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85화 (86/175)

<[Episode 18] 알박기 (3)〉

"3팀장이 흡혈귀라고요?”

“그래.”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러나.

'재현님의 말이다.'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생존자 집단의 우두머리가 흡혈귀라니.

이게 과연 우연일까?

'뭔가 찝찝한데.'

김건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던 그때.

박새롬이 헛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농담하시는 거예요?"

"아니.”

김건의 확고한 대답에 박새롬은 반신반의하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당신 말이니까 믿을게요."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박새롬은 입장을 확실하게 했다.

"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죠?"

"만난지 하루도 안 된 내 말을 믿나?”

“당신 능력을 믿는 거죠."

박새롬은 피식 웃으며 첨언 했다.

“일이 잘못돼서 쫓겨나게 되어도 저희 책임져 주실 거잖아요, 그쵸?”

“약속하지.”

김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박새롬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런데 원래 안경이라도 꼈었어요?"

“...어떻게 알았지?"

"그야 매번 그렇게 안경을 들어 올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니까 그렇죠."

“...아."

박새롬이 신나서 물어왔다.

“왜 지금은 안 껴요? 라식이라도 했나?"

"...능력을 얻으면서 눈이 좋아졌다.”

처음부터 안경을 벗을 정도로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까마귀를 부리는 능력을 얻고 난 이후로 눈이 점점 더 좋아지는가 싶더니, 김재현과 종속의 계약을 맺으면서 까망이와 일체화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완전히 눈을 얻게 되었다.

평상시에도 월등한 시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전부 재현님 덕분이지.'

솔직히 말해서 그전까지만 해도 파티 내에서 역할이 명확하지 않아 겉도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척후병이라는 확실한 포지션을 갖게 된 상태였다.

자진해서 여기까지 온 것도 김재현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진짜로 어떡해요? 정말로 3팀장이 흡혈귀라면 어떻게든 해야 하잖아요."

김건은 김재현이 지시했던 일을 상기하며 브리핑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그놈을 주시하고 있기만 하면 돼.”

“흡혈귀인 증거를 먼저 찾아낸 다음에 조진다는 말씀이시군요. 이해했어요.”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김재현에게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뿐이었다.

'다들 내일 온다고 했었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오후가 되기 전에 이곳에 모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건가.'

김건이 보기에는 현재 이곳은 생존자들과 흡혈귀들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하동건 파티가 개입하게 되면 힘의 균형추는 급격하게 생존자 집단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재현님이 가지고 계신 힘을 활용하면 생존자 집단을 하나로 규합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이곳에 와서 김재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금 실감하고 있었다.

당장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그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서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집단이 출현하기까지 했다.

‘재현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았을 거야.'

한정된 자원과 식량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투었을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잔혹한 세상이 찾아왔을 것이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지.”

박새롬이 물었다.

"큰 거요? 작은 거요?"

"...그건 왜 물어보지?"

"큰 거라면 바깥으로 나가서 해결해야 하거든요. 좋은 장소를 안내해주려고 했죠.”

“...작은 거다.”

"그렇군요. 나가서 왼쪽 끝으로 가시면 공용 화장실이 나와요. 거기 쓰면 돼요."

그녀의 말을 듣고 찾아간 화장실은 입구에서부터 지린내가 심하게 났다.

눈살을 찌푸린 채로 안으로 들어가니 악취가 더욱 심각해졌다. 지린내뿐만 아니라 똥 냄새가 화장실 전체에 가득했다.

혹시나 싶어 대변기 칸을 열어봤다가 못 볼꼴을 보고야 말았다.

"윽."

수도와 전기가 끊겼으니 이것은 당연한 광경이었다.

그나마 하수구는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오물이 역류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겹기는 마찬가지였다.

똥오줌으로 더럽혀진 화장실을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게 김재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다시 피어올랐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도 전부 재현님 덕분이구나.'

김건은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재현님, 혹시 계십니까?"

[네, 말씀하세요.]

“이제 슬슬 재현님에 대한 것을 말해 주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녀는 믿을만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지금 박새롬은 김재현의 힘을 김건의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남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는다는 게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는 부담스러웠다.

'언젠가 사실대로 밝혀야하기도 하고.'

오해가 더 커지기 전에 말해주고 싶었다.

[편하신대로 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습게도 다른 생존자 집단의 처참한 생활환경을 보고 있자니 김재현에 대한 충성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더 잘해야겠어.'

김건은 최대한 숨을 참으며 생각했다.

“후우. 그나저나 재현님은 3팀장을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지?”

김재현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3팀장의 경우 이곳의 생존자 집단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런 그를 죽인다면 크게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그놈이 흡혈귀라는 것을 증명한 다음 처리해야 할 텐데....]

어찌 됐든 놈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있었다.

놈의 정체를 까발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재현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다음 날 오후.

하동건을 필두로 모든 파티원이 울산에 도착하였고, 박새롬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탕-!

기지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중급 흡혈귀(Lv. 33)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133,423,899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시민 문병호가 '울산 홈플러스'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울산 홈플러스'에 전초기지 건설이 가능해집니다.]

'됐다.'

예상했던 대로 놈을 죽이자 전초기지 건설 조건을 클리어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고민했었다.

보급 3팀의 팀장이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착한 흡혈귀’일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 고민은 문병호가 투명화를 사용하고 놈의 개인실을 확인하면서 날아가 버렸다.

‘너무 편안하게 보내줬나.’

놈의 개인실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시체가 한 구 나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가녀린 목선에 남은 두 개의 구멍은 그녀의 사인이 흡혈로 인한 과다출혈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곧바로 문병호에게 사살을 명령했다.

그때 총성을 들은 3팀장의 부하들이 방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문병호는 투명화를 유지한 채 구석에서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산이 완료되며 3팀장의 시체는 사라진 상태였으므로 그들이 다음에 할 행동은 뻔했다.

"팀장님! 어디 계십니까?!"

그들은 3팀장을 찾기 위해 방을 뒤졌고, 자연스레 소녀들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혀, 형! 여, 여기!”

"뭐야, 왜."

먼저 시체의 상태를 확인한 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흐, 흡혈귀에게 당한 것 같아."

무엇보다 시체의 목에 남아 있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흡혈귀에게 당했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고.

"얘 개 아니야? 얼마 전에 구출됐다가 실종됐던.."

그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지금까지의 정황 증거들이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님이 흡혈귀였다고..?"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문병호가 유유히 사건 현장을 빠져나왔다.

[수고하셨어요.]

문병호가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건설 모드를 활성화시켰다.

서면과 자갈치 시장이 있는 곳의 풍경이 장난감처럼 작게 내려다보였다.

영역 바깥으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이 한참이나 이어지다가 멀찍이 자그마한 빛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지금 하동건 파티가 머물고 있는 울산의 홈플러스였다.

'전초기지 건설.'

[해당 시설은 건설 기간(7일) 동안 ‘기사’급 이상의 칭호를 가진 시민 3명을 필요로 합니다.]

[정말로 설치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예'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효과가 나타났다.

[건설 현장에 ‘기사’급 이상의 칭호를 가진 시민이 6명 이상 모여 있습니다.]

[건설 효율이 100% 증가합니다.]

[전초기지 시설 건설 완료까지 남은 시간]

-83시간 59분 59초

절반으로 줄어든 시간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덕분에 크리스탈을 아끼겠군.'

처음부터 일주일이나 되는 시간을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즉시 완료'

['전초기지' 시설 건설을 즉시 완료하시겠습니까?]

[해당 시설의 즉시 완료를 위해서는 9개의 크리스탈이 필요합니다.]

"그래.”

그 순간.

우우웅-

묘한 감각과 함께.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홈플러스 전체가 내 영역 아래로 들어왔다.

'빙고'

천여 명의 시민들에 대한 정보가 눈앞에 떠올랐고, 나는 일일이 그것들을 확인했다.

"각성자가 7명. 그리고 흡혈귀가 19명.”

이제는 내 영역이 되어버린 홈플러스 전체를 가볍게 훑었다.

시민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얼어붙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열아홉 마리의 흡혈귀들이 있는 위치를 모두 파악한 다음.

'가신 소환.'

그들의 근처에 가신들을 소환했다.

하동건 파티를 비롯하여 이준혁 파티에 소속된 가신들, 장성준과 최근에 가신이 된 문지훈과 문상훈 형제들까지.

사실상 사냥팀으로 활동하는 모든 가신들을 흡혈귀들의 옆에 배치했다.

그리고.

번쩍 -

홈플러스에 전력을 공급하여 매장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것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시민권 부여해.'

강제로 시민권을 부여받은 일반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확인했고, 일부는 멍한 표정으로 불이 켜진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으아아아악!”

흡혈귀들은 곧장 비명을 질러댔다.

능력치 90% 감소.

시민들이 받는 모든 버프 해제.

전신에 지속적인 고통.

이마에 생겨나는 붉은 낙인.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이 흡혈귀가 되는 업적을 달성할 경우 자동으로 주어지는 [흡혈귀] 칭호의 효과였다.

“뭐, 뭐야?"

“왜 그래?! 괜찮아?!"

그들의 근처에 있던 동료들이 그들을 걱정해 주었다.

그러나.

“캬아아아!"

제정신이 아닌 흡혈귀들이 곧바로 이를 드러내며 사람들을 덮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치는 칭호 효과로 인해 크게 약해진 상태였고, 그 덕분에 가신들이 개입할 틈이 생겼다.

퍼억! 철컥- 푸욱!!

쩌저적-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흡혈귀들이 제압당하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몸을 일으켜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예진을 향해 말했다.

“가자.”

"응."

철컥-

현관문 건너편에는 불 켜진 방 안을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박새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향해 말했다.

“반갑습니다. 김재현이라고합니다.”

<[Episode 18] 알박기 (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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