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72화 (72/175)

[Episode 15] Ace Party (3)

안상혁은 굳은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는 간부급 흡혈귀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해대고 있는 중이었다.

“당장 그놈들을 먼저 쳐야 합니다! 이건 전쟁이에요!"

“그보다는 아지트를 옮겨야 합니다. 적들이 같은 방식으로 계속 공격해댄다면 이곳은 저희들의 무덤이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 의견이 갈리는 심형식과 손기환이 서로를 노려봤다.

"이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 못 들어봤나?"

"적들은 생쥐 한 마리로 테러가 가능한 집단이야. 이미 발각된 위치에 있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단 소리다"

"그러니까 시발! 우리가 먼저 치자고!"

심형식의 고함에 손기환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상대가 누군 줄 알고?"

그 말을 들은 심형식은 벙찐 얼굴이 되어서는 항변했다.

"누구긴, 시발! 몰라서 물어? 그 자식들 밖에 없잖아! 총 든 병신들!"

"아니."

안상혁이 입을 열자 심형식은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물었다.

"상혁님은 놈들의 정체를 알고 계신 겁니까?"

그의 물음에 안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 하지만 그 집단에 이런 능력을 가진 자가 없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생쥐가 독가스를 내뿜어낸다는 사실 보다 더욱 심각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시체가 사라졌다.'

회의실에 있던 간부급 하급 흡혈귀 중 하나가 독가스에 당해 죽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런데 그가 숨을 거두는 즉시 시체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폭발 사고 때와 똑같다!'

그때도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시체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더불어 독가스를 내뿜는 생쥐가 회의실에 쳐들어온 직후 갑작스레 수많은 흡혈귀들이 실종되었다.

'같은 놈들의 수작이다.'

그 폭발 사고도, 독가스도,

'경찰 놈들이 아니었어'

즉, 자신들을 노리는 집단이 따로 있다는 소리였다.

'도대체 왜?'

놈들의 정체도, 목적도, 가지고 있는 힘도 현재로써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상혁님. 지금 당장 살아남은 모든 흡혈귀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손기환의 말이 정답이었다.

이곳에 있어봤자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집단에게 계속해서 테러를 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안상혁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자신을 구해주고, 흡혈귀로 만들어준 그 사람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안상혁에게 이곳에 남아 있으라 명령했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아파트 단지에 있는 모든 이들을 잡아먹으며 성장하고 있으라 했다.

현재 자신은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이제는 주변 생존자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뻗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은인께서 돌아오실 거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이 아파트 단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경계 태세를 강화한다. 주변에 생쥐를 발견한다면 반드시 그 자리에서 죽여라. 이상이다."

"상혁님!"

그의 결정에 심형식과 손기환이 동시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안상혁은 완고했다.

“명령이다.”

잠시 침묵하던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복종했다.

그때였다.

벌컥!

회의실 문이 열리며 하급 흡혈귀 하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적습입니...!"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앙!

어디선가 날아온 창이 그의 몸을 꿰어 벽에 쳐 박았기 때문이다.

스르르르

그 직후 하급 흡혈귀의 몸이 모래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안상혁의 눈이 빛났다.

"....저건?"

지금 찾아온 불청객들이 독가스를 내뿜어대던 생쥐와 한 패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저벅저벅

누군가 천천히 이곳으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의 숫자는 딱 한 명.

곧이어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벽에 박힌 창을 뽑아내더니 회의실 안을 바라봤다.

"이런 미친!"

그를 향해 심형식이 달려들었다.

심형식은 맨손이었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 자체가 무기였다.

그러나.

서걱!

심형식이 제대로 손톱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남자의 창이 먼저 심형식의 목을 베어냈다.

심형식은 비명 한 번 제대로 질러보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흐음."

그 모습을 본 안상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면 나가린데'

은인을 기다리려 했더니 저승사자가 찾아와버렸다.

고민은 짧았고, 결론은 간단했다.

"손기환."

"...네, 상혁님."

"저 놈 막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안상혁은 이미 부서져 있는 창문을 향해 죽어라 달렸다.

"야, 이 개새끼야!!"

손기환은 욕설을 지껄이더니 반대방향 창문으로 달려 나갔다.

"크아악!"

등 뒤쪽에서 손기환의 최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 것을 느낀 안상혁이 옆으로 몸을 굴렸다.

쐐애애액!

바로 옆으로 창이 고속으로 지나가며 부서진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빠르게 몸을 일으킨 안상혁이 날아간 창을 뒤따라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저건 또 뭐야?'

밖으로 나오자마자 자신을 반겨주는 것은 은빛 갑옷을 입고 있는 수상한 놈들이었다.

중세 유럽도 아닌 이곳에서 풀플레이트 갑옷을 입고 있다는 것 자체로 무언가 수상한 놈들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그러나 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자신의 눈앞에서 빛이 터져나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씨발."

곧이어 빛의 화살이 그의 몸을 헤집었다.

푸부부북!

“크아아악!"

온몸이 찢겨져 나가는 고통 속에서 꼴사납게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푹! 서걱!

은빛 기사들이 들고 있던 할버드가 사정없이 그의 몸을 헤집었다.

[중급 흡혈귀(Lv. 38)를 사냥하셨습니다.]

[초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823,003,273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흡혈귀 토벌은 예상보다 훨씬 싱겁게 끝났다.

하동건과 오언주가 건물 안을 헤집고 다니며 남은 잔당들을 처리하고 있었고, 위기를 느끼고 밖으로 도망쳐 나온 흡혈귀들은 강덕수의 강철 기사단의 손에 작살이 났다.

운이 좋아 강철 기사의 포위망의 빈틈을 노린다고 해도 김가영의 빛의 화살이 그들을 노려왔고, 은신 상태로 돌아다니는 문병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하늘 위에서 까망이와 일체화한 채 아파트 단지를 감시중인 김 건의 시야 밖으로 도망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동건 파티는 완벽하게 흡혈귀들을 박멸시켜갔다.

[시민 강덕수가 '대연 푸르캐슬 아파트 단지'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대연 푸르캐슬 아파트 단지에 전초기지 건설이 가능해집니다.]

'전초기지 건설이라'

해당 지역에 자리 잡은 우두머리 격인 몬스터를 잡게 되면 가끔씩 뜨는 메시지였다.

'생각보다 쓸 일이 없단 말이지'

건설 기능 중에서 유일하게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기능이었다.

‘계륵이란 말이지'

지금만 해도 그랬다.

현재 그들이 있는 지역은 영역에서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파트단지였다.

조만간 레벨업을 하게 되면 포함될 지역에 불과한 것이다.

‘굳이 돈을 써가면서 전초기지로 만들 필요가 없지'

전초기지를 만들기 적합한 지역은 최소한 영역 내에서 수키로 미터 떨어진 지역이어야 했다.

또한 건설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한 곳에 오래 머문 몬스터를 처리해서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으며, [기사]칭호를 얻은 가신 세 명이 일주일이나 머물러야 했다.

그 이후로도 [기사]칭호를 얻은 가신이 계속해서 머물러야 했고 말이다.

'너무 비효율적이야!'

그렇게까지 해서 전초기지를 활성화시킬 이유를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어떻게든 전초기지를 활용할 방법에 대해 고심하고 있던 그때, 서예진이 눈을 뜨고는 말했다.

"이제 깨끗해요. 흡혈귀들은 모두 박멸된 것 같아요."

생쥐들의 정찰로 확인을 받은 내가 소통의 반지를 사용해 하동건 파티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귀환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동건 파티가 입구에 결집하는 동안 여전히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김 건을 향해 물었다.

[아파트 내부에 생존자가 있는 것 같던가요?]

까마귀의 얼굴을 한 김 건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지금까지는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창문 대부분이 커튼이 쳐져 있어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집을 들려봐야 할 것 같아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생존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하긴 평범한 사람이 보면 김 건도 몬스터와 다를 바 없어 보일 테니까'

김건을 발견한다고 해도 SOS를 보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겉모습이 평범한 인간과 같은 흡혈귀들은 사람들을 현혹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냥 문 앞에서 물이나 비상식량 따위를 들고 구하러 왔다는 소리를 지껄이면 현관문을 열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은 있을 거다!'

우리 아파트 단지만 해도 끝까지 의심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사람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꽤 됐었으니까.

그들을 위해 구호물자라도 지원해주고 싶었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어떡한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김 건이 부리를 열고 말했다.

"재현님. 누군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동건은 파티를 점검하며 본부로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

흡혈귀들은 분명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놈들의 목숨을 거두는 과정에서 하동건은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놈들이 블랙 오크들과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을 주식으로 삼는 흡혈귀들이 아파트 단지를 거점으로 잡은 이유야 뻔했다.

아파트 단지만큼 인구 밀집도가 높은 곳도 드물었으니까.

놈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꾀어내서 잡아먹었을지 뻔히 보였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자비 없이 놈들의 목숨을 끊어낼 수 있었다.

오히려 놈들을 죽이고 처단하는 것에 작은 희열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군, 나도'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이미 세상은 미쳐 있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미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몬스터 사냥이라'

하동건은 자신의 가슴에 작은 목표가 생겨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싶었다.

마침 운이 좋아 자신은 김재현의 선택을 받았고, 덕분에 분에 넘치는 힘을 받았다.

거기에 자신의 친구들로 구성된 파티는 현재 김재현의 영역 내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힘으로 흡혈귀들을 처단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희망을 마음속에 품게 됐다.

‘재현님과 함께라면 이 세상의 모든 몬스터들을 없애버릴 수 있을 지도....'

몬스터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아파트 단지에 자리 잡은 몬스터들에게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굳은 결심을 가슴에 새기는 순간.

"너희들은 뭐야? 뭔데 이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거야?"

웬 젊은 남자 하나가 싱글거리며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 순간.

[상급 흡혈귀입니다. 조심하세요.]

김재현의 목소리가 하동건 파티에 들려왔고, 동시에 그들의 눈빛이 변했다.

"일어나라!"

제일 먼저 강덩수가 움직였다.

싱글거리는 남자의 앞에 강철의 기사 한 기가 소환되어 할버드를 휘둘렀다.

콰직!

그러나 남자의 발길질에 강철의 기사는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

"무슨?"

강덕수가 소환한 강철의 기사는 저리 쉽게 나가떨어질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저 모습 하나만으로 저 놈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덕수가 소환한 강철의 기사는 한 기가 아니었다.

푸욱!

놈의 뒤에서 소환된 강철의 기사가 할버드의 도끼날을 놈의 오른쪽 어깨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러나 할버드는 몇 센티 파고들지 못했다. 강철의 기사가 휘두르는 할버드는 웬만한 몬스터도 일도양단해버리는데 말이다.

순간.

푸슈슉!

어깨 죽지에서 빠져나온 피의 촉수가 은빛 갑옷을 파고들었다.

그 직후.

쫘아악!

거짓말처럼 갑옷이 찢겨져 나갔다.

하동건 파티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남자의 입이 양쪽으로 찢어졌다.

"재밌네."

< [Episode 15] Ace Party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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