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5] 세력 확장 (4)
“헉! 헉! 헉!”
백승민은 지하 주차장을 죽어라 내달리고 있었다.
“키잌!”
“캬아악!”
“끼긱―! 끼기긱!”
그의 뒤로 수십 마리가 넘는 고블린 무리가 떼를 지어 쫓고 있었다.
‘젠장!’
어디서 주워온 건지 부엌칼이나 가위 따위를 들고 있는 고블린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피와 먼지 따위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는 칼날에 닿기만 해도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고지가 머지않았다.
“끼기익!”
고블린 놈들이 바로 등 뒤에까지 따라붙었다는 게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한 백승민은 있는 힘껏 점프했다.
타앗―!
아파트로 진입하는 지하 1층 입구.
그가 몸을 던져 그곳을 통과한 직후.
“야! 찔러!”
“흐읍!”
“워후, 많이도 끌고 왔네.”
한쪽 벽면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남자 세 명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창처럼 생긴 무기를 들고 있었다.
기다란 막대기에 식칼을 연결하여 만든 조잡한 창.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고블린들을 사냥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푸욱!
“꽤애애액!”
“어이쿠!”
고블린들은 옆에서 자신의 동족이 죽어나가던 말던 눈앞의 인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리가 죽으면 다른 한 마리가 적에게 달려들어 할퀴고, 물어뜯는다.
그렇게 숫자로 밀어붙여 자신들보다 훨씬 강력한 적도 잡아먹는 게 바로 고블린 들이었다.
하지만.
터엉! 카가각!
“케엑?”
“케에엑?!”
고블린들의 돌격은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 좌절되었다.
동족의 목숨을 바쳐 감행한 공격은 알 수 없는 벽에 완전히 차단된 것이다.
푸욱! 푹! 푹!
그동안 투명한 벽 안쪽에 있는 남자 세 명은 열심히 고블린들을 찔러댔다.
한꺼번에 몰려들었던 고블린들은 투명한 벽과 마구잡이식으로 밀어붙이는 동족들 사이에 끼여 도망치지도 못하는 신세였고, 남자들은 인형 뽑기를 하듯 고블린들을 골라 죽였다.
푹! 푹! 푹!
“끄에에엑!”
“끼에엑!”
그들은 이미 이런 일이 익숙한 듯 기계적으로 고블린들의 숨통을 끊어갔다.
그렇게 절반 정도의 고블린들이 허무하게 죽었을 때 쯤, 상황을 파악한 고블린들이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야야! 저기! 저기! 저 놈 도망가잖아!”
“이 새끼들 슬슬 튄다!”
“일단 아무데나 찔러!”
고블린들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과감하게 투명한 벽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미 투지를 잃어버린 고블린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도망치기 바빴고,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조잡한 창에 찔려 죽었다.
“야!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게.”
도망치는 고블린들을 정리하던 와중 남자 한 명이 말했다.
“흐읍!”
그가 조잡한 창을 힘껏 던졌다.
창은 그대로 수 미터를 날아 고블린 한 마리의 등에 적중했다.
“꽤애액!”
“나이스! 봤냐? 봤지?”
“사장님 나이스 샷~.”
남자들에게서는 고블린에 대한 공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이런 방식의 사냥을 몇 차례나 반복해왔기 때문이었다.
고블린 퀘스트가 등장한지 닷새째, 백승민을 포함해 이곳에 있는 네 명은 이러한 방법으로 일찌감치 10마리를 잡는 퀘스트를 클리어한 상태였다.
창을 던져 고블린을 맞췄던 남자가 다른 이들을 향해 물었다.
“야, 다들 몇 마리 잡았냐?”
“잠만. 음. 난 스물 둘.”
“내가 이겼네. 난 스물넷인데.”
그들이 말하는 것은 퀘스트 창에 적혀 있는 고블린 사냥 숫자였다.
처음 주어지는 10마리 사냥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곧바로 비슷한 퀘스트가 부여된다.
고블린 100마리를 잡는 퀘스트였지만, 두 번째 퀘스트는 페널티가 없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몇 마리를 사냥했는지 숫자를 세는 용도로 사용할 뿐이었다.
창을 든 남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계산을 해 보더니 말했다.
“그러면 이제 우리 세 명만 합쳐도 백 마리 넘게 잡은 거네?”
“진짜? 벌써?”
“와. 처음에는 백 마리 언제 잡나 했었는데.”
그때 뒤쪽에서 숨을 고르던 백승민이 항의했다.
“하아 씨발 승엽이 형! 분명 많아봤자 열댓 마리 정도라매!”
백승민이 쏘아붙이자 백승엽이 신경질적인 어투로 대응했다.
“뭐가 또 불만인데. 엉?”
“씨발 형 눈에는 저게 열댓 마리로 보여?”
“비슷한 거 같던데.”
“하아···. 씨발.”
그러자 백승엽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그 강도가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얌마. 잘 풀렸으면 됐지. 뭐가 불만인데? 이제 새 집도 생길 텐데.”
“나는 형 때문에 뒤질 뻔 했다고!”
“하. 동생아.”
백승엽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사냥 법을 생각해낸 게 누구냐?”
“······.”
“나야.”
백승엽은 애초에 대답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작전은 내가 세웠고, 창은 쌍둥이가 만들었고··· 그러니까 미끼 역할은 니가 맡는다매? 잘 뛰어서 자신있다매?”
“그건···.”
“결과적으로 아무도 안 다치고 잘 끝났잖아. 그런데 너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건데? 불만이면 팀에서 빼줘? 너 빼고 우리끼리만 해도 100마리 넘거든 지금.”
“······.”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문지훈과 문상훈, 쌍둥이 형제들이 백승엽을 말리고 나섰다.
“승엽이 형. 형이 좀 참아. 승민이도 잘 했잖아.”
“그래. 승민이가 미끼 역할 잘 하더라. 진짜 존나 빠르던데?”
“인정. 우사인 볼트인줄~.”
문지훈과 문상훈의 장난스러운 어투에 표정을 푼 백승엽이 말했다.
“후우. 애새끼가 빡치게 하잖아. 어디서 형한테 욕질이야?”
분위기가 풀어질 기미가 보이자 문지훈은 곧장 백승민을 툭툭 치며 다그쳤다.
“승민아, 야. 그래. 형한테 욕하는 건 좀 선 넘었지~. 얼른 사과해.”
백승민은 고개를 숙인 상태로 사과했다.
“······미안.”
백승엽은 자신의 동생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면서 창을 챙겼다.
“됐고. 얼른 21층으로 가자. 새집 받아야지.”
“헌집 줄게~ 새집 다오~.”
그들은 자신들이 고블린 100마리를 최초로 잡은 팀일 것이라 확신하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죄송하지만, 이미 먼저 보상을 받은 팀이 있어서요.”
“···우리보다 먼저 100마리를 잡은 팀이 있다고요?”
“네.”
백승엽은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에이, 다빈씨. 우리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재미없어요. 농담하지 말고 빨리 집이나 내놔요.”
“농담 아닙니다.”
김다빈은 생긋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침 저기 오고 있네요. 그쪽보다 먼저 고블린 100마리 잡은 팀.”
백승엽 일행은 고개를 돌려 김다빈이 말한 팀을 봤다.
그곳에는 근육질의 남자 하나와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저씨, 그리고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할 것처럼 생긴 아줌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백승엽은 그들이 내뿜는 포스에 압도되어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김다빈이 근육질의 남자, 김민호를 향해 말했다.
“어떻게 됐어?”
“쇼부 봤어. 새집은 포기하고 대신 우리 집이랑 지호 아저씨네에 전기랑 식량 뭐 그런 것들 공급해주고, 지호 아저씨네 딸들은 퀘스트 면제 받고.”
“응? 지호아저씨네 딸들은 미성년자 아니었어? 미성년자면 퀘스트 면제 대상 아닌가?”
그에 대한 대답은 남지호쪽에서 나왔다.
“둘 다 성인입니다.”
“아하.”
옆에 있던 남지호의 아내인 문해리가 즐거운 듯 웃으며 말했다.
“호호. 우리 애들이 좀 동안이기는 해. 엄마 닮아서.”
“그, 그쵸? 하하.”
“나 닮아서 활도 잘 쏠 텐데 이이가 애들 걱정이 좀 많아야지.”
솔직히 문해리 보다는 남지호 쪽을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때 김민호가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어. 그리고 지호 아저씨네 활이랑 화살도 공급받기로 약속받았어.”
남지호와 문해리가 가지고 있는 컴파운드 보우는 고블린 사냥이 끝날 때까지만 잠시 빌린 물건이었다.
그것을 아예 지급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자 김다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활이랑 화살은 왜? 고블린 사냥이라도 계속하게?”
“응. 재현님이 근처에 있는 고블린 좀 소탕해달라고 직접 부탁하셨거든. 징글징글한 고블린 새끼들. 어찌나 많은지 잡아도잡아도 끝이 없어요.”
그때까지 조용히 옆에서 남매의 대화를 엿 듣던 백승엽이 끼어들었다.
“잠깐. 이거 특혜 아니야? 너희들은 관계자잖아. 화, 활까지 따로 받고! 이건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백승엽의 정열적인 항의를 본 김민호는 손뼉을 치며 자신의 누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누나. 그 분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 불공평해 보일 수 있다면서··· 그래서 2등, 3등 팀도 비슷한 혜택을 줄 거라고, 30층으로 보내달라고 말씀하시던데.”
“그래?”
김다빈이 영업용 미소를 걸치고는 백승엽을 향해 말했다.
“들으셨죠? 잘 됐네요. 파티원들이랑 다 같이 30층으로 올라가 보세요. 그분께서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러죠.”
백승엽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자신은 전기, 수도, 가스가 들어오는 집을 얻기만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자.”
♩♬―
[2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마자 백승엽은 동료들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하! 소문에 의하면 우리보다도 어리다던데 그분, 그분 거리면서 극존칭 쓰는 거 존나 웃기지 않냐?”
“그러게요. 풉. 무슨 지가 예수님이라도 되나?”
“예수님은 무슨, 사이비 교주겠지.”
“맞네! 딱 그거네!”
쌍둥이가 백승엽에게 열심히 맞장구쳐주던 그때 백승민이 툭 하고 한 마디 던졌다.
“당장 그 사람 능력 안에서 보호 받고 있으면서 그런 말 할 자격이 되나 모르겠네.”
“······.”
“게다가 지금도 그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가는 중인 거 아닌가?”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야, 너···.”
백승엽이 또 무어라 입을 열려던 순간.
♩♬―
[30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30층에 도착했다.
“···이따가 보자.”
백승엽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초인종을 누르려던 그 순간.
철컥.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현관문 앞쪽에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겨오는 남자가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존재감.
“반갑습니다.”
꿀꺽
막상 그와 직접 대면하자 엘리베이터에서 막말하던 백승엽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의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며 자세를 낮추게 되었다.
“배, 백승엽이라고 합니다.”
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백승엽씨 일행분들의 활약은 잘 봤습니다. 투명 방벽을 이용해서 안정적으로 사냥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 깊었어요.”
백승엽은 내심 깜짝 놀랐다.
‘그, 그걸 어떻게?’
자신이 발견한 사냥 방식이 시민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중이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은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사냥법이었다.
30층에서 호의호식하는 그가 알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1301호와 1502호에 전기, 수도, 가스를 공급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각각 백승엽 형제의 집과 쌍둥이네 집이었다.
새로운 집을 받는 게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사실상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전기, 수도, 가스가 공급되는 집이었지 새집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원래 살던 집에 그것들이 공급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다른 생존자를 찾아서 데리고 같이 살아야 가능하다고···.”
“여러분들은 대신 고블린 100마리를 사냥해 주셨으니까요. 충분합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미소를 짓던 백승엽은 순간적으로 표정을 굳혔다.
한 가지 이상한 사실에 대하여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우리들의 집을 정확히 알고 있는 거지?’
그때 김재현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참. 저는 사이비 교주가 아닙니다. 부처나 예수는 더더욱 아니고요.”
“예?”
순간 백승엽은 소름이 돋았다.
이곳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신과 쌍둥이들이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 설마.’
창백해진 표정의 백승엽을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무,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백승엽은 무슨 부탁을 하든 들어줄 기세였다.
“별건 아니고. 지금처럼 고블린 사냥을 지속해주셨으면 합니다. 약소하긴 하지만 이것들은 제 성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과 함께 허공에서 물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쌀부터 시작해서, 라면, 양파, 당근, 계란, 우유 등 식료품과 활과 화살 한 세트, 그리고 창 세 자루가 나타났다.
그들이 만든 것처럼 막대에 식칼을 고정시킨 조잡한 창이 아닌, 일반적인 창이었다.
허공에서 물건들이 생겨나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한 백승엽은 이내 허리까지 숙이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이제 막 자대에 배치 받은 이등병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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