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2] 구원자 (3)
부전동 오피스텔.
방 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침대 위에 여자 한 명이 힘없이 누워 있었다.
'배고파'
배가 고프다 못해 아파올 지경이었지만, 그녀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집안에 있는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먹어치운 상태였다.
살아남기 위해 목숨 걸고 간간히 찾아갔던 편의점도 땅을 기어 다니는 상어가 나타난 뒤로는 포기했다.
"물..."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
마지막 물방울 하나까지 빨아먹기 위해 누운 자세로 페트병 속의 물을 받아먹었다.
털썩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팔이 먼저 나가떨어지고, 몇 방울 정도 물이 남아 있던 페트병도 그녀의 입에서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다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구질구질한 인생!'
백소라는 마지막까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인생을 두고 품평회가 열린다면, 동정표만 가득할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셨고, 틈만 나면 자신을 때렸다. 간신히 도망쳐 나온 사회는 매일매일 돈을 요구해 왔다.
월세, 공과금, 식비 등등.
적은 액수도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일해야 했다.
이제 간신히 숨통이 틀 때 쯤, 세상이 망했다.
'왜 하필 나는....'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만 했을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흐윽."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남들처럼만.
멀쩡한 부모 밑에서, 평범하게 삼시 세끼를 챙겨먹고,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가끔은 연애도 하는 그런 평범한 삶.
백소라에게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때였다.
쿵쿵쿵!
자신의 방문은 아니었다.
벽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을 보면 아래층인 것 같았다.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우울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심장이 긴박하게 쿵쾅대기 시작했다.
'몬스터인가?'
가끔 고블린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문이 열리지 않으면 금방 흥미를 잃고 떠나가곤 했었다.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괴물이 떠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살고 싶은 걸까, 나는
그 순간, 거짓말 같은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입니다! 생존자분들 계십니까!"
처음에는 환청인줄로만 알았다.
너무 간절한 마음이 들려주는 환청.
쿵쿵쿵!
그런데 아니었다.
"살아계신 분들 안 계십니까! 반응해주십시오! 구조대입니다!"
분명 인간의 목소리였다.
'구, 구조대?'
다른 의미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다음,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에 사람 있어요!"
현관문을 열기 직전, 문고리를 잡은 채로 그녀는 굳어버렸다.
'만약 저게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괴물 같은 거라면?'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이 꼭 등장하지 않는가. 사람을 흉내 내는 괴물.
불안한 생각에 나가기를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지, 진짜 구조댑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백소라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봤다.
그곳에는 주황색 배경에 119가 적힌 옷을 입고 있는 남자의 등이 보였다.
그는 생존자로 보이는 남자에게 물을 건네주고 있었다.
그것을 본 백소라가 외쳤다.
"여, 여기요! 저도...!"
그는 미소 지으며 다가와 500ml 삼다수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김재현님의 지시를 받고 구조를 하러 왔습니다.”
"...예?"
"김재현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구조대 입니다."
"-??"
우습게도 이것은 구조대의 지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구조대들 사이에서도 우스갯소리로 자신들을 가리켜 사이비라 말하며 조소했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데,
"지금부터 저희는 김재현님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안전합니다"
안전 구역 내에서 구조를 할 때, 단순히 그의 이름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생존자들의 활력이 돌아오곤 했다.
경우에 따라선 죽어가던 사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경우도 있었기에 이제는 구조의 한 과정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다.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혼자서 움직이실 수 있는 분들은 여기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구조대원 한 명이 그나마 멀쩡하게 움직이는 이들을 이끌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여기! 들것 가져와! 빨리 움직여!"
긴박한 순간을 보내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아직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백소라는 그 인파의 가장 앞에서 구조대원의 등을 보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텅!
"아야."
차들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도로로 걸어들어 가려던 찰나 투명한 벽이 그녀를 막아섰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반투명한 글씨가 나타났다.
[출입 불가.]
"...이건 또 뭐야?"
갑작스러운 현상에 당황스러워하던 그 순간.
[시민권을 획득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고, 그 안쪽에 있는 구조대원이 입을 열었다.
"시민권 받고 영역 안으로 들어와 주시면 됩니다!"
얼떨결에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띠링!
[시민권을 획득하셨습니다.]
백소라는 시민권을 획득함과 동시에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던 신체에 활력이 깃드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청량한 기운이 몸속을 휘도는 듯 했다.
그와 함께 자연스레 아까 구조대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김재현이라고 했었나. 그 사람의 힘인가?”
이 신비로운 힘은 그의 능력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잠시 후 구조대원을 따라 도착한 곳은 어느 건물 3층에 있는 병원이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여기서 차례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구조대원은 다시 현장으로 투입되었고, 백소라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래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마찬가지로 멀쩡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상태가 심각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송되는 듯 했다.
백소라는 기다림 끝에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마주 할 수 있었다.
"어디 불편한 곳 있으신가요?"
"..아니요."
"잠시만 저 좀 보시겠어요?”
그때 의사의 눈이 푸르게 빛나더니 그녀의 전신을 한 번 훑고는 말했다.
"밑으로 내려가셔서 셔틀 버스 타시면 됩니다.”
"네? 버스요?"
“네. 다음 분 들어오세요.”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바빠 보이는 모습에 백소라는 자리를 비킬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며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정말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창 몇 개가 깨져있긴 했지만, 그래도 버스는 버스였다.
"출발하겠습니다!"
사람들을 가득 채운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는 버스가 움직이기 위한 최소한의 청소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빠르게 변해갔다. 피와 시체로 엉망이던 풍경이 점점 사라지고 깨끗하게 정비된 도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빵 냄새?'
스쳐지나가듯 난 냄새였지만, 놓치지 않았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려 있었다.
그곳에는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 빵집이 있었다. 빵집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에는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카페도 존재했다.
그리고.
'어, 어떻게 된 거지?'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마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듯 평온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괴물들은? 고블린은?'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부로 진입하면서 마주한 모든 모습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어린이.
가볍게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까지.
'여기만 멸망이 빗겨 가기라도 한 건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괴물들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자신과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풍경이지 않은가.
백소라는 넋이 나가버린 얼굴로 생각했다.
'정말 구세주라도 나타난 거야?'
자신의 간절한 기도가 드디어 하늘에 닿은 것일까.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단지 내부를 둘러봤다.
[이상입니다.]
김다빈의 보고를 듣던 나는 소통의 반지를 사용해 대답했다.
[그러니까 요점은 공용 시설의 수용인원이 가득 찼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공용 시설을 늘려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이 근처에 집이 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주세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파트 외부에도 공용시설을 만들 생각입니다. 주민 센터나 동사무소 같은 곳이요. 그리고 군데군데 매점도 만드는 중이니 곧 밖에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해 질 겁니다.]
언젠가 한계가 찾아오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 유입된 사람들은 대부분 근처에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영역이 1km 범위로 넓어지면서 수많은 주택이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근처에 집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돌려보내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길 테지.
‘빈집이 많아.'
주택은 아파트보다 생존률이 많이 낮은 편이었다.
'고블린이 침입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겠지'
생존자들은 대부분 오피스텔이나 원룸, 그리고 아파트단지처럼 고층 건물에 밀집되어 있었다.
나는 절대자의 눈을 이용해 혹시나 상점에 등록할 물품이 있는지 찾아보는 한 편, 매점을 건설할 적당한 포인트를 선별했다.
'외곽 쪽의 집은 사냥 팀의 거점으로 삼아야겠어. 이곳을 중심으로 매점도 만들어놓고, 관리하는 사람도 뽑아야겠네!'
아무래도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왔다갔다하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 정비소 개념으로 외곽 쪽에 거점을 몇 군데 만들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거점의 관리는 사원 직책을 부여해서 일을 주면 될 일이었다.
전체 인구가 늘어날 때마다 경제활동인구도 함께 증가하는 중이여서 부담 없이 직책을 부여할 수 있었다.
[다빈씨.]
[네, 재현님.]
김다빈에게 간략하게 계획을 설명하고 거점을 관리할 인원을 뽑게 했다.
[맡겨주십시오, 재현님.]
그 다음 건설 모드를 사용해 선별한 포인트마다 매점을 신설하고, 공용시설이 될 곳을 선택해 전기, 가스, 수도 등의 기본 시설을 공급해주었다.
그러던 중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의료팀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병원에는 당연히 모든 것을 공급해주고 있었는데, 병원에 있는 의료 기기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의 치료에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바늘이나 수액 등을 구입하여 충분히 보급해주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요구하라고 말해 놓은 상태다.
'대학병원을 영역화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일반 병원이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들이 가능해진 상태이긴 했지만, 대학 병원에 있는 첨단 의료기기의 성능을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했다.
'전초기지를 어떻게 활용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어디까지 갔으려나'
하동건 파티는 지금 최대한 빠른 속도로 장전동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교대역까지는 독가스 전법을 사용해 일사천리로 진격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는 길을 뚫어야 했다.
왜냐하면 교대-동래로 이어지는 선로가 중간에 지상으로 빠져나오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동래역부터는 지하철이 아닌 지상철이 되는 것이다.
개방된 지역에서는 독가스 전법을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여기서부터는 하동건 파티가 직접 몬스터를 사냥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고무적인 것은 하동건 파티의 전력이 이전보다 몇 배는 강력해 졌다는 점이었다.
"까망아 물어뜯어!"
평범한 까마귀보다 3배는 덩치가 커다래진 까망이가 하늘 청새치들을 물어뜯었다.
[하늘 청새치(Lv. 17)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295,57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김건이 새롭게 얻은 스킬, 급성장의 효과였다.
급성장한 까마귀는 능히 혼자서 수십 마리의 청새치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타앙! 탕!
동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투명화 스킬을 얻은 문병호의 공격이었다.
적재적소에서 기습적으로 날아오는 문병호의 총알이 몬스터의 머리를 일격에 터뜨렸다.
"일어나라!"
지상에서는 강덕수가 소환한 강철의 기사들이 공격적으로 길을 텄다.
덕분에 하동건 파티는 최소한의 전투만을 수행하며 길을 주파하는 중이었다.
지상철 선로를 따라 스무스하게 달려가던 그때.
"정지."
중간에 길이 끊겨 있었다.
지상철 선로가 이어지는 다리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Episode 12] 구원자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