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3] 내실 다지기 (5)
고블린 100마리가 등장하는 던전.
이는 생각보다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시민들이 고블린을 사냥하는 방식은 대부분 안전지대를 활용하거나, 수적 우세를 활용하여 사냥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고블린 100마리라고 해도 그것들이 한 번에 모두 달려드느냐, 조금씩 나타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던전 내부의 환경이 어떤지도 중요하고요."
양지호가 핵심을 찔러왔다.
“그러니 우선은 던전 내부 환경이 어떤지 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일례로 이준혁이 공략했던 리자드맨 늪지대의 경우 리자드맨들에게 굉장히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고블린 소굴도 마찬가지로 고블린들에게 유리한 환경일 가능성이 있었다.
“선발대가 필요겠군요. 고블린 100마리가 한 번에 덤벼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의 선발대가."
"네, 그렇습니다."
당장 생각나는 파티들만 대 여섯 개가 있었다.
이준혁 파티를 포함하여 영역 바깥으로 사냥을 나가는 이들은 모두 고블린 100마리쯤은 우습게 감당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을 선발대로 사용하기에는 아깝다'
당장 그들이 해양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벌어오는 정산금은 겨우 고블린 100마리와 비교할 게 아니었다.
'하동건 파티가 쉬고 있기는 한데'
에이스 파티라고 할 수 있는 하동건 파티는 현재 긴 휴식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강덕수 혼자서도 선발대 역할은 하고도 남는다'
강철의 기사단으로 진화한 그의 능력은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데 그 누구보다 특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종종 절대자의 눈으로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했다.
그 중에서도 하동건, 강덕수, 김 건은 심리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김가영이라는 반려가 있는 하동건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힘이 되어주는 가족이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약간의 무기력증과 우울 증세가 보이긴 했지만, 김가영이 곁에 있어준다면 금세 호전될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강덕수와 김 건이었다.
두 사람은 밤에는 죽어라 술을 퍼마시고, 낮에는 시체처럼 잠만 자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냥으로 벌어들인 돈을 술 마시는 데 모조리 탕진하고 있는 셈이었다.
'차라리 강제로 일을 시키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들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던전 공략 한정으로 총기를 대여해주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이전 회의에서 경찰 병력을 이끌어보겠다고 어필해왔던 강한결이었다.
"기본적인 총기 사용 교육을 받은 다섯 명이 한 팀을 이루게 된다면,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고블린 백 마리가 덤벼든다고 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소총의 위력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의 말대로 잘 교육받은 소총수 다섯 명이라면 고블린이 아니라 오크 100마리가 달려든다고 하여도 큰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하지만 총기 규제를 느슨하게 푸는 것은 경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재현님이 걱정하시는 바는 저도 이해합니다. 총기 규제를 푼다면 분명히 어느 정도 위험은 따라올 것입니다. 하지만 재현님, 그 어떤 전쟁터에서도 총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병사들에게 총 대신 창이나 활을 지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총기 규제가 익숙한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지금 세상은 몬스터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총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
내가 총기를 나눠준 것은 현재 최전선에서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이들에 한해서였다. 그들 전부가 가신 등록이 된 이들이 포함되어 있는 파티였다.
신뢰도와 충성도가 높아서 내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이들.
소수정예의 파티만 몬스터 사냥에 투입되어 있을 뿐인 것이다.
'나부터가 사람들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던 거였어!'
지금의 내 모습은 쿠데타가 무서워 군대로부터 총을 빼앗은 독재자와 같았다.
스스로가 자기 군대의 힘을 깎아먹고 있던 셈인 것이다.
'소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면 지금보다 사냥 인력이 몇 배는 늘어나게 되겠지'
당장 대한민국 남자들은 소총만 쥐여 주면 곧장 실전 투입이 가능한 전력이 된다.
당연히 성장 속도도 배가 될 것이다.
'믿자'
물론 믿음에 대한 배신에는 합리적인 철퇴를 내릴 것이다.
하지만 총기 사고가 무서워서 총기를 규제할 필요도 없었다.
"강한결씨"
"네."
"경찰 인력이 얼마나 되죠?"
"총원 백오십 명입니다."
"총기 500정과 실탄 3만발을 드리겠습니다. 관리하실 수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강한결을 똑바로 쳐다보며 선언했다.
"지금부터 경찰이라는 명칭은 폐기합니다. 강한결씨가 이끄는 부서는 던전 관리국이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인력은 얼마든지 충원하셔도 좋습니다. 대신 최초 던전 조사, 던전 공략에 따른 총기 불출, 던전 공략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기초 교육까지 모두 전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한결은 진지한 얼굴로 고민해보다가 말했다.
"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건설 모드를 사용했다.
'인스턴트 던전 건설.'
일단은 시범적으로 하나만 만들어 봤다.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을 설치할 장소를 정해주세요.]
장소는 전포역 8번 출구.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그와 동시에.
[F급 인스턴트 던전(고블린 소굴 건설이 완공되었습니다.]
즉시 건설이 완료되었다.
이제 내버려두면 시민들 중 누군가가 던전에 대해 보고할 것이고, 강한결이 도맡아서 일처리를 하게 될 것이다.
'그 전에'
던전 안은 절대자의 눈으로도 들여다보는 게 불가능했다.
즉, 던전 안의 환경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신을 들여보낼 필요가 있다는 말이었다.
마침 적임자가 있었다.
'절대자의 문'
곧바로 2901호를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술 냄새가 진동했다.
거실에는 술병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과자 봉지와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소파에서 대자로 뻗어 코를 골고 있는 강덕수에게 다가가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강덕수씨. 일어나세요.”
그러나 내 목소리만으로는 아예 반응이 없었다.
"덕수씨. 일어나 보세요."
어깨를 쥐고 흔들자 드디어 반응이 왔다.
"으응? 재, 재현님?"
여전히 술에서 깨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가 입을 열 때마다 알콜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내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자 강덕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여, 여긴 어쩐 일로...."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이요?"
"네."
던전에 대한 개념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고블린들이 나오는 던전이 생겼다고요? 영역 안에?"
“그렇습니다.”
강덕수가 심각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그거 큰일 아닙니까?"
"그래서 강덕수 씨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강덕수씨라면 혼자서도 공략이 가능할 테니까요.”
"흐음. 알겠습니다.”
“우선은 좀 씻고 나오시죠."
"예."
샤워를 하고 나온 강덕수의 모습은 아까보다 훨씬 나아져 있었다.
"가시죠."
그를 이끌고 곧바로 전포역 8번 출구로 이동했다.
지이잉—
그곳에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는 던전 입구가 있었다.
실물로 보는 것은 나도 처음이었다.
"이겁니까?"
“그렇습니다.”
"신기하게 생겼네요."
안에 들어가면 더 신기할 것이다.
완전히 다른 환경이 펼쳐져 있으니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강덕수가 던전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그를 관찰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를 반긴 것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었다.
"재현님. 여기 아무것도 안 보이는 데요?"
[헤드랜턴을 드리겠습니다.]
'상점 오픈, 헤드랜턴 구입'
곧바로 그에게 헤드랜턴을 지급했다.
랜턴을 키자 울퉁불퉁한 동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어나라."
강덕수는 강철의 기사 1기만을 소환한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끼긱?"
제일 처음 등장한 것은 고블린 세 마리였다.
놈들은 강덕수의 헤드랜턴과 마주하자마자 경기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끼기긱!"
"끼이익!"
그러나 곧바로 강철의 기사가 휘두른 할버드에 목이 잘려나갔다.
고블린 세 마리가 순식간에 썰려나갔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8,012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너무 쉬운데요?"
확실히 던전 안의 고블린은 현실에 있던 고블린들보다 오히려 수준 떨어졌다.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라고 해 봐야 뼈칼이나 돌칼처럼 조잡한 무기가 다였고, 무엇보다 한 번에 마주치는 숫자가 적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8)을 사냥하셨습니다.]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매번 세 마리씩 나타나는 고블린들은 등장할 때마다 강철의 기사에게 썰려나가기 바빴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는 양상을 보였는데, 그에 따라 등장하는 고블린들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갔다.
"끼에엑!"
[고블린(Lv. 7)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7,99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블린 몇 마리가 더 늘어났다고 해서 강철의 기사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카각!
고블린의 공격은 모조리 은빛 갑옷에 막혔고, 반대로 강철의 기사가 휘두르는 할버드는 매번 확실하게 고블린의 숨통을 끊어 주었다.
그렇게 강철의 기사 한 기가 94마리의 고블린을 베어냈을 때.
[시민 강덕수가 '고블린 소굴'을 소탕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인스턴트 던전에서는 크리스탈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 자연 발생된 던전에서만 크리스탈 수급이 가능한 듯 했다.
공략을 완료하고 밖으로 나온 강덕수의 얼굴은 아까보다 한결 개운해보였다.
강덕수는 공략을 끝마치고 나왔는데도 멀쩡히 남아 있는 던전 입구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거 한 번 더 가능한가요?"
"가능할 겁니다.”
“한 번 더 해도 됩니까?"
"물론이죠."
강덕수가 인스턴트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훈련용으로 딱 좋은 수준이다.'
이거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강한결의 주도 아래 공략을 이어나갈 사람들은 소총을 들고 던전에 진입할 테니 더욱 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 번에 최대치까지 늘려도 되겠어.'
고블린 사냥에 재미가 들린 강덕수를 내버려두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적재적소의 위치에 나머지 아홉 개의 던전을 설치했다.
'이제 뽑아볼까'
소파에 앉자마자 까미가 달려와 내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삑!
나는 피식 웃으며 까미를 검지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모양이네.."
-삐빕!
평소에는 따스한 햇볕 아래에서 낮잠 자기 바쁜 녀석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애교를 부리고는 한다.
까미와 적당히 놀아주고 난 뒤 스킬창을 열었다.
그리고.
'신기 뽑기!'
드르륵!!
크리스탈 300개가 소모되며 황금빛 마법진이 화려한 빛을 내뿜었다.
완성된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이내 한곳으로 뭉치더니 점점 그 크기를 불려나갔다.
우우웅!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그것의 주위로 붉은 실타래가 스며들어갔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집구석 절대자의 왕관>
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왕관 하나가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 [Episode 13] 내실 다지기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