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99화 (100/175)

<[Episode 22] 기생충 (1) >

하동건 파티는 흡혈귀들과의 싸움이 끝난 이후로 긴 휴가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부지런히 몬스터 사냥에 전념하던 시절과 정반대되는 모습이었는데, 이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그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는 점이었다.

김재현에게 선택받아 힘을 얻은 그들은 그동안 여러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어마어마한 자본을 축적했다.

에이스 파티인만큼 강력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던 그들은 기본급만으로도 수십 억 대의 자산가가 될 수 있었다.

진조를 직접 마무리한 오언주의 경우 천억이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고, 그런 그들이 몬스터 사냥에 목 맬 이유는 없었다.

둘째로, 적당한 사냥터의 부재였다.

현재 사람들의 주 사냥터는 울산으로 옮겨지게 됐는데, 그 이유는 김재현이 다스리는 영역이 너무나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부산 전체를 둘러싸게 된 터라 이제 사냥을 하려면 10km 정도는 나가야 했다.

몬스터 사냥을 위해 김해나 양산, 기장까지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차를 이용할 수 있으면 사정이 나을 텐데, 도로가 정비된 구역은 아직 서면을 중심으로 일부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사냥 한 번 나가기 위해서는 더럽게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서면 중심에 있는 전포역과 울산의 홈플러스가 이어지니 영역 밖의 몬스터를 사냥하던 수준의 파티는 죄다 울산으로 몰리게 됐다.

처음에는 도시에 남아 있던 중급 흡혈귀들을 사냥하고 다녔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구심점을 잃은 흡혈귀들은 제 살 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고, 대신 주변 산맥에 있던 잡다한 몬스터들이 울산으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영역의 우두머리였던 진조가 사라졌다는 것을 귀신같이 눈치 챈 것이었다.

그 결과 울산은 수많은 몬스터들로 가득 들어차게 됐는데, 그 대부분이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로 굳이 시간을 내서 사냥할 만큼 메리트가 있는 사냥감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김재현이 따로 지시한 업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동건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정찰을 마치고 온 김 건을 향해 물었다.

"찾았어?"

김건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대답했다.

"...아뇨, 선배. 던전 출입구로 보이는 건 없었어요."

김재현이 그들에게 맡긴 임무는 바로 던전의 탐색 및 공략이었다.

"동건아 너 괜찮냐?"

옆에 있던 강덕수가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

“뭐가?"

"그게, 아니다...."

강덕수 뿐만 아니라 하동건을 바라보는 김 건의 표정도 비슷비슷 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이 탐색하고 있는 이곳은 세 사람이 함께 나고 자랐던 장전동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근처에 그들의 본가가 있었다.

블랙오크에게 점령당했던 아파트 단지.

그저 집이 엉망이 된 선에서 그친 강덕수와 김 건이야 가족들이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하동건은 달랐다.

집안이 온통 피 칠갑이 되어 있었던 그의 경우에는.......

"나는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강덕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20년 지기 친구로서 하동건이 애써 강한 척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는데.'

하동건 파티는 두 개 조로 나누어 탐색을 진행 중이었고, 강덕수는 일부러 하동건을 이곳에서 먼 곳으로 보내려 했었다.

하지만 하동건이 고집을 부려 구태여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고작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효율이 좋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련한 놈'

물론 친구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피 칠갑이 되어 있던 집의 모습을 봤더라도, 가족들이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싶을 테니까.

“...나도 그리 다를 건 없나.'

피만 제외하면 자신도 하동건과 그리 다를 것 없는 처지였다.

이런 세상에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말의 희망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부산 전체가 안전지대가 됐으니 잘하면...'

정말로 운이 좋으면 살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던전 탐색을 진행하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상상을 계속 하곤 했다.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희망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때 하동건이 말했다.

"건이 너는 조금 쉬다가 해가 지고 나면 다시 한 번 하늘 위에서 살펴줘. 던전 입구가 있는 곳이라면 티가 날 테니까.”

“...알겠어요, 선배.”

"내가 3번 라인을 맡을 테니까 덕수 너는 4번 라인을 뒤져 봐.”

"오케이."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부산대학교 부산캠퍼스 안이었다.

대학교 안이라 그런지 건물들 마다 번호가 붙어 있었는데, 덕분에 분담이 편했다.

강덕수는 ‘416 생물관'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는 베이지 색 건물을 마주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느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건물 내부에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핏자국과 시체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하는 복도를 지나며 내부를 꼼꼼이 확인했다.

그러다 화장실에 진입하던 강덕수는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움찔 놀랐으나, 이내 그것의 정체가 자신을 비추고 있는 거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놀래라.'

강덕수는 굳이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만약 던전 입구가 이곳에 있었다면 어두운 화장실 안쪽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을 테니까.

굳이 안쪽까지 뒤져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스마트폰을 꺼내 불빛을 켜 가볍게 안쪽을 살펴봤다.

화장실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똥오줌이 가득해 악취가 풍기는 것은 물론이고 몬스터 시체 한 구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의 시체가 뒤엉켜 썩어가고 있었다.

늑대를 닮은 몬스터였는데, 덩치가 성인 남자만한 괴물로 부산대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놈이었다.

'이런 놈들이 활개치고 다녔다면 살아남기에는 절망적이겠네. 그러면 그 녀석도..?'

새삼스럽게 스스로가 정말 운이 좋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 날 동건이네 집들이를 오지 않았다면...'

고블린 대신 저런 괴물을 만났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지. 집에 있었으면 그 빌어먹을 블랙 오크 놈들의 손에 죽었겠네.'

김재현에게 선택받아 힘을 얻는 일 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정말 빌어먹을 세상이네.'

저런 괴물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이곳은 바로 자신의 집 근처였다.

'부모님이 성공적으로 도망쳐 나왔다고 해도...'

괴물 놈들에게 잡아먹혔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눈살을 찌푸리고 화장실을 나가려던 강덕수는 잠시 거울 앞에서 걸음을 멈춰 세웠다.

'...닮았네.'

면도를 하지 못해 제멋대로 돋아난 수염이 있는 자신의 얼굴은 아버지를 쏙 빼닮아 있었다.

“아버지...."

그를 닮은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리움의 향기가 더욱 짙어지는 듯 했다.

'보고 싶어요.'

그때였다.

덜컹!

화장실 안쪽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덕수는 곧바로 그 소리에 반응했다.

‘일어나라.'

이제는 굳이 입 밖으로 소리를 내뱉지 않더라도 은빛 기사를 소환해 내는 게 가능했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난 대변기 칸막이 앞에서 은빛 기사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열려고 했다.

덜컹덜컹!

문은 당연하다는 듯이 잠겨 있었고.

"꺄아아악!"

안에서는 하이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지금 이곳이 안전지대 안쪽이라는 것을 깨달은 강덕수가 소리쳤다.

"진정하세요!"

곧바로 은빛 기사를 역소환시켰다.

그리고 그 앞으로 이동해 핸드폰 라이트를 비추며 말을 이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문을 열어주세요."

"시, 싫어!"

칸막이 안쪽에서는 잔뜩 겁에 질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꺼져!"

여자의 목소리에선 깊은 불신이 느껴졌다.

'하는 수 없군.'

여기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어르고 달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기에 강덕수는 칸막이를 붙잡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빠직!

곧바로 잠금장치가 박살나며 문이 열렸다.

“헉!”

안쪽에서는 숨 넘어 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온몸으로 문을 막아보려 했지만 50레벨에 도달한 강덕수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강제로 문을 개방당한 여자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강덕수를 올려다봤고, 강덕수는 그런 여자를 향해 무심하게 핸드폰 라이트를 비추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

여자를 끌어내기 위해 손을 뻗는 그 순간.

"내 몸에 손 대지 마!!"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강덕수는 왠지 모를 익숙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어?"

이내 그 익숙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예솔아?"

"얼마나 버틸 것 같습니까?"

나는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할아버지의 상태를 살펴보던 이성민 병원장이 말했다.

“네 분 다 단순히 잠드신 것뿐이라서 보통의 경우 제대로 된 케어만 받으신다면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버티실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베지테이티브 스테잇(식물인간 상태)에서도 몇 년을 버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이성민 병원장은 할머니 쪽을 바라보며 우려 섞인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할머님 쪽은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하고 최고급 케어를 받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나빠지고 있는 중입니다.”

할머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과 함께 가족들이 정신을 잃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잠든 것뿐이라며 호언장담하던 이성민 병원장도 갈수록 나빠지는 할머니의 상태를 보고는 당황스러워했다.

"지금 속도라면 길어야 한 달, 짧으면 일주일 안에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이성민이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고 있었다.

‘일주일 안에 방법을 찾아야만 해.’

지금 가족들의 상태는 단순한 수면이 아니었다.

투명한 기운이 몸에 자리를 잡고 그들의 생명력을 실시간으로 갉아먹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의 경우 아직까지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세 사람 전부 50대 레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일반인을 아득히 뛰어넘는 신체 능력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니 수액과 영양소만으로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달랐다.

혈족 버프를 받았음에도 겨우 21레벨로 낮은 레벨인데다 이미 몇 달이나 잠에 빠져계시던 상태였다.

이미 몸의 컨디션이 조금씩 악화되고 있던 상황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할아버지의 힘이 사라진 지금 김다정의 힐로 그것을 대체하려고 시도해봤지만, 턱도 없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할머니는 빠르게 야위셨다.

'젠장.'

마음이 급했다.

'시도 해볼까?'

강제로 투명한 기운의 영역을 불살라버리는 것도 생각해봤다.

너무 위험한 방법이었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모든 것을 잃을 뿐이었다.

'퀘스트 부여만 가능해도 뭔가 시도해 볼 수 있을 텐데.'

답답한 마음이 커져만 가던 그때였다.

우웅-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할아버지의 오른 손이 짧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진동하듯 빛이 점멸하던 그 순간이었다.

쿠우웅!

영역 전체에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과 함께.

[허가 받지 않은 대상이 출입을 시도합니다.]

너무나도 익숙해진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절대자의 눈.'

곧바로 그곳을 향해 절대자의 눈을 사용했다.

투명 장벽을 두들겨 온 것의 정체는.

「백룡(Lv. 63)」

일전에 한 번 이곳을 찾아왔던 거대 괴물이었다.

<[Episode 22] 기생충 (1)>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