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7] 서면역 (4)
서예진의 능력을 제일 먼저 써먹을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남부민동이면 혹시 송도바닷가 근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알아요! 케이블카 타러 가 본적 있거든요! 거기 냉면 집 되게 맛있었는데.”
우연히도 서예진은 본가가 위치한 남부민동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하동건 파티보다 훨씬 더 유리한 입장인 것이다.
‘게다가 생쥐만 보내면 그만이니.’
직접적인 구조는 하동건 파티를 통해서 실행해야겠지만, 서예진의 생쥐만으로도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고 구호물자를 보내주는 일은 가능했다.
“맡겨만 주세요!”
[시민 서예진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서예진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나는 묘한 눈길로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봤다.
‘또 올랐다.’
아까부터 계속, 딱히 한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실시간으로 신뢰도와 충성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대면하는 게 효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혹시 이 스킬 때문인가?’
【집구석 절대자의 정신 (패시브) Lv. Max】
모든 종류의 정신 계열 능력에 완전 면역 됩니다.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을 3레벨로 올리고 받은 패시브 스킬이었다.
‘솔직히 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신 계열 능력에 면역이라니, 어차피 집구석 영역에서 나가지도 못하는 내게는 쓸모없는 능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민권을 발급받은 이들만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 중에 나에게 적대감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제거될 터였다.
고블린 무리 사냥 때 영역 내에 포함되어 있던 고블린들이 죄다 머리가 터진 것처럼 말이다.
그냥 없는 것 보단 낫다 정도?
‘그땐 괜히 올렸다 싶었는데,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네.’
품위 유지 스킬의 레벨을 올린 것은 가신 등록이라는 효율 좋은 기능이 이 스킬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가신 등록 한계치가 올라가길 바라면서 품위 유지 스킬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한 것이었는데, 전혀 엉뚱한 패시브 스킬만 얻으면서 낙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지. 어쩌면 그냥 품위 유지 스킬의 레벨이 올라서 그런 걸지도.’
이미 품위 유지 스킬에 저런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다. 어쩌면 레벨이 오르면서 그 효과가 강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신뢰도와 충성도의 성장이 빨라졌으니, 품위 유지 스킬을 올린 것이 아예 의미 없지는 않았던 셈이다.
“그럼 지금 당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서예진은 날카로워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무척이나 사근사근한 타입이었다.
“이왕이면 지하철 선로를 따라서 움직여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선로라면 1호선 말씀이세요?”
“네. 나중에 구출 작전에 그 루트를 이용할 생각이어서요.”
그 순간.
“안 돼요!”
갑작스러운 서예진의 급발진에 조금 놀란 나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왜죠?”
“서면역에는 괴물이 살고 있어요.”
“괴물이요?”
서에진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것일까.
“생쥐 한 마리만 그 괴물이 있는 곳으로 보내주시겠어요?”
“···네에.”
***
서면역은 의외로 굉장히 넓다.
양옆으로 길게 이어진 지하상가가 있기도 했고,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의 환승역들이 으레 그렇듯 보통 지하철역 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구조였다.
번화가의 지하철역답게 평상시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지역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서면역은 그 어디보다도 고요한 장소 중 하나가 됐다.
그곳에 둥지를 튼 하나의 존재 때문이었다.
역사 깊은 곳, 1호선 선로.
스르륵―
촘촘히 돋아나 있는 파충류의 비늘.
세로로 길게 찢어진 눈.
날름거리는 검은 혓바닥.
차가운 철로 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뱀 한 마리였다.
서면역 근처에 있는 오크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 놈의 배는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그것이 서면역이 아무것도 없이 한적한 이유였다.
뭣도 모르고 서면역에 들어온 몬스터나 인간들은 모두 이놈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됐으니까.
지금 이곳에서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것은 배가 가득 찼기 때문이었다.
소화가 완료되면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 눈에 보이는 모든 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울 것이다.
찍―
서면역의 주인은 소리가 난 쪽으로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땅의 진동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미 진즉에 저 작은 존재에 대해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쥐새끼 한 마리를 먹기 위해 움직이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은 몸집답게 구멍 속으로 도망가 버리면 잡을 방법도 없는 놈이었다.
자진해서 자신의 입으로 들어와 준다면 모를까, 저 작은 놈을 잡아먹기 위해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스르륵―
하지만 반대로 말해서, 자진해서 접근해준다면 먹지 못할 것도 없었다.
타고난 대식가인 만큼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그의 식성은 작은 먹이 큰 먹이를 가리지 않으니까.
조금만 더 가까이.
조금만 더 가까이.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사용해 쥐를 잡아먹기 위해 놈은 끈기 있게 기다렸다.
멍청한 쥐새끼는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자꾸만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스르륵―
혀를 날름거리자 축축한 지하실의 습도 사이로 군침 도는 쥐새끼의 체취가 풍겨져왔다.
폭발하는 식욕을 참지 못하고 움직이려던 그 순간.
찍찍―
지금까지 겁도 없이 접근하던 쥐새끼가 기겁하며 도망쳐버렸다.
순식간에 쥐구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끼며 거대 뱀은 입맛을 다셨다.
동시에 다짐했다.
다음에 나타나면 곧바로 덮쳐버리겠노라고.
***
“······.”
서예진의 말대로 서면역에는 엄청난 것이 살고 있었다.
몸길이만 수십 미터가 되는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을 줄이야.
‘저런 놈은 과연 레벨이 얼마일까.’
덩치만 봐도 30레벨은 족히 넘길 것 같았다.
‘어쩌면 40레벨이 넘어갈지도.’
내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서예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현님도 보셨죠? 서면역을 이용하실 생각은 버리는 게 나아요.”
그야 그랬다.
저런 괴물이 버티고 있는 곳을 지나가는 것 보다는 지상의 괴물들을 뚫고 지나가는 게 더 나을 판이었으니까.
“차라리 한 정거장 건너뛰고 범내골역으로 가시는 건 어때요? 재현님의 동료 분들의 실력은 저도 봐서 알고 있거든요. 그분들의 실력이라면 무난하게 거기까지 길을 뚫을 수 있을 거예요.”
서예진의 말이 맞았다.
나라도 서예진과 같은 작전을 세웠을 것 같았다.
‘서예진이 합류하기 전이었다면 말이지.’
그녀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저 괴물을 상대할 방법이 아예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서예진을 향해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2701호로 가시면 됩니다.”
“네?”
“오늘부터 그곳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아, 청소는 좀 해야 할 거예요.”
“가, 감사합니다.”
그동안 800명이 넘는 인원이 새롭게 합류했지만, 아직 빈 방은 많았다.
내가 그들에게 비어있는 방을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들은 철저하게 공을 세운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서예진은 그 중 하나를 받을 합당한 자격이 있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쉬세요.”
서예진을 보내고 난 뒤 곧바로 건설 모드를 활성화시켰다.
‘태양광 발전기 설치.’
[태양광 발전기 시설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23시간 59분 59초
새롭게 합류한 두 개 동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지었다.
아직 3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지원금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2기 모두 공짜로 지을 수 있었다.
‘이게 의외로 효율이 괜찮단 말이지.’
지원금을 활용해서 짓는 거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어차피 건설에만 쓸 수 있는 돈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합류한 동에도 공용시설을 늘려주자.’
사람들은 저들끼리 당번을 정해서 공용시설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용변을 보는 등 알아서 잘 처신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8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모두 소화하기에는 21층의 두 개 세대가지고는 아무래도 부족했다.
‘또 이것저것 새롭게 공지해야겠네.’
다행히 김다빈이 꽤 유능한 편이어서 이 부분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나름대로 주급을 지급하고 있어서 김다빈도 열정적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다빈에게 지급하는 주급은 겨우 70만원이었지만, 현재로써는 그녀도 매우 만족하는 편이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무려 고블린 700마리를 잡아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었으니까. 주변에 고블린이 씨가 말라가는 현 상황에서는 그 가치가 더욱 귀했다.
당장 그녀의 동생인 김민호보다도 그녀가 돈을 잘 벌고 있으니 말 다 했지.
‘일할 사람을 늘리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나에게 직접 호소하지는 않았지만, 절대자의 눈을 통해 힘들다고 호소하는 것을 몇 번이나 들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공용 시설이 운용되는 24시간 중 16시간 이상을 그녀 혼자 일하고 있었고, 나머지 8시간을 김민호가 보고 있었으니까.
사실상 학대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회사가 있었더라면 진즉에 고발당했을 것이다.
‘최소 3교대 시스템은 만들어야해. 새롭게 생기는 공용시설도 마찬가지고.’
할 일이 많았다.
이것저것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다 보니, 금세 다음날이 되었다.
‘시작해볼까.’
사냥의 시간이었다.
***
하동건 파티는 전포역을 통해 서면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였지만, 여덟 명 모두 헤드 랜턴을 끼고 있어서 환하게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온다!”
-캬아아악!
전포역에서 서면역까지 이어지는 지하철 선로를 점령한 것은 사람만한 박쥐 괴물들이었다.
그러나 하동건 파티에게 그것들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쐐애애액! 푸욱!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있었고, 나타날 때마다 놈들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꿰뚫는 김가영의 존재 덕분이었다.
몇 번의 전투 이후에는 아예 박쥐들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조용히 선로를 따라가던 와중에 유혜린이 김가영을 향해 물었다.
“언니. 그런데 재현님이 말씀하신 서면역에 있는 뱀이요. 정말 저희끼리 사냥할 수 있을까요?”
“괜찮지 않을까? 만일의 경우에는 재현님이 우리를 소환해주실 테니까.”
“아, 맞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그들 모두 가신 소환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적호와 싸웠을 때도 절묘한 타이밍에 가신 소환으로 무사할 수 있었던 유혜린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믿음이 더 강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하동건 파티는 모두가 김재현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일이 틀어져도 그가 어떻게든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길었던 터널이 끝나고 드디어 서면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음···.”
그곳에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지하철하나가 완전히 선로를 이탈하여 뒤집어져 있었는데, 곳곳에 핏자국과 시체가 남아 있었다.
박쥐 놈들이 파먹은 듯한 흔적이 남아 있는 시체들도 존재했다.
“우욱.”
그에 따른 악취 때문에 절로 헛구역질이 나오는 환경이었다.
하동건이 그런 일행들을 추스르며 말했다.
“1호선으로 이동한다.”
쓰러진 지하철을 밟고 올라가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처참하기는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구석구석에 시체들이 즐비했다.
희한한 것은 고블린이나 오크와 같은 몬스터가 단 한 마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수월하게 환승 구역을 따라 1호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
1호선 안에 헤드 랜턴의 빛을 비춰본 하동건 일행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안쪽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물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그 공포에 모두가 얼어붙었던 그 때, 공포에 질린 강덕수가 소리쳤다.
“저, 저딴 거랑 무슨 수로 싸워!”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앙!
“으윽!”
“엎드려!”
난데없이 들려온 폭발음이 지하실 전체를 뒤흔들었다.
삐――――이이이
이명과 함께 낯익은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띠링!
《파티 퀘스트》
퀘스트 내용 : 거대 뱀 마무리하기.
제한 시간 : 10분 00초
보상 : 대량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없음.
‘이건···? 마무리라고?’
하동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금까지 괴물이 있었던 장소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거대 뱀 한 마리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왜 저러지?’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것은 처참하게 박살이 난 거대 뱀의 몸뚱어리였다.
안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난 것인지 내부 장기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회였다.
하동건이 창을 들어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거대 뱀의 머리를 향해 힘껏 던졌다.
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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