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38화 (38/175)

[Episode 09] 집결 (2)

허리를 숙인 이준혁을 바라보며 그의 시민 정보창을 확인했다.

『이름 : 이준혁 (Lv. 33)

신뢰도 : 48

각성 능력 : 크리에이트 워터

경험치 분배율 : 0% (+100%)

정산금 분배율 : 0% (+100%)

★퀘스트 부여    퇴출』

크리에이트 워터 (B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신기하게도 능력에 비해 레벨이 높은 남자였다.

서예진이 31레벨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준혁의 레벨은 엄청 높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서예진보다 각성 능력의 등급도 낮은 데 말이지.’

B 등급 능력이니 25레벨 정도에서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는 것은 각성 후에 8번이나 레벨업을 했다는 소리인데, 그만큼 몬스터 사냥을 많이 했다는 뜻이 된다.

인성에 하자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가신으로 들여도 되겠어.’

처음부터 신뢰도가 높아서 금방 가신 등록의 조건을 채울 것 같았다.

“함께 오신 분들의 총원이 몇 명이라고 하셨죠?”

“저를 포함해서 총 24명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방 세 개를 드리겠습니다. 1802호는 준혁씨가 쓰시면 되고, 1501호랑 1302호는 나머지 분들이 사용하시면 됩니다.”

이준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네?”

“전기나 수도, 가스도 전부 공급해드릴 테니 우선 가서 샤워라도 하시죠.”

“자, 잠시만요. 집을 주신다고요?”

“네. 이준혁씨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시민 이준혁의 신뢰도가 50을 달성했습니다.]

[충성도가 개방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빠르게 반응이 왔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준혁의 뒤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다른 사람들도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저,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들 고블린 한, 두 마리쯤은 감당 가능한 실력이니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그 남자의 말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레벨은 겨우 9레벨이었다. 나름 높은 편이기는 했지만, 평균적인 레벨일 뿐이었다.

‘몬스터 사냥을 했다면 레벨이 더 높아야 정상 아닌가?’

그를 향해 물었다.

“고블린을 사냥해 보신 적이 많으신가 봐요?”

그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벌써 제 손에 죽은 고블린의 숫자만 세 자리 수는 될 겁니다.”

그렇다면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당장 시민들이 기본급 스킬을 획득한 뒤로 고블린 몇 마리만 잡아도 금세 10레벨을 달성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렇게나 많은 숫자의 고블린을 사냥했다면 적어도 10레벨대 초반은 달성해야 할 텐데.

“나머지 분들도 그런가요?”

“차이는 있지만,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대부분 수십 마리 정도는 잡았을 겁니다. 저기 저 형은 오크를 잡은 적도 있고요.”

그러나 다른 이들의 레벨도 전부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10레벨이 넘는 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다들 운동으로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몸이 좋은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10레벨 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저들은 수많은 고블린들을 사냥하고도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레벨업이라는 게 각성자만 가능한 거였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일반인들은 몬스터를 사냥하더라도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시민권을 받기 전부터 몬스터를 사냥한 경우가 잘 없어서 알 수 없었던 정보였다.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하동건 파티나 오언주 밖에 없었으니까.

‘시민권을 얻으며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거였군.’

사실상 시민권을 얻는 것만으로도 유사 각성자 대우를 받게 되는 셈이었다.

‘생각보다 내 능력이 엄청나구나.’

지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시민의 한계 인구수는 1만 9천 명.

유사 각성자 1만 9천 명을 육성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되는 것이다.

이준혁을 향해 물었다.

“저 분의 말이 정말인가요?”

“네. 조금 허풍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사실입니다.”

“야! 내가 언제···!”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고 말았다.

“대단하네요.”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부디 몬스터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서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사냥으로 얻은 돈은 1층의 매점에서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2층에 있는 헬스장에 등록하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네?”

몬스터를 잡아서 돈을 번다는 개념을 아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다.

시민권을 받기 전에는 몬스터를 사냥하더라도 돈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동건 파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덕분이었다.

시민이 되기 전에는 몬스터를 잡아도 아무런 알림도 뜨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을 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21층에 가셔서 김다빈씨를 찾으세요. 제가 보냈다고 말씀하시면 친절하게 설명해주실 겁니다. 그리고···.”

상점에서 그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라면, 초코파이, 콜라와 과자 등등.

그리고 활과 화살 10세트와 창 10자루를 소환했다.

지이잉―

“이것은 제 약소한 선물입니다.”

그들이 기대에 걸 맞는 활약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시민 이현찬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차정현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장진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지태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

······

그렇게 그들을 보내고 나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시우야, 맛있어?”

그곳에는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오언주가 있었다.

“웅! 맛있어요!”

5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앞에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소시지 야채 볶음, 스팸구이, 계란후라이와 함께 고슬고슬 잘 지어진 따스한 밥과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엄마. 그런데 누구 생일이에요?”

“으응? 아니?”

“그런데 왜 미역국이 있어요?”

“우리 시우가 좋아하잖아.”

“와아! 너무 좋아요!”

정성껏 차린 밥을 오물오물 먹는 시우를 보며 오언주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어?”

“네!”

거실로 돌아오는 나를 발견한 시우가 숟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법사 삼촌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 다음 식탁에 앉았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현님.”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죠. 시우 덕분에 이런 맛있는 집 밥도 얻어먹고.”

부활한 시우는 집구석 영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레벨업하며 확장된 영역이 아닌, 우리 집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게 오언주가 지금 우리 집에 있는 이유였다.

“잘 먹었습니다!”

시우는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고는 곧바로 소파로 달려가 앉았다.

“삐삐야, 이리 와!”

-삐입

까미는 시우가 다가오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시우의 품에 안겼다.

내가 될 수 있으면 시우에게 맞춰주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시우는 까미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오언주를 향해 말했다.

“엄마! 저 고고다이노 틀어주세요!”

“그래.”

원래라면 시우의 바램은 들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TV채널은 모두 종영되었고, 인터넷이 되지 않는 이상 IPTV의 다시보기도 불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오언주의 집에는 고고다이노 영상이 저장되어 있는 컴퓨터가 있었다.

그것을 우리 집으로 옮겨와서 티비에 연결해 틀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움직이는 바위 스테고사우르스!]

평소에 시우가 좋아하던 만화라 아예 다운로드 받아 놓은 덕분이었다.

티비에 집중하는 시우를 지켜보며 조심스럽게 오언주에게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네? 뭐가요?”

“여기서 나갈 수 없는 거요. 저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오언주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에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차라리 잘 됐어요. 이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편이 재현님께도 좋을 테니까요.”

항상 그녀의 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는 지금 너무 만족스러워요. 평생 재현님께 충성을 바치고 싶을 정도로요.”

[시민 오언주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오언주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오언주는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

굳이 시스템 알림이 아니더라도 표정과 태도에서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오언주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아들에게로 다가갔다.

“시우야. 엄마도 같이 봐도 돼요?”

“네!”

그녀는 자신의 아들 옆에 꼭 붙어서는 머리에 입을 맞춘 뒤 조용히 그렇게 한참을 옆에 붙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조급해 하지 말자.’

겨우 하루였다.

이 하루를 손에 넣기 위해 오언주가 그동안 어떤 태도로 임무를 수행해 왔던가.

하루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어차피 서예진의 생쥐가 본가로 향하고 있으니까.’

거인의 횡포로 박살이 난 부산역 부근을 지나간다고 애를 먹긴 했지만, 지금은 무사히 넘어가 자갈치로 향하고 있었다.

‘생쥐가 집에 도착하면 가족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달해 줄 수 있다.’

물이나 식량을 줄 수도 있었고, 총과 같은 무기를 건네줄 수도 있었다.

편지를 적은 종이를 창고 스킬로 건네어 내가 무사하다는 것을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절대자의 눈을 서예진이 감각 공유를 한 생쥐에게 고정한 채로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또 왔군.’

이준혁 일행뿐만이 아니었다.

거인을 잡은 이후로 생존자들이 우리 아파트 단지로 집결하고 있었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집구석 근처에 접근하였습니다.]

[시민권을 제의하시겠습니까?]

이번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여섯 명의 남녀였다.

‘시민권 제의해.’

이준혁의 사례가 있었던지라 기대감을 품고 확인해봤지만, 이번에는 각성자가 없었다.

‘바로 김다빈을 찾아가라고 해야겠군.’

각성자가 없다면 굳이 나를 찾아오라는 퀘스트를 주어 신뢰도나 충성도 작을 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새 벌써 잘 시간이 되었다.

“오언주씨는 시우랑 안방 침대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밖에서 자도―.”

“안 됩니다. 시우랑 같이 편하게 주무세요. 명령입니다.”

“···배려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강제로 그들을 안방으로 들여보내고 나는 소파에 누웠다.

소파에 누워 있으니 완전히 닫기지 않은 안방 문틈 사이로 오언주의 자장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듣고 있자니 스르륵 눈이 감기는 것 같았다.

그날은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도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갔다.

오언주가 해 주는 밥을 시우와 함께 먹고, 시우가 좋아하는 만화를 다 함께 시청했다.

시우는 까미를 귀여워했고, 까미는 태양빛을 쬐는 것을 방해하는 시우를 귀찮아했다.

오언주와 시우는 함께 낮잠을 자고, 내가 상점에서 사준 장난감을 함께 가지고 놀았다.

그동안 시간은 무색하게도, 단 한 순간도 기다려주지 않은 채 흘러만 갔다.

딱 하루였다.

내게 오언주와 시우에게 선물해 줄 수 있는 시간은.

약속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이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엄마.”

“응?”

“왜 울어?”

“엄마 안 울어.”

오언주는 자신의 아들을 품에 안은 채로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아닌데, 우는데.”

시우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 올려 어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시우가 오언주의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울지 마세요, 엄마.”

“흑. 시우야···.”

그것이 기폭제가 된 것일까.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하듯, 오언주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흐윽. 엄마는··· 무서워.”

“뭐가요?”

“우리 아들이 없는 세상이 너무 무서워요···.”

오언주는 시우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최대한 강하게 끌어안았다.

“엄마 숨 막혀.”

“미안···.”

울먹이는 얼굴에서는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하염없이 떨리는 두 손을 조심스럽게 시우에게서 떼어내고, 목소리는 계속해서 갈라졌다.

행여 힘 조절을 하지 못할까 어쩌지도 못하는 모습이, 그러면서도 흘러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그때, 시우가 짧고 자그마한 두 팔로 오언주를 안아주었다.

“엄마. 저 여기 있어요. 어디 안 가.”

따스한 목소리로, 자신의 엄마를 안심시키려는 시우의 모습에.

“흐흐윽.”

오언주는 무너져 내렸다.

“엄마, 사랑해요.”

“나도, 엄마도 우리 시우 사랑해. 시우야 엄마는···.”

그때,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시우의 몸이 점점 흐려지고, 목소리가 희미해진다.

아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어미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안녕, 엄마.”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시우, 시우야! 시우야!”

시우가 떠나가고.

“흐윽. 흐으윽.”

오언주는 한참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시우가 남겨둔 온기가 다 사라질 때까지, 충분히 슬퍼하고 눈물 흘렸다.

희망.

희망은 절망 속에서만 피어나는 꽃이다.

그렇기에 희망을 손에 넣은 사람은 언제나 절망의 구렁텅이 한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는 거겠지.

잔인하게도.

“너무 낙담하지 마십시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녀에게 다시 한 번 희망을 불어넣었다.

“흐윽. 저, 정말입니까?”

오언주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악마의 유혹에, 오언주가 귀를 기울였다.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시민 오언주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오언주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태고의 생명력’을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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