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74화 (74/175)

[Episode 15] Ace Party (5) >

어두운 방 안이었다.

'여긴...?'

한쪽 구석에는 불이라도 피운 것인지 그을린 흔적이 있었고, 다른 곳에는 식량 따위가 모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여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찰팍

"...응?"

차갑고, 약간은 끈적이는 감촉이 발바닥을 타고 뇌리를 뒤흔들었다.

이내 그것이 피라는 것을 눈치 채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보였다.

피라도 빨린 것인지 창백한 피부로 억울한 듯 눈조차 감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생생한 죽음의 현장에 압도되었다.

그때.

"허억!"

시체들이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뒷걸음질 쳤다.

그때 종아리 뒤쪽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뒤돌아보았다.

"흐윽. 흑."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을 대표하는 양하윤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셨어요? 왜 나쁜 사람들을 받아준 거에요?"

"그건.."

무언가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꽉 틀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열기 위해서 안간 힘을 써 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들이 엉엉 울면서 나를 원망했다.

"흐어엉. 아저씨 때문이야.”

"아저씨 때문에 엄마가 죽었어.”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데 갑자기 아이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무표정한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살려주세요. 아저씨는 우리 엄마 살릴 수 있잖아요."

저 아이들이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오언주를 제외하고는 하동건 파티조차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그때.

"재현님."

뒤쪽에서 오언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오언주가 슬픈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번에 말씀하셨죠? 마지막이 아니라고.”

"우리 시우.. 시우가 보고 싶어요.”

나에게 다가온 오언주가 내 어깨를 붙잡으며 애원했다.

"그동안 저, 열심히 했잖아요. 네?"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나를 향해 싸늘한 표정의 오언주가 말을 이었다.

"...돈이 많이 들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 거죠?"

그 직후 오언주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곰의 아가리가 나를 향해 벌려졌다.

눈을 질끈 감았을 때,

"흐흐흑"

나를 압박하던 감각이 사라지고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눈을 뜬 자리에는 물에 젖은 생쥐 꼴로 물에 퉁퉁 불은 시체를 붙잡고 흐느끼는 김가영이 그 자리에 있었다.

눈물범벅인 김가영이 천천히 고개를 올리더니 나를 바라봤다.

"진짜에요? 우리 아빠는 살릴 수 없어요? 왜요?"

서글프게 우는 김가영의 주변으로 하동건, 강덕수, 김 건이 천천히 나를 돌아봤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목숨 걸고 네 가족을 찾아준 우리에게 정말로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느냐.

그렇게 따져 묻는 것 같았다.

그때, 배경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에게 손을 뻗으며 좀비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미 등 뒤에도 사람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중얼중얼 거리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재현님."

"재현님!"

"김재현!"

여기저기서 내 이름이 메아리처럼 맴돌았고, 기어코 거리를 좁힌 사람들의 손이 내게 닿았다.

턱 턱턱

"으윽!"

거친 손길이 온몸을 짓눌러왔다.

그리고 그들의 손길에서부터 격통이 시작되었다.

마치 영역이 늘어날 때의 고통처럼 몸이 터져나갈 것처럼 아파왔다.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악!!!!"

그 직후 꿈에서 깨어났다.

"─아악!"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깨어난 나는 본능적으로 온몸을 더듬었다.

아프지 않았다.

멀쩡했다.

"흡, 흐읍."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이곳이 우리 집 안방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아무래도 서예진이 직접 옮겨주고 간 듯 했다.

덕분에 푹 잘 수 있었다.

'아주 생생한 악몽을 꾸긴 했지만 말이지!'

암막커튼이 쳐져 있는데다 한밤중이어서 그런지 방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꿈에서 보았던 그 광경처럼 말이다.

품위유지 스킬을 사용해 불부터 켰다.

번쩍

방 안이 환해지며 조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욱, 후우."

악몽이야 매일 같이 꾼다지만, 오늘 것은 유달리 리얼했다.

시체를 눈앞에서 본 탓일까.

“그러고 보니 그 시체들은 어째서 남아 있었던 거지?"

어쨌든 그때 당시에는 흡혈귀 놈들도 시민권을 획득한 상황이었다. 내 영역에 들어와 있었으니까.

그런데 놈들이 죽인 시민들의 사체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간 사체는 정산되지 않는 건가? 아니면 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쪽이든 앞으로는 되도록 보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흡혈귀 전용 업적도 만들어두는 편이 좋겠어. 실수로 받아들이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게.

띠링!

[업적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시민권을 가진 이가 흡혈귀가 되었을 경우 그 능력이 극히 제한되고,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얼굴에 표식이 생기도록 해 두었다.

이러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킬 포인트가 3개 생겼다!'

그 중 하나는 어디에 쓸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상점 스킬부터 올리고....'

[집구석 절대자의 상점 스킬이 Lv. 6이 되었습니다.]

[등록 가능한 물품의 개수가 1000개로 늘어났습니다.]

[모든 상품의 가격이 30% 할인됩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대로의 기능이었다.

상점의 경우 짝수 레벨 마다 10%의 할인 효과가 추가로 붙곤 했으니까.

그런데.

['인챈트' 기능이 개방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건설 가능 항목에 '인챈트 공작소'가 추가됩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추가 기능이었다.

'인챈트? 그 인챈트 말하는 건가?'

보아하니 인챈트를 위해서는 인챈트 공작소를 지어야 하는 것 같았다.

'건설 모드'

우우웅—

새롭게 추가된 인챈트 공작소를 짓는 비용은 50억이었다.

인챈트 공작소는 가격에 비해 그다지 커다란 공간이 필요 없었다.

‘매점 바로 옆에 지으면 되겠군'

마침 그곳이 비어 있었다.

김다빈이 나름대로 청소를 했음에도 고블린이 더럽힌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이번에 인챈트 공작소를 지으며 그것들을 정리해버리면 될 듯 싶었다.

'인챈트 공작소 건설'

띠링!

[인챈트 공작소를 설치할 장소를 정해주세요.]

'102호'

[인챈트 공작소 시설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71시간 59분 59초

그때 남은 시간 밑에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버튼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시 완료}

'음?'

처음 보는 기능이었기에 무심코 건드려봤다.

[인챈트 공작소' 시설 건설을 즉시 완료하시겠습니까?]

[해당 시설의 즉시 완료를 위해서는 8개의 크리스탈이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크리스탈 1개당 10시간 정도 건설 시간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현재 나에게 남아 있는 크리스탈은 100개.

크리스탈 300개를 모으면 신기를 뽑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렇게 크리스탈을 낭비할 순 없었다.

'취소'

[즉시 완료를 취소합니다.]

‘그러고 보니 새롭게 늘어난 영역에 미확인 던전이 있는 것 같았는데, 한 번 찾아봐야겠네.'

확실하게 어디라고는 말 못해도 던전이 생겨난 지역은 대충 감이 왔다.

'이번엔 무슨 던전일까'

일전에 던전 공략으로 제법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꽤 기대가 되었다.

'크리스탈 200개만 더 모으면 신기를 하나 더 뽑을 수 있다.'

소통의 반지도 그렇고 왕관도 그렇고 그 기능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었다. 크리스탈은 될 수 있으면 신기 뽑기에만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이 좋을 것이다.

‘이제 남은 스킬 포인트는 두 개'

이것들을 어디에 투자할지는 조금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도 레벨이 올라갈수록 레벨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30레벨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소리였다.

상점 품목을 다 채우고 레벨업을 하지 못하는 답답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스킬 포인트 사용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빠른 레벨업을 위해서는 결국 고레벨 몬스터를 사냥해야만 한다'

자잘한 몬스터들이 주는 경험치도 물론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에 사냥한 상급 흡혈귀와 같은 고레벨 몬스터 한 마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상급 흡혈귀 사냥에 큰 공을 세운 하동건 파티를 생각하니 절로 흐뭇해졌다.

'역시 에이스 파티답다고 해야 하나'

하동건 파티는 복귀하지마자 신고식을 화려하게 치렀다.

흡혈귀들을 소탕하며 수십 억을 벌어줬고, 마지막에 상급 흡혈귀를 잡아내며 무려 360억을 벌어다 주었으니까.

다른 사냥 팀은 한 달을 굴러도 나올까말까 한 실적을 복귀 첫 날에 내다니.

과연 에이스 파티답다고 할 수 있었다.

'보면 운도 좋단 말이지!'

초반부터 나에게 여러 가지를 안겨주었던 축캐 문병호를 제외하고도 하동건 파티는 전체적으로 운이 좋았다.

일단 하동건 파티처럼 고레벨 몬스터와 자주 마주치는 파티가 잘 없었다.

고레벨 몬스터와 마주친다고 해도 그것들을 사냥하거나 몰아붙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파티도 없었고 말이다.

'정산금이나 경험치는 레벨이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니까'

단적으로 레벨 10이하의 고블린 수백 마리 잡는 것과 10레벨 후반대의 오크 한 마리를 잡는 게 엇비슷하다는 것만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경험치의 경우 오크 한 마리가 더 많았다.

이 현상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편이었다.

겨우 1레벨 차이가 수십 억 차이를 낼 정도이다.

'문제는 그 정도 레벨인 몬스터는 극소수인데다, 위험하다는 점이지'

이번에는 하동건 파티의 맹활약 덕분에 상급 흡혈귀를 사냥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많이 위태위태했다.

'상급 흡혈귀가 두 마리였다면 아무리 하동건 파티라고 해도 피해 없이 공략하진 못했겠지'

결국 빠른 레벨업을 위해서는 고레벨 몬스터를 사냥해야만 하는데, 고레벨 몬스터는 그 숫자도 적은데다 사냥에는 큰 리스크를 동반한다.

'앞으로 운 좋게 고레벨 몬스터들이 나와 준다는 보장도 없다'

무리해서 고레벨 몬스터를 찾아다닐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필연적으로 레벨업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스킬 포인트는 일단 남겨두자'

30레벨이 되기 전에 또 다시 상점 슬롯을 다 채우게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절대자의 눈'

습관처럼 절대자의 눈을 킨 나는 제일 먼저 아이들을 맡긴 최형준네를 확인해 봤다.

최나연과 최서연을 비롯한 일곱 명의 아이들이 거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서로 뒤엉켜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들답게 겨우 하루 사이에 꽤나 가까워진 듯 했다.

'그 다음은'

강덕수와 김 건이 살고 있는 바로 밑에 층을 살펴봤다.

하동건 파티에게 내어주었던 이곳은 이제 강덕수와 김 건 두 사람의 차지가 되어 있었다.

문병호의 경우 내가 내어준 다른 세대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고, 유혜린의 경우 오언주와 함께 김다정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르러어엉~ 쿠우우울."

여전히 빈 술병이 굴러다니기는 했지만, 강덕수와 김 건이 술에 취해 잠들어 있지는 않았다.

그 다음은 자연스레 김다정의 집인 2902호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오언주 혼자 깨어 있었다.

그녀는 이제는 고물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으로 시우의 사진을 훑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

거실 소파에서 조용히 사진을 넘겨보는 오언주를 향해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오언주씨.]

화들짝 놀란 오언주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만 올라와 주실 수 있나요?]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현관문을 열어주자 오언주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와 내 질문을 기다렸다.

-이번 흡혈귀 정도면 퀘스트를 걸만 했을 텐데, 어째서 기회를 달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나요?"

"아......."

돌려 말하긴 했지만, 퀘스트라는 말에 오언주는 내가 지금 말하는 주제가 '부활'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잠시 고민하던 오언주가 말을 꺼냈다.

"저는 그 날,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재현님 덕분이죠."

그녀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가영씨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도 보고, 가족을 잃은 동료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다정이의 이야기도 들었고요."

"다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만약 제가 계속해서 시우를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언젠가 분명 문제가 될 것입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니까요. 그로 인해 재현님이 힘들어질 수도 있고, 간신히 안정을 되찾은 지금 이 사회가 혼란스러워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분란의 씨앗이 되길 원치 않아요."

"그건...."

“다들 비슷한 아픔을 끌어안고, 그럼에도 살아가는데, 저 혼자 유별날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렸어요."

오언주는 나를 향해 허리를 숙이더니 웃는 모습으로 말했다.

“저와 시우에게 기적을 내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는 게... 아직도 꿈만 같아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불안정하기만 하던 그때와는 달리, 온화한 표정에서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새삼스럽게 그녀가 나보다 한참 어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어째선지 위로를 받았다는 그녀의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지금 잠에 들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Episode 15] Ace Party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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