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75화 (75/175)

[Episode 16] 폭풍전야 (1)

백승엽은 쌍둥이 형제 문지훈과 문상훈과 함께 고블린 던전을 공략 중이었다.

"캬아아악!"

고블린들이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기겁하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여기 있는 세 사람 모두가 고블린 학살자의 칭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블린들에게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데다 기본급의 10%를 추가로 주는 칭호였다.

그러나 그들이 고블린들을 보고도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칭호의 효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투두두두―

그들의 손에는 인스턴트 던전 공략을 위해 대여한 소총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끼에엑!"

고블린 열댓 마리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던전 안의 고블린을 사냥하는 것은 오히려 안전 구역 바깥에 있는 놈들을 사냥하는 것보다 쉬웠다.

일단 이놈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 해 봐야 무딘 돌칼 정도였기 때문이다.

어느 가정집에서 노획한 것으로 보이는 식칼이나 가위를 들고 덤벼대는 고블린들 보다는 훨씬 덜 위협적이었다.

투두두~!

백승엽은 동굴을 울리는 총성에 눈살을 찌푸렸다. 귀마개가 있긴 했지만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총성에 고막이 먹먹했기 때문이다.

총을 맞고 쓰러진 고블린들을 확인사살 하고 있던 중이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소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드디어 오십 마리 다 잡은 건가'

이제는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퀘스트를 완료한 백승엽이 기지개를 켰다.

그때 마지막 고블린 시체가 사라지며 허공에 던전 출구가 나타났다.

그것을 확인한 백승엽이 일행을 향해 물었다.

“다들 얼마나 남았어?"

"열 마리 정도?~"

"미투~"

두 사람은 마흔 마리만 사냥하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승엽이 먼저 퀘스트를 완료해낸 것이다.

그들의 대답에 백승엽이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 던전은 너네끼리 가라. 이 형님은 먼저 퇴근한다."

그러자 문지훈이 부탁했다.

"야. 같이 좀 가줘라."

“흐흐. 어휴. 너희는 이 형님이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자립심을 키워, 자립심을.”

문지훈이 굳이 그에게 남아달라고 부탁한 것은 던전 최소 공략 인원이 세 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백승엽이 떠나면 곤란했다.

백승엽의 태도는 아니꼬왔지만, 문지훈은 꾹 참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하. 그래, 친구야. 우리가 너 없으면 어떻게 이 위험한 곳에 들어오겠어."

"인정~"

문지훈과 문상훈이 이렇게까지 백승엽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퀘스트 페널티 때문이었다.

예전에 도심에 거인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도망치는 선택을 했다. 그 대가로 계속해서 고블린 사냥 퀘스트를 강제 받게 되었다.

그 퀘스트를 시간 내에 클리어하지 못 했을 때에 찾아오는 1분 동안의 극심한 고통.

'그건 진짜 지옥이 따로 없었지'

던전이 나타나고 나서는 거의 겪은 적 없었지만, 예전에 주변 고블린들의 씨가 말랐던 시절에는 자주 겪었던 고통이었다.

해당 페널티를 겪게 되면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야'

던전이라는 것이 생겨난 뒤에는 거의 겪을 일 없는 고통이었다.

예전보다 잡아야 하는 고블린 숫자가 늘어나긴 했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 없었다.

던전에서는 한 번에 백 여 마리나 되는 고블린들이 쏟아져 나왔고, 총이 있는 이상 고블린 사냥의 난이도는 굉장히 쉬운 편이었다.

동굴 전체를 울리는 총성만 참으면 어려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백승엽이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래, 뭐. 내가 없으면 너희도 많이 불안할 테니, 어울려 주도록 할까."

문지훈은 표정이 썩어 들어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대꾸했다.

"고마워, 승엽아."

쌍둥이 형제가 백승엽의 행패를 참아주는 것은 단순히 던전 최소 공략 인원 때문만은 아니었다.

던전이 없던 시절, 그러니까 총을 대여 받을 수 없었던 시절에 백승엽의 도움을 꽤 많이 받았었다. 조잡한 창을 들고 고블린들과 백병전을 벌여야 했던 그 시절에는 백승엽이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었었다.

'그러니까 내가 참아야지!'

그때 도와줬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거들먹거림 정도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출구를 통해 던전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앞에서 대기 중이던 담당 직원에게 다가갔다. 원래라면 총기와 헤드랜턴 등의 장비를 반납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바로 재공략 가능할까요?"

던전 공략 일정은 한 시간 단위로 잡는 편인데 일반적인 파티가 던전 공략에 걸리는 시간이 40분에서 50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겹도록 고블린 사냥을 해 온 백승엽 팀은 2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던전을 공략해 버렸다.

덕분에 이런 제안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었기에 직원은 익숙하게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장비를 점검하고 여분의 탄창에 실탄을 가득 채우는 등의 재정비 이후에 곧바로 다시 던전에 투입되었다.

“가자.”

다시 던전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이번에도 20여 분 만에 공략을 마치고 나왔다.

담당 직원에게 총기와 장비를 반납한 그들은 내일 공략 예약을 확인한 뒤 갈라졌다.

"그럼 내일 보자.”

“그래.”

"오케~"

집에 가기 전 문지훈이 문상훈에게 물었다.

"뭐 좀 사갈까?"

"음~ 고기~?"

"고기 좋지. 오늘 저녁은 고기 구워 먹자."

1층 매점을 찾은 그들은 술과 고기 말고도 무언가 살 게 없나 기웃거렸다.

매일매일 고블린 사냥을 강제받는 만큼 그들의 경제 상황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굉장히 여유로운 편이었다. 고블린 한 마리에서 나오는 돈이 5천원에서 6천 원 정도이고, 두 사람이 하루에 100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잡는다.

그들이 하루에 벌어들이는 금액만 50만원이 넘어가는 것이다.

던전 공략에 들어가는 장비 대여와 실탄 소모비용을 빼더라도 한 사람당 20만원이 넘는 순수익을 가져가는 셈이다.

덕분에 돈 쓸 때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술과 고기와 함께 콜라와 과자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도착한 그들을 어머님께서 환대해 주셨다.

"우리 아들들 왔어? 오늘은 또 뭘 그렇게 사왔대?"

"고기 사왔어."

"고기 구워 먹자~!"

장 봐온 것들을 정리한 문지훈은 곧바로 안방에 있는 샤워실로 가 따뜻한 물을 맞았다.

"후우. 살 것 같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거실 쪽에 있는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수건으로 대충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문을 열자 욕조 안에서 물을 맞고 있는 문상훈의 모습이 보였다.

"또 목욕이냐?"

"기분 좋잖아~"

"어쨌든 오늘도 고생했다."

"너도~."

따지고 보면 문지훈이 형이긴 했지만 두 사람은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친구처럼 지내왔기 때문이다.

문지훈은 컴퓨터 의자에 앉아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하늘이 예쁘네'

문지훈은 요즘 들어 가끔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예전보다 지금이 더 좋은 거 아닐까.

몬스터가 세상에 나타나고 잠시 힘들어지긴 했다.

당장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물과 식량이 사라져가기만 하는 극한의 상황은 기억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재현이라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안전지대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그것을 이용해 고블린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그 실적을 인정받아 전기, 수도, 가스를 쓸 수 있게 된 이후부터는 일상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퀘스트 페널티 때문에 잠시 힘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던전이 생겨나고 총을 사용해 고블린 사냥을 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솔직히 너무 편했다.

'적어도 그때보단 낫다.'

지잡대를 졸업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중소기업을 다니던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희망이 안 보였었는데'

하루를 산다기보다는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생동감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대로만 이어졌으면...'

문득 이 평화를 가져다 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이런 평화를 꿈 꿀 수는 없었겠지'

문지훈은 지금 이 안정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를 떠올리며 진심을 담아 기도 올렸다.

'부디 이 평화가 계속해서 지속되기를'

그 순간.

우우웅—

"...어?"

문지훈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와 함께 온몸에 에너지가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빛이 잠잠해지고 나서 문지훈은 멍하니 혼잣말 했다.

---

"뭐였지?"

그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원한 것과는 다르게, 앞으로 그의 미래에는 스펙타클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시민 문지훈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문지훈이 가신으로 등록됩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서예진과 함께 그녀가 만들어준 오일 파스타를 먹고 있던 그때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문지훈이 누구였더라?'

아무런 전조도 없이 혼자서 충성도 100을 찍어버린 위인이 누구일까 한참 생각하던 나는 기억 속에서 문지훈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백승엽이라는 양아치 옆에 붙어 다니던 쌍둥이 중 하나였다.

시스템을 통해 매일매일 고블린 사냥 퀘스트가 부여되도록 조치해 놓은 놈들 중 하나였다.

예전에 싸이클롭스를 사냥할 때 멋대로 도망친 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충성도 100을 찍었다고?'

황당해하고 있는 사이 서예진이 나를 불렀다.

"오빠. 왜 그래? 맛이 이상해?"

"으응?"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예진을 향해 설명해주었다.

"그런 거 아니고, 잠시 일이 생겨서, 예진아 잠시만."

"응. 천천히 해요."

충성도 100은 쉽사리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 이상까지는 나와의 접촉만으로도 충성도와 신뢰도가 빠르게 상승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충성도를 올리는 일이 힘들어진다.

특히 충성도 100은 어떤 특별한 이벤트라도 있지 않은 이상 나오기 힘든 수치였다.

'가신 관리, 문지훈'

곧바로 그의 스펙을 확인해 봤다.

이름 : 문지훈 (Lv. 30) [+]

칭호 : [스물한 번째 종] [고블린 학살자]

신뢰도 : 89 충성도 : 100

각성 능력 : 냉기 발산

경험치 분배율 : 0% (+200%)

★퀘스트 부여」

냉기 발산 (A 등급)

정신력을 소모하여 사방으로 냉기를 발산한다.

정확히 어떤 기능인지는 그가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봐야하겠지만, A등급인 것만 봐도 괜찮은 능력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절대자의 눈'

문지훈은 이제 막 샤워를 하고 나온 것인지 발가벗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매일 주어지는 고블린 사냥 퀘스트는 이미 완료한 것인지 부여되어 있는 퀘스트가 없었다.

'잘 됐네!'

곧바로 능력을 사용하라는 퀘스트를 부여해봤다.

퀘스트를 부여하자마자.

"뭐, 뭐야? 이게 왜...?"

기겁하며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는 문지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방금 받은 퀘스트가 고블린 사냥 퀘스트라고 착각한 듯 했다.

그런 그를 향해 소통의 반지를 사용했다.

[안녕하세요, 문지훈씨.]

"히익!"

문지훈은 갑자기 들려온 내 목소리에 당황했고, 그 덕에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그런 그를 향해 태연하게 말했다.

[퀘스트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세요.]

"어... 호, 혹시 그분이십니까?"

[그분?]

순간적으로 상급 흡혈귀 놈이 말했던 '그분'이 떠올랐다.

내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하자 문지훈이 더듬거리며 추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30층에 계신 분...! 죄, 죄송합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알몸으로 허리를 숙이는 그를 향해 말했다.

[퀘스트 내용을 확인해주세요.]

"네, 넵!"

문지훈은 퀘스트 창을 확인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냉기 발산...?"

그 순간.

쩌저저적

그의 몸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얼음 덩어리들이 솟아올랐다.

이내 그가 있던 방안에 한기가 가득 차오르며 사방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어엇?"

그 모습을 본 나는 결심할 수 있었다.

'역시 고블린 사냥으로 썩히기에는 아까운 능력이야!'

[Episode 16] 폭풍전야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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