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62화 (62/175)

[Episode 13] 내실 다지기 (4)

하동건은 눈을 떴다.

암막커튼을 살짝 걷어내자 눈부신 햇살이 안방 침대에 쏟아졌다.

벌써 해가 중천에 뜬 모양이었다.

이곳은 그의 신혼집이었다.

김재현의 영역이 아파트 단지 전체로 확장되었을 때부터 김가영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와서 살고 있었다.

기존에 지내던 2901호에는 문병호의 할머니와 강덕수, 김건이 지내고 있었고, 원래는 김다정의 집이었던 2902호에 유혜린과 오언주가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동건과 김가영까지 함께 사용할 때는 집이 좁게 느껴졌기 때문에, 여건이 갖춰지자마자 곧바로 옮겨온 것이었다.

'된장찌개 냄새'

철컥.

방문을 열고 나가자 부엌에는 장모님과 김가영이 함께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일어났어?"

"명환이는?"

"아침 일찍 사냥 나갔어."

"밥도 안 먹고?"

"고블린 사냥하려면 멀리까지 나가야 하잖아.”

현재 도로는 상당 부분 정비가 완료되어 있었지만, 정작 멀쩡한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덕분에 사냥을 위해서는 2km가 넘는 거리를 걸어가야만 했다.

"명환이도 열심히네."

"우리처럼 되고 싶다잖아."

김명환은 하동건 파티가 싸우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뒤로 매일 열심히 몬스터 사냥을 나가는 중이었다.

김재현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사냥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잘 나간다던데."

자기 나이 또래의 사냥팀까지 만들어서 활동 중이라던데, 성과가 나쁘지는 않은 편이라고 알고 있었다.

"명환이도 날 닮아서 활에 재능이 있는 편이거든."

물론 김명환은 재능뿐만이 아니라 좋은 백까지 두고 있었다.

하동건과 김가영에게서 시작부터 활과 창을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질 좋은 무기를 지원받은 것부터 남들과는 시작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 서방. 어서 와서 앉게."

"감사합니다."

하동건은 한상 가득 차려진 반찬들을 보며 옅게 웃었다.

“장모님이 오신 뒤로 밥상이 엄청 푸짐해졌네요."

김가영이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어허. 내가 차릴 때도 푸짐했거든?"

“그땐 배달 음식이 푸짐하게 있었지. 피자, 치킨, 육회..."

"그만!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는 내가 직접 만들어줬잖아!"

"그치, 라면, 간계밥, 스팸, 전부 다 맛있었어."

"크흠.”

장모님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미안하네. 내가 우리 가영이를 너무 귀하게 키웠나 봐. 그래도 시집가면 알아서 잘 할 줄 알았더니...."

"가영이가 라면은 참 잘 끓이더라고요."

도란도란 세 식구의 식사가 끝나고 김가영이 말했다.

"오늘 저녁에는 고기 구워 먹을까?"

"좋지."

"엄마! 우리 장 보고 올게!"

"그려."

밖으로 나오니 쌀쌀한 공기가 뺨에 부딪혀왔다.

"조금 걸을까? 소화시킬 겸."

"그러자."

김가영은 하동건의 손을 잡고 산책로를 이끌었다.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산책로에는 두 사람 뿐이었다.

김가영이 물었다.

"괜찮아?"

"뭐가?"

태연하게 대답하는 하동건을 보며 김가영이 투덜거렸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 해. 알겠지?"

"알았어."

“으으. 춥다. 이제 후딱 고기 사서 들어가자."

하동건은 그간의 사냥으로 수십억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워낙에 파티의 중추 역할을 한 덕분에 기본급만으로도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동건 뿐만 아니라 그의 파티에 속해 있던 모두가 모두 억 단위에 달하는 자산가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평화롭네'

그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치렀던 바깥과는 달리 영역 안쪽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날씨가 추워지며 쓸쓸해진 길거리였지만, 몬스터의 습격을 걱정하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복처럼 느껴졌다.

매점에 도착한 그들은 충분한 양의 고기와 함께 쌈 채소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질 때 쯤 김명환이 돌아왔고,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누나, 들어봐! 오늘 드디어 처음으로 오크 사냥에 성공했다니까?"

"오크를? 네가? 어떻게?"

"내가 화살로 정수리를 뚫어버렸거든! 캬 매형! 매형도 그 장면을 같이 봤어야 했는데.”

그날 저녁은 김명환의 무용담으로 가득 찼다.

단란한 저녁 식사가 끝이 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김명환은 복도 끝의 작은 방에 들어가 내일 사냥을 준비하며 빠르게 잠들었고, 장모님도 원래는 손님방이었던 곳에서 주무셨다.

그리고 하동건과 김가영은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잘자."

"너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있잖아."

어둠 속에서 하동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 왜 눈물이 나질 않는 걸까?"

"동건아"

“불효 자식이 따로 없지? 근데 실감이 나질 않는다고 해야 할까. 분명히 그때 그곳은 우리 집이었고, 핏자국도 선명했지만, 그냥 어딘가에서 멀쩡히 살아계실 것만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하나.”

하동건의 담담한 목소리에는 슬픔의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정말로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잠도 평소보다 더 많이 자고, 밥도 맛있어. 분명 슬퍼야 하는데, 슬퍼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게 잘 되질 않네."

김가영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하동건을 품에 안았다.

"가영아?"

하동건은 울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울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도 눈물을 흘리는 것은 김가영의 역할이었다.

“가영아 정말 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김가영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부탁했다.

"조금만, 조금만 이렇게 있자."

하동건은 김가영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없었다.

손을 들어올리기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잠이...!'

졸음이 쏟아졌다.

요즘 따라 잠이 많아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아무리 많이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묘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느낌.

내일 눈을 뜨면 또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걸까.

하루가 무척 짧았다.

인생을 통틀어서 이렇게 게을러 본 적이 처음인터라 하동건은 게으른 자신의 모습이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하기에는 조금 귀찮았다.

그저 오늘처럼, 숨 쉬듯이 하루를 또 보내겠지.

김가영이 말했다.

"미안해."

떨리는 김가영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하동건은 점점 더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느꼈다.

'울지마'

말해주고 싶었지만, 김가영을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그에게 없었다.

그저 몰려오는 졸음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괜찮아. 금방 괜찮아 질 거야."

김가영의 품속은 따뜻했다.

그녀의 말처럼.

시간이 쏜살처럼 흘러갔다.

지난 열흘간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도시를 정비해나가니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나갔다.

곳곳에서 인재가 쏟아져 나왔다.

특히 가장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이들은 바로 건설 현장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이 김씨! 여기로!"

"여기부터 해줘!"

현장에 투입되어 있는 중장비들을 운용해 싸이클롭스가 박살낸 도시를 빠른 속도로 정비해 나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서서 서로를 보조하며 일처리를 해나갔다.

다만 문제는.

'경제활동인구가 가득 찼다!'

현재 시민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경제활동인구가 되어 하루 일당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다.

총 인구수가 늘어나는 만큼 경제활동인구수도 함께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무한은 아니었다.

내가 퀘스트를 통해 직접 급여를 전달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필연적으로 몬스터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특히 학생들.

아직 아무런 경험도, 전문 지식도 없는 그들이 무언가 공헌을 하여 경제활동인구에 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장실 청소나 진상들을 받아야 하는 공용 시설 관리 정도가 가능한 일인데, 그것마저 경쟁률이 워낙 심해 자리가 없는 실정이다.

결국 그런 이들에게 남는 선택지는 몬스터 사냥 밖에는 없었다.

'문제는 사냥할 몬스터의 수준이 지나치게 올라갔다는 점이지'

이제 막 사냥을 시작하는 평범한 사람이 노릴 수 있는 사냥감은 결국 고블린 정도였다.

아니,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고블린을 상대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위험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고블린을 사냥할 수 있는 장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양 몬스터나 오크처럼 강력한 몬스터들만 남은 상태다'

고블린이 등장하는 지역은 황령산 너머 연산동.

현재로서는 그곳이 고블린들이 등장하는 유일한 스폿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미 그곳은 고블린 사냥에 익숙해진 베테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막 시민권을 부여 받은 아이들이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겨운 세상인 것이다.

그나마 복지 차원에서 시행되는 무료 배급소가 있어 연명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해!'

가끔 여유가 되는 사람들 중에서 학생들을 거두어주는 경우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자식의 친한 친구거나 평소부터 알던 사이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었고,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이들은 존재했다.

‘고블린들이 충분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 막 영역을 넓혀가던 시기, 주변에 고블린들이 충만했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다.

고블린들을 조잡한 무기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었고, 사람들은 조금씩 성장해나갈 수 있었으니까.

‘몬스터의 존재를 바라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아이러니였다.

악몽과도 같던 몬스터가 이제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리다니.

이 문제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그 때, 반가운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민 이준혁이 '리자드맨 늪지대'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보상으로 크리스탈 10개를 획득합니다.]

[최초로 던전을 완전히 공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크리스탈 100개를 획득합니다.]

예정대로 이준혁 파티가 D등급 던전을 10회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최초 보상 덕분에 크리스탈이 400개로 늘어났군'

신기 뽑기에 필요한 크리스탈의 개수는 300개.

'새로 뽑는 신기에서 해결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

이번엔 어떤 신기가 나올지 기대하며 뽑기를 진행하려던 그 순간.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이 추가됩니다.]

"응?"

무언가 이상한 알림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던전을 건설 할 수 있다고?'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 (13,000,000 원)

저렙 시민들을 위한 사냥터.

20레벨 이하의 시민들에게는 기본급 2배 이벤트가 적용된다.

100회 공략 가능하며 1회에 약 80~110마리의 고블린들이 등장한다.

※한 번에 최대 10개까지 설치가 가능하다.

'...이건?'

인스턴트 던전.

사냥감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사냥 팀을 육성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이었다.

몬스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라

내 능력의 근간이 '창조'에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상점, 품위 유지.

물건을 만들어내고 가스, 전기, 수도 등을 창조해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몬스터마저 창조해내는 게 가능할 줄이야.

'일단은 사용한다'

지금 상황에 너무나도 필요한 기능이었다.

'조금 다르게 설명할 필요는 있겠어!'

나는 곧바로 김다빈에게 연락했다.

[다빈씨.]

[네, 재현님.]

[부장들을 모두 소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김다빈의 텔레파시를 통해 빠르게 모인 간부들을 향해 설명했다.

"앞으로 영역 내에 던전이 생겨날 것입니다."

부장들 중에서는 이준혁 파티가 공략 중인 던전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리자드맨들이 나온다는 그 던전 말입니까?"

"아니요. 조금 다릅니다. 앞으로 생겨날 던전은 그보다는 훨씬 난이도가 낮습니다.”

"그렇다면...."

"네. 고블린들이 등장하는 던전입니다.”

고블린이 등장하는 던전이라는 것을 들은 부장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렸다.

"혹시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던전 그 자체에 대해 경계하는 부류와.

“고블린이 등장하는 던전이라면 오히려 반겨야 되는 입장이 아닐까 싶네요. 고블린 사냥에 목마른 사람들이 꽤 많지않습니까.”

그들을 향해 말했다.

"던전이 터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이번에 이준혁 파티가 공략하는 던전과는 달리 총 100번을 공략해야 하며, 한 번 공략할 때 거의 100마리에 달하는 고블린을 잡아야 합니다. 이는 파티 수준에 따라 상당히 위험한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냥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드는 인스턴트 던전이었다.

그곳에서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사람이 나오게 되면 어불성설인 것이다.

"따라서 고블린 100마리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파티의 확실한 기준을 세웠으면 합니다.”

[Episode 13] 내실 다지기 (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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