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3] Lilith (1)>
갑작스레 소환된 가신들은 얼떨떨한 표정이 되어 숲을 둘러보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이곳으로 모여 주세요."
하동건이 나를 향해 물었다.
"재현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가신들과 눈빛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지구가 아닙니다."
충격적인 말에 가신들 사이에서 동요가 퍼져나갔고, 하동건이 대표로 물어왔다.
"던전 내부인 겁니까?"
“아닙니다. 이곳을 어디라고 명쾌하게 말하기는 애매하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여기가 어디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제 가족들이 의식을 잃었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가신들이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그들을 향해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 숲의 어딘가에 가족들의 정신이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내 말에 하동건은 덩달아 심각한 표정이 되어 반문했다.
“갇혀 계시다니, 가족 분들이 납치되신 겁니까?"
“아닙니다. 잠시만요.”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그런 판단을 내린 것에는 직관과 가설이 합쳐져 있었으니까.
‘백문이 불여일견.'
가신들에게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는 것 보다는 혹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절대자의 눈을 사용해 나무줄기에 매달린 혹 중 사람이 들어 있는 것을 찾으려던 찰나.
우드득
새로운 혹 하나가 실시간으로 자라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속에는.
"음?"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성민 병원장님?'
병실에서 가족들을 돌보고 있어야 할 이성민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는 건?'
밖에서 무언가 사고가 발생한 게 분명했다.
‘감염이 퍼져나간 거야.’
일주일 전 할머니의 몸에서부터 빠져나와 가족들을 잠들게 만든 그 빛이 다시 한 번 뿜어져 나온 게 분명했다.
'절대자의 눈.'
곧바로 바깥 상황을 확인했다.
다른 차원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도 스킬은 문제없이 작동했다.
예상대로 이성민 병원장을 포함한 의료진들이 정신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당장 가족들을 돌봐 줄 이들이 없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도대체 얼마나 넓게 퍼진 거야?'
일전에 가족들을 잠들게 만들었던 그 빛의 영향력은 겨우 안방 하나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절대자의 눈으로 본 바깥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우선 가족들이 있던 병원 전체가 멈춰버린 상태였다.
병원 곳곳에 잠에 빠진 사람들이 고른 숨을 뱉어내고 있었다.
다행히 위급한 상태에 처한 이들은 없었지만, 빠른 조치가 필요해보이기는 했다.
병원 내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병원을 중심으로 수백 미터 거리에 있는 이들까지 모두 영향권에 들어온 것으로 보였다.
[다빈씨.]
내가 호출하자마자 곧바로 김다빈의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네, 재현님.]
[지금 당장 남포동 쪽으로 향하는 통행을 모두 차단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김다빈에게 잠에든 사람들을 케어 해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랬다가는 2차, 3차 피해로 확장될 수 있다.'
전염이 발생하여 계속해서 더 많은 환자를 발생시키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은 본가가 있는 곳을 최대한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역시 빠르게 이 사태의 원흉을 처치하는 게 베스트다.'
일단은 가신들에게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해 이성민 병원장이 들어 있는 혹을 조심스럽게 떼 내어 바닥으로 가져왔다. 그것을 쭉 찢어버리자 끈적끈적한 액체와 함께 이성민 병원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
"사람?"
"어? 저 분은...?"
평소 몬스터 사냥으로 전투를 자주 치르는 만큼 이성민 병원장을 알아본 가신들도 몇 명 있었다.
나는 상점에서 적당한 가운을 구매해 병원장의 몸에 덮어준 다음 말했다.
"다정씨. 병원장님에게 힐 좀 써주시겠어요?"
"네."
김다정은 잠에 빠진 가족들의 치료를 위해 이성민 병원장을 비롯한 의료팀과 함께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잠들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
아마도 빛이 퍼지기 전에 내가 가신 소환을 한 것이겠지.
우웅-
김다정의 힐에는 상처를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태이상을 호전시키는 효과도 갖추고 있었다.
"쿨럭! 우욱! 우웨에에엑!"
이성민 병원장은 끈적끈적한 액체를 시원하게 토해내며 깨어났다.
"병원장님. 정신이 좀 드세요?”
이성민 병원장은 나를 보더니 울먹이는 눈이 되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민 이성민의 신뢰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시민 이성민의 충성도가 크게 올라갑니다.]
그와 동시에.
[시민 이성민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이성민이 가신으로 등록됩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이성민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하며 가신이 한 명 더 늘어나게 되었다.
'반응을 보면 병원장님인 건 확실한데.'
현재 절대자의 눈으로 본 바깥세상의 병실에는 정신을 잃은 이성민 병원장의 몸이 호흡을 하고 있었다.
‘저기에서 구해낸다고 해도 본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건가.’
그렇다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가족들을 구한다고 해도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이 상태로 동대문을 사용해서 본래 세상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돌아가자마자 그의 정신이 몸속으로 들어가게 될지, 아니면 일이 꼬이게 될 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이성민을 향해 물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게・・・ 빛이 번쩍하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저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적당한 옷을 하나 구입해서 그의 옆에 내려둔 다음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것처럼 저 나무는 일종의 식인 나무들입니다. 나무줄기에 매달려 있는 이 혹을 통해 사람들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거죠."
그 말을 들은 가신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건 여기 있는 나무 전부...?"
"허..."
충격 받은 그들을 향해 말했다.
"혹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움직여주세요. 지휘는 유한길씨가 부탁드립니다.”
그때까지 가만히 내 이야기를 경청하던 유한길이 당황하며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질 했다.
“네? 저, 저요? 제가요?”
“네. 저 혹들 중 절반 이상은 빈껍데기입니다. 효율을 위해서는 유한길 씨의 능력이 필요할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절대자의 눈보다도 유한길의 천리안 능력이 더 좋은 효율을 보여줄 것이다.
절대자의 눈은 범위가 제한적이었으니까.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이 숲에서 다른 존재와 마주친 적은 없었다.
만약 몬스터 따위가 나타난다고 해도 가신들의 전력이면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유한길에게 상황을 맡긴 뒤 나는 김건을 따로 호출했다.
"저를 태우고 하늘을 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김건의 등에 타고 거대 나무가 있는 숲의 중심을 향해 날아갔다.
하늘을 날아서 움직이니 확실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기다.'
절대자의 눈을 사용한 시야에는 적나라하게 보였다. 나무의 중심에서 투명한 기운의 소용돌이가 뭉쳐지고 있는 것이 말이다.
“저기에 내려주세요.”
투명한 기운이 뭉쳐지고 있는 곳 근처에는 꽤 큰 규모의 구멍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노골적으로 이곳을 통해 들어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곳에 내린 뒤 김 건을 향해 말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김 건씨도 탐색 작전에 합류해 주세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복귀하실 때 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잠시 고민했다.
'괜찮을까?'
가신들을 데리고 우르르 몰려오지 않은 것은 이곳이 그만큼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진조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험이 존재할 지도 몰랐다.
진조의 경우 그는 붉은 기운을 다루기는 했으나, 힘의 주인은 따로 존재했다.
하동건이 검은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놈은 진짜다.'
이 거대한 숲에는 온통 투명한 기운이 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니 이 안에는 신격을 갖춘, 투명한 기운의 주인이 존재할 것이다.
“위험해.”
김건을 향해 말했다.
“그러면 여기서 대기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입구에 그를 대기시켜 놓고는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지 않아도 날이 어두워지고 있던 터라 금세 주변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절대자의 눈을 통해 주변 공간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내게는 시야가 차단된 것 정도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거대한 나무에 뚫린 동굴은 생각보다 길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기운이 더욱 강맹해지고 있다.’
파직-
거칠게 흐르는 투명한 기운이 내 영역의 경계와 부딪히며 미세한 스파크가 튀어댔다.
지금 모습만 봐서는 감히 세계수에 기생하며 생명력을 빨아먹던 벌레 같은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파지직!
급기야 내 영역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중심부에서 거칠게 소용돌이 치고 있는 투명한 기운과의 힘겨루기 때문에 기운이 깎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안 되겠어.'
이대로라면 투명한 기운의 주인과 마주하기도 전에 힘을 소진하게 된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영역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우우웅!
그러자 사방으로 넓게 퍼져 있던 영역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힘을 소진하며 영역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의식적으로 힘을 압축시켜 영역의 범위를 줄이고 있는 것이었다.
압축된 만큼 밀도가 높아진 힘은 더 이상 주변의 투명한 기운에 깎여나가지 않을 수 있었다.
“됐다.”
영역이 줄어들면서 절대자의 눈을 사용할 수 있는 범위도 함께 줄어들었지만, 주변 지형을 파악하며 걷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힘을 갈무리하는 데 성공했을 때.
또각-
동굴 안쪽에서부터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존재에 대응하여.
우우웅!
나는 호신강기를 발동시켰다.
아빠에게서 얻은 스킬.
전신을 둘러싼 푸른 기운이 주변의 어둠을 물렸고, 동굴 안쪽에서 다가온 대상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
그곳에는 고혹적인 자태를 갖춘 여자가 서 있었다.
하이힐에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옷을 입은 그녀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날개가 접혀 있었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몽환적인 눈빛의 여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를 적셔왔다.
"너는 뭐야?"
그에 대답했다.
“이쪽에서 묻고 싶은 말입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제 가족에게 해를 끼치는 겁니까?"
"가족...?"
"당신이 세계수의 생명력을 훔치는 과정에서 제 가족들의 정신을 인질로 삼았습니다. 그 때문에 제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고요."
"찾아와...?"
그 순간 지루해 보이던 여자의 눈빛이 살짝 반짝였다.
"너・・・ 초대받아서 온 게 아니구나?"
“그렇습니다.”
그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투명한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평온을 유지하며 말했다.
“제 가족들, 그리고 제 사람들을 풀어주세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도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쯤이면 그녀도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운에 대해서 느꼈을 것이다.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
싸우게 되면 서로가 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저쪽도 평화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내 사람들을 구해낼 수만 있다면 족했다.
그러나.
"내가 왜..?"
아무래도 여자는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감정 없이 무료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살짝 달뜨며 홍조가 졌다.
"내가 왜 제 발로 내 영역에 들어온 너를 놓아줘야 하는 거야?"
그녀의 혀가 윗입술을 핥았다.
그와 동시에.
“캬아아아!”
“카아악!”
주변의 그림자들이 일어나 나를 덮쳐왔다.
[Episode 23] Lilith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