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9] 게릴라 전투 (3) >
A조와 B조로부터 생존자들을 인계받은 C조는 사람들을 데리고 번영교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투두두두-
건너편에서 이쪽을 향해 총을 쏴 갈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지금까지 다리를 건너오려고 했던 존재는 흡혈귀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지훈과 문상훈이 난감한 표정으로 C조의 리더를 향해 말했다.
“어떡하죠?”
"반응이 너무 거셉니다. 이쪽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러자 C조의 리더, 김민호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어떡하긴. 뚫어야지.”
“네에?”
문지훈과 문상훈 쌍둥이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야 뚫으려면 뚫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쪽의 무장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소총도 충분했고, 특별한 능력을 지닌 가신들도 있었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흡혈귀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면서요?”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초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총 맞으면 끝이라고요!”
그리고 맞붙게 된다면 이쪽의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는 문지훈과 문상훈 형제가 김민호의 능력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처음 보는 건가?"
“네?”
쌍둥이 형제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그때 그렇지 않아도 근육질로 가득 들어차 있던 김민호의 몸이 울긋불긋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그의 피부의 질감이 달라졌다.
마치 단단한 바위와도 같은 기세를 내뿜던 김민호가 입을 열었다.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입술마저 단단하게 굳어버린 탓에 발음이 살짝 새고 있었지만, 그 덕에 목소리마저 한층 단단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쿵 쿠웅!
김민호가 전차처럼 다리 너머를 향해 질주했다.
투두두두두-
당연하다는 듯이 총알 세례가 쏟아졌지만,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팅티팅-
무서운 기세로 쏘아진 집중포화 탄들은 김민호의 가슴 부근에 부딪히고는 힘없이 튕겨 나갈 뿐이었다.
불도저와 같은 기세로 김민호가 밀고 들어오자 슬슬 상대 쪽에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흡혈귀들을 상대하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퇴각! 퇴각해!"
혼비백산하며 물러나려는 그들을 발견한 김민호가 발을 강하게 굴렀다.
쿠우웅!
아스팔트에 자그마한 크레이터가 생겨나며 김민호의 육중한 몸이 포탄처럼 날아갔다.
콰아아앙!
땅 울림과 함께 저지선을 구축한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김민호가 퇴각 명령을 내리던 사람의 앞에 섰다.
"반갑습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 위로 김민호의 단단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는 종합운동장 그룹의 보급 3팀 소속, 김민호라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이 빠져 있던 전투조장은 저도 모르게 자기소개를 해버렸다.
김민호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 너무나도 친숙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중앙동 그룹 전투 2조 조장, 한강민입니다.”
“반갑습니다.”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한강민을 향해 김민호가 말했다.
“저희는 지금 흡혈귀들 구역에서 생존자들을 구출해오는 중입니다. 길을 열어주십시오."
흡혈귀들의 우두머리, 진조(眞祖).
블라드 체페슈.
흡혈귀들의 군주인 그는 울산에 있는 일반적인 흡혈귀들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한때 인간이었던 그들과는 달리 체페슈는 태생부터 고귀한 피를 이어받은 존재였다.
'그런 내가...'
블라드는 덜덜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세계수를 보호하던 장벽을 뚫는 과정에서 숯덩이가 되었던 오른손은 새살이 돋아나 있었다. 그런데 분명 모든 상처를 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는 듯한 고통이 다시 재현되는 듯했다.
그 원인은 자명했다.
방금 사방으로 퍼져나간 에너지.
그것의 에너지가 자신의 오른손을 불태웠던 그것의 파장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이 내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단 말인가.'
그래서는 안 됐다.
위대한 피를 이어받은 이로써 품위를 지켜야만 했다.
블라드는 손에 힘을 주어 억지로 떨림을 멈추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힘의 파장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종류의 힘은 그곳 그 장소에 갇혀 있어야만 성립이 된다.'
그러니까 그 장막의 주체는 반드시 세계수와 함께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 근처에서 그 힘이 느껴진단 말이냐.'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방금 그와 비슷한 파장을 가진 에너지가 폭발하듯 사방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흠.”
머리로는 지금 당장 에너지 파동을 내뿜은 진원지로 가서 사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움직이려니 미지의 힘에 대한 공포가 발목을 붙잡 았다.
"박재찬, 이연도, 최정일이 죽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거의 동시에 상급 흡혈귀 세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들의 죽음이 조금 묘했다.
상급 흡혈귀는 블라드가 직접 피의 축복을 내린 것들이었다.
근본이 하찮았던 놈들이기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는 것들이었지만, 어설프게나마 피의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놈들로 골랐다.
어디 가서 쉽게 죽을 놈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죽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축복의 힘이 완전히 사라졌다.'
부산에서 죽었던 정영훈, 고인석과 같았다.
원래라면 상급 흡혈귀가 죽게 되면 그동안 놈이 집어삼킨 생명력으로 인해 증폭된 피의 축복이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서 그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어.'
블라드는 이 일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가기 보다 상급 흡혈귀의 존재가 사라진 장소를 먼저 찾아가는 것을 택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공포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어차피 곧 만월의 밤이 다가온다.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이미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상급 흡혈귀들이 호락호락하게 죽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적들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전장에는 피와 죽음이 넘쳐날 테고, 그것은 고스란히 만월의 밤에 제물로 바쳐질 것이다.
적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의식의 진행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쪽이든 피의 축제를 여는 제물이 되고 말 것이니 상관없다.’
그러니까 지금은 축복의 힘이 사라진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먼저다.
그렇게 생각하며 죽은 세 흡혈귀 중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건물을 향해 움직였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
그는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왜 이렇게 깔금하지?'
이상했다.
무려 상급 흡혈귀가 죽은 현장이었다.
당연히 전투의 흔적으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건물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깨끗했다. 심지어는 핏자국 하나 없었다.
"핏자국이 없다고?"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릇 전쟁이란 수많은 죽음을 낳고, 땅은 피로 적셔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피비린내와 죽음의 향기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
마치 여기에 모여 있던 흡혈귀들이 단체로 증발해버린 것만 같았다.
"도대체...?"
건물을 모조리 뒤져봤지만, 단 하나의 시체도 찾을 수 없었다.
상급 흡혈귀 이연도와 함께하던 흡혈귀 군단이 모조리 증발해버린 것이다.
'이런, 이럴 리가 없다.'
그때였다.
"음?"
또 한 마리의 상급 흡혈귀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죽었다는 뜻이다.
'피 냄새가 난다.'
이 근처에서 실시간으로 피 냄새가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곳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던 블라드는 무언가 이상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 피 냄새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감각에 대한 정체는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뭐?”
그곳에서 인간들이 흡혈귀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빛의 화살이 심장을 꿰뚫고, 은빛 기사들이 할버드를 앞세워 가슴을 찔렀다.
투두두두-
인간들이 쏘아내는 자그마한 쇳덩어리가 흡혈귀들의 심장을 헤집어댔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강력한 힘을 지닌 인간들이야 원래 세상에서도 존재했었으니까.
그런데.
스르륵
그들의 손에 죽은 흡혈귀들의 시체가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솟구쳐 나온 피가 바닥을 적시던 것도 잠시, 시체가 사라지는 것과 함께 그 흔적도 모조리 자취를 감추었다.
'이게...'
단순히 시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에너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그의 눈에는 보였다.
인간들은 지금 죽은 흡혈귀의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제야 상급 흡혈귀에게서 피의 축복이 되돌아오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갔다.
'...이 힘은, 위험하다.'
당장 저 인간들을 없애버려야 했다.
다행히도, 저들이 보여주는 권능에 비해 지니고 있는 힘은 미천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모조리 죽여주마.”
그 순간.
스르륵-
"!!??"
그가 움직이려던 찰나, 그곳에 있던 인간들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내 그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하하하하!"
한참을 그렇게 웃던 그의 표정이 서서히 차갑게 굳어졌다.
“어쩔 수 없군.”
아쉽지만 남은 선택지가 없었다.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지금 당장 시작하는 수밖에.”
“후욱. 후욱.”
아슬아슬했다.
하필 레벨업 타이밍에 놈이 움직이기 시작할 줄이야.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어.'
레벨업의 고통 속에서 유한길의 목소리를 토대로 A조와 B조 모두에게 가신 소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쨌든 9번 흡혈귀까지 성공적으로 처치했다.
첫 번째 작전 치고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못해도 거의 천 단위의 일반 흡혈귀들과 네 마리의 상급 흡혈귀들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일반 흡혈귀들의 경우 총의 공급만 원활하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으므로 상급 흡혈귀를 네 마리나 줄였다는 게 중요했다.
'문제는 이제 놈이 우리를 확실하게 인지했을 거라는 거지.'
이번 게릴라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놈이 우리 쪽 전력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이번에 전력이 상당 부분 노출된 만큼 흡혈귀 쪽에서도 대비를 할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는 아무런 피해도 없이 이런 전공을 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처럼 과감한 전략을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의 전력을 야금야금 깎아 먹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서예진의 능력만 제대로 활용해도 대부분의 흡혈귀들은 쓸어버리는 게 가능했다.
유혜린의 정신력이 회복되면 서예진의 생쥐들을 이용한 테러를 벌이는 한편, 문병호를 이용해서 이곳 생존자 그룹에 종양처럼 퍼져 있는 흡혈귀들을 빠 르게 제거해 나갈 생각이었다.
'우선 태화강 북쪽 지역부터 완전히 먹는다.'
흡혈귀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생존자들이 아닌, 놈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전력을 만들 생각이었다.
'문병호의 능력과 피어싱 화살을 활용한 암살로 상급 흡혈귀를 꾸준히 줄여나가면 된다.'
첫 작전의 전과가 예상치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재, 재현님! 큰일 났습니다!"
세상일이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 주지 않는 법이었다.
유한길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죠?"
"흐, 흡혈귀들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Episode 19] 게릴라 전투 (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