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자갈치 시장 (5) >
이변이 나타난 것은 하늘에서부터였다.
저 멀리에서부터 하늘이 어둠에 물들고 있었다.
인간의 영향력이 멈추고, 인공적인 빛이 사라진 도시의 밤하늘은 달빛과 별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함이 되었다.
그런데 그 빛들이 짙은 어둠에 집어삼켜지고 있는 것이다.
'저게 다... 몬스터라고?'
울컥거리는 어둠의 정체는 바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들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어류들이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자주 봤던 하늘 청새치부터 시작해서 그보다 덩치가 훨씬 커다란 하늘 고래까지 밤하늘을 어둠으로 뒤덮어가고 있었다.
쿠웅 쿵
곳곳에 흩어져 있던 나무 거인들이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지 장어를 한 합에 잡아내는 나무 거인들이 서른 기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우우웅
할아버지가 손을 휘젓자 초록빛 생명력이 어느 나무 거인을 향해 흘러갔다.
하동건 파티와 전투를 벌이며 몸통에 구멍이 생겨난 나무였는데, 할아버지의 생명력에 닿는 순간 나무의 몸이 순식간에 치료되었다.
상처받았던 나무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한 짓이라꼬?"
하동건이 대표로 고개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몬스터인 줄 알고 그만...."
"으음? 평소에는 나무처럼 가만히 있을 껀데?"
나는 하동건 파티를 향해 말했다.
[나무 거인이 공격했던 것은 오언주씨를 몬스터라고 오인했던 것 때문입니다. 오언주씨 할아버지께 직접 보여드리도록 하세요. 이제부터 함께 싸울 텐데 인지하고는 있어야 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오언주가 앞으로 나서서 할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시작된 수인화,
우드득
오언주의 몸이 곰의 형상으로 변하자 곧바로 나무 거인들이 반응했다.
쿠웅
그러나 할아버지가 눈을 부라리자 나무 거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다시 자리로 되돌아갔다.
“뭔 소린지 이해했다. 우리 나무가 먼저 잘못했구마."
그때쯤 어둠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하동건이 창을 던질 준비를 하고 김가영이 화살을 재자 할아버지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가만있으라."
"네? 하지만...."
"니들 눈에는 저것들이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처럼 보이나?"
"네?"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무언가 이상하긴 했다.
이곳을 노린다면 슬슬 고도를 낮춰야 했다. 그러나 하늘을 물들이는 몬스터 떼는 수백 미터 상공에서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저 움직임을 봐라, 저것들은 지금 우리를 공격하러 온 게 아닌거라, 이대로 놔두면 지나갈 끼다.”
"네? 그렇다면 왜 ...?"
어째서 저 많은 몬스터들이 이곳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제, 근디."
할아버지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모양새가 꼭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꼴 같구마."
저 많은 몬스터들이 공포에 질릴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아무튼 할아버지의 예측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하늘을 새까맣게 물들인 몬스터들은 대부분 하늘 위를 지나쳐갈 뿐이었다.
밤하늘의 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세계수가 뿜어내는 은은한 빛만이 사방을 밝히는 빛이 되어 주고 있었다.
"축복!"
검다정의 축복이 모든 사람들에게 깃들었다.
"음? 이건 또 뭐꼬,"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힘이에요."
"이거 뭔 너거들은 다 하나씩 능력이 있는 기가?"
"재현님 덕분입니다."
"재현이 가가 능력이 대단한 거였구만, 허허."
하늘을 나는 물고기들이 온전히 피해 없이 지나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파바바박!
지면에 가깝게 낮게 날던 청새치 떼가 높은 건물이나 아파트 벽면에 코가 꿰이고 있었다.
또한 적은 숫자는 아예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우렁차게 외쳤다.
"건물 안으로 숨으라!"
여러 무기들을 꼬나 쥐고 전투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말 하나에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일부는 처음 횟감을 쌓아두던 창고 안으로, 일부는 근처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우우우웅!
할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초록빛 물결이 삼십 기의 나무 거인들을 덮쳤다.
쿠드드득!
그러자 나무 거인들의 덩치가 몇 배나 커지더니 이름에 걸맞는 거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은은한 초록빛을 뿜어대는 거대한 나무 거인, 그것들이 움직였다.
쿠웅! 쿵!
그들은 서로 긴밀하게 뭉치며 하나의 벽을 만들어냈다.
할아버지가 아직 옆에 남아 있는 하동건 파티를 향해 호통쳤다.
"니들은 뭐하노! 안 도망치고!"
"저희도 돕겠습니다!"
"필요읍다!"
그때쯤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찾아온 것이다.
쿠구구구
어찌나 많은 양의 몬스터들이 쳐들어오는 것인지 땅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여러분, 아무리 몬스터들의 목적이 이곳이 아니라 해도 할아버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숫자입니다. 도와드러세요.]
나 또한 전력을 다해 도울 생각이었다.
하동건 파티 전원이 굳은 결심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있으라 캐도!"
"혼자선 힘드실 겁니다!"
"어허! 나, 참."
처음에는 할아버지가 만용을 부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이어 쳐들어온 몬스터들과의 부딪힘에서 곧바로 사라졌다.
쿠구구구구!
종류도 다양한 몬스터 떼가 지척까지 다가온 순간,
쿠우웅!
할아버지가 크게 발을 굴렀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과과
바닥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진동하더니,
콰아아앙! 콰아앙!
"!!!!"
곳곳에서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두꺼운 세계수 뿌리가 등장했다.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그것들은 무식하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붙잡았고, 그대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단단한 벽이 되었다.
갑작스레 생겨난 벽을 수많은 괴물들이 뭉쳐서 몸으로 밀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탓에 놈들에게도 선택지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뚫고 지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푸부부!
놈들을 비집고 들어가던 세계수 뿌리에서 날카로운 가시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육지 상어(Lv. 24)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톱가오리(Lv. 23)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청색 꽃게(Lv. 29)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어지럽게 떠오르는 알림 메시지들,
정산금 메시지가 없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직접 사냥한 몬스터들이기 때문이었다.
[혈족]
(신뢰도+10)% 만큼 모든 능력치가 증가하며, 혈족 칭호를 가진 이가 사냥한 몬스터의 경험치는 10배로 증가하여 절반씩 나눠가집니다. 단, 정산금의 경우 대상이 독점합니다.
혈족 칭호를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는 정산금을 독점한다.
대신 10배로 증폭된 경험치의 절반인 5배를 내게 나눠주는 것이다.
"음? 이기 다 뭐꼬? 돈? 경험치?"
할아버지는 허공을 보며 혼란스러워 했다.
아무래도 혈족으로 등록되면서 처음으로 시스템 메시지를 보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의 옆에는 벙찐 표정의 하동건 파티가 가만히 서 있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55레벨의 수준?'
도와드린다니, 어불성설이었다.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발 한 번 구르는 것으로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해버리다니,
괴물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나무 거인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들이 닥치는 몬스터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힘을 받아 거대화된 나무 거인들의 촉수는 그 단단하던 키틴질 갑옷조차도 무색하게 꿰뚫고 있었다.
[자이언트 크랩(Lv. 31)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자이언트 랍스터(LV, 29)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톱날 쫓게(Lv. 30)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그러고,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쏟아지던 경험치의 향연이 결국 레벨업으로 이어졌다.
'레벨업이라고? 벌써?'
이렇게 빠르게 레벨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미처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크읍!'
갑작스레 찾아온 격통으로 하동건 파티와 공유되던 시야는 꺼지고 우리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느껴졌다.
아파트 단지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돔 형태의 영역,
그것이 빠르게 영역을 넓혀갔다.
전신이 통째로 터져나가는 감각을 슬로우모션으로 만들어서 느낀다면 이렇지 않을까?
'크아아악!'
끝이 보이질 않던 고통이 끝난 것은 모세혈관처럼 퍼져나간 모든 도로를 집어삼킨 뒤, 반경 1km의 돔 형태가 완성되고 난 후였다.
"허억, 허억."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범위가 범위이다 보니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시민권 부여 대상이 되었다.
대충 봐도 수천 명에 달하는 엄청난 인원이었다.
‘이 중에... 엄마 아빠는 없나?'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만큼 엄청난 숫자였다.
그러나 추측해 보건데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혈족이 있었다면 시민권 부여에 대한 메시지가 아닌 혈족 관련의 메시지가 나타났을 것이다.
'엄마, 아빠는 이 범위 밖에 계신 거야.'
그곳은 지금 서예진이 열심히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찾으면 곧바로 반응이 올 것이었다.
'시민권 부여해.'
일단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받아들였다.
"재현님!"
유혜린이 쓰러지려던 나를 부축했다.
정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이대로 지쳐 쓰러질 여유가 없었다.
'절대자의 눈'
곧바로 절대자의 눈을 활성화시키며 할아버지가 계신 곳의 상황을 파악했다.
"이상하구마."
제일 먼저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하동건의 말투에는 이전보다 공손함이 곁들여져 있었다.
하긴 그런 압도적인 위용을 보고나면 누구나 저자세가 될 수밖에,
“예전에도 내가 잡은 몬스터들은 살이 다 없어지뿌긴 했거든? 근데 이제는 뼈도만 남기고 사라지뿌네."
하동건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건 아마도 재현님의 능력 때문일 겁니다. 저희도 원래는 사냥 뒤에 몬스터 사체가 남았었는데, 재현님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 뒤부터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남지 않게 되었거든요.”
"그래? 그럼 그 이상한 허공에 나타나는 글자들도 재현이 능력이가?"
"그렇습니다.
"희한한 능력이 구마."
상황을 보니 몬스터 웨이브는 무사히 넘긴 것 같았다.
몬스터들의 숫자는 혀를 내두를 만큼 많았지만, 정면으로 몰려오는 놈들만 처리하면 되었기에 결국 버텨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혼자서 해결할 규모는 아니었다.
그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혼자서 막아내다니.
게다가 할아버지는 지친 기색도 없으셨다.
'아무리 혈족의 힘이 개방되며 모든 능력치가 몇 배로 올랐다고는 해도'
신뢰도의 10배에 달하는 능력치를 올려주니 할아버지의 경우 거진 9배의 능력 상승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감안해도 이건 너무 엄청났다.
애초에 가지고 있던 능력이 엄청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니들도 몬스터를 사냥하면 사라져 뿐다는 거제?"
"그렇습니다."
"그라모 창고 가서 사람 좀 불러 온나."
"사람들이요?"
할아버지는 산 채로 나무뿌리에 붙잡혀 버둥대고 있는 해양 몬스터들을 턱짓하며 말했다.
"그래, 저거저거 회 쳐 먹을라면 갸들이 죽여야 살코기가 남을 거 아이가."
"불러오겠습니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평범한 사람들이 몬스터를 잡자 시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런 불편함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네.'
애초에 몬스터를 먹게 될 거라는 생각을 못해봤었다.
'물품 등록'
시험 삼아 죽은 청새치의 사체를 물품등록 해 봤다.
지이잉-
상점에 '생선'이라는 새로운 품목이 생겨났다.
‘성공이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크기를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거 하나로도 거의 백인 분은 나올 테니까,
그때였다.
[서예진이 집구석 절대자의 혈족과 조우하였습니다.]
[혈족의 힘을 개방합니다.]
곧바로 서예진에게 절대자의 눈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빠야, 저기 좀 봐라. 우리 아파트 멀쩡하다!”
"그러네."
『이름 : 이지숙 (Lv. 50)
칭호: [혈족][일촌]
신뢰도 : 97
각성 능력 : 군림하는 자』
『이름 : 김동혁 (LV. 42)
칭호: [혈족] [일촌][호위무사]
신뢰도 : 93
각성 능력: 호신강기』
'엄마...! 아빠...!'
그립고 그러웠던 부모님이 계졌다.
[혈족 이지숙(군림하는 자)님에게 종속되어 있는 23명에게 시민권이 부여됩니다.]
'어?'
그것도 23명 전원이 작성자로 이루어진 집단을 데리고,
〈[Episode 11] 자갈치 시장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