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50화 (50/175)

< [Episode 11] 조우 (6) >

가부좌를 틀고 있는 서예진을 향해 말했다.

"그대로 이분들을 따라다녀 주세요."

부모님이 계신 곳은 영역 끄트머리에서도 수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나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잡았다. 절대자의 문을 이용해 부모님이 계신 곳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연결시켰다.

얼마 전 있었던 거인의 습격 때문에 대부분이 엉망진창이었지만, 부모님이 오고 계신 방향은 다행히 그 재앙이 빗겨나간 곳이었다.

건물에서 나온 내가 영역의 끄트머리에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부모님이 이끄는 집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힘차게 외쳤다.

"엄마! 아빠!"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절대자의 눈으로는 부모님의 표정까지 확실하게 보이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한 번 더 힘차게 외쳤다.

"엄마! 아빠! 저예요!"

그 순간, 엄마가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50레벨 덕분인지, 혈족의 효과 덕분인지 정말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살짝 무서운데'

그동안 일일퀘스트를 통해 근력이나 지구력 등 신체 능력이 제법 올리긴 했지만 저런 돌진을 받아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행히 엄마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셨다.

"재현이니...?"

울먹거리는 엄마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도 옅은 웃음이 나왔다.

"네, 엄마 저예요."

엄마는 천천히 다가왔다.

이미 혈족의 힘을 개방한 만큼 투명한 벽이 막아서는 일은 없었다.

영역의 경계선을 그대로 통과한 엄마는 천천히 내 얼굴에 손을 올리고, 쓸어내렸다.

어느새 굵은 눈물방울로 얼룩진 엄마의 얼굴이 정면에서 보였다.

"울지 마세요, 엄마.”

엄마는 나를 와락 안더니, 주문처럼 되뇌었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녀리게 떨리는 엄마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었어요, 엄마.”

그때쯤 아빠가 다가와서 덤덤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멀쩡해요."

"그래."

아빠와의 짧은 안부 인사를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엄마가 일하던 곳이 병원이기 때문인지 여자들이 많았다. 아마 대부분 간호사들이겠지.

그들 중 한 명은 개를 두 마리나 데리고 있었는데, 개나 고양이에게는 시민권 부여가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직접 허가해 줄 필요가 있었다.

"왕"

두 마리 모두 투명한 벽에 부딪히기 전에 출입 허가를 내려줬다.

확인해보니 개들의 주인은 김 건과 비슷한 종류의 사역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23명 모두가 각성자 라기 보다는 엄마에게 능력을 부여받은 건가'

가신 등록 시스템과 얼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군림하는 자 (전설)]

-왕의 자질을 가진 자

{종속의 계약}

{왕명 하달}

{왕의 축복}

저 종속의 계약이라는 것을 맺으면 능력을 각성하는 것이다. 무려 100명의 각성자를 아무 조건 없이 뽑아낼 수 있는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사기네'

초반에 각성의 유무가 생존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 지 생각해볼 때, 엄마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빠가 가지고 있는 능력도 결국 종속의 계약으로 개방한 능력인 건가?'

아빠가 가지고 있는 스킬.

호신강기 (S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몸 전체를 보호하는 강기를 만들어낸다. 강기를 두르고 있는 동안은 신체 능력이 3배 증가한다.

아빠의 스킬이 사기적인 이유는 스킬 설명에 '3배'라고 표기되어 있는 점이었다.

단순히 300%였다면 그렇게 엄청나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각각 신체 능력을 200%, 300% 올려주는 능력이 있다면 두 개의 스킬이 중첩되면 500%가 된다.

그러나 200% 증가에 3배 올려주는 스킬이 중첩이 되면, 300%가 '3배'가 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900%의 효율을 지니게 되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아빠는...'

기본적으로 혈족들도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버프는 모두 챙긴다.

그러니 우선 신뢰의 힘 버프를 적용받는다.

'모든 능력치 93% 상승'

그리고 혈족의 효과를 생각하면.

'추가로 모든 능력치 930% 상승!'

이미 이 시점에 1123%의 효율을 지니고 있는 상태.

'여기에서 호신 강기를 두르게 되면'

최종적으로 3369%의 효율로 강화된 신체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소리였다.

'미쳤군'

레벨 몇 단계 수준은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보정이었다.

나머지 23명 중에는 아빠처럼 S급 스킬을 얻은 사람은 없었다.

각성자이긴 해도 C급이나 B급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비각성자와는 차원이 다르지'

일단 각성자가 되면 몬스터 사냥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차별점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분들 덕분에 부모님이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다!'

부모님이 이끌고 계시는 23명의 각성자는 시민권을 부여받았지만, 내가 시민권을 부여한 이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바로 엄마의 칭호 효과 덕분이다.

{일촌}

5명의 가신을 등록할 권한과 1%만큼의 시민권을 추가로 부여할 권리를 갖습니다.

현재 부여 가능 시민권 : (23/2,100 명)

※세금 징수 가능

그러니까 엄마가 이끌고 있던 23명에게 부여된 시민권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의 상태창에 표시되는 신뢰도와 충성도도 내가 아닌 엄마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퀘스트를 부여할 권한도 엄마가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엄마가 이끌고 온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께는 다섯 세대를 나눠드리겠습니다. 밥이나 라면 등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얼마든지 요구해 주십시오.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네?"

"따뜻한 물로 샤워도 좀 하시고 보일러 튼 방에서 편히 주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모든 이가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재현아, 정말 괜찮은 거 맞니?"

엄마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아파트를 가리켰다.

"엄마, 저기 불 들어온 거 보이시죠?"

"어? 으응. 안 그래도 불이 엄청 많이 들어와 있어서 신기해하던 참인데...”

“전기고 수도고 전부 끊겨 버린 세상에서 저게 가능한 이유는 뭘까요?"

"어?"

잠시 절대자의 눈을 이용해 이 주변에 있는 건물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거인이 날뛴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기에 그나마 멀쩡한 건물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곳이었다. 마침 딱 적당한 빌딩이 하나 있었다.

건물 외벽의 유리가 박살난 탓에 지금은 조금 흉측한 몰골로 변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불만 킬 수 있으면 되니까.

“다들 잘 보세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따악!

핑거스냅을 치는 순간에 맞추어 그 빌딩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건물들에 불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파아앗!

반쯤 부서져 있지만, 밤 속에서 환하게 불이 켜진 도시의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공연 못지않았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목마르신 분?"

그리고 그들의 앞에 시원한 콜라를 소환시켰다.

얼떨결에 콜라를 잡아 든 사람들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머, 먹어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저기.."

"네, 말씀하세요."

"혹시 제로 콜라는 없나요? 펩시"

나는 대답 대신 그가 원하는 물건을 소환시켜주었다.

"감사합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마구 요구하기 시작했다.

"환타는요?"

"사이다도 가능한가요?"

"다 가능합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해주세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며 음료수를 마셨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저를 따라오시죠."

"와아아아아!"

사람들은 환호하며 내 뒤를 따랐다.

***

절대자의 문을 이용해 아파트 단지로 이동한 다음, 먼저 엄마의 수하들에게 사용할 집들을 안내해줬다.

더불어 라면, 쌀, 계란, 우유 등 그들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든 물품들을 배치해 주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찾아와 말씀해주세요."

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연했다.

그 날 이후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안 봐도 뻔했으니까.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먹을 것이나 마실 물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와서 그런 것들이 한 번에 해결되니 기쁠 수밖에 없겠지.

모든 인원을 내가 직접 안내한 뒤 부모님을 모시고 집으로 가려고 하던 그때였다.

엄마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재현아 그런데 이거 다 남의 집인데 우리가 이렇게 마음대로 써도 돼?"

그녀의 물음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돌아오면 돌려줘야겠죠. 물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걸 보면 그러긴 힘들 테지만.

아직 그런 사람은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런 건 걱정하지마시고, 우리 집으로 가요.”

마지막으로 배분해준 세대의 현관문을 우리 집의 현관문과 연결시켜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미리 대기하고 있던 서예진과 유혜린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한다고 땀에 젖은 서예진, 방금 자다 일어난 듯 머리가 엉망인 유혜린의 모습은 부모님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들 여기 우리 집 맞니?"

"-------네"

“그러면 이 분들은 우리 아들 여자친구야?"

"아니에요."

옆에 있던 아빠가 장난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 우리 아들 인기 많네? 양다리?"

“그런 거 아니에요, 아빠.”

"둘 다 참하네. 우리 아들 잘 부탁드려요."

그때 유혜린이 오버를 했다.

"서,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이런 게 충성도 100의 부작용인 걸까?

눈썹을 올리고 입술을 동그랗게 만 표정으로 아빠가 나를 향해 속삭였다.

"우리 아들 진짜 좀 하네?"

나는 아빠의 장난을 무시하며 서예진과 유혜린을 향해 말했다.

"두 분은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넵!"

그렇게 두 사람을 보내고 가족들만 남게 되었다.

“엄마랑 아빠는 좀 씻어야겠다.”

두 분이 함께 목욕을 하시고 나온 뒤에 물었다.

"이제 좀 말해 봐요.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오신 거예요?"

"너네 아빠 성격 알잖니. 그때도 나 퇴근하는 거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이 딱 터졌지 뭐야?"

아빠는 택시 일을 하셨는데, 엄마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반드시 차를 태워주곤 하셨다.

'다행이다.'

각성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엄마였다.

평소에도 워낙에 엄마에게 지극정성인 아빠였기 때문에 몬스터가 등장하는 순간 엄마의 곁에 있었고, 그 결과 두 분 다 무사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오시는 데 많이 힘드셨죠?"

"너희 아빠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단다."

엄마가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도 엄마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내가 기습적으로 말했다.

"할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세요."

"정말이니?"

"네. 할머니는..."

내 표정을 본 엄마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으셔?"

"지금 잠에 빠져 계세요.”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얘는. 엄마 놀리지 마. 깜짝 놀랐네."

나는 더 없이 진지한 얼굴로 사실을 고했다.

"몬스터가 나타나기 시작한 그때부터 쭉 주무시고 계세요."

"...뭐?"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는 괜찮으실 거예요. 할아버지가 있으셔서."

엄마가 다시 슬픔에 잠긴 표정이 되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지금부터 다 설명해드릴게요."

내가 얻은 능력과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할아버지 쪽에 대한 일과 내 능력으로 인해 우리 가족이 가지게 된 능력까지.

그렇게 밤이 깊어 갔다.

가족들과 함께여서 그런지, 집 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

일본의 나가사키 현.

그곳에서는 며칠 전부터 지상으로 해양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는 기현상을 겪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쳐들어오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많은 숫자가 내륙 안쪽으로 유입되면서부터였다.

고블린이나 오크에 비해 레벨이 높은 괴물들이 도시를 습격하며 간신히 살아남았던 생존자들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저, 저게 도대체 뭐야? 무슨 괴물 같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간신히 생존했던 미나쿠치 타카키는 바다에 나타난 거대 괴물을 보고 넋이 나가 있었다.

콰광—!

폭풍후 치는 바다 너머로 웅장하게 기립한 놈의 모습은 마치 신이 내린 재앙과 같았다.

저 괴물이 일본 본토로 밀고 들어오면 정말 모든 것이 끝장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간다고?'

괴물의 모습이 깊은 바다 속으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놈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미나쿠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괴물은 어디를 향해 간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저것이 향한 곳에는 반드시 잔혹한 파괴와 멸망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 [Episode 11] 조우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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