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43화 (43/175)

< [Episode 10] 부산역 (3) 유료 시작 >

'무슨 일이지?'

의식을 되찾은 김가영이 서럽게 울고 있었다.

"허어엉. 동건아, 흐윽.”

하동건이 품에 안긴 김가영을 위로했다.

"잘못 본 걸 거야. 괜찮아."

김가영은 고개를 휘저으며 말했다.

“봤어, 흑, 아, 아빠인 거 확인 했어. 분명히 봤어, 내가

그녀는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머리를 다친 김가영이 헛소리를 하는 줄로만 알았다.

"허윽. 아빠, 우리 아빠, 불쌍해서 어떡해?"

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물에 들어갔다 온 듯한 김가영의 모양새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물에 흠뻑 젖은 그녀의 모습은 한 번 더 물에 들어갔다 왔다는 것을 뜻했다.

그녀는 호수 안쪽에서 보고 만 것이다.

세이렌에게 당해 호수 속으로 끌려 들어간 아버지의 최후를.

"동건아. 우리 아부지 불상해서 어떻게, 어떻게 해. 흐으읍."

하동건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김가영은 하동건의 품 안에서 흐느껴 울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가영은 우연히 죽은 아버지를 만나 뵙게 되었지만, 나는 스스로 자초하여 가족들의 죽음을 확인하러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최악의 경우에도 길은 있다.'

플랜B.

만약에 가족들이 죽었을 경우에는 내 능력으로 부활시킬 생각이었다.

얼마가 들건 돈을 모아서 완전하게 부활시킬 작정이다.

그러다 문득 지금 상황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한 가지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퀘스트 재구성, 대상 김가영, 퀘스트 보상- 아버지의 부활"

그러나.

[불가능한 퀘스트 보상입니다.]

돈이 부족하다는 알림이 아니었다.

불가능한 퀘스트 보상이라는 알림.

즉, 김가영의 아버지를 부활시키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그런가

오언주의 아들은 집구석 영역의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김가영의 아버지는 전혀 별개의 공간인 부산역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이 차이점이었다.

‘모든 죽음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활이 가능한 경우와 불가능한 경우가 나누어져 있었다.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집구석 영역 근처에서 발생한 죽음.

집구석 선포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공간에서 죽은 이들만 부활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는 건--'

만약 가족들이 이미 죽었을 경우, 아무리 많은 돈을 모아도 부활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으득

어째선지 아버지의 죽음에 서럽게 울고 있는 김가영의 모습에 스스로가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후우'

당장 움직이라고 재촉하고 싶었지만, 가족을 잃고 슬퍼하고 있는 김가영에게 차마 그런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아파하기에도 모자랄 테니까.

"흐흐흑"

무거운 침묵 속에서 김가영의 울음소리만 한동안 울렸다.

그때였다.

하동건이 말했다.

“아버님 저기서 꺼내드리자.”

김가영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기서 끌어올려 드리자. 내가 다녀올게"

"응, 응"

코맹맹이 소리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가영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하동건은 울먹이는 김가영에게 가볍게 입을 맞춘 후 곧바로 다시 호수 속으로 들어갔다.

첨벙!

하동건의 헤드랜턴이 물속의 어둠을 몰아내고 그곳의 광경을 비추었다.

'끔찍하군!'

호수의 밑바닥은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그곳에는 세이렌에게 당해 끌려 들어간 사람들과 몬스터들의 사체들이 한 데 뒤엉켜 있었다. 고블린, 오크, 인간이 사이좋게 얽혀 있는 모습은 한 차원 다른 역겨움을 선사해주었다.

'이러니 근처에 아무것도 없었지?'

적호 때와 비슷했다.

단순히 거인이 날뛰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이렌이라는 몬스터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던 거였다.

하동건은 침착하게 호수 속을 유영하더니 한 남자의 앞에서 멈춰 섰다.

솔직히 물에 분 얼굴은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만큼 처참하게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 구분할 방법이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코레일 직원 유니폼과 그 위에 붙어 있는 명찰.

「김덕훈」

그 위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하동건이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김가영의 아버지구나'

김가영이 그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확신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동건이 그를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하반신이 콘크리트 더미와 철근 사이에 끼어 있어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내가 나섰다.

'창고 보관, 김덕훈 씨의 사체'

지이잉—

하동건은 사체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해한 듯 했다. 그는 시체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물 위로 올라왔다.

'소환!'

김덕훈 씨의 사체가 나타나자 김가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아빠..."

김가영은 아버지의 명찰을 쓰다듬더니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울었다.

어째서일까.

이번에는 서럽게 울고 있는 김가영보다도 주변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표정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눈시울을 붉히는 오언주, 씁쓸한 표정을 짓는 김다정, 충격받은 얼굴의 강덕수, 입술을 깨무는 김 건, 입을 꾹 닫은 하동건까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들이 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다른 이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가족들의 생사를 걱정하고, 동시에 두려워했다.

'그런가'

알고는 있었다.

가족들을 걱정하며, 하루라도 빨리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게 나만의 소망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이들도 가족이 있고, 당연히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애써 모른척 했다.

당장 내 가족들을 구하는 게 먼저였으니까.

'다들 내게 양보해준 거구나'

머리로 알고 있었던 것과, 실제로 실감하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그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했던 걸까.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는 가족들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죄인이라도 된 듯 안절부절못하던 문병호가 김가영을 향해 말했다.

"시신은 재현님에게 잠시 보관해달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여기 근처에는 마땅한 장소도 없고 또, 아파트 단지 근처에 못자리를 만드는 게.."

김가영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빠는 여기가 좋을 거야”

"네?"

"우리 아빠는 일 중독자였거든. 자부심도 대단하셨고 죽어서도 기찻길에 묻히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셨어."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될 수 있으면 기찻길에― 흑. 묻어드리고, 싶어”

다음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시신을 창고 안으로 수습했다.

그들을 도와서 김덕훈씨의 사체를 옮겨주기 위해서였는데, 그 모습을 본 하동건 파티는 약간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오언주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으음. 무덤은 임무 수행 이후에 부산역에 다시 돌아와서 만드는 게 어떨까요?"

아무래도 내가 작전 실행을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오해를 풀기 위해 그들 모두에게 퀘스트를 부여해 주었다.

<파티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기찻길에 무덤 만들기.

제한시간: 1시간 00분 00초

보상 : 소량의 경험치 획득.

실패 페널티 : 없음.

[이대로 퀘스트를 부여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아무래도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 이런 것밖에 없다 보니 조금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의사소통에 커다란 문제는 없었다. 이렇게 바로잡으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그렇게 내 의지를 전달받은 하동건 파니는 부산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현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눈을 뜨자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서예진의 얼굴이 보였다.

"예진씨.."

"네?"

순간적으로, '예진씨는 좋으시겠어요.'라고 말할 뻔했다.

서예진의 가족은 무사히 그녀 품으로 돌아왔으니까. 지금 함께 있으니까.

그러니까 좋겠다고, 부럽다고 그렇게 말할 뻔했다.

다행히도 간신히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부산역 주변으로 생쥐를 퍼뜨려서 몬스터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주세요. 위험한 상황이 될 것 같으면 즉시 하동건 파티에게 알려주시고요."

"알겠습니다.”

하마터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뻔했다.

무사히 가족과 만난 사람을 질투하는 모습이라니.

'꼴사납군'

집중력이 느슨해진 탓일까, 어느새 절대자의 눈의 시야는 두 개로 줄어들어 있었다.

하동건 파티를 비추는 것과 이준혁 파티를 비추는 것 하나였다.

내가 더 이상 퀘스트를 내주지 않자 이준혁은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를 보니 문득 다시 스킬 포인트에 대한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스킬 포인트가 아직 2개나 남아 있었지!'

집구석 절대자의 눈 스킬을 올리면서 생겨난 다중 시야에 집중하느라고 남은 스킬 포인트에 대한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두 번째로 올릴 스킬은...'

품위 유지 스킬의 옆에 레벨업 버튼이 활성화되어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했다.

'품위 유지 스킬 레벨업!'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이 Lv. 5가 되었습니다.]

[신기 뽑기 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크리스탈 300개를 지원받았습니다.]

'크리스탈?'

크리스탈은 또 뭔가하고 보니 새롭게 추가된 기능인 신기 뽑기에 필요한 자원었다.

1회 뽑기에 크리스탈 300개.

그러니까 신기 뽑기를 체험해 보라고 300개의 크리스탈을 건네준 것이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신기 뽑기'

우우웅!

일전에 까미를 소환했을 때처럼 화려한 문양의 마법진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절정의 순간, 마법진이 뱉어낸 황금색 빛줄기는 한곳으로 모여 뭉쳤다.

그리고.

딸각

거실 바닥에 무언가 떨어졌다.

'반지?'

평범해 보이는 금반지였다.

'절대자의 눈'

그러나 절대자의 눈으로 본 그 반지에는 특별한 힘이 담겨있었다.

<소통의 반지>

가신들에게 집구석 절대자의 음성을 전달해주는 반지.

'흠 나쁘진 않은데'

지금도 소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퀘스트 부여의 빈틈을 이용해 얼마든지 명령을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퀘스트 내용으로 명령을 전달하고, 퀘스트를 취소해버리면 아무런 손해 없이 정보를 전달하는 게 가능했다.

복잡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때는 편지를 써서 창고 스킬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다.

'한 번 사용이나 해 볼까!'

반지를 착용해보니 내 손에 꼭 맞았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힘을 사용해야 할지 곧바로 전해져 왔다.

절대자의 눈에 비치고 있는 하동건 일행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제 목소리 들리시나요?]

부산역으로 막 진입하고 있던 하동건 파티는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잘 들리시나 보네요.]

“네, 잘 들립니다"

하동건이 대답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소통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덤은 기찻길 옆에 단촐하게 만들어졌다.

오언주가 판 땅속에 시신을 누이고 흙으로 덮은 다음 끝이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소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빠 소원 이뤄졌네"

김가영은 김덕훈의 무덤 앞에서 짧은 묵념을 끝내고는 말했다.

"이제 가죠."

[조금 더 있어도 됩니다.]

"충분합니다. 아빠의 소원을 이뤄드릴 수 있었는걸요."

김가영은 아버지의 무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 고집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응어리진 마음이 많이 풀렸어요."

그렇게 하동건 파티는 다시 자갈치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접 사용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장점이 훨씬 많았다.

일단 다른 방법에 비해서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퀘스트 부여를 사용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정보를 전달하는 데 시간이 걸렸으니까'

전달하는 정보의 질에도 한계가 있었다.

퀘스트로 부여 가능한 형식으로만 정보를 알려야 했으니까.

더불어 아까와 같은 오해가 생길 일도 없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곧바로 그 에 대한 설명이 가능했다.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게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되게 괜찮은데?'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존재했다.

'이건 김다빈 쪽과 상성이 훨씬 좋겠는걸?'

김다빈을 떠올리는 것과 동시에 잊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맞다. 김다빈도 각성했었지?'

정확히는 충성도가 100이 되며 자동으로 가신으로 등록된 상태였다.

당연히 각성 능력도 얻었을 것이다.

'가신 관리, 김다빈'

「이름 : 김다빈 (Lv. 25) [+]

칭호: [열한 번째 종]

신뢰도 : 77 충성도 : 100 각성 능력 : 텔레파시

★퀘스트 부여」

그녀가 각성한 능력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대박이네.'

어쩜 이리도 업무에 찰떡궁합인 능력을 각성한 것인지.

그녀에게 텔레파시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절대자의 눈으로 21층을 비추었을 때였다.

'음?'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곤란해하고 있는 김다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Episode 10] 부산역 (3) 유료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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