면 문병호의 할머님은 무사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적호 두 마리의 영역이었던 건가.’

그놈들이 지키고 있는 영역이었기에 감히 고블린 따위가 침범하지 못했고, 그 덕분에 문병호의 할머니는 오랜 기간 무사히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문병호의 할머니가 고블린들의 위협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시민 김다정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73,312 원이 소모됩니다.]

“후아. 다 됐어요!”

“수고하셨어요, 다정씨.”

“뭘요. 그럼 저 이제 집에 돌아가도 되나요?”

지금 이곳은 김다정의 집이 아니었다.

“잠시만 대기해주세요.”

당연하게도, 이곳은 최형준의 집이었다.

“아줌마! 귤 까주세요!”

“하.하. 서연아, 언니~ 해야지. 따라해 봐. 가영 언니이~ 귤 까주세요~”

“가영 언니이~! 귤 까주세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복귀한 하동건 파티와 김다정, 그리고 이곳에서 샤워를 했던 김다빈과 김민호 남매도 모두 최형준의 집에 모였다.

아까부터 내 옆에서 안절부절 못 하며 자리를 지키던 최형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어- 재현님. 이제 앞으로 계속 저희 집에서 모이는 건 아니겠죠? 하하.”

최형준의 두 눈에는 체념의 감정이 느껴졌다.

가족들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빼앗긴 가장의 슬픔이 그곳에 있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부터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언제까지고 최형준의 집을 쉐어하우스 취급하며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적당한 해결책도 생긴 참이었다.

“지금 2901호는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전기를 비롯한 생활전반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공급해드릴 테니 하동건씨를 비롯한 일행 분들은 그곳에서 생활해주면 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가장 기뻐하는 것은 하동건 파티가 아닌 최형준이었다.

“제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늦게라도 집주인이 나타난다면 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로 가득해진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였다.

“김다빈씨.”

“네, 네에!”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김다빈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쏠리자 조금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을 이었다.

“21층에 있는 2101호랑 2102호도 현재 빈집입니다. 거기에도 전기를 공급해 놓을 테니 샤워나 용변, 기타 잡다한 것들은 그곳에서 해결해 달라고 다른 생존자분들에게 전해주시겠어요?”

은연중에 더 이상 최형준의 집을 찾아오지 말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것을 알아들은 것인지 김다빈은 잔뜩 쭈그러든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채찍을 가했으니 이제는 당근을 줄 차례였다.

“원하신다면 한 곳은 두 분이서 마음대로 사용하시고 나머지 한 곳만 공용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저, 정말요?”

“네. 대신 두 분이 해 주셨으면 하는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당근을 덥석 문 김다빈이 적극적으로 대답해왔다.

“뭐든지 말씀만 해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 저와 생존자들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메신저···요?”

“네.”

백 명에 달하는 시민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하동건 파티처럼 직접적으로 경험치나 돈을 벌어다주진 않아도, 인구수가 늘어갈 때마다 착실히 늘어가는 보너스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가만히 놔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부터 가장 빨리 고블린 100마리를 처치하는 팀에게 빈집을 한 채 공급해주겠다고 전해주세요. 전기, 수도, 가스의 공급은 물론 식량도 무제한 지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21층부터 30층까지 모든 세대에 전기와 수도 등을 공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적호 두 마리 덕분에 1억에 가까운 여유 자금이 생기면서 돈이 그리 궁하지도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다만 나는 이것들을 제한적으로 공급하여 시민들을 차등 대우할 계획이었다.

“또한 각 세대마다 생존자 10명을 받아들인다면 해당 세대에 같은 대우를 해 줄 것입니다. 다만, 어느 층이냐에 따라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는 있다는 점 꼭 전해주세요.”

오로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자들에게만, 그 가치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말을 마친 나는 이제는 최측근이 된 하동건 파티와 최형준 가족을 제외한 모든 시민에게 같은 내용의 퀘스트를 부여했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고블린 사냥 (0/10)

제한 시간 : 168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공용 시설 사용 금지.

[이대로 퀘스트를 부여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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