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조우 (8)
백룡의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모두 멍하니 놈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백룡도 별다른 반응 없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가신 소환을 쓴다면'
하동건 파티는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대신 할아버지가 죽게 되겠지.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백룡에 대항하여 싸우란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런 괴물에 맞서라는 것은 죽으라는 뜻과 같았으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세계수의 수호자인 할아버지는 세계수로부터 일정 범위 이상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별채만 완성된다면'
집구석 영역이 반경 1km로 늘어나면서 별채의 영역도 마찬가지로 늘어나 있었다. 별채가 완성되는 순간 저 괴물의 머리를 날려버리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별채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38시간 21분 19초
아무리 효율이 50% 증가하여 건설 시간이 1.5배 빠르게 흘러간다고 해도, 38시간이면 최소 하루가 넘는 시간을 버텨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불가능해'
그나마 가능성 있는 거라곤 백룡의 뱃속에 들어가서 가스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곳은 서예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
생쥐를 이용한 가스 폭발은 불가능했다.
'...가신들 중 한 명을 놈의 뱃속으로 들여보낸다면?'
그나마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은 텔레포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문병호였다.
폭발 직전에 가신 소환을 사용한다면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야!'
가신 소환에는 약 5초 정도의 딜레이가 생긴다.
불을 붙이는 타이밍이 늦으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불을 붙이는 타이밍이 빠르면 놈의 몸속으로 들어간 문병호는 죽은 목숨이었다.
‘게다가 싸이클롭스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백룡도 내부 폭발을 버텨낼 가능성이 높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전체적인 능력치와 함께 몸의 내구성 또한 같이 올라간다.
분명 한 방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어쩌면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방법이 없나?'
일말의 약점이라도 찾기를 바라며 놈을 노려보고 있던 그 순간.
「백룡(Lv. 63)」
바다 깊은 곳에 서식하는 심해 괴물. 알을 낳은 직후라 극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백룡의 알은 오직 세계수 뿌리에서만 부화할 수 있다.
'음...?'
그것을 보는 순간 놈의 목적이 싸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단순히 알을 부화시킬 세계수가 필요했던 것뿐이라면?
그때 백룡이 움직임을 보였고, 그에 맞춰 하동건 파티가 백룡을 공격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다급하게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모두 멈춰요!]
정말로 놈이 싸울 생각이 없다면, 우리 쪽에서 먼저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이상하게 들린다는 거 알지만, 잠시만 저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할아버지에게도 전해주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할아버지도 세계수 뿌리를 움직여 놈을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내 명령에 문병호가 텔레포트까지 사용해가며 그를 말렸다.
"와 공격하지 말라는 기고? 싸움에서 선빵이 얼마나 중요한 긴지 모르나?"
짜증 섞인 이봉열의 물음에 문병호가 간절함을 담아 대답했다.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재현님의 부탁입니다.”
“끄응."
그 직후.
『두려워하지 말라. 세계수의 수호자여.』
백룡을 경계하던 이봉열은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세계수의 수호자라꼬?"
그것이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몬스터 첫날부터 자신의 옥상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저 거대한 나무의 이름이 세계수라는 것도.
백룡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놈은 세계수 쪽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이토록 자그마한 세계수일 줄이야. 조심해야겠군.」
쿠구구구구―
땅이 진동했다.
하지만 백룡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한참 조심스러웠다.
미세한 진동이 이어지며 백색의 기다란 몸뚱어리가 땅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백룡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이봉열을 향해 다가왔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백룡에게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계수의 수호자여 나와 계약해라.』
"...계약?"
『세계수가 제 힘을 되찾기 전까지 내가 보호해주겠다.」
그 순간.
"!!"
이봉열은 오른쪽 손등에서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작열통이 끝났을 때에는 오른쪽 손등 위로 화려한 문양의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백룡의 비늘 색과 같은 백색의 문신이었다.
『위험에 처했을 때, 그것을 사용해 나를 불러라. 언제든지 달려오겠다.」
그 말을 한 직후 이봉열의 눈앞으로 타조알만한 크기의 알이 둥실둥실 나타났다. 이봉열이 그것을 두 손으로 받자 백룡이 말했다.
「내 새끼를 잘 부탁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룡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쿠구구구―
처음 등장할 때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백룡의 모습이 멀어져갔다.
모두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강덕수가 입을 열었다.
"고, 공격했으면 좆 될 뻔 했잖아!!"
"...재현님 명령대로 가만히 있어서 살았네요."
[시민 강덕수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강덕수는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시민 김가영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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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 김가영, 하동건의 충성도가 동시에 100에 도달하면서 가신 보유 한계치가 3개나 늘어났다.
‘이것으로 총 18명인가'
여섯 명을 추가로 가신 등록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렇게 계속 늘려 가다보면 언젠가는 100명이 넘게 되겠지!'
일반 시민들 중에서도 충성도 100을 채우는 사람이 나오면 곧바로 가신으로 등록되며 가신 등록 한계치가 늘어난다.
엄마의 능력은 별다른 조건 없이 100명의 각성자를 다룰 수 있지만, 나의 경우는 차근차근히 늘려가는 대신 제한이 없었다.
대기만성형이라 할 수 있었다.
'엄마가 각성자로 만든 사람을 가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것은 불가능했다.
이번에 엄마가 각성시킨 의료팀을 대상으로 실험해 봤는데, 종속의 계약을 맺는 순간 엄마의 휘하로 들어가면서 가신 등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각성자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연산 각성자는 그 비율이 너무 낮았다.
그런데 그때.
[시민 문병호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문병호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텔레포트'를 획득합니다.]
[잭팟 당첨!]
[축하드립니다.]
[각성의 알약(텔레포트)'을 획득합니다.]
'어?'
두 번째로 보는 잭팟 당첨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문병호였다.
'와, 진짜 어떻게 매번 이렇게 운이 좋냐'
각성의 알약이라는 것의 용도야 뻔했다.
먹으면 텔레포트 능력을 각성시킬 수 있는 알약인 것이다.
'이걸 어떻게 쓴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민들 중 충성도가 높은 사람에게 먹인 다음 가신 등록을 하는 것이다. 각성한 다음 가신으로 등록되는 것이니 공짜로 기사 한 명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산금을 포기하는 대신 경험치 수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투자처가 있었다.
두 가지 방법 중 고민하던 나는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다빈씨.]
[네, 재현님.]
[아빠 좀 불러주세요.]
혈족 버프를 가장 강력하게 받는 사람은 아빠였다.
그것은 혈족 중에 직접 몸을 움직여 싸우는 사람이 아빠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빠에게 문병호의 텔레포트 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젊었을 적, 태권도 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아빠였다.
여기에 텔레포트 능력이 가미된다면 전투력이 몇 배는 급상승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홀딱 젖은 몸으로 집으로 들어온 아빠에게 곧장 각성의 알약을 내밀었다.
"이게 뭐냐?"
“선물이에요.”
"선물?"
아빠는 각성의 알약을 받아들고는 유심히 바라보더니 물었다.
"영양제냐?"
"네. 삼키시면 돼요."
그가 좋아하는 삼다수를 상점에서 구입해서 건네주자 아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센스 있네 우리 아들. 물은 역시 삼다수지.."
아빠가 각성의 알약을 삼킨 순간.
새하얀 빛이 그의 몸에서 퍼져 나왔다.
---
"이게 무슨 일이냐? 아들. 아빠한테 이상한 거 먹인 거 아니지?"
아빠가 당황하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황당해하는 그에게 말했다.
"아빠. 거기서 여기까지 순간이동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순간이동?"
"네."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면서도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아빠였다.
슈슉
"어엇?!"
당연하게도 텔레포트 스킬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혈족 김동혁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혈족 김동혁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호신강기'를 획득합니다.]
"어?"
아빠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문득 하나의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잠깐만. 그러면 엄마의 신뢰도가 100으로 만들면 엄마의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건가?'
엄마의 능력.
100명의 각성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 능력을 획득 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였다.
나는 곧바로 부엌에서 밥을 준비하고 있던 엄마에게 달려갔다.
"아들!"
뒤에서 감격한 듯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은 그보다 엄마가 더 중요했다.
"엄마!"
"응?"
현재 엄마의 나에 대한 신뢰도는 97.
3만 더 올리면 곧바로 능력을 얻을 수 있다.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먹고 싶은 거라든지”
"갑자기?"
"없어?"
"으음...."
내가 재촉하자 엄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떡볶이가 먹고 싶네."
"떡볶이? 알겠어, 잠시만 기다려.”
곧바로 떡볶이를 준비하러 나가려는데 감동한 얼굴의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아!"
어찌나 빠른지 꼼짝없이 아빠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아빠, 좀 씻고 나오는 게 어때.
"엇, 미안하다. 하하하.”
"아빠. 그리고 씻고 나오면 21층에 다빈씨 알지?"
"그 일 잘한다는 아가씨?"
"찾아가봐. 아빠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그러마."
싱글벙글 샤워실로 들어가는 아빠를 뒤로하고 현관문을 열고 오랜만에 최형준네 집을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니 박혜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현님? 무슨 일이세요?]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그렇게 박혜원의 힘을 빌려 떡볶이를 해 드렸지만, 엄마의 신뢰도는 97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 아직 비장의 수가 남았으니까'
조급해 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니까.
[별채 건설이 완공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항상 있어왔던 청소가 시작됐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영역 내부에 있는 몬스터들이 떼죽음을 당하였다.
[육지 상어(Lv. 24)를 사냥하셨습니다.]
[육지 상어(Lv. 23)를 사냥하셨습니다.]
[하늘 청새치(Lv. 17)을 사냥하셨습니다.]
[하늘 청새치(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자이언트 랍스터(Lv. 29)를 사냥하셨습니다.]
[톱날 꽃게(Lv. 30)을 사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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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잡은 것으로 인정되는 만큼 경험치도 정산금도 겨우 1배수만큼만 획득되지만, 그 양이 너무나도 엄청났다.
덕분에.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경험치와 동시에 레벨업을 했고, 이번에는 별채가 아닌 집구석 영역이 늘어나며 다시 한 번 청소가 시작됐다.
[육지 상어(Lv. 23)를 사냥하셨습니다.]
[하늘 청새치(Lv. 17)을 사냥하셨습니다.]
[하늘 청새치(Lv. 18)를 사냥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별채의 공간과 더불어 새롭게 영역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숫자만 수천 단위였다.
'부여해'
그들에게 모두 시민권을 부여하는 순간.
[시민의 숫자가 10,000명에 도달했습니다.]
[시민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시민들의 '직업' 획득이 가능해집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직업 연구소'가 추가됩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알림들이 끊임없이 울려댔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얼른 엄마를 찾아갔다.
"엄마, 할아버지 할머니 뵈러 가요."
아빠는 구호팀과 함께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먼저 엄마를 모시고 별채로 향했다.
‘절대자의 문'
우리 집 현관문과 본가의 현관문을 링크시킨 다음, 문을 열었다.
철컥.
문 너머로 익숙한 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할아버지! 저 왔어요!"
"누고?"
안방의 문을 열자 할머니의 옆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재, 재현이가?"
"네, 할아버지."
그리고.
"아빠!"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안겼다.
[혈족 이지숙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혈족 이지숙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종속의 계약'을 획득합니다.]
'빙고'
< [Episode 11] 조우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