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81화 (82/175)

<[Episode 17] 전초전 (3) >

'병호야, 나이스'

지금까지 수많은 일일퀘스트 보상을 받아봤지만, 스킬 포인트를 받은 적은 지금 것까지 합쳐서 딱 두 번이었다.

'그때도 병호였었지.'

한 번 축캐는 영원한 축캐인 걸까.

종속의 계약으로 투명화 스킬을 얻은 뒤로 존재감마저 투명해지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매력 어필을 할 줄이야.

문병호 덕분에 얻은 공짜 스킬 포인트를 사용할 생각에 싱글거리고 있자 서예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왜 그래요, 오빠?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음. 로또 걸렸어.”

"로또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예진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그만큼 좋은 일이 생겼다는 말이야."

사실상 하나 남아 있던 스킬 포인트는 상점 스킬을 올릴 생각으로 남겨둔 상태였다.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30레벨이 되기 전에 상점 슬롯을 전부 다 채울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스킬 포인트를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해보지 못했다.

스킬창을 보며 생각했다.

'무난한 것은 역시 품위 유지 스킬인데...'

가신 등록, 환수 소환, 신기 뽑기 등등,

모든 신박한 기능이 품위 유지 스킬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지 기대가 되는 스킬이었다.

'창고 스킬을 올릴까?'

요즘따라 창고의 용량인 200kg도 턱없이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창고에 보관하는 순간의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보존해주는 '현상 유지'기능 덕분에 이제는 창고보다도 전투에서 자주 써먹는 스킬이었다.

이번 상급 흡혈귀와의 전투에서도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탄두를 놈의 눈앞에서 소환해서 두 눈을 앗아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엄청 도움이 된단 말이지.'

그 다음 후보는 창고 스킬과 더불어 내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스킬, 절대자의 눈 스킬이었다.

'이젠 없어서는 안 될 스킬이지.'

절대자의 눈만큼 다방면에서 사용되는 스킬도 없을 것이다.

이제는 다중시야도 적응되어 서너 개 정도는 부담 없이 늘릴 수 있었으며, 최대 일곱 개 까지도 시야를 늘리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딱히 스킬 레벨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레벨을 올리면 무언가 신박한 기능이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기능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레벨을 올릴 이유는 없었다.

그 다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집구석 절대자의 건강'이었다.

혹시 이걸 올리면 레벨업 때의 고통이 조금 줄어들까?

잠시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 고개를 저었다.

'너무 도박이야'

괜히 레벨을 올렸다가 평범하게 '재생력 증가' 같은 게 나와 버리면 낭패였다.

나는 이미 오언주의 스킬인 '태고의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오언주의 신뢰도가 100을 찍으며 얻은 스킬로, 상처가 생기면 재생력을 급격히 증가시켜주는 스킬이었다.

'거기에 페어리의 능력도 있지.'

세계수가 있는 본가에 소환시켜둔 환수로, 레벨업 할 때마다 영역 내에서의 자연 회복율을 크게 증가시켜 주었다.

벌써 페어리의 레벨이 9까지 올라 900%의 효율을 발휘하고 있었다.

자잘한 상처는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나서,

'나는 다칠 일이 없다.'

애초에 안전한 집구석 영역에서 나가지 못하는 몸이었다.

행여 제갈성규의 경우처럼 우연찮게 흡혈귀나 몬스터 따위가 영역 내에 들어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내게 적대심을 품는 순간, 머리가 펑하고 터지며 상황이 종료될 것이다.

'아무리 공짜로 얻은 스킬 포인트라고 해도 이렇게 낭비할 수는 없지.'

그 뒤로도 보이지 않는 손, 집구석 수복, 절대자의 문까지.

모든 스킬의 기능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보며 어떤 스킬에 포인트를 투자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은.

'역시 무난한 게 제일이지.'

[정말로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을 올리시겠습니까?]

"그래."

우웅!

황금빛을 뿜어내며 스킬창이 점멸했고,

[집구석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이 Lv. 6이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응?"

나는 그것의 이름을 보고 두 눈을 깜빡였다.

'...실화냐?'

********

2902호에는 하동건 파티와 서예진 그리고 아빠가 함께 했다.

내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놈의 움직임을 고려하면 흡혈귀 놈들의 본거지가 울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 템포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최악의 경우 울산 전체가 흡혈귀의 영향력 아래 편입되었을 수 있습니다."

"!!"

내 말을 이해한 이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울산은 공업도시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하던 광역시였다.

만약, 흡혈귀 놈들이 그 사람들을 모두 자양분으로 삼았다면,

"당연히 상급 흡혈귀 또한 더 많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번에 잡았던 상급 흡혈귀가 했던 말을 생각해보면 그들보다 더 급이 높은 존재가 있을 겁니다.”

적어도 상급 흡혈귀가 '그분'이라고 말하며 극존칭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급이 높은 흡혈귀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했다.

이번에 사냥한 상급 흡혈귀는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했었다.

(두 놈...... 아니, 한 놈만 더 데려왔어도 죽는 것은 너희들 쪽이었을 텐데 말이지.)

조직에 포함된 상급 흡혈귀의 숫자가 고작 서너 명이었다면 저런 말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상급 흡혈귀인 그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상당히 무리를 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상급 흡혈귀 세 마리쯤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하동건 파티를 향해 물었다.

"만약에... 상급 흡혈귀가 두 마리 이상 나타난다면 상대할 자신이 있으신가요?"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하동건이 대답했다.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돈지랄을 하면 가능하다.'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는 그들은 돈을 들여서 인위적인 레벨업이 가능했으니까.

하동건 파티의 레벨을 상급 흡혈귀와 같은 수준인 50레벨까지 끌어올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다.

'문제는 수천억이 든다는 거지.'

45레벨부터는 1레벨을 올리는 데 자그마치 100억이라는 거금이 들어갔다.

다행히 한 달 간의 사냥 덕분에 레벨이 한두 개씩 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금이 들어간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빠가 손을 들고 말했다.

"아들, 나 혼자서도 그놈들 서너 마리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희 엄마랑 같이 오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것 같고."

아빠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발동되는 신체 증폭 효과와 엄마의 스킬 중 하나인 '왕의 축복'을 사용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신체 스펙을 손에 넣게 될 테니까.

거기다 김다정의 축복까지 추가된다면 정말로 혼자서 모든 상급 흡혈귀를 쓸어버리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급 흡혈귀들이 '그분'이라며 떠받드는 놈도 감당할 수 있을까.

'정보가 너무 부족해.'

그때였다.

"제가 울산으로 정찰을 가보겠습니다.”

김건이었다.

"김 건씨가요?"

“네. 제 능력이라면 울산까지 금방 다녀올 수 있으니까요.”

까망이와 한 몸이 된 상태의 김건은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울산까지의 거리는 약 50km 정도이니 마음먹고 비행한다면 삼십분도 안돼서 도착한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곳이 내 예상대로 흡혈귀 밭이라면 김건이 위험해질 것이란 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러면...."

필요한 일이었다.

"계속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위험해지면 잠시만 시간을 벌어주세요. 몇 초면 됩니다."

"네."

몇 초만 벌어준다면 가신 소환을 써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누리는 그분의 지시에 따라 부산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도대체 거기에 무슨 괴물이 있는 거지?'

상급 흡혈귀 두 명이 죽었다.

두 사람 다 괴짜 취급받기는 했지만, 약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급 흡혈귀 중에서도 꽤나 강한 편에 속했다.

'조심해야 해.'

그분께서 두 사람보다 약한 서누리에게 정찰 임무를 맡긴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그분에게 직접 힘을 받은 진(眞)흡혈귀들은 저마다 피를 이용한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촤라락

건물 옥상에 올라 있는 그녀의 등 뒤로 선혈이 뿜어져 나오며 이리저리 엮였다.

그것은 서서히 피막의 날개를 만들어갔다.

펄럭

몇 번 움직여 보던 서누리를 과감하게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동시에 날개를 펼쳐 하늘 높인 날아올랐다.

그녀의 발아래로 건물들의 모습이 점차 작아지더니 이내 울산 도심의 모습이 한 번에 내려다보였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그야말로 정찰에 특화되어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빨리 확인하고 복귀하자.'

잠시 후 부산 하늘에 진입한 그녀는 일단 부산을 한 번 크게 훑어봤다.

정영훈과 고인석이 정확하게 어디에서 죽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늘에서 전체적으로 훑어본 다음 이상이 없으면 좀 더 세밀하게 살필 계획이었다.

그러나.

'저게 뭐야?'

서누리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바닷가 근처 작은 마을.

그곳에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 하나가 자라나고 있었다.

'무슨 크기가 저렇게 커?'

원근법을 무시하는 나무가 도시 한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상한 것은 저 주변에는 그 흔한 몬스터들이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서누리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나무구나, 두 사람 다 저 나무한테 죽은 게 분명해.'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나무였다.

그런데.

'음?'

이상한 점이 몇 가지 더 있었다.

'...인간?'

바로 그 나무 근처에 인간들이 돌아다닌다는 점이었다.

이제 슬슬 해가 저물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에서 불빛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누리는 처음에 그것들이 그냥 불을 붙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전기...? 전기를 쓴다고??'

그들의 집안을 밝히고 있는 불빛은 LED 전구들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봐야겠어'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밑으로 날아가던 도중,

"음?"

무언가 투명한 벽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출입 불가.]

그리고 그녀의 앞에 묘한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이건?'

서누리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시민권을 획득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이건 또 뭐야?

아무래도 정황상 이 투명한 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시민권을 획득할 필요가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것을 이해한 동시에 서누리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를 인식했어!'

문득 이곳 부산에서 자신 보다 강력한 상급 흡혈귀 두 마리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도, 도망가야 해!'

더 이상의 정찰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서누리는 필사적으로 날개를 펄럭였다.

그녀의 몸이 다시 빠르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포에 질린 채로 본거지인 울산을 향해 비행하던 그때였다.

"

"저건 또 뭐야?"

도시 전체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곳이 있었다.

흡사 그곳만 멸망이 찾아오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파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들이 별빛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도로에는 차까지 다니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야?'

서누리는 그 모습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고, 다시 힘차게 날갯짓하여 그곳을 빠르게 벗어났다.

<[Episode 17] 전초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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