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77화 (77/175)

[Episode 16] 폭풍전야 (3)

문지훈은 아직도 얼떨떨했다.

'소문이 진짜일 줄이야'

신비한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시민들 사이에서도 제법 유명했다.

그분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초능력을 얻게 된다는 소문은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초능력의 존재가 일파만파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단연코 '의료팀'의 존재 때문이었다. 직접 이능력을 사용하며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다.

문지훈의 경우는 그 기적을 직접 체험한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다정님처럼 그 분의 선택을 받게 될 줄이야!'

던전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전, 문지훈은 안전 구역 밖의 고블린들과 목숨을 건 사투를 매일같이 벌였다.

고블린들은 약했지만, 떼로 몰려다니는 놈들을 조잡한 무기를 들고 사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안전지대를 잘 활용한다고 해도 위험한 순간은 찾아올 수밖에 없었고, 고블린에게 칼을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근처 의료팀으로 후송 된 이후 응급실에서 처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운이 좋았던 그는 마침 그곳에 있던 김다정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초록빛 기운을 내뿜더니 순식간에 상처를 치유해 버렸다.

등에 꼽혀 있던 칼을 뽑을 때에도 통증 한 번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간질간질한 감각과 함께 상처가 사라져 버렸다.

그 신비로운 기적을 몸소 체험했던 문지훈은 별안간 이 거대한 공간을 안전지대로 만들어버린 존재에 대해 제대로 자각할 수 있었다.

딱 한 번 얼굴을 마주했던 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거대한 안전지대를 만든 것도 모자라 정말로 소문처럼 저런 능력자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비로소 그때 거인이 등장했을 때, 백승엽과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도망쳤던 일이 진심으로 후회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쳐버린 자신은 이제 그의 선택을 받지 못하리라고 여겼으니까.

'그런데 내게도 기회를 주셨다.'

문지훈은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힘을 사용했다.

쩌저적

손바닥 주위로 한기가 퍼져나가며 얼음 결정들이 얼어붙어갔다.

'이 힘만 있으면 고블린 던전 정도는 혼자서도 클리어 가능하다.'

총이 없어도 혼자서 고블린들을 압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동시에 감사했다.

'내가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것을 그분께서 알아주신 거야!'

솔직히 기뻤다.

자신의 속죄와 참회의 마음을 그분께서도 알아주셨다는 의미였으니까.

'이건 기회야'

그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분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분께 깊은 인상을 남겨주는 거야. 문지훈, 넌 할 수 있어!'

그의 방 창문을 통해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날이 밝은 것이다.

‘아침 일찍이라고 하셨으니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군'

문지훈은 밤을 꼴딱 샌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머릿속에서 엔돌핀이 계속해서 솟구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동생의 방을 열어젖힌 다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상훈아."

"으음?"

"일어나. 이제 준비해야지."

속옷 차림의 문상훈은 비몽사몽한 눈빛으로 문지훈을 바라보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몇 신데?"

“일어나서 샤워하고 갈 준비해야 돼. 얼른.”

문지훈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문상훈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다른 기능은 불구가 되어버렸지만, 시계 역할 하나는 기가 막히게 수행하는 기기였다.

"...아 뭐야. 일곱시잖아. 더 잘래.”

이미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문지훈은 이불을 걷어버리고 냉기를 내뿜는 자신의 손을 문상훈의 등에 집어넣었다.

"아악!"

"이래도 안 일어나? 이래도?"

“그, 그만! 아, 알았어, 일어날게! 일어나면 되잖아!"

그를 강제로 깨워 샤워실로 보낸 문지훈은 곧바로 백승엽의 집까지 찾아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밖으로 나온 것은 백승엽이 아닌 그의 동생, 백승민이었다.

"....지훈이형?"

"오랜만이다, 승민아."

문지훈은 훈훈한 미소로 그를 바라봤다.

백승민은 그와는 달리 거인이 나타났을 때, 용기를 내어 기회를 거머쥔 사람이었다.

그분께 인정을 받아 권총을 소유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고, 나중에는 구호팀을 이끌게 되기까지 했다.

보아하니 지금도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던 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너보다 먼저 그분의 선택을 받았지'

그가 알기로 백승민은 이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승리자가 된 느낌이었다.

"형은?"

"아직 자고 있어요."

"좀 깨워줄래? 그분께서 우리를 아침 일찍 호출하셨거든."

"그분이요?"

문지훈이 검지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대기 층에 계시는 그분 말이야."

"아아. 재현님이요?"

“그분 이름이 재현님이셔?"

"네. 김재현님이세요."

"그렇구나."

문지훈은 다시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김재현이라는 이름을 속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때 백승민이 실소를 내뱉으며 말했다.

"와 근데 이 새끼는 재현님 호출인데도 아직까지 쳐 자고 있었단 말이네요?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오라고 좀 전해줄래?”

"알겠어요."

“고맙다.”

백승민의 일처리는 아주 확실했다.

덕분에 30분 뒤, 세 사람은 백승엽의 집 앞에서 모일 수 있었다.

백승엽이 하품을 크게 하며 불평했다.

"하암. 그 새끼는 무슨 사람을 아침 댓바람부터 오라가라하냐. 지가 뭔데—"

그 순간.

"야."

문지훈이 백승엽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는 살벌한 기세로 백승엽을 향해 충고했다.

"입 조심해."

보통 때라면 그냥 넘겼을 말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저 말이 거슬려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문지훈은 각성 당시를 떠올렸다.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김재현의 시선을 느꼈다.

대화의 흐름이 그의 상황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김재현이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런 발언은 용납할 수 없었다.

"...뭐?"

이런 격한 반응이 처음이었기에 백승엽은 당황스러워 하며 말을 이었다.

“너 지금 뭐라고 그랬냐?"

"입 조심 하라고.”

"이 새끼가...!"

백승엽이 주먹을 꽉 쥐는 순간 문상훈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었다.

"에이~. 방금 자고 일어나서 둘 다 예민하네~. 그만하고 올라가자~!"

문상훈의 너스레에 화를 가라앉힌 백승엽이 문지훈을 향해 으르렁 거리듯이 말했다.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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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두 사람의 팽팽한 긴장감은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띵—

[30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김재현이 있는 3002호의 벨을 누르려던 찰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현관문이 열렸다.

문지훈은 김재현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백승엽은 그런 문지훈의 모습을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파티 분위기가 대충 어떤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나 보군'

꽤 오랫동안 합을 맞춰 왔으니 사이가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던 듯 했다.

'이러면 굳이 세 명 전부를 뭉쳐 놓을 필요는 없지!'

문지훈의 솔직한 심정이 듣고 싶었다.

나는 아직도 허리를 숙이고 있는 문지훈을 향해 말했다.

"지훈씨만 안으로 들어오세요."

"예."

어차피 가신 등록이 되지 않은 문상훈과 백승엽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신발들이 놓여 있는 현관까지였기에 더 들어올 수 없었다.

“두 분은 잠시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네엡~"

"...네."

문지훈을 데리고 거실까지 이동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저들과 계속 파티를 이어나갈 생각이십니까?"

오늘 문지훈을 여기로 부른 것은 그의 능력이 고블린 사냥으로 썩히기에는 아깝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종속의 계약을 맺어 [기사] 칭호를 얻게 해주어 스펙을 강화시키고, 원한다면 함께하는 다른 두 명과도 종속의 계약을 맺어 힘을 실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파티의 분위기가 그리 화합적이지 않다면 굳이 종속의 계약까지 써가며 힘을 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문지훈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재현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젓고는 말했다.

"지훈씨의 솔직한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백승엽과는 그다지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데려가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문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훈씨에게 제안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종속의 계약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그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문지훈의 대답은 간결했다.

"영광입니다!"

곧바로 종속의 계약을 받아들인 그는 기사로 승격되며 [마법사]칭호를 추가로 얻었고, 냉기 폭발이라는 부가 능력이 생겨났다. 레벨은 그대로 30이었지만, 충분히 강력해 보이는 능력이었다.

'준수하군'

문지훈은 이준혁의 팀에 합류시킬 생각이었다.

'물을 다루는 이준혁의 힘과 냉기를 다루는 문지훈의 힘은 분명 시너지 효과가 클 거다.'

잘만하면 하동건 파티와 같은 에이스 파티를 하나 더 조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속의 계약을 마치고 문상훈과 백승엽이 기다리고 있는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퀘스트에서 해방시켜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백승엽이 화색이 되어 물었다.

"저, 정말입니까?”

"네. 문지훈씨 덕분이니 감사하게 생각하도록 하세요."

곧바로 표정이 굳어버리는 백승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 알기 쉽네. 사람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이긴 했지만, 거짓으로 치장하고 가면을 쓰는 사람들 보단 나았다.

그들 보다는 훨씬 다루기 쉬웠으니까.

"싸이클롭스가 나타났을 때 여러분들이 도망쳤다는 것은 알고 계실 겁니다. 퀘스트는 그에 대한 벌이었고요."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지금처럼 가벼운 처벌로 끝나지 않을 것이니 명심해 주십시오."

떨떠름한 표정의 백승엽을 향해 말했다.

"백승엽씨는 이제 내려가주세요."

"네? 저만요?"

"네. 다른 분들과는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서요.”

"알겠습니다."

백승엽을 떠나보낸 뒤 문상훈에게 마찬가지로 종속의 계약에 대해 설명했다.

"저야 너무 좋죠~"

문상훈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과연 어떻게 될까?'

이것은 일종의 실험이었다.

‘만약에 정말로 유전자에 따라 각성 능력이 결정되는 거라면'

지금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제게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해주세요."

"넵~"

우우웅

계약을 끝내고 확인한 문상훈의 각성 능력에는 문지훈과 똑같은 '냉기 폭발'이라는 능력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렇군'

충성도를 확인해보니 문상훈도 가신 등록의 조건은 한참 초월해 있는 상태였다.

'가신 등록, 문상훈'

빛과 함께 문지훈과 똑같은 능력을 가진 가신 하나가 탄생했다.

그때였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집구석 근처에 접근하였습니다.]

[시민권을 제의하시겠습니까?]

새롭게 합류하는 시민들의 정보를 일일이 확인해 보던 찰나였다.

'각성자?'

새로운 각성자가 합류했다.

'일단 시민권 부여 해!'

그들이 시민권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시민의 숫자가 50,000명에 도달했습니다.]

[시민들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함에 따라 '거래소'가 개방됩니다.]

[Episode 16] 폭풍전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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