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39화 (39/175)

[Episode 09] 집결 (3)

‘젠장.’

백승엽은 어제부터 기분이 하루 종일 좋지 못했다.

‘사라졌어!’

자고 일어나니 김재현에게 하사 받았던 보급형 창과 운 좋게 얻었던 오크의 창이 사라져 있었다.

게다가 열심히 벌어들인 전 재산의 압수. 자고 일어나니 그동안 열심히 벌어뒀던 돈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너네들 것도 없어졌다고?”

“어. 자고 일어나니까 전부 사라져 있더라.”

그와 함께하는 쌍둥이, 문지훈과 문상훈의 무기와 전재산도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문지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아보니까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꽤 있더라. 그런데 우리를 포함해서 그 사람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뭔데?”

“정문에서 군필자 소집할 때 안 갔다는 거야, 씨팔. 심지어는 거기 갔다가 되돌아온 놈들도 멀쩡한 거 같더라.”

문상훈이 옆에서 한숨을 크게 내쉬며 후회했다.

“아, 그때 그냥 갔어야 했는데.”

그 말을 들은 백승엽은 곧장 문상훈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말했다.

“그래서 내 탓이라는 거냐?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씨발, 너네들도 동의했잖아! 네 입으로 그런 명령에 따르는 것들이 병신이라고 말했어. 맞아, 아니야?!”

문상훈이 잔뜩 쫄아서는 대답했다.

“마, 맞지. 미안해, 승엽아.”

“쯧.”

백승엽은 혀를 차고는 문상훈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에게서 무기를 거두어 간 것은 분명 김재현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먼저 잘못했기에 명분이 저쪽에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솔직히 말해서 김재현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퇴출될 수도 있다.’

딱 한 번 그런 경우가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미성년자를 건드리려다 걸려서 그대로 퇴출당했다고 하는데, 그 범죄자 새끼는 얼마 뒤 길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고블린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거역한다면 나도 그렇게 되겠지.’

사실상 이곳에서 퇴출되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만큼 그에게 대드는 일 같은 건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니 애꿎은 문상훈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씨발 지하 주차장이 아니라 아예 단지 밖으로 도망쳤어야 했는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인이 나타나는 타이밍에 사냥을 나갔던 이들은 모두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정문에 갈 수 없었던 이들은 모두 운 좋게 처벌을 면한 것이다.

거인이 쳐들어왔을 때, 지하 주차장이 아닌 아파트 단지 밖으로 도망쳤다면 자신도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것 같았다.

‘좆같네.’

그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정문 소집에 응한 자신의 동생, 백승민의 존재였다.

그는 김재현에게 무려 권총을 하사받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당장 그 총을 훔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감히 김재현이 직접 하사한 물건에 손을 댔다가는 어떤 화를 입을지 몰랐다.

이제는 집구석에서 동생 눈치마저 봐야하는 실정이었다.

“하아.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그러나 백승엽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은 것들은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김재현에게 ‘처벌’을 받았다는 딱지가 붙은 남자들이 후에 생존자 그룹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또한.

《퀘스트》

퀘스트 내용 : 고블린 사냥. (0/20)

제한 시간 : 24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실패 페널티 : 1분 동안의 극심한 고통.

‘······이건 또 뭐야? 극심한 고통?’

앞으로 자신들이 이 안전 구역 내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 지도 몰랐다.

***

태고의 생명력.

오언주가 가지고 있는 A 등급 스킬 중 하나로 상처가 늘어나는 것에 비례하여 재생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능력이었다.

‘신뢰도 100 보상이 대상이 가지고 있는 스킬일 줄이야.’

당장 이 스킬이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전투에 나설 것도 아니었고, 집구석 밖으로 나갈 일이 없는 이상 내가 다치게 될 상황은 거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신뢰도 100의 보상으로 스킬을 얻었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었다.

‘문병호의 신뢰도가 100을 앞두고 있다. 만약 문병호의 각성 능력을 얻게 된다면···.’

텔레포트.

시야가 확보된 곳으로 이동 가능한 스킬이었다.

‘전초기지를 활성화 시킨 다음, 절대자의 눈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한다면?’

이론상 정신력만 충분하다면 그곳으로 이동이 가능할 것이다.

‘정신력을 높여놔야겠군.’

앞으로는 스킬 숙련도가 아니라 정신력 강화를 퀘스트 보상으로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일일 퀘스트 보상으로 내 정신력을 강화할 수 있을 테니까.

그때쯤 눈물을 멈춘 오언주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재현님. 이제 보내주십시오. 제가 직접 재현님의 가족 분들을 구해오겠습니다.”

“지금이요?”

“네. 원래라면 어제 작전을 시작했어야 했는데, 저 때문에 하루가 미뤄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귀중한 시간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해주신 만큼 보답하고 싶습니다.”

내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말에 고맙기도 하면서, 동시에 조금 부끄러웠다.

“제가 조급한 티를 많이 냈던가요?”

“아닙니다. 그저 제가 재현님 입장이었어도 조급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가족이 가장 중요한 법이니까요.”

비록 불완전한 방식이기는 하나 시우를 한 번 만난 덕분일까, 이글이글 타오르던 분노 대신 단단한 신뢰가 그녀의 두 눈에 깃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재현님이 내어주신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오언주의 진심 어린 감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동건씨 파티와 함께 2901호에서 대기해주세요. 저도 곧 내려가겠습니다.”

“네.”

그들을 바로 서면역으로 출발시키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거인 때문에 서면역 선로가 일부 무너졌다.’

지하철의 선로뿐만 아니라 서면역 지하 대부분이 박살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 무거운 몸집의 거인이 날뛰어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새로운 루트를 파야겠지.’

그를 위해 어제부터 서예진이 부지런히 생쥐들을 부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제부터 하루 종일 탐색한 덕분에 대략적인 루트는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절대자의 눈.’

서예진에게 시야를 집중시키자 그녀가 실시간으로 감각 공유를 하고 있는 생쥐에게로 곧바로 이동되었다.

‘음?’

생쥐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찍찍!

무언가에 쫓기듯 빠르게 도망치는 중이었는데, 일단 생쥐의 덩치가 웬만한 소형견 보다도 커 보였다.

「길들여진 거대 생쥐(Lv. 7)」

아니나 다를까 절대자의 눈으로 본 생쥐의 명칭부터 달라져 있었다.

‘진화했구나.’

서예진이 가신 등록 되면서 새로 생긴 능력 중에 진화라는 게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것의 영향인 것 같았다.

“으어어!”

진화한 거대 생쥐를 열심히 쫓아오는 존재들이 있었다.

초점 없는 눈, 흐느적대는 팔다리, 전신에 피칠갑을 한 시체의 모습들.

「좀비(Lv. 11)」 「좀비(Lv. 13)」 「좀비(Lv. 11)」 「좀비(Lv. 9)」 「좀비(Lv. 9)」

수십 마리의 좀비가 생쥐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찍!

좀비들은 생쥐의 뒤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몰려들었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생쥐를 둘러싸는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생쥐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좀비들이 빽빽이 몰려들어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몸집이 작았으면 어둠에 의지하여 어떻게든 빠져나갈 틈이라도 있었을 거 같은데, 진화해버린 탓에 도망칠 장소가 마땅치 않은 것이다.

아이러니였다.

‘끝났군.’

의미 없이 생쥐를 죽일 바에야 가스 폭발을 사용해 좀비들을 쓸어버리기라도 할까 고민하던 그때였다.

걸음을 멈췄던 거대 생쥐가 좀비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최후의 발악으로 공격이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이내 좀비들의 다리 사이 틈으로 몸을 비틀어 넣더니 포위망을 뚫는 것에 성공했다.

‘오.’

마침 그곳은 출구가 있는 곳이었고, 거대 생쥐는 열심히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곳에는.

[5 남포]

남포역 5번 출구라는 표시가 적힌 간판이 보였다.

‘어쩐지 익숙하더라니.’

너무 어두운 탓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곳은 부산광복점이 있는 장소였다.

‘그 많은 좀비가 다 어디에서 왔나 했더니.’

그날은 토요일 주말이었다.

백화점에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을 것이고, 좀비가 나타났다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겠지.

지하상가에도 제법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대참사가 벌어졌을 게 뻔히 보였다.

‘자갈치역까지 가는 걸 포기하고 올라온 것을 보면 지하철 선로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소리인데.’

중앙역에서 자갈치역으로 이어지는 루트를 포기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때.

-찌익―!!

거대 생쥐의 앞에 괴물 한 마리가 나타났다.

매끄러운 피부와 위협적으로 튀어나와 있는 이빨들.

그것은, 상어였다.

「육지 상어(Lv. 23)」

와작!

손 쓸 틈도 없이 육지 상어의 이빨에 거대 생쥐가 당했다.

그와 함께 절대자의 눈도 강제로 꺼졌다.

‘······.’

그다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백화점이 있는 남포역에서부터 본가까지의 거리는 고작 수 킬로미터.

그런데 저런 위험한 놈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은 본가의 근처에도 저런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였다.

‘서둘러야겠어.’

나는 2402호에 들러 서예진을 데리고 하동건 파티가 대기하고 있는 2901호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서예진이라고 합니다.”

하동건 파티와 서예진은 서로 안면은 트고 있었지만, 이렇게 서로를 소개시켜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이런저런 일로 그동안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하동건이라고 합니다.”

“김가영이라고 해요!”

“오언주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생쥐를 다루는 게 서예진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던 터라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특히 강덕수가 서예진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강덕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에.”

“너무 예쁘십니다!”

“가, 감사해요.”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난 뒤 그들을 향해 말했다.

“본격적으로 작전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거인의 등장으로 서면역을 경유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거인의 발걸음으로 인해 서면역은 완전히 아작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이대로 지하철 선로를 포기하기는 아쉽습니다.”

서면역 근처가 박살난 것이지, 그 이후 범내골부터 초량역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멀쩡했기 때문이다.

서예진의 생쥐들을 이용해 확인해본 결과 아직까지 그곳은 몬스터가 자리 잡지 않아서 프리패스로 이용이 가능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첫 번째 목표는 범내골역으로 가는 루트를 뚫는 것입니다.”

나는 서예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서예진씨가 설명해주실 겁니다.”

“네.”

서예진은 품에서 꼬깃꼬깃 접은 A4용지를 하나 꺼내더니 거실 바닥에 펼쳐보였다.

그곳에는 서예진이 직접 그린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강덕수가 호들갑을 떨었다.

“와 너무 잘 그리셨어요!”

“···감사합니다.”

이상하다.

내가 보기에는 초등학생 방학 숙제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보이는데.

어쨌든 서예진은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기가 저희가 있는 아파트입니다. 그리고 여기가 전포역이고요. 그리고 여기가 목적지인 범내골역입니다. 추천하는 경로는 이렇게, 큰 도로를 따라서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큰 도로에는 몬스터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마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미리 알 수 있으니 충분히 대비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웬만한 몬스터 무리는 하동건 파티에게 상대도 되질 않을 테니까.’

거인 사냥 작전을 실시하기 전, 돈을 퍼부어 하동건 파티원들의 레벨을 최대한 올려두었다.

조금이라도 거인을 상대하기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지금은 모두가 30레벨을 달성한 상황이었다.

이제 가신들 중에서 레벨이 30보다 낮은 이는 최형준과 유혜린뿐이었다.

“범내골역에 도착하기 전에 조심해야 할 스폿은 여기입니다. 홈플러스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오크들이 있는데, 그 규모가 최소 오백 이상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서예진의 말에 하동건이 물었다.

“굳이 부딪힐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어차피 저희들의 목적은 범내골역으로 진입해 지하철 선로를 이용하는 거니까요.”

“범내골역에도 몬스터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하동건의 지적은 정확했다.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숫자가 좀 많기는 해도 고블린들 뿐이라서 마주치는 놈들만 정리하며 빠르게 개찰구 안쪽으로 진입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서예진은 다시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일단 지하철 선로 안에 진입하기만하면 아무 방해 없이 초량역까지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 다음역인 부산역부터입니다.”

거인에 의해서 반파된 부산역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강덕수가 부르르 몸을 떨며 물어왔다.

“그, 그 말은 부산역에도 그 거인이 있다는 겁니까?”

“아니요. 거인이 날뛴 흔적만 남아 있을 뿐, 거인은 이미 떠난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어제 우리 아파트를 찾아왔던 그 놈과 이놈이 동일한 놈인 것 같아요.”

“그,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이어진 서예진의 설명에 딱딱하게 굳었던 사람들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아무튼 부산역도 서면역과 마찬가지로 박살이 난 상태여서 초량역에서 올라간 다음 위에서 건너가야 합니다. 부산역 근처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거인이 날뛴 탓인지 몬스터가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 이 다음 부터는 지하철 선로 말고 다른 루트를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죠?”

“선로 안을 어마어마한 숫자들의 좀비들이 채우고 있거든요. 아마 그것들을 처리하는 데에만 꽤 시간을 낭비해야만 할 거예요.”

서예진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좁은 공간에 있는 몬스터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도 없는 이상, 이 루트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겁니다.”

그녀의 말에 하동건 파티 모두가 한 곳을 바라봤다.

“에?”

갑작스레 모두의 시선을 받은 유혜린은 당황해서는 말했다.

“나, 나는 이제 밖으로는 안 나가기로···.”

순간 모두가 실망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유혜린이 말을 바꾸었다.

“···했었지만, 예진씨.”

유혜린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서예진을 향해 말했다.

“그···. 제, 제 능력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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