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4] 연구 (1) 〉
이이잉-
본가의 거실 한쪽 구석에 설치된 안마의자가 기계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상점 레벨 효과로 30%나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400만 원이나 든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 돈이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 단위의 돈을 가지고 있는 내게 푼돈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족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장 좋아해 주셨다.
"아이고. 시원타."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가족 전체가 한 번씩 안마의자를 사용하며 한 시간이 훌쩍 흘렀고, 또 다시 할머니 차례가 돌아와 안마를 받는 상황이었다.
"마음에 드세요?"
"어어엄청 마음에 든다. 근데 재현이 네가 돈이 어디서 놔서 이런 비싼 걸 사 왔노?"
“저 돈 많아요, 할머니.”
지금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있는 돈만 해도 수백 수천만 단위였다.
사냥으로 들어오는 돈, 거래소 수수료, 여기저기에 있는 상점에서 누적되고 있는 돈 등등.
23만 명이 넘어가는 시민들의 경제활동이 그대로 정산금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400만 원은 정말로 푼돈에 불과했다.
"아이고, 내 새끼 다 컸네. 다 컸어."
할머니는 지난 몇 개월간의 기억이 아예 없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백수로 살면서 맨날 게임이나 하던 손주가 갑자기 수백만 원 대의 안마의자를 사 주는 셈인 것이다.
나를 기특해하시는 할머니의 옆에서 엄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는 말했다.
“우리 아들, 너무 고마워.”
아빠는 한쪽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안마의자 옆의 소파에 앉아서 다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계셨다.
'좋다'
가신들에게 수백억씩 사용할 때보다 금액은 턱없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지금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이게 내 첫 사치인가.'
그동안 수백억을 쓰고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생활필수품이 아닌 나의 개인적인 만족감을 위해 이런 거금을 소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그때 옆에서 훈훈한 미소를 짓던 아빠가 말했다.
"재현아. 아빠는 벤틀리가 가지고 싶구나.”
“...아빠도 돈 많잖아요.”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 아빠가 사냥했던 몬스터들의 숫자만 생각해도 최소 수십억에 달할 것이다.
"그거 아빠 돈 아니다. 네 엄마꺼지.”
“아.”
평소에도 아빠가 자신의 모든 것을 엄마에게 바치는 스타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 아빠는 종속의 계약으로 인해 엄마에게 완전히 종속된 상태였다.
“엄마한테 부탁하시면 사 주시지 않을까요?”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에이. 아빠가 번 돈이 얼만데."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생각보다 통이 큰 스타일이었다.
"엄마.”
"재, 재현아...!”
아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엄마에게 가서 말했다.
"아빠 차 하나 사 줄 수 있어? 예전에 쓰던 차는 완전히 망가졌다며."
"차? 그게 지금 필요하니?"
엄마가 본 세상은 망가진 도로와 그 위에 방치되어있는 차량이 즐비해 있는 풍경이었기에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서면에는 차 가지고 다니는 사람 많아. 도로를 정비해 뒀거든. 이제 다른 도로도 정비 끝나면 차 타고 왔다갔다 할 수 있을걸?"
"그래?"
엄마는 긴가민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들인 내가 말하니까 믿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도저히 마음으로 납득할 수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엄마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몬스터의 등장으로 인해 망가진 도로 사정을 두 눈으로 확인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런 반응이었을 것이다.
이럴 때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직접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동대문 개방'
서면 상공과 거실 바닥을 연결하니 바닥을 통해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엄마가 직접 확인해봐."
이윽고 조심스럽게 동대문 너머를 확인한 엄마의 두 눈이 토끼처럼 동그래졌다.
"어머나."
그곳에는 잘 정비된 도시의 모습과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거 진짜 서면이니?”
“그렇다니까. 저기 우리 집도 보이지?”
"정말이네..."
“지금은 서면 주변에서만 차가 보이지만, 곧 부산 전체가 이렇게 변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차 한 대 사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니?"
엄마가 거의 넘어온 듯 보이자 아빠가 흐뭇하게 웃으며 나를 응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음. 차 한 대 정도 있는 건 괜찮겠네. 서면에 갈 때도 편할 테고."
“잘 생각했소, 여보!”
엄마가 활짝 미소 지으며 아빠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차를 산다고?"
그 질문과 동시에 아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베, 벤틀리.”
"그게 얼만데?"
두 번째로 이어진 질문에는 아빠는 더욱더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 모르겠네. 한 3억쯤 하나? 하하."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말투로 가격을 말했고.
“안 돼."
엄마의 말투는 다시 단호박이 되었다.
"훨씬 싸고 좋은 차도 많은데 무슨 그런 비싼 차를 사려고 해? 절대 안 돼!"
"하지만 여보.."
“안 돼. 차라리 그 돈으로 기부를 해! 지금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평생 사치 한 번 부리지 않고 살았던 엄마였기에 그 말에 더 힘이 있었다.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에 돈을 투자한 적은 있어도 명품 백이나 보석이 박힌 귀걸이 반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3억이나 하는 차량이 용납될 리가 없었다.
나는 울상이 된 아빠를 향해 말했다.
"아니, 무슨 그런 비싼 차를 사려고 했어요?"
아무리 비싸봤자 1억 정도겠거니 했는데, 3억이나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솔직히 그 가격은 기능보다는 브랜드이미지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요. 엄마 말대로 더 싸고 좋은 차로 사요.”
"아들아 벤틀리는 아빠의 로망이자 꿈이었다..."
썩은 미소를 짓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어딘가 짠했지만,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온 내게 차 한 대가 3억이나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한테 과시하는 거 말고는 딱히 의미 없지 않아요?"
"그게 중요한 거다!"
아빠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게 핵심이란 말이다!"
“.......”
"남들이 부러워하는 눈! 차에서 내렸을 때 시선이 집중되는 그 순간! 그걸 위해서 그 돈을 지불하는 거란 말이다!"
아빠의 진심이 담긴 호소에 내 눈은 짜게 식었다.
겨우 남들 눈을 의식해서 3억이라는 거금을 들이고 싶은 거라니.
'그것보다는 게임 아이템 강화에 3억을 태우는 게 더 건전할 거 같은데.'
적어도 강화된 아이템이 남지 않는가.
게다가 운만 좋으면 더 비싼 가격으로 되파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도.......'
아빠가 저렇게까지 원하는데.
"그렇게 갖고 싶으세요?"
내 말에서 무언가를 직감한 아빠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아들?"
"이번 딱 한 번만 사드리는 거예요."
“아들아!”
황홀한 표정으로 변한 아빠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아빠는 네가 참 자랑스럽다!"
흡혈귀 전에서 보여주었던 아빠의 활약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별것 아니었다.
'상점오픈.'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어라?”
해당 브랜드의 차량이 상점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워낙 고급 차량이라 그런지 본 적도 없었고, 당연히 상점에 등록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아마 서울에나 가야 벤틀리를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흠. 이러면...'
어렵게 해당 차량을 찾는다고 해도 수복하는 데만 수십 억이 들어갈 게 분명했다.
'그건 좀..'
그 순간 귀신같이 위기를 파악한 아빠가 입을 열었다.
"남아일언중천금!"
"...네?"
“아들아! 나는 너를 남자 중의 남자로 키웠다!”
그러니까 한 입으로 두 말하지 말란 소리였다.
'이렇게까지 원하시는 데 한 번 사 드리자.'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하나 생겼어요."
"말해보렴."
"부서진 거라도 좋으니 벤틀리를 찾아야 해요."
"그거라면 내가 해결해보마!"
아빠의 강력한 의지라면 정말 어떻게 해서든 벤틀리를 구해올 것 같았다.
그때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아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요.”
엄마는 흐뭇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소고기 사놨어."
그렇게 엄마와 할머니가 식사를 준비하러 먼저 주방으로 갔을 때,
"재현아."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오셨다.
"네, 할아버지."
"할애비가 궁금한 게 있는데 그 세상에서 네가 무언가 한 게 맞제?"
"네."
"그럼. 이제 할매가 다시 잠드는 일도 없는 기제? 그 계속해서 잠만 자는 그거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 제가 다 해결했어요."
"다행이구마.."
[혈족 이봉열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혈족 이봉열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세계수의 생명력'을 획득합니다.]
할머니가 완전히 깨어났다는 확답을 받은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할아버지도 참.’
시스템 메시지에서부터 할머니를 생각하시는 지극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따뜻해졌다.
"크흠.”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한 번 하셨다.
"뭔가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재현아. 할애비는 아무거나 다 괜찮다.”
결국 그 날, 할아버지에게는 벤츠 한 대를 뽑아드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절대자의 문을 사용해 서면에 있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벌써 몇 년이나 이곳에서 살고 있다 보니 이제는 본가의 내 방보다 이곳이 조금 더 편했다.
-삡!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서 서성거리던 까미가 내 어깨에 올라와서는 격하게 반겨주었다.
"그래. 다녀왔어."
까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생각했다.
‘이 녀석도 릴리트처럼 한때는 신격을 획득한 존재였던 걸까?'
시스템에 신격을 잡아먹히며 환수로 전락하게 된 것일까.
현재 환수 보유 목록은 [3/11]로 한 마리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본래 총 10마리였는데 릴리트가 추가되며 11마리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조건이 충족될 때마다 한 마리씩 해금되는 것은 분명한데.'
어쩌면 환수들 모두가 신격을 얻은 존재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뭘까?'
화르륵
손바닥 위에 검은 기운을 생성해보았다.
릴리트와의 대화를 되돌아보면 이 힘은 신격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신이라는 말인가?'
백룡은 릴리트에게 당한 가족들을 구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말이었다.
내게 신격이 없었다면 나는 릴리트의 공간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며, 그대로 무력하게 가족들을 잃어야만 했을 것이다.
아니면 가족들을 포기하지 못해 지구에 남아 있는 모든 인간들이 릴리트의 세상으로 납치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겠지.
또한 그 이전에 내가 진조를 만나며 힘을 사용하는 법을 깨닫지 못했다면 마찬가지의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운이 좋았어.'
운이 좋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위험했지.'
힘을 깨닫는 것도.
릴리트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순전히 운이 좋아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계속해서 운이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는 지금 내가 가진 힘에 대해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었다.
화르륵-
결국 그날은 검은 기운을 연구하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Episode 24] 연구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