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11] 자갈치 시장 (2) >
자갈치역에서 본가로 이어지는 길은 수산물시장이 따로 없었다.
기어 다니는 물고기부터 시작해, 날아다니는 물고기까지. 그리고 대게와 가재 등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자갈치 시장의 명성에 걸맞게 모든 해산물들이 총 집합한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나 귀찮은 것은 아무래도 갑각류였다.
"이번엔 가재입니다!"
"뒤로 빠져!"
일전에 사냥한 대게와 마찬가지로 단단한 키틴질 갑옷으로 무장한 가재가 나타났지만, 이미 공략법을 숙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콰아아아앙!
가재의 등딱지에 포탄처럼 떨어진 바벨이 놈의 목숨을 앗아갔다.
[자이언트 랍스터(Lv. 30)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06,886,599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아쉽게도 내가 사냥한 것으로 되어 정산금이 짜긴 했지만, 지금 현재는 돈 보다는 길을 뚫는 게 우선이었다.
‘미안합니다, 민호씨'
몇 번이나 사용된 바벨은 많이 망가져 있었다.
‘물품 등록을 하고 새로 사드릴게요.'
이곳은 전체적으로 우리 아파트 근처보다 훨씬 위험한 환경이었다.
몬스터들의 평균 레벨도 높고, 그 숫자도 많은 터라 하동건 파티의 실력으로도 꽤 애를 먹을 정도인 것이다.
'창고 레벨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위험했겠어!'
당장 첫 전투에서 김다정이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축복을 받지 못하는 오언주와 하동건의 전력이 크게 꺾였을 것이고,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몬스터들을 처치해나가지도 못했겠지.
더불어 축복의 기능은 단순히 신체 능력의 상승에만 있지 않았다.
우우웅
늦은 저녁.
더 이상 가로등 불빛도 기대할 수 없는 캄캄한 환경 속에서 김다정의 능력은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주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축복을 받았을 때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동물인만큼 캄캄한 밤을 밝혀주는 빛이 있다는 것은 전투에 커다란 이점이 되어주고 있었다.
"동건아, 뒤에!"
하동건의 뒤를 노리던 청새치 한 마리를 향해 탄두를 소환했다.
[하늘 청새치(Lv. 1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26,28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이처럼 창고 기능을 통한 보조는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투에 집중하는 내 표정은 심각하기만 할 뿐이었다.
'몬스터가 많아도 너무 많다.'
내 보조가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상황이 몇 번이나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실상 지금 이 길은 원래 하동건 파티의 실력만으로는 뚫기 힘들다는 소리다.
그게 문제였다.
'하동건 파티가 버티기 힘들 정도라면, 평범한 사람들은 더더욱 버틸 수 없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무려 전원이 각성자로 구성된 파티였다.
그 뿐인가.
조합도 좋았고, 마땅한 공격 수단이 없는 문병호, 김 건, 김다정에게는 총기까지 쥐여 줬다.
그런데도 겨우 1km를 움직이는 데 애를 먹고 있으니 말 다했다.
‘------가족들이 살아 있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본가에 가까워질수록 두려운 마음이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수도 있어'
도저히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동건 파티가 공동어시장 부근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이제는 정말로 거의 다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처참하게 망가졌음에도 익숙한 거리의 풍경이 그리움을 자아냈다.
'저 골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바로 집이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나무 하나가 도로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곧바로 하동건 파티를 향해 명령했다.
[정지하세요.]
대로변에 거대 나무라니.
'저게 뭐야?'
저런 게 있었던가?
그럴 리가 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였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것을 떠나서 도로 중앙을 막고 있는 나무를 시에서 내버려뒀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저것은 세상이 멸망하고 난 뒤에 나타난 나무라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몬스터다.'
절대자의 눈으로 놈을 노려봤다.
「나무 거인(Lv. 32)」
'역시'
지금까지 해양생물 타입의 몬스터로 가득했던 탓에 자칫 잘못하면 저것을 평범한 나무라고 생각할 뻔 했다.
레벨도 30으로 꽤 높은 편일 걸 보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지나갔다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었다.
하동건 파티를 향해 명령했다.
[저 나무, 몬스터입니다. 공격하세요.]
공격 지시를 내리자마자 오언주가 수인화를 하고, 김가영이 나무를 향해 화살을 쏘아냈다.
피슉!
피어싱 스킬이 담긴 화살은 나무를 완벽하게 관통했지만, 나무 거인을 잡았다는 메시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우드득―
나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공격해요!]
몬스터가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줄 이유는 하등 없었다.
곧바로 하동건의 창이 나무 기둥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놈의 몸에서 돋아나온 나무 촉수가 날아오던 하동건의 창을 막아냈다.
콰직!
촉수의 끄트러미가 박살나긴 했지만, 아무런 피해 없이 하동건의 창던지기를 막아낸 것이다.
나무가 하동건 파티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쿠웅—
육중한 몸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크게 진동했다.
슈슉
놈의 뒤쪽으로 텔레포트 한 문병호가 나무 괴물의 등을 향해 권총을 난사했다.
타앙— 탕—!
그것들은 놈의 몸체에 적중했지만, 딱히 의미 있는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문병호의 권총 공격은 애꿎은 나무껍질만 간신히 깨부순 채로 튕겨나갔기 때문이다.
푸슉!
김가영의 화살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더 낫긴 했다.
피어싱 스킬이 걸려 있는 탓에 나무를 관통하며 바람구멍을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쿠웅—
나무 괴물은 자기 몸에 구멍이 뚫리든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쿠웅!
놈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김다정의 축복을 받은 오언주가 선두로 나섰다.
"크릉!"
그녀를 향해 나무뿌리들이 채찍처럼 휘둘러졌고, 그것을 유려한 움직임으로 피해낸 오언주는 마침내 나무 괴물의 몸통을 공격할 수 있었다.
콰직!
나무 괴물의 몸통이 절반가량 터져나가면서 지금까지 중 가장 의미 있는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콰드득—
오언주의 발밑에 있던 뿌리가 순식간에 자라나며 그녀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크윽!"
콰드드득—
그것은 이내 두껍게 자라나더니 오언주의 하반신 전체를 완전히 속박했다.
추가로 뻗어 나온 뿌리가 오언주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던 찰나.
슈슉!
목숨 걸고 오언주의 앞에 나타난 문병호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다시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사라졌다.
슈슉
'음?'
그때 나는 나무 괴물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반응을 포착할 수 있었다.
'왜 공격이 멈췄지?'
문병호가 오언주 앞을 막아서며 나타난 순간이었다.
일순간이었지만, 나무 괴물의 공격이 멈추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혹시?'
나는 전열을 가다듬고 나무 괴물과의 2차전을 준비하는 하동건 파티를 향해 명령했다.
[오언주 씨만 뒤로 빠지고 나머지가 공격하도록 하세요.]
"네? 오언주씨를요?"
[네.]
오언주는 하동건 파티의 선봉장이었다.
그런 사람을 빼버리면 당연히 전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 괴물은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중 가장 성가신 놈이었는데, 최고 전력을 빼버린다니 모두가 의아해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오언주가 군말 없이 빠지자 다른 이들도 얼떨떨해 하면서도 일단은 받아들였다.
"재현님 명령에 따른다. 오언주 씨가 뒤로 빠져서 가영이랑 다정씨를 지키고, 덕수 네가 앞으로 나와.”
"오케이––! 근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몸빵 하나는 단단하잖아.”
"오, 오케이!"
하동건이 오언주를 향해 말했다.
"뒤쪽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오언주가 변신을 풀고 후방으로 빠지는 순간이었다.
신기한 일이 펼쳐졌다.
쿠웅—
"어?"
쿠웅—
오언주가 수인화를 풀고 인간으로 돌아간 순간 나무 괴물은 미련 없이 등을 돌리더니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야?"
나무 괴물은 제일 처음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주저앉아 다시 나무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재현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알고 계셨던 건가요?"
나도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탓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건가'
생각해보면 나무 괴물이 공격을 시작해온 것도 오언주가 수인화를 한 시점부터였다.
게다가 나무 괴물의 공격은 줄곧 오언주 하나만을 노리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의 공격은 쳐내며 방어하기만 할 뿐 반격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언주를 뒤로 빼버린 것이다.
이제 보니 오언주가 문제가 아니라 수인화를 한 오언주의 모습이 나무 괴물을 자극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때였다.
쿠우웅!
나무 괴물이 다시 한 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놈이 움직인 방향은 하동건 파티가 있는 곳의 정반대방향이었다.
그곳에 등장한 것은 뱀처럼 육지를 기어 다니며 움직이는 육지 상어.
푸욱!
육지 상어는 나무 거인의 뿌리에 처참하게 꿰뚫린 채로 버둥거렸다.
쿠웅쿵
육지 상어를 제압한 나무 거인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무 거인의 뿌리 한쪽에는 꼬챙이가 된 육지 상어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뭐야 저건?'
몬스터들끼리 싸우는 것이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같은 고블린들이라도 서로 싸워서 죽이기도 하고, 오크나 고블린이 싸우는 광경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무 거인이 자기 영역을 침범한 육지 상어를 제압하는 장면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상한 것은 어째서 인간은 공격하지 않냐는 거지.'
하동건 파티가 상당히 가까이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나무처럼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불살라버릴 수도 있지만...'
물리 공격에는 면역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중급 속성 마법(火)을 활용한 불은 놈에게 치명적일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일단은 그대로 두자'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몬스터들만 공격한다면 오히려 남겨두는 게 이득이었다.
여차하면 이놈이 지키는 영역 안으로 하동건 파티를 피신시킬 수도 있을 테니까.
[적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 나무 괴물은 무시하고 전진해주세요. 저기 아파트를 지나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동건 파티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파트 너머의 골목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무 괴물의 바로 옆을 지나쳐야 했기에 혹시나 모를 사태를 경계하며 천천히 지나갔다.
다행히도 하동건 파티가 모두 지나칠 때까지 나무 괴물은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하동건 파티가 골목길 안으로 진입하기 직전.
아파트 건물에 가려졌던 부분이 드러나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헉!'
그곳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밤하늘의 달빛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발광인지 희미한 빛을 내뿜는 신비한 분위기의 나무였다.
그 크기만 거의 20~30m 정도 되는데다 두께 또한 엄청났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긴~!'
그 나무가 자리 잡은 장소가 정확하게 우리 집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점이 거슬렸다.
그것을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뇌리를 뒤덮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를 악문 채로, 전신에 힘을 주고 있었다.
거실 창문으로 반사된 내 얼굴이 악귀의 그것처럼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보기 전까진, 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이런 표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조차도 몰랐었다.
'죽여 버리겠어'
끓어오르는 분노라는 것이 그저 관용구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전신의 피를 뜨겁게 달구는 이 감정을 보니 실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저 괴물 같은 나무를 폭발시켜야만 성에 찰 것 같았다.
'가스로 가득 채우고 폭발시킨다. 하동건 일행은 가신 소환으로 불러들이면 돼.'
이성을 잃은 내가 하동건 파티에게 명령을 내리기 직전.
[근처에서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의 존재를 감지하였습니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머리에 차가운 시스템 알림이 끼얹어졌다.
-?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당신들 뭐야?!"
어둠 속에서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pisode 11] 자갈치 시장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