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0] BLOODY FEST (5) >
집구석 절대자는 집구석 영역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것은 강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강림을 위해서는 하나의 사전 작업이 필요했는데, 내가 이동할 곳을 영역화 시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이곳은 집구석 영역이나 전초기지 안과 같은 성질을 띠고 있었다.
굳이 놈의 앞에 강림하여 도발을 한 것은.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나에게 적대적인 모든 것을 제거하는 시스템의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제거합니다.]
간결한 알림과 함께.
퍼억!
진조의 머리가 터져나가며 상황이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놈의 생명력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끈질겼다.
촤아아악-!
머리를 잃은 놈의 몸이 핏물이 되어 터져나갔다.
그리고.
"크헝!"
수인화 상태인 오언주의 다급한 울음이 들려왔다.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그녀의 두 눈이 내 등 뒤를 향해 있었다.
그 직후.
콰아아앙!
등 뒤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충혈되다 못해 완전히 빨갛게 물든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진조가 그곳에 있었다.
녀석이 기습적으로 뻗어낸 핏물의 촉수가 내 앞쪽에서 멈춰서는 부들거리고 있었다.
지잉
나를 중심으로 반경 1m 정도를 감싸고 있는 투명한 방어막이 일렁이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흡혈귀 놈들의 본체가 심장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절대자의 눈.'
스킬을 사용해 놈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강림하기 전보다 움직임이 확연하게 둔해졌으며, 찌그러진 표정과 거친 숨결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원래라면 지금 이 공간은 시민권 없이는 움직일 수도, 들어올 수도 없는 공간이었다.
나의 허락 없이 이곳에 침입하여 움직이고 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저 불꽃에 무언가 있다.'
화르륵!
검붉은 불꽃이 여전히 놈의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크아아악!”
고통을 버티지 못한 진조의 처절한 비명이 사방에 울렸다.
그리고 나는 놈의 전신을 불태우는 검붉은 불꽃을 보며 무언가 깨달을 수 있었다.
'서로 싸우고 있어?'
절대자의 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검은 기운과 붉은 기운이 서로 영역 다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두 개의 불꽃 중에 검은 기운은 하동건이 사용하는 기운과 꼭 닮아 있었다.
'이건...?'
그것을 인지했을 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검은 기운이 나에게서 비롯되는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놈이 감히 내 영역 안에서 저항할 수 있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놈의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 붉은 기운 덕분이구나.'
일전에 투명 방벽을 뚫을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이렇게 내 영역 안에서 내 허락 없이 움직이는 것도 저 붉은 기운의 힘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때.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다시 한 번 시스템 알람이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진조의 몸과, 나를 향해 뻗어 나온 피의 촉수가 울긋불긋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퍼억!
이번에는 공중에 떠 있던 놈의 몸이 아예 통째로 터져나갔다.
털썩!
사방으로 터져나간 놈의 육편이 피로 적셔진 바닥 위에 떨어져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그러나.
'시스템 알림이 뜨지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냥 완료 알림이 뜨지 않는다는 것은 놈이 죽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방금 전에는 머리뿐만 아니라 분명 심장이 함께 터져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리였다.
'...심장이 본체가 아니라고?'
그때였다.
부글부글
바닥을 적시고 있던 핏물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더니 이내 붉은 안개를 피어 올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급격하게 좁아졌지만, 절대자의 눈을 유지하고 있던 내게 놈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언주의 등 뒤에서 피 안개가 뭉쳐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즉시 스킬을 사용했다.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놈의 몸이 실체화 되는 순간.
푸욱!
오언주를 노리려고 하던 놈의 심장을 보이지 않는 손이 꿰뚫었다.
그리고.
'거대화'
퍼억!
심장을 관통한 보이지 않는 손이 거대화하며 놈의 전신이 박살났다.
그러나 박살난 놈의 신체는 금세 피 안개와 동화되어 그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군.'
절대자의 눈은 단순히 그 장소를 보고, 공간을 느끼는 데 그치는 스킬이 아니었다.
3레벨 때 개방된 '현자의 눈'기능은 영역이 아닌 곳에서는 겨우 몬스터의 레벨이나 간단한 정보를 알려주는 데 그치지만, 영역 안에서의 기능은 그 수준이 달랐다.
제대로 된 영역 안에서의 절대자의 눈은 스킬의 이름에 ‘절대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만큼의 역할을 해 주었다.
공간 전체를 관조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순식간에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놈의 본체는 심장이 아니라 여기 있는 피, 그 자체다.'
진조가 자꾸만 살아나는 이유.
그것은 실체화 되어 있는 놈의 몸이 본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손이나 발처럼 신체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놈의 본체는 머리도, 심장도 아닌 여기 바닥에 드넓게 깔려 있는 핏물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이 핏물 전체를 불살라야 했다.
나는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며 내가 원하는 바를 요구했다.
그 순간.
파아앗-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압합니다.]
퍼억!
사방에 깔려 있던 피 안개와, 바닥을 적시고 있던 핏물이 모조리 터져나갔다.
'역시'
시스템의 발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집구석 영역이 확장되어 갈 때마다 어째서 누군가는 시민권 부여가 가능한 개체로 인식되고, 어떤 생명체는 제거해버리는 것일까.
시스템 알림에서 나오는 '적대적인 개체'라는 표현이 무척이나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시스템이 절대적이었다면 일전에 제갈성규가 내 영역 안으로 들어와 시민들을 흡혈귀로 만들거나 잡아먹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 기준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여러 가지 가설을 생각했었고, 그 중의 하나가 지금 상황에 어느 정도 들어맞고 있었다.
'처음에는 놈의 머리가 터졌고, 그 다음에는 심장을 중심으로 몸이 터졌다.'
시스템이 힘을 발현하는 것의 기준은 내 의식과 깊게 관여가 되어 있다면 지금 상황이 모두 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내가 놈의 본체가 핏물 그 자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힘 조절도 성공이군.'
지금까지는 '제거'한다고 표현되던 시스템 알림이 '제압'한다는 표현으로 변했다.
'시스템의 자동 반응 같아 보이는 것도 내 의지로 조절이 가능하다.'
이번에 확실히 증명이 된 셈이었다.
가설이 맞았다는 것에 희열이 느끼며 완벽하게 제압된 진조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땅을 가득 적시던 많은 양의 핏물과 주변을 가득 메우던 피 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내 눈앞에는 가녀린 한 남자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몸을 덜
덜 떨고 있었다.
더 이상 검붉은 불꽃이 놈의 몸을 불태우는 일은 없었다.
‘제압’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놈이 사용 가능한 모든 기운과 힘을 박탈시켰다는 것.
심지어 시스템은 놈의 젊음까지 앗아갔다.
흡혈귀가 가진 힘의 원천인 생명력까지 극도로 제압해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단숨에 늙어버려 반쯤 대머리가 된데다 그나마 남아 있는 머리카락도 얇고 새하얗게 새어 버린 남자를 향해 말했다.
“이봐.”
그냥 이대로 죽여 버릴 수도 있었지만, 진조에게 궁금한 점이 남아 있었다.
“네가 가지고 있던 그 붉은 힘의 정체는 무엇이지?"
그리고 천천히 놈의 얼굴을 제압하고 있던 힘을 풀어주었다.
한순간에 늙어버린 남자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참담한 표정의 남자는 내 물음에 대꾸하지도 않고 내게 물어왔다.
"너는 무엇이냐?"
놈은 내 질문에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하긴 물어본다고 가르쳐 줄 리가 없나.'
애초에 정보를 빼내기 위해 놈을 제압한 건 아니었으니, 딱히 아쉬울 것은 없었다.
흡혈귀 놈은 이빨이 사라져 어눌한 발음으로 계속해서 물어왔다.
“어째서 너 같은 존재가, 현세에- 쿨럭!”
놈은 말을 잇지 못하고 검은 피를 토해냈다.
아무래도 한계인 듯 했다.
진조는 눈물마저 흘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아- 위대하신 분과의 연결이・・・ 축복이...!”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오언주씨.”
“...네."
“마무리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오언주는 현재 수인화가 풀려 있었다.
그녀의 몸도 상당히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강림을 사용하기 직전, 진조의 힘이 해방되면서 울산 전체가 피로 물들었을 때 이곳에서 강력한 힘의 파장이 터져나갔다.
그로 인해 가장 가까이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아빠는 태화강 인근 지역까지 날아가 버렸을 정도였다.
당연히 근처에 있던 오언주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진조에게 접근을 해 주었다.
그러니 이놈의 마무리는 오언주에게 맡기는 것이 맞았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도 그게 맞고.'
흡혈귀들과의 싸움에 대비하여 가신들에게 돈을 쏟아 부었다.
새롭게 합류한 이들도 웬만하면 전부 돈을 들여 최대한 레벨을 올려주었으니 당연했다.
'레벨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비효율의 극치란 말이지.'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소극적으로 투자했다면, 분명 많은 피해를 입었을 테니까.
푸욱!
모든 힘의 원천을 봉인당한 진조는 오언주의 손이 심장을 꿰뚫는 것과 동시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한순간에 추하게 늙어버린 놈의 몸이 심장에서부터 사라지며 정산되었다.
[진조(眞) (Lv. 62)를 사냥하셨습니다.]
[초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995,858,494,923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어?'
순간적으로 내가 숫자 단위를 잘못 본 줄 알았다.
'백만, 천만, 억, 십억...'
진조를 사냥하고 나온 돈은 무려.
'구천구백억?'
거의 1조에 달하는 돈이 입금된 것이다.
'아니...? 이게 맞나?'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보다 진조 한 마리를 잡고 번 돈이 더 많을 정도였다.
'아무리 여러 가지 혜택이 겹친다지만....'
아마도 이 거금을 만들어내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지금도 머리 위에 놓여 있는 왕관 덕분일 것이다.
왕관이 시민들이 받는 효과와 오언주가 가지고 있는 자작의 칭호 덕분에 최종적으로 원래 정산금의 9배를 받게 되니까.
그리고.
'정산금이 이만큼 엄청나다는 것은....'
당연히 경험치의 양 또한 말도 안되게 엄청나다는 것을 뜻했고.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레 폭발적인 스킬 레벨 상승으로 이어졌다.
'아, 시발 좆됐네.'
그 직후.
슈슉-
강림의 시간이 끝나며 내 집으로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
미칠듯한 고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Episode 20] BLOODY FEST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