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27화 (27/175)

[Episode 07] 서면역 (1)

《전초기지》

집구석 밖에 설치되는 안전지대.

{활성화} 될 시 일시적으로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과 동일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단, [기사]급 이상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 거주하고 있을 때에만 {활성화}되며,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침입하여 하루 이상 무단 점거 시 파괴된다.

어마어마한 성능이었다.

다만, 그 성능만큼 가격도 어마어마했다.

-전초기지 (1,300,000,000 원)

13억.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전포역에 있던 오크들을 쓸어버리면서 통장잔고가 여유로워진 지금 13억 정도면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니었다.

‘지원금 3억 5천도 아직 남아 있고.’

곧바로 건설을 시도해 봤다.

전초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자 일반적인 건설 모드와는 조금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아파트 영역 전체가 내려다보이던 감각과는 달리 전포역에 모여 있는 하동건 파티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곧이어 뜬 시스템 알림을 보는 순간 기대감은 실망으로 변했다.

[해당 시설은 건설 기간(7일) 동안 ‘기사’급 이상의 칭호를 가진 시민 3명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

그러니까 전초기지를 짓기 위해서는 오언주, 김다정, 하동건 세 명 모두를 일주일간 거주시켜야 한다는 소리였다.

‘손해가 너무 커.’

이러면 건설에 들어가는 13억의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일주일동안 이들이 벌어들일 기대 수익만 수십억에 달했으니까.

‘가장 큰 손해는 시간이다.’

일주일.

이제 막 조합을 완성시키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하동건 파티를 파견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전포역이라면 딱히 전초기지로 만들 필요도 없다.’

이미 이 근처는 하동건 파티와 시민들의 활약으로 몬스터들의 대부분이 정리된 상황이었다.

전초기지까지 지어가면서 대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설치하지 않는다.’

건설 모드가 종료되며 감각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새롭게 추가된 전초기지의 성능 하나만큼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이걸 본가에 건설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일단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을 영역 아래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상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이곳으로 오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하동건 파티가 몬스터 밭을 뚫고 본가까지 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거기서 가족들을 모시고 복귀하는 것도 커다란 문제였다.

하지만 본가에 전초기지를 건설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 한 난이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살아만 계셔주세요.’

이 정도면 조건은 갖춰졌다.

‘내일, 하동건 파티를 본가로 보낸다.’

***

“와.”

김 건은 그저 멍하니 오언주의 사냥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쳤네, 미쳤어.’

문병호의 할머니를 구하러 갔을 때도 느꼈지만, 오언주의 싸움 방식은 정말이지 짐승 그 자체였다.

‘사람이 어떻게 맨손으로 오크를 찢어? 아, 사람이 아닌가.’

대상이 고블린에서 오크로 바뀌었을 뿐,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때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긴 당연한 소린가. 저 여자는 재현님의 축복을 받기 전부터 강했었으니.’

또한 하동건처럼 초능력을 각성한 사람이었다.

하동건이 간택을 받고 난 직후 급격한 전투력 상승을 보여줬던 것을 생각하면, 저 여자도 그런 과정을 겪었으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현님은 저 여자를 어떻게 설득시킨 거지?’

오언주의 고블린 집착은 누가 봐도 너무 지나쳤다.

따로 들은 이야기가 없어 정확한 건 모르지만, 고블린에 대한 원한만큼은 분명히 느껴졌었다.

‘분명 고블린에 미쳐있던 여자였는데.’

같이 다닐 때도 고블린을 죽이는 것에 눈이 멀어 몇 번이나 단독행동을 하곤 했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며칠이 지난 후에는 아예 따로 행동하게 됐었는데, 지금은 고블린 무리와 조우하게 되어도 그렇게 급발진 하는 일이 없었다.

여전히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은 있었지만, 그래도 명확히 지시에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혹시···.’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딱 한 가지 그럴듯한 가정이 있었다.

‘···저 여자도 뭔가 새로운 능력을 얻은 건가?’

문병호와 강덕수를 시작으로 자신의 파티원들이 하나하나 특별한 힘을 각성하는 것을 보면서, 김 건은 한 가지 욕망이 생겼었다.

초능력을 각성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의식적으로 김재현을 더욱 숭배하려고 노력했다.

그게 바로 각성의 열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했지.’

파티원 중에서 제일 마지막에 각성하긴 했지만, 어쨌든 특별한 힘을 각성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능력을 받게되면 사람이 순종적이게 변할 수밖에 없지.’

당장 자신만 해도 혹시나 김재현이 자신의 이능을 가져갈까 알아서 기고 있는 중이었다.

오언주도 비슷한 상황인 거겠지.

그때였다.

띠링!

《파티 퀘스트》

퀘스트 내용 : 복귀.

제한 시간 : 1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없음.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돌아간다.”

하동건의 명령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김 건은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휘파람을 불자 지하철역 구석에 있던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팔에 안착했다.

까악―

김 건은 까망이라고 이름을 지은 까마귀를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착하지. 까망아.”

까망이와의 교감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무엇보다 100% 신뢰 가득한 존재가 생겼다는 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힘을 얻게 되면 거역하기 어렵지.’

처음에는 세뇌에 대한 의심도 했지만, 세뇌가 아니었다. 김재현의 축복을 받아 능력을 각성한 이후에도 여전히 그를 의심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리고 세뇌라면 자신의 정신상태가 지금처럼 멀쩡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김재현은 성과를 내면 그만큼 대우도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신뢰할 수 있었지.’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그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질 때마다 몸이 더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하동건이 김 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건아. 정찰 좀 부탁할게.”

“···네, 선배님.”

김 건은 까망이를 쓰다듬으며 의지를 전달했다.

‘정찰 좀 부탁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지를 까망이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동시에 까망이의 의지도 자신에게 전달되어 온다.

감각을 공유하지는 못하지만, 밖이 위험한지 아닌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까망이가 먼저 지하철역 밖으로 날아간 다음 상황을 전해왔다.

“···문제없어요. 바로 나가면 될 것 같아요.”

“고마워.”

그렇게 지하철역 출구로 나가던 그때.

‘응?’

문득 지하철역 한쪽 구석, 짙은 어둠이 잠겨있는 곳.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뭐지?’

착각 같은 게 아니었다.

까망이와의 교감으로 한층 날카로워진 감각 덕분에 눈치 챈 것이었다.

저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 순간.

찍-

어둠속에서 쥐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는 사라져버렸다.

‘···뭐야. 쥐였나.’

별 것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김 건은 일행을 따라 지하철역을 빠져나갔다.

찍-

사라진 줄 알았던 쥐는 그들의 뒷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가족을 구하러 남부민동으로 가달란 이야기를 하자마자.

[시민 오언주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오언주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문병호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가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

······

어째서인지 신뢰도와 충성도가 줄줄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정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문병호가 눈이 벌게져서는 말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아니, 돕게 해주십시오!”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보니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도 압니다. 가능성이 낮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동안 하동건 파티가 아파트 단지 주변을 정찰하면서 보여준 것들이 있었으니까.

충격적이게도,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몬스터는 고블린이었다.

어디에서 그렇게 번식을 해대는지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나타나는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들.

그래서였다. 아파트 단지에 숨어 지내는 사람들이 생존에 유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파트였기 때문에, 고층으로 갈수록 고블린의 영향력이 적어졌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주택의 상황은 처참했다.

고블린 무리가 휩쓸고 지나간 주택가는 모두가 1층, 2층 세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참혹한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시체, 시체, 시체.

버려진 집마다 꽃이 피었다.

고블린들은 어찌나 악랄한지 한 집도 빼놓지 않고 부지런히 지옥도를 그려놨다.

유혜린이 말했다.

“가족분들도 아파트 단지에 계시면 분명 괜찮으실 거예요! 저희도···.”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곳은 주택가입니다.”

“······.”

“그래도 담장이 꽤 높고 외부로부터 침입하기 힘든 구조여서 희망이 있습니다.”

“그, 그렇죠! 하하!”

애써 밝게 대답해주고는 있었지만, 유혜린의 얼굴은 굉장히 어두웠다.

나는 애써 그것을 외면하며 말했다.

“전포역을 점령하고 있던 오크들을 모두 정리하기도 했으니 지하철 선로를 따라 서면역으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하동건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말을 이었다.

“서면역에서 1호선 선로로 갈아타서 자갈치역까지 가면 되겠군요.”

“네.”

자갈치역은 본가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었다.

“2번 출구로 나오면 됩니다. 역에서 나온 이후 구체적인 방향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강덕수가 손을 들더니 물었다.

“왜 하필 지하철역입니까? 그냥 지상으로 가는 게 더 빠르지 않나?”

나는 대답 대신 일어나서 거실 창가로 향했다.

2901호, 여기에서는 옥상에서처럼 서면의 상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조였다.

촤라락

암막 커튼을 치우고 말했다.

“저길 보세요.”

엉망진창으로 변한 도시가 한 눈에 들어왔다.

무너진 건물과 박살이 난 유리창들, 그리고 그곳의 원래 주인인 양 돌아다니는 괴물들의 모습까지.

“땅 위로 간다면 끝도 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다가 죽을 겁니다. 반면에 지하철 선로는 몬스터들이 있다고 해도 한정된 양이겠죠. 중간에 도망칠 수도 있고요.”

처참한 도시의 풍경을 본 강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겠네요.”

“당장 자갈치역까지 한 번에 가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욕심인걸 아니까요.”

나는 등을 돌려 모두와 천천히 눈을 마주쳐 가며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은 서면역, 그곳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모두가 내 부탁을 받아들여주었다.

일부 동정심이나 안타까움이 섞여있는 듯 했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가족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시고, 내일 아침부터 바로 작전을 시작해주십시오.”

그렇게 작전회의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그때였다.

♬♪♬♩~

벨소리가 울리기에 확인해보니 오언주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철컥

“무슨 일이신가요?”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오언주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재현님의 능력으로 가족 분들을 데려오면 되지 않습니까?”

“······.”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대상을 순간이동 시키는 것.

사실 내가 문병호의 각성 능력을 보고 흥분한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잘만 하면 저 능력을 극대화시켜 가족들을 단숨에 옮겨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불가능한 퀘스트 보상입니다.]

결과는 완벽한 실패였다.

짐작일 뿐이지만 아마도 문병호의 할머니가 있는 곳이 내 영향력이 닿지 않는 곳이라서가 아닐까.

‘분명 죽었을 게 분명한 고블린이 정산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지.’

게다가 이 가설은 오언주의 아들의 부활이 가능한 이유도 설명이 가능했다.

‘그 아이가 죽은 곳이 내 영향력이 닿는 곳이기 때문이었다면?’

만약 정말로 이런 이유라면 부모님이 죽었을 경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내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 바깥에서 죽은 게 될 테니까. 젠장.’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하동건 파티가 직접 문병호의 할머니를 구하러 가야 했던 것이다.

“저도 전지전능한 것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만약 내가 전지전능 했다면 제일 먼저 이 망할 집구석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순간이동 능력을 부여하고 곧바로 가족을 만나러 갔겠지.

그러나 내 능력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에게서 자유롭지 않았다.

다만, 최대한 발버둥 칠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어요.”

불안해하는 듯한 오언주를 향해 말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언주 씨와 한 약속은 지킬 수 있는 약속이니까요. 일전에 직접 확인시켜드렸듯이.”

오언주는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혹시라도 다른 일행들이 내 능력에 의구심을 가질까 싶어 이렇게 따로 물으러 온 것만 봐도 그랬다.

배려심이 깊었다.

게다가 다른 이들 앞에서 죽은 아들 이야기나 내가 약속한 부활에 대해 언급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만큼 입이 무겁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였다.

오언주에게 솔직하게 말해준 것은.

[시민 오언주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오언주씨도요.”

그녀를 보내고 난 직후.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익숙한 알림이 나타났다.

시도 때도 없이 시민들이 합류하고 있으니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집구석 근처에 접근하였습니다.]

[시민권을 제의하시겠습니까?]

긴생머리에 비니를 눌러쓴, 어딘가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였다.

‘제의해.’

[서예진에게 시민권을 제의합니다.]

[서예진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시민권을 제안하는 것과, 대상이 시민권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이름 : 서예진 (Lv. 31)

신뢰도 : 7

각성 능력 : 생쥐의 여왕

경험치 분배율 : 0%

정산금 분배율 : 0%

★퀘스트 부여    퇴출』

‘각성자라고?’

곧바로 자극이 들어왔던 곳에 절대자의 눈을 비췄다.

그런데.

찍―?

그곳에 있는 것은 서예진이 아닌, 평범한 쥐새끼 한 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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