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3] Lilith (2) >
김건은 김재현의 지시에 따라 동굴 입구를 지키면서도 내심 따라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불길해.'
어둠에 집어삼켜져 있는 동굴 내부의 모습이 한 없이 불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따라붙어야 하나?'
김재현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꼭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장 김다정만 봐도 힐과 축복 등 다른 파티원 중에서도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기에 매번 전투 때마 다 모두가 신경을 써서 보호하지 않는가.
'하지만.......'
김재현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일단 재현님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김건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작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는 저녁노을에 물든 숲은 어딘가 몽환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발아래 펼쳐진 수림(樹林)의 풍경을 감상하며 이곳의 높이를 가늠해봤다.
자주 비행을 하다 보니 지상의 모습만 보아도 대충 견적이 나왔다.
'...1km쯤 되려나?'
그 말은 즉, 지금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나무의 높이가 웬만한 산과 비견될 정도라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이곳은 나무의 정상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다.
'...꼭대기까지 합치면 2km가 넘겠는데?'
대한민국에 있는 지리산과 한라산이 해발고도 2km를 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나무의 크기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높이뿐만 아니라 나무줄기의 굵기도 엄청나서 멀리서 봤을 때는 숲 중심에 산이 하나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 건은 하나의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거, 그 나무가 관련이 있는 건가?'
자갈치 시장 쪽에 있는 거대한 나무.
나날이 성장하더니 이제는 아파트보다 거대한 나무가 된 그 나무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건 분명 재현님의 조부님이 키우는 나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나무는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이 산처럼 거대한 나무의 자식처럼 보였다.
그렇다는 건.
‘...그 나무도 성장하고 나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나무가 가득한 숲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아닐 거야. 재현님의 가족 분께서 그럴 리가 없지.’
애써 상황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던 그때, 저녁노을이 사라지며 완연한 어둠이 숲을 집어삼켰다.
그 순간.
"...응?"
숲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뭐, 뭐야?'
불길한 기운이 숲 전체에 퍼졌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그때.
오싹!
등 전체에 소름이 돋았다.
김건이 고개를 돌려 동굴 내부를 바라본 순간.
"!!!"
어둠에서 태어난 짐승들이 동굴 내부에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크윽!"
반사적으로 동굴 밖으로 몸을 던진 직후.
콰과과과과-
동굴이 어둠을 토해냈다.
날개를 펼쳐 허공에서 균형을 잡은 김 건은 그 광경을 보며 잠시 패닉에 빠졌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그러다 문득 저 동굴 내부로 들어간 사람이 누구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재현님!!!"
해가 지고 숲에 어둠이 찾아오는 것과 동시에 괴물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유한길을 필두로 수색 작업을 펼치던 가신들은 마음의 준비도 못 한 채로 곧장 전투에 돌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가신들은 모두가 잦은 전투를 헤쳐 나온 베테랑 전사들이었다.
타앙-!
유한길은 천리안을 쓰던 것을 멈추고 곧바로 총을 꺼내 괴물 놈을 향해 쏘아냈다.
그러나.
“캬아아악!"
어둠 속에서 태어난 괴물들에게 물리적인 공격은 소용이 없었다.
유한길이 쏘아낸 총알이 괴물의 미간을 정확하게 관통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은 멀쩡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총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던 그때.
화르르륵!
불꽃이 치솟아 오르며 그림자 괴물을 불태워버렸다.
“이쪽입니다! 다들 여기로 모이세요!"
모든 공격이 무용지물인 것은 아니었다.
남지호의 불기둥처럼 그림자 괴물들에게 있어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능력도 존재했다.
그리고.
서걱!
하동건, 강덕수, 오언주.
가신들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는 세 사람의 공격이 그림자 괴물들에게 먹혀들고 있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
환한 빛이 전신을 휘감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빛의 정체는 김다정의 축복 스킬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김다정이 소리쳤다.
"축복!"
그와 동시에 주변으로 모여 들었던 모든 가신들의 몸에 축복의 힘이 깃들었다.
김다정이 확신을 담아 소리쳤다.
“다들 공격해요! 이제 괜찮을 거예요!”
그녀의 추측대로 축복을 받은 가신들의 물리 공격이 그림자 괴물들에게 먹혀들기 시작했다.
타앙-!
원거리 공격인 총은 여전히 괴물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했지만, 축복의 힘이 전이된 칼이나 창과 같은 근접 무기는 그림자들을 훌륭하게 베어냈다.
"케에엑!"
가신들이 힘을 합치자 그림자 괴물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갔다.
애초에 물리적인 공격에 완전히 면역이라는 점만 빼면 그림자 괴물들의 공격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놈들의 공격 방식은 물어뜯거나 발톱으로 할퀴는 게 고작이었는데, 그것들은 레벨이 높은 가신들의 몸에 작은 생체기 하나 만들어내는 것이 한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캬아아아!"
숲 전체에 넘실거리는 어둠 속에서 놈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었다.
가신들이 백 마리를 해치워도, 주변에는 새롭게 태어난 그림자 괴물들이 금세 그 자리를 채워버렸다.
그때 천리안을 사용해 주변 정황을 파악하던 유한길이 입을 열었다.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중앙에 있는 거대 나무에게서 멀어지는 만큼 그림자 괴물의 생성 속도가 줄어듭니다!"
방향이 정해지자 가신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였다.
“뛰어!”
"일어나라!"
강덕수가 지시하자 오십 기의 강철의 기사가 그림자 군단의 앞을 막아섰다.
"축복!"
김다정이 새롭게 나타난 강철의 기사들을 향해 축복을 뿌렸고, 그들이 들고 있는 할버드에 축복의 빛이 서렸다.
서걱!
강철의 기사들은 든든한 방호벽이 되어 그림자 괴물들을 박멸해갔다.
강덕수의 강철의 기사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가신들은 유한길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 나갔다.
그들이 달려 나가는 방향에도 그림자 괴물이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번쩍-!
김가영이 쏘아낸 빛의 화살이 수십 조각으로 쪼개지며 앞길을 가로막는 그림자 괴물들을 난도질했다.
게다가.
"크허어엉!"
어둠에서 태어난 밤짐승들 사이로 붉은 눈의 곰 한 마리가 날뛰고 있었다.
콰직!
광폭화 상태의 오언주의 곰발바닥이 휘둘러질 때마다 그림자 짐승들의 몸이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유한길의 말대로 거대 나무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림자 괴물의 확연히 줄어드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콰과과과과-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어둠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저건 또 뭐야?"
앞길을 가로막힌 가신들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허..."
검은 올빼미들이 밤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것들의 중심에는 거대한 그림자 덩어리가 존재했는데, 검은 올빼미들이 그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그림자 기둥 또한 저 검은 구체에서 뻗어 나온 촉수 중 하나였다.
꾸륵꾸르륵-
꿈틀거리던 그것은.
촤아아악!
이내 거대한 한 쌍의 날개를 뽑아냈다.
거대한 올빼미의 형상을 갖춰나가는 그림자.
그리고.
쏴아아아-!
날개가 한 번 휘둘러 질 때마다 어마어마한 압력의 바람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으윽!"
쩌저적!
거친 폭풍에 숲의 일부가 찢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부러진 나무들은 괴물이 날개 짓하는 방향으로 드러누워 최후를 맞이했다.
검은 구체가 형상을 거의 갖추어나갈 때 쯤.
쐐애애애액 -
검은 기운을 품은 창 한 자루가 검은 구체의 중심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끼에에에엑!”
다시 한 번 폭풍이 들이닥쳤다.
쐐애애애액!
"전부 공격해!!"
하동건의 외침과 동시에 두 번째 창이 날아가 거대 그림자 괴물의 한쪽 날개를 찢었다.
그에 이성을 되찾은 가신들이 총공격을 감행했다.
쩌저저적-!
문지훈, 문상훈 형제가 그림자 괴물의 양 발을 알렸고,
콰앙- 화르르르륵!
괴물의 다리 사이로 화려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크허어엉!”
문병호의 도움으로 거대 그림자 괴물의 머리 위로 이동한 오언주가 떨어져 내리며 사방으로 손톱을 휘둘렀다.
찌지지직-
그림자가 찢어발겨지며 그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우우웅
사방에서 몰려든 어둠이 괴물의 몸으로 흡수되며 곧장 치료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하늘에는 그림자 올빼미들로 가득했다.
그것들이 그림자 괴물에게 합류해 들어갈 때마다 가신들이 만들어낸 상처는 금세 회복되며 씻은 듯이 사라졌다.
가신들 모두가 고군분투하던 그때.
"전부 비키세요!”
김가영의 목소리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우우우웅!
그곳에는 그림자 괴물을 향해 거대한 빛의 화살을 겨누고 있는 김가영의 모습이 있었다.
길이만 2m가 넘어가고 굵기 또한 엄청나게 두꺼운 그 빛의 화살은, 화살이라기보다는 대포의 포신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터엉!
김가영이 활시위를 놓는 순간.
번쩍 -
사방이 빛으로 물들며 거대한 빛의 광선을 쏘아냈다.
콰과과과과과-
김가영의 빛의 화살이 한순간 숲에서 어둠을 거두어갔다.
그것은 거대 괴물의 상반신을 아예 날려버린 것도 모자라 그쪽 방향에 있던 모든 그림자 올빼미들마저 지워버렸다.
털썩
모든 힘을 쏟아낸 김가영은 그대로 기절하듯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꾸륵꾸르륵
잠시 동안 빛이 머물렀던 하늘이 다시 어둠에 잠기게 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금세 어둠과 그림자로 가득해진 숲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그림자 괴물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미친."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던 문지훈과 문상훈 형제는 유한길의 외침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입니다! 빨리 조금이라도 더 멀어져야만 합니다! 어서!"
유한길의 말에 이성을 되찾은 가신들이 다시 움직이려던 찰나.
“사람들을 챙겨야 합니다!”
이성민이 소리쳤다.
의사 정신이 투철한 그는 난리가 난 이 상황에서 정신을 잃은 사람들을 챙기고 있었는데, 그가 돌보고 있는 사람들은 방금 싸움의 여파로 인해 혹 주머니 안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목숨을 걸고 치유의 힘을 뿌리며 그들을 보살핀 것이다.
평생을 의사로 살아오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 적이 많았던 그였기에 더더욱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이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한 행동이라고 해서 그 결과가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유한길이 이성민을 잡아끌며 말했다.
“포기해야 합니다, 어서!”
“그럴 수는...!”
"정신 차리세요! 이러다 다 같이 죽는다고요!"
몬스터가 나타나고 빠르게 김재현의 영역에 편입되어 안락한 삶을 살았던 다른 가신들과는 달리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유한길은 생존을 위해 잔 인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빨리!"
그때였다.
"엇!"
무언가를 발견한 이성민이 유한길의 손을 뿌리치고 어디론가 달렸다.
그곳이 반쯤 박살나서 끈적끈적한 소화액을 내뱉어내고 있는 혹 주머니라는 것을 확인한 유한길은 표정을 와락 구겼다.
'마음대로 해라.'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세상이 바뀌기 전, 그리고 김재현의 능력의 품 안에서 온실 속 화초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장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과 같은 전쟁터에서 저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방해만 되는데다 자칫하면 팀원들을 위험해 빠트릴 수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지금 이성민이 정신을 차리게 만든 사람들은 전부 짐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람들을 다 챙겼다가는 다 같이 죽는 길 밖에 없다.’
죽든 말든 버리고 가려던 그때.
우득
숲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드득-
'이게 뭐야?'
유한길이 당황하며 멈칫거리던 그때.
푸욱!! 푸부북!
땅에서 솟아난 나무뿌리들이 꼬챙이가 되어 그림자들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채우던 그림자 괴물들이 싹 쓸려나갔다.
유한길이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그 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혁이 친구들이라 했제? 이기 다 무슨 일이고?”
이성민이 마지막 순간에 정신을 차리게 한 사람은 이봉열, 세계수의 수호자이자 김재현의 외할아버지인 사람이었다.
[Episode 23] Lilith (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