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자갈치 시장 (3) >
“누군데 우리 뽀삐를 괴롭히는 거여!”
하동건 일행의 헤드랜턴이 그곳을 비추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50대 정도로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다.
“네?”
"어우 라이트 좀 꺼! 눈 아퍼!"
"앗, 죄송합니다."
그들은 태평한 걸음걸이로 하동건 파티를 향해 다가왔다.
아주머니들은 하동건 파티를 지나쳐 나무 괴물의 상태를 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야, 이거를 우야면 좋노, 구멍이 뚫리삤네.”
"엄청 아팠겠구만.”
"뽀삐야 괜찮아?"
그 직후 하동건 파티를 향해 불호령이 떨어졌다.
"보소! 이거 당신들이 한 거요?"
"아... 네."
"와 가만있는 아를 이 지경으로 만드노?”
"...죄송합니다."
심각하던 분위기도 잠시 옆에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 좀 보소! 뽀삐 야가 또 한 건 했다아닙니까."
하동건에게 한 소리를 하고 있던 아저씨도 덩달아 육지 상어를 보러 갔다.
"와따 임마 이거 살이 확 올랐네. "
"야는 맛이 별로 없는데.“
"뭐 지금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집니까? 별로면 고마 먹지 마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솔직히 마구로 그것이 더 맛이 좋잖어."
"아이고오-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절대자의 눈으로 전해져오는 친숙한 방언들을 듣고 있자니 긴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런가..'
모든 것이 단번에 이해가 됐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나무 몬스터의 존재도, 우리 집에만 생겨난 저 엄청난 크기의 나무도.
'각성했구나.'
누가 저런 힘을 지니게 됐는지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집에는 식물들이 가득했었다.
마당에는 나무나 꽃들이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었고, 옥상에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시기마다 열매를 맺었다.
할아버지가 은퇴를 하신 뒤에는 옥상에 밭이 생기고 파, 양파, 상추, 가지 등으로 가득 들어차더니 가끔씩 밥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는 했었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꼭 직접 물을 퍼다 흙을 적시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저 나무도 할아버지의 능력인 건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나무,
그것이 어떤 사람의 각성 능력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단순히 어떤 우연일 뿐이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수천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이면서 만난 각성자의 숫자는 고작 다섯.
각성하는 것만도 극악의 확률이라는 소리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30레벨 나무를 수하로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기능이 있을지 모르는 수십 미터 규모의 나무까지 자라나게 만드는 능력의 소유자?
여기까지 오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그런 능력을 가진 각성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나 뿐이지.'
나와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각성한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그렇기에 집을 차지한 나무를 보고 분노한 것이었다.
저런 규모의 힘을 가진 몬스터들은 얼마든지 차고 넘칠 테니까.
'설마 이런 규모의 힘을 각성한 사람이 나 말고도 존재할 줄이야.'
그리고 그것이 내 가족일 줄이야.
이렇게 일이 잘 풀리는 건, 로또 두 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보다도 낮을 것이다.
물론 미국 로또 확률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가족들이 죽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20레벨 후반 몬스터가 심심찮게 돌아다니고, 하늘에는 10레벨대 후반 몬스터가 떼로 몰려다닌다.
30레벨 초반의 거대 갑각류는 물론이고 어쩌면 그 이상도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평범한 인간이 도대체 무슨 수로 살아남는단 말인가?
이미 나는 상실감과 분노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라난 거대 나무의 모습이 기폭제 역할을 한 것뿐이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잘 풀리게 될 줄이야.
그토록 화를 낸 것이 오히려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분노한 시간이 겨우 몇 초 남짓이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더 있었으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뻔 했다.
"하하."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자니 서예진과 유혜린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왔다.
"재현님 무슨 일이 있었나요?"
"...괜찮은 거죠?"
작전 진행 중에 갑자기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으니 불안할 만도 했다.
"괜찮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다들 무사합니다.”
어느새 하동건 일행은 육지 상어 해체 작업을 돕고 있었다.
레벨이 높은 만큼 월등한 신체능력 덕분에 빠르게 육지 상어를 해체할 수 있었고, 그 모습에 주변에서는 감탄사를 흘리고 있었다.
"아따 젊음이 좋긴 좋구만!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어느새 하동건 파티는 자연스레 짐을 짊어지고 아줌마 아저씨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여러분 왼편에 거대한 나무가 있는 거 보이시나요? 거기가 제 본가입니다. ]
내 말의 저의를 파악한 하동건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 죄송하지만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희는 저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 같아서요."
"잉? 안 그래두 글로 가고 있는 중인데?~"
옆에 있던 아저씨가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뭐여? 우리 촌장님이랑 아는 사인겨?~"
그 말을 들은 내가 하동건 파티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촌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여쭤보세요.]
하동건이 곧바로 앵무새처럼 내 말을 되풀이하여 물었고, 아저씨가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해주었다.
"우리 촌장님 이름? 이자 봉자 열자 쓰시는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역시 할아버지다.'
이봉열, 우리 할아버지의 성함이었다.
나와 성씨가 다른 이유는 할아버지가 외가 쪽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아빠가 결혼할 때부터 처가살이를 했기 때문에, 나도 태어날 때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왔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집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모습이 더 자주 보이고 있었다.
이 주위만큼은 몬스터가 세상을 덮치기 직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부서진 건물도 없었고, 길거리에 널브러진 시체도 없었다.
그것들을 확인할수록 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잠시만 여기 들렸다 가자고.”
집 앞 주차장으로 쓰던 공간은 창고가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육지 상어나 하늘 청새치와 같은 해양 몬스터들의 사체가 있었다.
더불어 그것들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많군.'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만 어림잡아 백 명은 넘어갔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아저씨 아주머니,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남부민동이라는 마을 자체가 청년은 거의 없고 평균 연령이 무척이나 높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는 원래부터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물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 보였다.
근처에서는 아예 좌판을 펼쳐 놓고 곧바로 회를 떠서 먹는 사람들도 있었고, 불에 생선 굽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 나오기도 했다.
마치 자갈치 시장의 주체가 이곳으로 옮겨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여기 놓고 가자고."
"또 잡았어?"
"그려, 아 맞다. 여기 새로 들어 온 아들인데 배고플 시간이니 회나 몇 점 먹입시다."
사시미 칼을 들고 있는 아저씨는 능숙한 손길로 육지 상어의 살점을 발라내었고, 그것을 그릇에 담아서 건넸다.
"자, 여기!"
초장과 와사비에 간장까지 준비 된 제대로 된 회 한 접시였다.
"여 앉아서 먹자고.”
"젓가락은요?"
“없어, 그냥 맨손으로 먹으면 돼, 이렇게, 으음~“
나는 급하게 집에 있는 젓가락들을 그쪽으로 소환해주었다.
하동건 파티는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집어들었지만, 허공에서 생겨난 젓가락을 목격한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떻게 한 거여, 방금? 뭐, 마법사라도 되나?"
"아따 신기하네."
부담스러운 관심 속에서 하동건 파티는 회를 한 점 씩 입으로 가져갔다.
"음?~"
"으음!"
갓 잡은 생선으로 뜬 회였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맛있어요!"
“대박. “
"회 엄청 오랜만에 먹네."
"그려그려, 많이 먹어."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하는 하동건 파티를 위해 콜라 사이다 그리고 시원한 물까지 그곳에 소환해 주었다.
그러자.
"아, 아니?!"
“그거 콜라 아닙니까?"
"사이다! 사이다!”
하동건 파티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에 모여 있던 어른들이 격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하동건을 비롯한 파티원들은 소환된 음료수들을 그들 쪽으로 건네며 말했다.
"드, 드실래요?"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죠."
“이, 이봐! 나 먼저 줘야지! 내가 그렇게 챙겨줬는데!"
"아저씨 것도 여기 있어요.”
콜라와 사이다를 받아 든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며 마셔댔다.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분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해도 될 진 모르겠지만, 한 모금씩 아껴가며 먹는 모습이 좀 귀여웠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피식 웃으며 콜라와 사이다를 대량으로 구입하여 그들 옆에 소환시켰다. 더불어 물을 비롯해 라면, 쌀, 계란, 우유 등을 비롯한 식자재 등을 대량으로 풀어놓았다.
"아니!"
"이기 다 뭐꼬?!"
“이, 이거 다 우리 먹으라고 주는 기가?"
하동건이 옅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것 같네요. 재현님이 선생님들께 주시는 선물 같아요."
"지저스 크라이시스, 재현님이 누고? 내 절이라도 올려야 되겠다. 니들 중에 누군데?"
"아, 여기에는 안 계십니다."
하동건의 말에 바닥에 무릎을 꿇을 준비를 하던 아저씨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라꼬?"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는지, 다시 질문했다.
"뭐, 재현님이라는 아는 예수님이라도 된다나? 여기에 없으면 하늘에 있나?"
오언주가 웃으며 농담했다.
“어쩌면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창고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난 물자 때문에 바빠졌다.
“다들 이것 좀 창고로 옮겨!“
"김씨! 이쪽으로 좀 와봐!"
그러는 동안 맨 처음부터 하동건 파티의 옆에 붙어서 친근하게 말을 걸던 아저씨가 물어왔다.
"호, 혹시 부탄가스나 가스버너 같은 건 없는감?"
곧바로 그것들을 상점에서 구매해서 풀어주었다.
"아따! 화끈하네잉!"
아저씨는 창고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것 좀 보소! 이게 내가 달라케서 나온 물건이오!"
"뭐여? 가스여?"
"가스? 진짜로?"
특히 생선을 굽고 있던 쪽에서의 반응이 격렬했다.
그곳에서는 나무를 떼는 방식으로 불을 피워서 요리를 하던 중이었다.
당연히 가스버너와 부탄가스의 등장에 눈이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진짜네?"
"여기! 여기 좀 갖다 줘 봐! 매운탕 좀 끼리 먹게!”
"라면, 라면부터 끓여 봐!"
창고 전체가 아주 들썩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드드득-
무언가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창고 지붕에서부터 입구까지 길게 이어지던 소리는 나무뿌리가 생장하는 소리였다.
나무뿌리 위에서 내려온 사람이 호통을 쳤다.
"와 이래 시끄럽노?"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끼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인,
고집스러운 얼굴에서는 단단한 존재감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그리고 동시에,
[가신들이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과 조우하였습니다. ]
[혈족의 힘을 개방합니다.]
『이름 : 이봉열 (Lv. 55)
칭호: [혈족][이촌][드루이드]
신뢰도 : 88
각성 능력: 세계수의 수호자 』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별채'가 추가됩니다.]
〈[Episode 11] 자갈치 시장 (3)〉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