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76화 (76/175)

[Episode 16] 폭풍전야 (2)

멍하니 얼어붙은 벽을 바라보는 문지훈을 향해 말했다.

[문지훈씨 파티원들 소집해서 30층으로 올라오세요.]

[문지훈씨?]

"아, 예, 예! 뭐, 뭐라고 말씀 하셨죠?"

[파티원들 소집해서 30층으로 올라와주세요. 잠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문지훈을 부른 뒤 식사를 마무리했다.

"잘 먹었어."

“맛있었어?”

"응. 엄청"

"헤헤."

사용한 식기들을 식기 세척기 안에 넣고 돌려놓은 다음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까미가 내 무릎 위를 차지했고, 나는 그런 까미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삐이

기분 좋은 듯 늘어지는 까미를 보고는 살짝 미소 짓자 서예진이 내 옆에 앉았다.

"까미가 요새 영 힘이 없는 거 같아. 해가 짧아져서 그런가."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얘는 원래부터 이랬어.”

내가 기억하는 까미의 모습은 대부분 햇살 아래에 쓰러져 나른한 표정으로 일광욕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오빠, 영화 볼래?"

"영화?"

"응. 노트북이라고 옛날 영화야."

"어디서 구했대?"

"몰라. 팔던데? 짜잔!"

서예진은 USB를 자랑스럽게 꺼내 보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잠시만 기다려, 오빠!"

"그래."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간 서예진은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요새 저런 게 많이 나오네'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드라마, 유튜브 영상, 소설, 만화, 음악 등등.

다양한 컨텐츠들이 시민들 사이에서 거래가 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것들 중 대부분은 불법 다운로드를 받은 파일일 것이다.

혹여나 정당하게 돈을 주고 구입한 컨텐츠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대가를 받고 공유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망해버린 지금,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

오히려 불법 다운로더들이 인류의 다양한 컨텐츠 유산을 지켜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시민들 사이에서는 영상의 교환이나 직접 돈을 받고 파는 사람들도 꽤 존재했다.

신기한 것은 시민들 사이의 자잘한 거래는 대부분 '현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민들도 지갑에 있는 돈을 거래하는 것이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시민들에게 돈을 줄 때처럼 '수수료'가 발생한다.

10%나 되는 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서 개인간의 거래는 대부분 현금을 사용하곤 했다.

이것 때문에 2주쯤 전에 주변 현금인출기를 박살내거나 빈집을 찾아다니며 현금을 구해오는 시민들까지 생겼었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트레저헌터'라고 불렀다.

‘꽤 도움이 됐었지.'

일단 트레저헌터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것만 해도 반가운 일이었다.

경제활동인구 스킬과 몬스터 사냥만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구해온 현금덕분에 현금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여러 가지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져온 현금이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의 가짓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주었던 것이다.

길가에 버려진 차 중에 괜찮은 차를 찾아내어 되파는 중고차 딜러들도 생겨났고, 다양한 음식을 파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서예진이 사온 영화처럼 컨텐츠를 파는 이들도 생겨났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정도로 현금 거래가 활성화되었냐 하면, 몬스터 사냥으로 먹고사는 일부 사람들 중에는 매점에서 상품을 구매한 후 현금을 받고 상품을 되팔거나 수수료 10%를 감수하고 현금을 사들이는 사람들까지도 나타났을 정도였다.

현금이 아니면 아예 거래가 안 되는 상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나도 어떻게 보면 트레저헌터였다고 할 수 있나'

물론 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스케일이 조금 달랐다.

그들이 힘들게 현금인출기를 박살내거나 빈집의 문을 따서 현금을 구하는 동안 나는 은행 금고를 털었다.

절대자의 눈과 절대자의 창고를 활용하여 은행에 있는 현금을 싸그리 털어왔다.

덕분에 지금도 우리 집의 작은 방에는 현찰이 가득 쌓여 있었다.

한참 딴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였다.

투둑 툭!

주방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팝콘 향이 집 안에 퍼져나갔다.

"팝콘?"

“응. 맛있겠지?"

"냄새는 일단 합격이네"

한동안 타닥거리더니 서예진은 대야 한 가득 팝콘을 담아 왔다.

"짜잔!"

하나 집어먹어 보니 짭짤하게 맛있게 만들어졌다.

"잘 만들었네."

"이 정돈 기본이지!"

서예진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거실 TV에 USB를 꽂았다.

불을 끄고 나니 완벽한 영화 감상실이 완성이 되었다.

식기 세척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그리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까미는 초롱초롱한 얼굴이 되어 티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예진이 손등으로 까미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재밌겠다. 그치, 까미야?"

뻽!

까미가 에너지가 넘치게 변하는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절대자의 눈'

절대자의 눈으로 확인해보니 문지훈과 문상훈 그리고 백승엽까지 모여서 이곳으로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문지훈씨. 죄송한데 내일 아침 일찍 오실 수 있겠습니까?]

"엇 네?"

[제가 급한 일이 생겨서요.]

"아,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찾아뵙겠습니다.”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영화에 몰입해 있는 서예진과 까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화롭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동시에 절대자의 눈을 운용해 영역 전체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잘 정비된 도로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부서진 곳이나 버려진 차량 없이 과거 세상이 바뀌기 전만큼은 아니지만 소수의 차량이 운행되고 있었다. 또한, 신호등과 같은 교통시설도 정상적으로 운행되는 중이었다.

'전부 수복 스킬 덕분이지'

집구석 절대자의 집구석 수복 스킬은 잘 사용하지 않던 스킬이었다.

돈 들어갈 곳이 차고 넘치는 데 굳이 돈을 들여서 박살난 창문이나 집을 고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까미가 변신하며 박살내었던 창문을 고치는 것과 김다정이 살고 있는 2902호의 문을 박살냈던 것을 고칠 때 말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스킬이었다.

싸이클롭스가 박살낸 곳에는 건설 기능을 사용해 태양광 발전 시설이나 헬스장을 만들어버렸다.

그러면 자잘한 쓰레기나 무너진 건물을 고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로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박살난 도로를 수복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앞으로 쭉 사용하게 될 스킬이란 것을 깨달은 직후 2개 남아 있던 스킬 포인트 중 하나를 수복 스킬에 투자했었다.

'그랬더니 대박이 났지'

집구석 수복 스킬이 레벨2가 되면서 '토용 제작'이라는 기능이 새롭게 생겨났는데, 이게 대박이었다.

마침 절대자의 눈 시야에 한창 수복 공사가 진행 중인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열심히 일하고 있네'

싸이클롭스가 만들어낸 발자국이 커다랗게 찍혀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토용(土俑)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쿠구구구ᅳ

토용이들이 박살난 콘크리트에 손을 뻗으면 천천히 수복되며 예전 모습을 되찾아나갔다.

'확실히 비싼 값을 한단 말이지!'

한 마리당 무려 3억.

하지만 그 성능이 워낙 마음에 들어서 최대치인 30마리를 모두 채웠다.

100억이라는 거금이 들긴 했지만, 지난 한 달간 토용이들이 수복시킨 도로들에 수복 스킬을 사용했다면 그 몇 배가 들었을 것이다.

'수복 스킬을 올리길 잘 했어!'

스킬 레벨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또 한 번 경험했지만, 나는 마지막 스킬 포인트 하나를 쉽사리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킬 포인트를 사용할 곳은 많았다.

매번 매력적인 기능이 생겨났던 품위 유지도 좋았고, 한계가 200kg인 창고의 한계를 늘리고 싶기도 했다.

더불어 거의 매일 사용하는 스킬인 절대자의 눈도 끌렸고, 보이지 않는 손, 건강, 절대자의 문까지.

모든 스킬이 레벨을 올릴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마지막 스킬 포인트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직도 레벨이 25다'

한 달 전, 상급 흡혈귀를 잡고 레벨 25가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레벨업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필요 경험치가 급격하게 올라간 기분이야!'

상급 흡혈귀처럼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사냥하진 못했지만, 충분히 많은 몬스터들을 잡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동건 파티가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해주면서 개수 제한이 30개로 늘어난 고블린 인던에서도 꾸준한 사냥이 이루어졌고, 공략 횟수가 다 해서 사라지면 곧바로 새로운 인던을 만들어주곤 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는 건가'

새로운 스킬 포인트를 얻기 위해서는 30레벨을 찍어야만 했다.

그런데 26레벨 가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30레벨은 더욱 힘들 것이다.

당연히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소리였다.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도 상당히 줄어든 상태이기도 하니'

하동건 파티를 비롯한 수많은 사냥 팀들의 활약 덕분에 이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의 씨가 말랐다.

이제는 몬스터 사냥을 위해서는 상당히 먼 거리까지 가야해서 차로 이동하는 게 기본이 됐을 정도였다.

'다른 곳에 사냥 포인트를 만들어야 해'

몬스터가 풍부한 지역을 찾아서 그곳에 전초기지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전초기지만 만들어지면 절대자의 문 스킬로 통행이 가능해지니까'

더불어 다른 지역에는 고렙 몬스터들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급 흡혈귀 수준만 되는 놈들이 몇 마리만 있었어도 금세 30레벨을 찍었을 텐데'

그러나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고렙 몬스터들이 무더기로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이때까지는 말이다.

"우으윽"

한 손에 목이 붙들린 채로 공중에 떠 있는 남자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

날카롭게 뻗은 손톱으로 자신의 목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손을 마구 긁어봤지만, 헛수고였다.

“이봐. 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우으으그! 크아악!"

“그렇군. 이 상태로는 말을 못 하겠어.”

그가 손가락에 힘을 풀어주자 바닥에 떨어진 남자는 다급하게 숨을 들이쉬었다.

"흐으으읍! 후욱, 훅"

숨을 헐떡거리며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목을 조르던 괴물은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2m가 넘어갈 것 같은 신장에 돌덩이처럼 단단한 근육이 전신에 알알이 박혀 있었다.

몸만 보면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크에 가깝게 보였다.

괴물이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김준호입니다. 후욱."

다분히 반항적인 눈빛을 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김준호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뱉었다.

“그래. 너 정영훈이 알고 있지?”

"!!"

김준호의 반응을 보며 괴물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 그 나대는 거 좋아하는 병신 새끼 말이야."

김준호는 이를 드러내며 놈을 향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

"그 새끼가 보내서 온 겁니까?"

"뭐?"

괴물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내가 그 멍청한 새끼 밑으로 보이나?"

불쾌함이 짙게 드러나는 표정을 유지한 채로 괴물이 중얼거렸다.

"쭛. 그 새끼가 죽었다는 것도 모르는 걸 보면, 어디로 가서 뒈졌는지도 모르나보군."

"주, 죽었다고요?! 그자식이?"

괴물은 흥미를 잃은 얼굴이 되어 대꾸 없이 손을 휘둘렀다.

퍼석!

순식간에 김준호의 머리가 날아갔다.

머리 잃은 시체가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괴물은 김준호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울컥울컥

김준호의 모든 생명력이 모여든 핏덩어리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이후 놈이 천천히 입을 벌리자 어둠속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송곳니가 잠시 보였다.

촤아아악!

생명력이 깃든 피가 놈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고, 식사를 마친 거구의 남자는 천천히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곳에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흡혈귀 수십 마리의 시체가 그곳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아직 꿈틀거리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던 것들이 존재했다.

놈은 천천히 그것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김준호에게 그랬던 것처럼 손을 뻗었다.

울컥울컥

생명력이 깃든 피의 구체가 솟아오르더니, 다시 그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흠."

잠시 입맛을 다시던 거구의 남자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투덜거렸다.

"이 빌어 쳐 먹을 새끼는 도대체 어디서 뒈진 거야?"

[Episode 16] 폭풍전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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