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66화 (66/175)

[Episode 14] 흡혈귀 (3)

제갈성규에게 생쥐를 붙여 집중 감시를 하는 한편, 참사가 일어난 현장을 좀 더 유심히 살폈다.

'최근에 영역이 넓어지면서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이다.'

영역의 가장 테두리 쪽에 있는 사람들.

아직 제대로 된 물자 공급이나 구호물자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시민권을 부여받으며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여기가 안전하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한 이들인 것이다.

'이 사람들을 모두 어쩌면 좋지!'

대부분 무연고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혹여나 이들의 가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체를 불태우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가족을 찾고, 또 이 상태가 된 시신을 어떻게 가족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걸까?'

구호 팀의 손길이 닿은 이들은 안전 구역에 대해 인식할 뿐만 아니라 몬스터 사냥으로 돈을 버는 것, 매점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지식을 안내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다르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남았지만, 몬스터들이 없는 안전 구역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 조차 인지 못하고 있던 이들.

'아니, 이제는 완전한 안전 구역이라고도 할 수 없나'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을 안전 구역이라고 표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차라리 나에게 반감을 가져주면 좋으련만'

그 순간 모두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

나를 공격하려던 최하급 흡혈귀들의 머리가 터져나간 것처럼 말이다.

제갈성규의 경우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선택인지, 총을 쥐여 주었을 때조차도 나를 향한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어쩌면 품위 유지 스킬 덕분에 정신적으로 굴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몬스터들은 영역 확장과 동시에 제거된다.'

제갈성규를 비롯해 최하급 흡혈귀들이 일반적인 몬스터와 다른 점은 '시민권을 부여하는 게 가능한 개체'라는 점이었다.

‘몬스터들은 대체적으로 제거하지만, 시민권 부여가 가능한 개체는 나에게 직접적인 적의를 가졌을 때에만 제거한다는 건가?'

시스템이 나에게 일종의 선택지를 주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흡혈귀처럼 인간을 주식으로 삼는 것이 아닌 쓸모 있는 종족도 있을 테니까.

'오언주의 경우처럼 말이지'

엄밀히 따지고 들자면 오언주도 흡혈귀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인화를 했을 때 그녀는 인간보다도 괴물에 더 가까운 형태를 취했으니까.

할아버지의 나무 거인이 오언주에게만 반응했던 것이 그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지를 내게 남겨준다는 건가'

오언주를 받아들이고 얻은 장점들을 생각하면 그런 이들을 무작정 죽이는 것은 확실히 내게 손해였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항상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참혹하군'

흡혈귀에게 피가 빨려 창백해진 피부는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진작부터 흡혈귀를 걸러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비극이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다 할 생각이었다.

[다빈씨.]

[네, 재현님.]

김다빈에게 이 일을 설명하고 자문을 구했다.

[어떻게 해야 이분들의 가족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녀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지금으로썬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가 남아 있어 신원 조회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통신이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군요.]

[시민들 중에서 그분들의 가족인 사람들은 적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면 영역이 넓어지기 전부터라도 찾아갔을 거니까요.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는 무연고자라고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요?]

김다빈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우선은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이유부터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또는 소지품 중에 주민등록증 같은 것이 있다면 주소를 알아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주소가 이 근처라면 그곳에 가족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너무 상심하시지 마세요.]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체들의 소지품부터 뒤졌다.

'절대자의 눈'

일일이 시체를 뒤지는 대신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공간을 전체적으로 훑었다.

그 편이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지갑이나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만 이들이 여기에 왜 모여 있었던 건지는 파악하기 쉬웠다.

건물 한쪽에 식량이 비축되어 있고, 불을 피운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에 이들의 생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여기 모인 것이다.

그때였다.

'음?'

건물에 생존자들이 있었다.

구석진 방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벌벌 떨고 있는 것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저들이 바로 여기서 죽은 이들의 남은 가족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동시에 여기 있는 이들이 어떻게든 저 어린 아이들만이라도 살리려 노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알리는 게 맞을까?'

잠시 고민했다.

이 중에 저 아이들의 부모나 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알리는 게 맞을까, 아니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게 옳은 일일까.

알 수 없었다.

아직 죽음의 개념도 제대로 알지 못할 것 같은 아이들도 몇몇 보였는데, 그들에게 이 잔혹한 장면을 보여주어야만 할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저벅저벅

아무렇게나 방치된 시신들의 모습을 정리하여 똑바로 뉘였다.

작업 효율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손을 활용하는 게 현명했겠지만, 굳이 구태여 나는 맨손으로 그들의 시신을 정돈했다.

두 눈을 부릅뜬 사람들은 눈을 감겨주었다.

‘아까보다는 낫네'

확실히 아까보다는 평온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언뜻 보면 그냥 잠든 것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다음 아이들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절대자의 눈을 통해 내 발걸음 소리에 겁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빤히 보였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리고 문을 노크했다.

똑똑

"히익!"

"쉿! 조용히 해!"

기겁하는 소리와 그를 말리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자기들 딴에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모양이었지만, 침묵 속에서는 작은 소리도 적나라하게 들릴 뿐이다.

그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문 좀 열어주겠니?"

아기 돼지 삼형제를 노리는 늑대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해 봤자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들어갈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잠겨 있던 문이었지만, 절대자의 문을 사용하니 처음부터 열려 있던 것처럼 저항 없이 문을 열 수 있었다.

"꺄아아악!"

아이들은 흡혈귀들의 존재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인지, 문이 열리는 순간 동시에 공포에 질린 비명을 뱉어댔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아저씨는 김재현이라고 해.”

방 안으로 한 발짝도 다가가지 않은 채 내 이름을 소개했다.

내가 거리를 지키자 아이들도 내 이야기를 약간은 들어볼 생각이 든 것 같았다.

그리고,

[시민 양하윤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양하율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서민우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이서준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한예정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나와 마주하는 순간, 품위 유지 스킬이 빛을 발했다.

위협적이지 않은 내 태도에 마음이 놓인 것인지 그들 중 가장 체격이 큰 여자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그래봤자 초등학생에 불과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작은 여자 아이였다.

"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약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구조대라고 해야 할까?"

"구조대요? 구조대가 온 거예요?”

나와 대화를 하던 아이의 얼굴이 밝아지자 다른 아이가 물었다.

"언니, 구조대가 뭐야?"

"으응. 우릴 구하러 오신 거야."

"정말? 그러면 이제 안 숨어도 되는 거야?"

"응!"

한순간에 밝아지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죄책감을 느꼈다.

"....아저씨랑 같이 가자."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그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이게 정말 맞는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분명히 고민하고 내린 선택이었음에도 이게 맞는 건지에 대한 확신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엄마!"

한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나를 지나쳐갔다.

"잠깐...!"

내가 말리기도 전에 그 아이는 방 안의 풍경을 확인했고, 얼굴이 굳었다.

"...엄마?"

아이는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물었다.

"...왜 거기서 자고 있어?"

말하는 아이의 얼굴이 어두웠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방 안의 어지러운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여기저기 튀어 있는 핏자국이나 어질러진 물건들까지 정리하지는 못했으니까.

분위기만으로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에 아직 너무 어렸다.

그때 나에게 맨 처음 말을 걸어왔던 여자 아이, 양하윤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고, 양하윤은 다급하게 달려 방 안의 참담한 모습을 작은 두 눈에 담았다.

그리고는 가지런히 놓여 있는 시체들 중 한 여자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엄마."

새하얗게 질린 채 누워 있는 여자 앞에 주저앉은 양하윤이 닭똥 같은 눈물을 터뜨렸다.

"흐아아앙."

가장 큰 아이의 울음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빠르게 전염되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로 울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차마 아이들 앞에서 시신을 불태울 수는 없었다.

그저 잠을 자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이들 앞에서 시신이 불타오르면, 더 큰 상처로 남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화장하는 의미가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평생의 상처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가족들의 마지막을 보여준 것은 그들을 위해서였다.

나중에 가족의 마지막을 제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을 까봐.

“할아버지! 일어나 보세요, 할아버지!"

아플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야 할 이 험난한 세상은 수없이 많은 상처를 그들에게 줄 테니까.

그래도 살아가야 할 테니까.

"흐어어엉."

울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아이들은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제 엄마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떠나실 거야."

나는 그들의 시신을 창고에 보관했다.

지이이잉-

불태우는 것보다 훨씬 아프지 않은 모습으로, 마치 정말로 하늘나라로 떠나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길 기도하며.

"엄마! 아빠! 어디가! 가지 마!"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 게 더 나았을까.

'모르겠어'

한 명씩 안아주기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으아아앙!"

"흐윽, 엄마."

할아부지이. 흐윽"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것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에 마음이 미어져왔다.

화르륵

나는 그들의 시신이 있었던 자리에 불꽃을 피워냈다.

너무 뜨겁지 않도록 조심해서.

그것들은 한동안 아이들 근처를 위로하듯 맴돌았다.

"...엄마?"

실제로 그들의 영혼이 있다면 지금쯤 이곳에 남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그것도 무척이나 슬픈 눈으로 말이다.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했다. 따뜻한 불꽃은 아이들이 눈물을 그치는 것을 확인하고는 떠날 준비를 했다.

"아!"

깨진 창문을 통해 불꽃이 빠져나가자, 아이들은 창문으로 따라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 덕분인지 아이들의 울음은 어느새 완전히 멈춰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뻔한 거짓말을 했다.

"엄마 아빠는 저 하늘나라에서 항상 너희들을 지켜보고 계실 거란다."

어쩌면 거짓말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뚝 그치고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도록 하자.”

한 아이가 눈물을 닦아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동글동글한 얼굴이 굳은 결의가 깃들었다.

다섯 명 중 가장 체구가 작은 아이였다.

'미안하다. 얘들아!'

나는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어주길 강요했고, 아이들은 일방적인 요구에 응해주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상처에 무너질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상처가 하루라도 빨리 아물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가족들의 복수는 내가 대신 해 주마!'

서예진이 다루는 생쥐의 시야에 소총을 든 제갈성규가 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저기군'

흡혈귀들이 모여 있는 아파트에 도착한 듯 했다.

[Episode 14] 흡혈귀 (3)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