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0] 부산역 (2)
“!!!”
이번 고통은 지금까지의 고통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지금까지가 몸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고통이었다면, 20레벨이 되며 느껴지는 고통은 마치 송곳으로 전신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마치 몸속에서 수십 개의 바늘이 피부를 뚫고 밖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재현님! 재현님! 괜찮으세요!?”
서예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반응할 수 없었다.
“재현님! 숨! 숨 쉬셔야 해요!”
실시간으로 전해져오는 고통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몇 분 동안이나 이어진 고통 덕분에 정신이 아득해지려던 찰나.
드디어 영역 확장이 끝났다.
“허억, 허억.”
식은 땀이 온 몸을 적시고 있었다.
고통으로 인해 수축되었던 온몸의 근육이 일시에 풀어지며 탈력감이 찾아왔다.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은 무력감과 함께 가슴에서 약간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눈을 떠 보니 기겁한 표정의 서예진이 내 가슴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있었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CPR을 하려고···.”
나는 물에 젖은 솜처럼 느껴지는 팔을 들어 올려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내 상태가 제법 심각해 보였는지, 소파에 자리 잡고 있던 까미도 내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삡?
“···난 괜찮아.”
까미는 소파 대신 내 배 위에 자리를 잡고는 엎드렸다.
그런 녀석을 살며시 쓰다듬어주고 있자니 슬슬 졸음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나른한 감각을 느끼며 눈을 감은 채, 절대자의 눈으로 새롭게 늘어난 집구석 영역을 확인했다.
‘규모가 엄청나다.’
생각보다 넓은 지역에 걸쳐서 영역이 늘어나 있었다.
영역은 도로를 따라 확장되어 있었다.
차가 다니는 큰 길만 골라서 늘어난 상태였는데, 그 범위가 전포역은 물론이고 서면역과 부전역 일부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반경 1km 범위 안에 있는 찻길을 모두 집어삼킨 것이다.
빌어먹게도 넓은 영역이었다.
‘이러니까 그렇게 아팠지.’
역대 최대 규모로 영역이 늘어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고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피곤하군.’
딱 5분만 잠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를 위해 임무를 수행중인 하동건 파티를 지켜봐야만 했다.
잠을 깨기 위해 일어나 앉은 나는 서예진에게 부탁했다.
“예진씨, 미안한데 냉수 한 잔만 떠 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할 기력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신력이든 체력이든 고통을 견뎌내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찬 물을 마시니 조금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괜찮으세요?”
“덕분에요.”
절대자의 눈으로 하동건 파티를 살피면서 스킬창을 확인했다.
20레벨이 되며 부여 받은 스킬 포인트 3개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스킬 레벨 옆에 [+]가 있는 스킬들 중 제일 먼저 레벨업 시킬 스킬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현재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스킬.
‘절대자의 눈 레벨업.’
[집구석 절대자의 눈 스킬이 Lv. 4가 되었습니다.]
[다중 시야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곧바로 새롭게 추가된 기능을 시험해 봤다.
다중 시야는 말 그대로 절대자의 눈을 사용한 시야가 여러 개로 늘어나는 기능이었다.
동시에 여러 곳을 관찰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시야의 개수가 점점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아직은 3개가 한계인가.’
이제는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사용이 가능한 절대자의 눈이었는데, 시야가 3개로 늘어나게 되니 집중력에 한계가 찾아왔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처음처럼 아예 두 눈을 감고 절대자의 눈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꼭 CCTV 화면을 모아놓은 경비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군.’
세 개의 시야가 동시에 보였다.
하나는 여전히 하동건 파티를 보여주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정신없이 바빠 보이는 김다빈의 모습을 비췄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새롭게 늘어난 영역인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몰라. 갑자기 고블린들 머리가 터져 버리더니 돈도 안 주고 사라지던데?”
최근에 합류했던 이준혁 파티였다.
고블린 사냥으로 부족했던 경험치를 채워주었던 것은 바로 이 파티였던 것이다.
“준혁 오빠! 저기 좀 봐요!”
여자가 골목길 쪽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고블린들이 이쪽으로 못 들어오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준혁이 코앞에까지 다가갔음에도 고블린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식칼이나 무기를 휘둘러도 투명한 벽에 막혀 튕겨져 나갈 뿐이었다.
반면에.
푸욱!
“꽤애액!”
이준혁 쪽에서 고블린을 공격하는 건 가능했다.
“이거 완전 개꿀이잖아?”
그 모습에 파티원들이 열광했다.
“야! 나도! 나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았어!”
“너만 못 잡았냐! 나도 못 잡았다!”
“다 비켜! 활 쏠 거야! 활 맞기 싫으면 다 꺼져!”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고블린들은 본능적으로 도망쳤지만, 이미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다.
뒤를 쫓아간 사람들에 의해 고블린 여섯 마리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엇? 진짜다. 허공에 이상한 메시지들이 뜨잖아?”
“이제 처음 보는 거냐?”
“어어. 처음 잡아 본 거거든. 오늘따라 준혁이가 너무 적극적이었잖냐.”
놀랍게도 그들은 아주 익숙하게 고블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때 그 남자의 말이 아주 허풍은 아니었나보군.’
지금이야 내가 레벨업 하면서 안전지대 안에서의 사냥이 되어버렸지만, 그 전부터 최소 열 마리 이상의 고블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긴장된 기색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말로 고블린 사냥을 자주 경험했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봤던 일반인 그룹 중에서도 최상위급이다.’
이들은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죽이는 것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다.
그것도 일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 모인 모두가 그랬다.
그런 성향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 끼리끼리 모인 것인지는 몰라도 이들은 고블린 사냥을 재미있는 놀이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이것도 그 분의 능력인가? 고블린을 막아주는 이 벽 말이야.”
“아마도. 처음에 우리가 겪었던 그 투명 장벽의 연장선인 거 같은데?”
“와. 엄청난 능력이었네. 잠깐만···.”
이준혁 그룹 중 하나가 불안한 눈빛이 되어 말을 이었다.
“만약에 우리도 눈 밖에 나게 되면 방금 고블린들처럼 머리가 날아가 버리는 거 아니야?”
“······.”
“······.”
그의 발언에 한껏 흥분하던 파티원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 그럼 방금 그건 그 분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이라는 거야? 말 잘 들으라는?”
무거운 침묵이 파티 전체에 내려앉았다.
“우, 우리가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
그것이 공포로 번져갈 때쯤, 이준혁이 나섰다.
“눈 밖에 날 일이 없으면 되는 거 아닌가?”
“뭐라고 준혁아?”
“다들 겪어봤잖아. 정상적인 화장실. 따뜻한 물로 샤워가 가능한 집. 따뜻한 밥을 해먹을 수도 있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잘 수 있는 집을 주신 분이야.”
이준혁은 파티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니 눈 밖에 나는 일 없도록 알아서 잘, 깔끔하고 센스 있게. 우리가 처신을 잘 하면 되잖아.”
[시민 이준혁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이준혁이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이준혁이 가신 등록을 위한 최소 조건을 만족시켰다.
‘가신 등록, 이준혁.’
그 순간 이준혁의 몸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어?”
“뭐, 뭐야?”
“준혁 오빠!”
『이름 : 이준혁 (Lv. 40) [+]
칭호 : [열두 번째 종] [기사] [마법사]
신뢰도 : 59 충성도 : 31
각성 능력 : 크리에이트 워터, 워터밤, 컨트롤 워터
경험치 분배율 : 0% (+100%)
★퀘스트 부여 』
{마법사}
스킬의 위력이 100% 증가합니다.
워터밤 (A 등급)
고열로 압축된 물을 소환하여 폭발시킨다. 소모되는 정신력에 비례하여 위력이 올라간다.
컨트롤 워터 (S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자신이 소환한 물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다.
‘음?’
S 등급 능력을 각성할 줄이야.
이준혁이 처음 들고 있던 능력의 등급이 B등급이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잘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레벨이 높았기 때문인가?’
가신으로 등록하는 시점의 그는 33레벨로 오언주가 가신 등록할 때의 레벨과 같았다.
‘단순히 운은 아닌 것 같은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결과가 좋다는 게 중요했다.
‘어찌됐든 대박이다.’
이것으로 두 번째 S 등급 능력자가 탄생한 것이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워터밤과 컨트롤 워터 사용해보기.
제한 시간 : 10분 00초
보상 : 정신력 강화.
실패 페널티 : 정신적 피로감.
시민들은 자신의 상태창을 볼 수 없었다. 당연히 자신이 얻은 새로운 각성 능력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스킬의 사용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될 수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스킬 명을 알려주는 방식이 훨씬 습득이 빨랐다.
“준혁아 괜찮냐? 방금 네 몸에서 빛이···!”
“잠시만요.”
이준혁은 내가 준 퀘스트를 정독하고는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워터밤.”
콰아아앙!
허공에서 제법 위력적인 폭발이 터졌다.
그리고.
쏴아아아아
물폭탄에서 뿜어져 나온 물방울들이 소나기 되어 쏟아졌다.
지금 이준혁 파티 일행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은 모두 이준혁이 만들어낸 물줄기였다.
“컨트롤 워터.”
그 순간.
쏟아지던 물줄기가 허공에 멈추어 섰다.
허공에 멈춰선 물방울에 달빛이 산란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대규모 마술 공연과 같은 그 광경에 모두 잠시 넋을 놓았다.
“윽.”
그러나 잠시 후 이준혁의 집중력이 깨어지는 순간.
쏴아아아―
물방울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이게 뭐야?”
“준혁아 네가 한 거야?”
그러나 그들의 말소리는 이준혁에게 닿지 않는 듯 했다.
“하하, 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던 이준혁은 갑자기 두리번거리더니 아파트 단지를 향해 절을 하며 머리를 박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준혁의 돌발 행동에 파티원들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민 이준혁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시민 이준혁의 충성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시민 이준혁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70,251 원이 소모됩니다.]
‘어우. 왜 저래? 너무 과한데.’
이게 머리까지 박으면서 감사할 일인가.
좋은 능력을 각성하긴 했다지만, 그 반응이 너무나도 격렬했다.
그래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다시 퀘스트 부여.’
똑같은 내용의 퀘스트를 2번 더 부여해서 단숨에 일일퀘스트를 완료해버렸다.
[시민 이준혁이 오늘 수행 가능한 퀘스트 횟수를 모두 소모하였습니다.]
[시민 이준혁이 수행한 퀘스트들을 평가합니다.]
[······ 평가 중 ······]
일일퀘스트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그를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하동건 파티에 합류시키는 게 나으려나?’
이제 와서 이준혁만 쏙 빼서 하동건 파티에 합류시키는 건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하동건 파티는 이미 균형이 잘 맞는 파티였다.
그들만의 팀워크가 완성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준혁을 투입한다면 처음 오언주를 집어넣었을 때처럼 삐걱거리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준혁이 지금 이끌고 있는 집단의 가치가 확 떨어지게 되겠지.’
그들은 이준혁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여기서 이준혁이 빠지는 순간 높은 확률로 오합지졸로 변하게 되겠지.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준혁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굴리는 것이 맞지 싶었다.
[평가 완료.]
[정신력이 대량으로 상승합니다.]
‘음?’
일일퀘스트 보상 중에 ‘대량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는 정말 거의 없었다.
체감 상 100번 중 한 번 정도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는데, 그것이 지금 터진 것이다.
‘운이 좋군.’
그렇지 않아도 레벨업에 따른 격통에 무척이나 피곤하던 참이었는데, 정신력이 상승하며 견딜만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때.
‘음?’
하동건 파티 쪽이 소란스러워 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