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0] BLOODY FEST (1)〉
울산의 생존자들은 한곳에 모여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파트처럼 개인 공간이 보장되어있는 구조가 아니라, 군대처럼 단체 생활을 한다는 의미였다.
단장 울산 종합운동장의 실내체육관에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침낭이나 이불 같은 것들을 구해와서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법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도, 전기, 가스 등이 마비되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기 때문이다.
"호범아, 호범아 일어나 봐.”
운 좋게 구한 모포를 뒤집어쓰고 체육관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이호범은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아, 또 왜?”
이호범을 깨운 것은 그와 동갑내기 여사친인 최도연이었다.
단체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아무렇게나 뒤섞여 있는 것은 그런 사소한 문제까지 통제할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남녀가 뒤섞이며 발생하는 사소한 잡음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생존 과제들을 해결하는 게 훨씬 더 중요했다.
최도연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화장실 좀 같이 가줘."
“제발 도연아. 화장실 정도는 혼자서 다녀오면 안 돼?"
“에이, 왜 그래. 같이 가줘. 무섭단 말이야.”
"하아.”
이호범은 한숨을 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 변태 소문도 있고, 나도 마침 오줌이 마렵던 참이었으니까.'
최도연이 살랑살랑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역시 너밖에 없어 호범아.”
“가자.”
두 사람은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실내체육관 안에 공용 화장실 시설이 갖추어져 있기는 했지만, 수도 시설이 망가진 지금은 당연하게도 사용할 수 없는 시설이었다.
대신 나무와 풀이 자라난 화단이 화장실 대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똥과 오줌이 뒤섞여 악취가 풍겨오고 있었다.
분명 화단 안에 일을 처리하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스팔트나 길거리 곳곳에 배설물이 방치된 상태였다.
“대충 일보고 빨리 가자.”
"...호범아."
“왜?”
"...나 큰 거야."
"아, 씨."
"망 좀 잘 봐줘!"
적당한 나무 뒤에 숨어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 이호범은 그나마 오물이 없는 화단을 찾아서 일을 해결했다.
"야! 아직이야?"
“거의 다 됐어!”
큰일을 치르고 온 최도연은 개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후우. 며칠만의 쾌변인지.”
"똥쟁아. 뒤처리는 잘했냐?"
"응! 이때를 위해서 물티슈를 챙겨두고 있었거든.”
밝게 이야기하던 최도연은 곧장 풀이 죽어서는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
이호범은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앞으로 평생.'
옛날처럼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날은 영영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일은 없을 테니까.
이호범이 입을 열진 않았지만, 그의 눈빛에서 그 의미를 읽어낸 최도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우울해."
“그러고 보니 내일 다 같이 물 뜨러 가야 한데. 양이 부족하다고 위에서....”
이호범이 애써 대화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그것도 그리 좋은 주제는 아니었다.
“내일도 힘들겠구나.”
"...그렇지.”
울산의 생존자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옆에 태화강이라는 커다란 수원이 붙어 있었으니까.
체육관 한쪽에는 숯이나 모래 등을 활용한 정수 시설이 있었는데, 완벽하지는 않아도 강물을 마실 수 있게는 해 주었다.
그렇게 정수가 된 물은 다시 플라스틱 물병에 담겨 종합운동장 그룹 생존자들에게 보급되는 구조였다.
실내체육관에 모여 있는 이들은 다른 이들의 식수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었다.
"있잖아 호범아."
"어?"
"죽고 싶지 않아?"
이호범은 씁쓸한 표정으로 최도연을 바라봤다.
최도연은 계속해서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냥 그렇잖아. 이렇게 꾸역꾸역 살아남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까 나랑 같이 죽자."
최도연을 포함해서 이곳에 있는 모두가 크고 작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실제로 이호범과 최도연이 자살한 시체를 본 것도 벌써 여러 번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최도연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연아....”
이호범은 말을 잇지 못했다. 최도연이 이호범에게 안겨 왔기 때문이다.
그 품속에서 최도연이 입을 열었다.
“아니면 네가 대신 나 좀 죽여주면 안 돼?”
"......"
어느새 최도연은 울고 있었다.
"너, 나 좋아하잖아.”
“제발 나 좀 어떻게 좀 해주라 호범아. 어?”
눈물 젖은 그녀의 호소에 이호범은 잠시 최도연에게 입을 맞추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덮치고 싶은 충동이 마음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녀를 죽이고 그 뒤를 따라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나도 미쳤군.'
눈앞에 있는 최도연만큼이나 자신 또한 미쳐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호범은 그녀를 달래듯 안아주면서도, 자신의 마음속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체육관에서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또 누군가가 발작이라도 일으켰나 했다.
그러나.
“아아악!”
“도망쳐!"
"흐, 흡혈귀다!"
곧이어 체육관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며 그것이 단순한 발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카아아악!"
사람들의 뒤를 이어 괴물이 등장했다.
성인 남성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덩치와 전신이 붉게 물든 그것은 이내 근처에 있던 사람 하나를 붙잡더니 목을 물었다.
“사, 살려...!"
그 모습을 본 이호범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저, 저게 흡혈귀라고?"
이상했다.
이호범은 흡혈귀를 본 적이 있었다.
눈앞에서 부모님을 앗아간 흡혈귀의 존재를 그리 쉽게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 괴물이?'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흡혈귀는 저런 괴물 같은 생김새가 아니었다.
겉으로 보면 일반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게 흡혈귀였다.
그런데.
“캬아아아-!"
눈앞에 이는 괴물은 피를 빤다는 것만 같은 다른 존재였다.
커다란 덩치와 새빨간 피부는 악마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촤아아악!
게다가 놈들은 피가 목적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자신의 눈앞에서 꽤 오랫동안 부모님의 피를 빨던 그 흡혈귀와는 달리 눈앞의 괴물은 목을 물고 있던 것도 잠시, 이내 이빨로 목덜미를 뜯어버리며 곧장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아아악!”
괴물의 손톱과 이빨에 사람들의 여린 신체가 찢겨나갔다.
그것은 피를 마시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괴물의 목적 같아 보였다.
이호범의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여기 있으면 죽는다!”
살기 위해선.
'도망쳐야 해!'
조금이라도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이호범은 곧장 최도연의 손목을 붙잡고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야! 뭐해!"
최도연은 괴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저 이호범이 이끄는 방향으로 간신히 몇 발자국 따라오는 게 고작이었다.
"야! 정신 차려!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이호범이 다그치자 최도연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 다리가..."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일 각오를 한 표정이 아니었다.
다가온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일 뿐이었다.
“젠장!"
이호범은 최도연을 업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크르르륵!”
다른 흡혈귀와 조우했다.
체육관 안에서 나타났던 놈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나타난 흡혈귀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끝났다.'
거대한 괴물의 입이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오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고 있었다.
죽음을 직감한 그때.
파각!
무언가 폭발했다.
"어억!”
이호범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의 등에 업혀 있던 최도연도 바닥에 떨어져 몸을 떨었다.
이호범은 천천히 자신의 얼굴에 튄 흡혈귀의 육편을 닦아냈다.
그리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거대한 흡혈귀가 서 있던 그곳에는 상반신이 완전히 사라진 사체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검은 불꽃이 일렁이는 창 한 자루가 아스팔트 바닥에 꽂혀 있었다.
'창...?'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이내 어떤 남자가 창을 뽑아냈다.
'...뭐지?'
남자에게서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풍겨 나왔다.
비단 그가 일격에 괴물을 처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모르고 봤더라도 그가 평범한 사람들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
평소 눈썰미가 좋던 이호범이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무 깔끔해.'
떡지지 않은 머리.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옷.
그는 마치 흡혈귀가 나타나기 이전의 세상에서 나타난 사람처럼 깔끔해 보였다.
마치 따뜻한 물로 매일 샤워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 그가 주변에 있는 생존자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이상한 말을 던졌다.
“생쥐를 발견하면 뒤를 따라가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떠나갔다.
인간의 속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슨 개소리지?'
너무 이상한 말이라 무어라 대꾸도 못 했다.
그런데 그때.
“저, 저기 생쥐다!”
정말로 생쥐가 나타났다.
찍-
그것은 길을 따라 달려나가다가 잠시 멈춰서서는 뒤를 돌아봤다.
그 태도가 마치 사람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했다.
사람들이 모두 멀뚱멀뚱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이호범이 최도연을 업고는 생쥐의 뒤에 섰다.
찍-
그가 따라붙는 것을 확인한 생쥐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호범은 생쥐를 뒤따라 달렸고, 이내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이호범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집구석 근처에 접근하였습니다.]
[시민권을 제의하시겠습니까?]
새롭게 합류하는 사람들 중 흡혈귀는 없었다.
당연했다.
지금 흡혈귀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괴물로 변하여 폭주하는 중이었으니까.
흡혈귀들의 구역이던 태화강 남쪽부터 시작된 광란의 폭주는 이내 다리 건너 생존자들에 섞여 있는 흡혈귀들에게까지 닿았다.
이제는 아예 울산 전역에 있는 흡혈귀들이 모조리 폭주 중이었다.
'시민권 부여해.'
흡혈귀들이 폭주하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적으로 생존자 집단 사이에 숨어든 흡혈귀들을 처리하고, 혼란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모두 이곳 홈플러스로 오게끔 만들었다.
그 결과 벌써 수천 명의 생존자들이 새롭게 합류하고 있었다.
'자리가 부족해.'
울산 전체에 있는 생존자들을 작은 홈플러스에 전부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생존자들 일부를 서면으로 보내야만 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절대자의 문 스킬을 사용하는 것.
하지만 절대자의 문은 만능이 아니었다.
열려 있는 동안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하는데, 한정된 시간 동안 서면으로 보낼 수 있는 생존자들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언제 어디에서 흡혈귀들의 우두머리가 나타날 질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가신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만 해도 바빴다.
'어쩔 수 없군.'
조금이라도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스킬 포인트를 써야겠어.'
후보는 두 가지.
절대자의 눈과 절대자의 문.
두 가지 중 하나를 골라서 올려야 했다.
'나는....'
[정말로 집구석 절대자의 문 스킬을 올리시겠습니까?]
“...그래.”
우웅!
[집구석 절대자의 문 스킬이 Lv. 2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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