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2] 구원자 (4)
하동건은 지상철 아래쪽을 살피더니 말했다.
"밑으로 이동한다.”
웬만한 건물 3층 높이였지만, 평균 레벨이 30대 중반인 그들에겐 부담스럽지 않은 높이였다.
그러니 다리가 끊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문제는 저걸 누가 그랬느냐는 거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다리를 부술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
‘주변에 커다란 발자국 같은 게 없는 걸 보면 싸이클롭스가 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싸이클롭스가 휩쓸고 지나간 지역들에 비해 주변 건물들이 멀쩡했다.
그러니 저것은 다른 존재의 짓이라는 게 된다.
어찌됐든 콘크리트로 된 다리를 부술 수 있는 존재가 이 근처에 있다는 소리였다.
[다들 조심하세요.]
하동건 파티가 내려온 곳은 동래역 역사 근처였다.
목표인 장전동까지는 명륜-온천장-부산대-장전역으로 이어지는 지하철역들을 모두 지나야만 했다.
약 4km 정도의 거리가 남은 셈이다.
지상철 선로에서 내려오며 한 번에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많아졌지만, 하동건 파티는 능숙하게 몬스터들을 쳐내며 전진했다.
몸빵을 해주는 강덕수의 강철 골렘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대로라면 무난하게 도착할 수 있겠어'
그들의 실력이라면 문제없을 것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고 했었지!'
지금까지의 경험상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것이 생존률이 가장 높았다.
가장 흔한 몬스터인 고블린들이 침입하기 어려운 구조인데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만큼 사람들이 힘을 뭉치기 좋았기 때문이다.
'무사하길'
그때였다.
'응?'
벨소리가 울리기에 그대로 절대자의 눈 시야를 하나 늘려 복도를 확인해봤다.
그곳에는 여섯 명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예전에도 이런 일이 가끔 있긴 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찾아왔었다.
구걸하거나, 따지거나, 화를 내거나 가끔은 거래를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다빈에게 일을 맡기고 난 뒤로는 이런 일이 잘 없었는데 말이지.'
슬슬 한 번 올 때가 됐지라고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하러 현관으로 이동했다.
철컥.
보이지 않는 손으로 물을 열어주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토끼눈을 했다.
[시민 장성준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홍경택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임경훈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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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신뢰도가 급속도로 올라가는 경우는 딱 한 가지였다.
'나를 처음 보는 건가'
그렇다면 이들은 최근에 유입된 사람들이라는 소리였다.
'하긴. 수천 명이 새로 유입되었으니 당연한가'
원래라면 곧바로 김다빈에게 내려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이 입을 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총을 빌려주십시오."
이들의 대표로 보이는 장성준의 한 마디에 나는 이들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총이요?"
"네."
"죄송하지만, 총을 아무에게나 나눠드릴 수는 없습니다."
몬스터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총기를 규제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내 영역 안에서는 총이 필요 없으니까'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은 몬스터로부터 완벽한 보호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영역 안에는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과 내 허가를 받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내 허락 없이는 벌레 한 마리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고, 나에게 적개심을 가질만한 몬스터들은 영역이 확장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완전한 안전지대.
이런 곳에서 총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장성준이 말했다.
"저희는 영역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총기를 필요로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몬스터 사냥이 가능한 시민들이 늘어나는 건 언제나 환영이지'
그렇지 않아도 주변 몬스터들의 수준이 올라가며 사냥 인구가 많이 부족해진 참이었다.
"몬스터 사냥을 하러 나간다는 말씀이시군요."
안전지대를 활용한 사냥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런 용기 있는 자들에게는 총기를 지원해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성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네?"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희는 가족들을 구하러 갈 생각입니다.”
"!!"
몬스터들의 등장으로 가족들과 생이별 한 사람들은 나와 가신들뿐만이 아니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던 모든 사람들이 가족들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내 영역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사람들의 선택지는 다양했다.
가족들이 무사하길 기도하며 지금 당장 살아남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 가족들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며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처럼 목숨을 걸고서라도 가족들을 보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까지.
정답이 정해져 있는 일은 아니었다.
괜히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갔다가 죽음을 당하는 이들의 숫자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 서정아가 사망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을 맞이하는 시민들은 존재했다.
시민들의 인구가 늘어난 것에 비례하여 시민들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 또한 늘어났다.
그들 모두가 방 안에서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을 보기 위해 용감하게 밖으로 나갔다가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이들도 나와 똑같다.'
가족들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결국 직접 움직이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목숨을 내걸고 말이다.
그리고 절박한 심경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겠지.
'내가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다.'
그러나 절박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찾아온 이들에게 무기를 쥐여 주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여기 모이신 여섯 분이서 가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지이잉—
곧바로 여섯 자루의 권총과 실탄을 지급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 큰 무기를 쥐여 주고자 했다.
"여러분 저와 계약하실 생각, 있으십니까?"
아직 사냥팀과의 계약도 맺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 싶어졌다.
"감사합니다! 뭐든지, 뭐든지 하겠습니다! 가족들을 구하러 갈 수만 있다면~!"
종속의 계약은 약간 까다로운 조건이 존재했다.
제일 먼저 제안을 수락한 장성준을 향해 말했다.
"무릎 꿇으세요."
장성준은 약간 당황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었다.
"꾸, 꿇었습니다.”
엄마가 종속의 계약이라는 희대의 능력을 두고도 100명을 꽉 채우지 않은 이유.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린 다음 말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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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제게 복종하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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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그로부터 복종의 맹세를 들은 순간.
파아앗!
내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밝은 빛이 장성준의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이름 : 장성준 (Lv. 30)
신뢰도 : 48
각성 능력 : 염력
경험치 분배율 : 0% (+100%)
정산금 분배율 : 0% (+100%)
★퀘스트 부여 퇴출
염력 (A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다.
A등급 스킬!
예상치 못한 대박이 터져 버렸다.
"방금 그 빛은 뭐지?"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성준씨 괜찮아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릎 꿇고 있는 장성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상점 오픈, 귤 하나 구입'
지이잉―
나는 귤을 한 손에 들고는 장성준을 향해 퀘스트를 부여했다.
《퀘스트 부여》
퀘스트 내용 : 염력을 사용하여 귤을 들어올리기.
제한 시간 : 10분 00초
보상 : 정신력 강화.
실패 페널티 : 없음.
"어?"
갑작스럽게 나타난 퀘스트 창에 놀라워하는 장성준의 앞에 귤을 내밀었다.
퀘스트 창과 귤을 번갈아보던 장성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귤을 노려보며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으잉?"
“뭐야? 귤이 떠오르네?"
"성준씨가 하고 있는 거예요?"
내 손바닥에서 허공으로 떠오른 귤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퍼억!
장성준이 너무 힘을 준 것인지 귤이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그것을 본 장성준이 기겁하며 사과했다.
“아앗! 죄,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귤 즙은 내 얼굴에 닿기 전, 현관에 있는 투명한 벽에 막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민 장성준의 신뢰도가 50을 달성했습니다.]
[충성도가 개방됩니다.]
[시민 장성준의 충성도가 30을 돌파했습니다.]
[시민 장성준이 가신 등록을 위한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가신 등록, 장성준'
월척이었다.
나머지 5명은 모두 D등급~C등급의 고만고만한 능력을 각성했지만, 장성준 하나를 건진 것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가신 등록까지 마쳤으니 자잘한 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연지동에 있는 ○○아파트라고 했나요?"
“네, 그렇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성준 일행이 떠나가고, 하동건 파티가 다음 역인 명륜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크워어어어어!"
동래역에서 명륜역으로 이어지는 지상철 선로를 박살낸 범인인 것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하동건 파티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트윈 헤드 오우거(Lv. 45)」
집채만 한 덩치에 전신이 터질듯한 근육으로 무장한 괴물이었다.
특징은 머리가 두 개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괴물이 하동건 파티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파괴력의 주먹이 땅을 뒤흔들었다.
그 때.
-삐이이익!
거대화한 까마귀 하나가 오우거의 왼쪽 머리를 공격했다.
"크웍!"
놈의 시선이 까망이를 향했을 때,
타아앙—!
통쾌한 파열음이 오우거의 오른 쪽 어깨에서 들려왔다.
투명화를 쓴 채로 텔레포트한 문병호가 오우거의 귓속으로 권총을 쏘아낸 것이다.
"크와아아악!"
오우거가 괴성을 질러대며 오른쪽 귀를 감싸 안았다.
멀쩡한 쪽의 머리가 자신의 어깨를 노려봤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격해!"
놈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열 기의 갑옷 기사들이 놈의 발에 들러붙어 할버드를 휘둘러댔다.
푸욱! 퍽!
날카로운 도끼날이 오우거의 발등을 무자비하게 파고들었다.
"크아악!"
오우거가 짜증내며 갑옷 기사들을 발로 차내는 순간.
파아앗!
놈의 왼쪽 얼굴을 향해 빛의 화살 하나가 날아오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파바바박!!
수십 발로 쪼개진 빛의 화살이 오우거의 면상을 덮쳤다. 그 과정에서 왼쪽 머리의 눈은 빛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카아아악!"
오우거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고,
"크험!"
그 틈을 타 수인화한 오언주가 움직였다.
우우웅
김다정의 축복을 받은 오언주가 손톱을 휘두르자 놈의 발목 하나가 작살났다.
“크워어어어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오우거가 포효했다. 피어가 깃든 외침에 하동건 파티가 잠시 멈칫거렸고, 오우거가 주먹을 마구 내지르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앙!
땅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넘실거렸다.
그러나 놈의 근처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언주도 이미 몸을 뺐고, 강덕수의 기사단도 이미 소환 해제를 하며 자취를 감춘 상태.
"크아아악!"
애꿎은 땅만 박살 날 뿐이었다.
그리고.
쐐애애액!
빛의 화살 하나가 피투성이가 된 오우거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푸부부북!
그것은 오우거의 남은 멀쩡한 눈마저 앗아가 버렸다.
"아아아악!"
이것으로 오우거는 네 개나 되는 눈을 모두 잃었다.
그때쯤 되자 두 개의 머리가 내뱉는 것은 포효가 아닌 비명으로 바뀌었다.
사냥 당하는 자의 울분에 찬 비명.
그동안 오우거의 손에서 죽어갔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뱉어냈던 비명과 같았다.
"후우."
눈이 완전히 멀어버린 오우거의 앞에 하동건이 창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우우웅!
흑색 기운이 하동건이 들고 있는 창날에서 피어났다.
그와 동시에 창을 힘껏 던졌다.
"흐읍!"
쐐애애애액!
창날에서 피어나던 흑색 기운은 날아가는 과정에서 창의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점점 그 기세를 불려나갔다.
화르륵!
마치 검은 불꽃이 창을 집어삼킨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그것이 오우거의 가슴에 닿았을 때,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오우거의 상반신을 날려버렸다.
[트윈 헤드 오우거(Lv. 45)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7,223,743,09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리고.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고통과 함께 영역 확장이 시작되었다.
< [Episode 12] 구원자 (4)>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