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09화 (110/175)

< [Episode 25] 휴가 (1) >

[인트라넷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인트라넷이요? 회사나 군대에서 사용하는 그거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인터넷의 하위호환 버전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쉽게 말해 그 조직에서만 사용 가능한 작은 인터넷이라고 보면 된다.

[독자적으로 인트라넷 서버를 구축한 사람이 있습니다.]

[혼자서요?]

[네. 아무래도 저희가 새롭게 만든 통신망을 이용해 서버를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걸 혼자서 만들었단 말입니까?]

[아직 서버를 구축한 이 혼자인지 집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통신망이 재구축되었다고는 하나 그런 작업이 쉬울 리가 없었다.

궁금증이 생겨난 나는 김다빈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접속해 볼 수 있나요?]

[컴퓨터에 랜선이 연결되어 있으시다면 바로 들어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문자로 주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김다빈이 보내 준 주소로 들어가니 커뮤니티 게시판 같은 것이 나타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벌써 몇 시간 전부터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여긴 뭐임? (1)]

[끄아아아아악 (3)]

[안녕하세요. (11)]

수많은 게시글 중에는 김다빈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글도 있었다.

[서버 관리자님과 만나 뵙고 싶습니다. (49)]

안녕하세요. 행정관리부 소속 김다빈 이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곳에 글을 남기게 된 것은 ...... (중략)...... 최고의 대우를 약속드리겠습니다.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조건 미쳤다

ᄂ 능력이 있으니까 이 정돈 당연한 거임.

└근데 커뮤니티 하나 만든 게 이렇게 대우받을 일인가?

ᄂ? 커뮤니티 하나가 아니지. 인터넷이고 뭐고 다 끊긴 상태에서 만든 거잖슴.

-김다빈이라니... 찐일까?

ᄂ 충분히 가능성 있음 ᄋᄋ

ᄂ 아니면 굳이 이렇게 정성 들여서 글을 쓸까? 사칭까지 해 가면서?

ᄂ아 ᄏᄏᄏᄏ누가 이딴 귀찮은 짓을 하겠냐고

-세줄 요약좀

ᄂ궁금하면 직접 읽으셈;;

ᄂ 어휴 ᄍᄍ

그곳에는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이전에나 보았던 인터넷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곧바로 소통의 반지를 사용해 김다빈에게 말을 걸었다.

[놀랍네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요? 분명 저번에 상당히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나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김다빈의 텔레파시가 전해져오지 않았다.

평소라면 밤이든 낮이든 칼답을 해주던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절대자의 눈.'

그래서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책상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그곳은 그럴듯한 중소기업 사무실을 연상케 했는데, 지금 난리가 나 있었다.

"김 이사님! 이사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책상 위에 쓰러진 김다빈의 모습과 사색이 된 얼굴로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

그리고.

'...피??'

김다빈의 책상 위를 서서히 적셔나가고 있는 피까지.

'동대문 개방'

생각할 것 없이 바로 김다빈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가신 소환, 김다정.'

그다음 힐 능력을 지닌 김다정을 소환한 다음 입을 열었다.

"다들 잠시 진정하시고, 제자리로 돌아가주세요."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내 목소리와 함께 정리되었다.

다들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내 말에 따라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주었고, 김다정이 나설 수 있었다.

잠시 김다빈의 상태를 살피던 김다정은 곧이어 힐을 사용했다.

우우웅

김다정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급성 피로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과로예요.”

“과로요? 단순 과로로 사람이 피까지 흘립니까?”

"코피인데 조금 심하게 흘리긴 했네요."

김다정은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

"급성 피로라고 해서 무시할 게 아닙니다. 과로로 인해 죽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제가 볼 땐 이분도 상당히 위험한 상태예요. 무조건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녀의 말에 주변에서 한 마디씩 동조하며 거들었다.

"맞아요. 이사님은 좀 쉬어야 해요."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시고, 출근은 제일 빨리하시고..."

“그동안 너무 무리하기는 했어요.”

가장 가까이에서 김다빈을 도왔던 이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로 심각한 수준일 것이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유혜린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혜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니가 집에 안 들어가는 것 같아요....”

김다빈의 책상에 잔뜩 쌓여 있는 서류 더미만 보아도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너무 이것저것 일을 떠넘겼나.'

김다빈이 텔레파시 능력을 각성하게 되면서 사실상의 모든 운영을 그녀에게 맡겨왔다.

유능하기도 했고, 사소한 디테일까지 자신이 신경써서 처리해주는 김다빈의 꼼꼼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일 처리가 항상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것이 자신을 갈아 넣어가며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니.

우우웅

얼마나 상태가 심각한 것인지 한참을 힐을 받고도 김다빈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얼마나 무리를 한 거야?'

김다빈은 체력이 약한 편도 아니었다.

가신인데다 레벨을 45까지 올려뒀으니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강화되는 쪽이 다르긴 하지만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체력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런 몸을 이 지경까지 몰아붙이다니.'

전투를 치르지 않아서 정신력만 극도로 강화된 걸까?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일단 다빈씨를 집으로 옮겨야겠네요. 다정씨는 잠시 저 좀 따라와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하여 조심스레 그녀를 들어 올린 다음 절대자의 문을 사용해 김다빈의 집인 1701호로 이동했다.

현관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안쪽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누구... 헉!”

김민호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왔다.

"재, 재현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다빈씨 방이 어디죠?"

“어, 저쪽입니다.”

나는 김다빈을 데리고 방으로 이동했다.

그때였다.

"다, 다빈아!"

한 아주머니가 정신을 잃은 채 허공에 떠다니는 김다빈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고 있었다.

김다빈의 어머님이셨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 다빈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김다빈을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힌 다음 속으로 되뇌었다.

'퀘스트 부여, 대상 김다빈.'

[시민 김다빈이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비용 100,000,000 원이 소모됩니다.]

완전 회복 보상이 주어지는 것과 동시에 김다빈의 눈에 짙게 내려앉았던 다크서클이 사라졌다.

멍하니 옆에 서 있는 김민호를 향해 물었다.

"평소 다빈씨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언제쯤인가요?"

“누나요? 으음.”

김민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솔직하게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당황스러워하던 어머님이 나에게 물었다.

"다빈이가 집에 들어오다니요? 저한테는 따로 나가서 산다고 했었는데...?"

"아, 맞다. 누나 밖에서 산다고 했었지?"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서 소통의 반지를 이용해 유혜린에게 물었다.

[혜린씨.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냥 편하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재현님."

절대자의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떨어져 있어도 서로 대화가 가능했다.

[다빈씨가 사무실 근처에서 생활하고 있나요?]

“네? 아니요?"

[가족분들은 다빈씨가 집 밖에서 생활한다고 알고 계시더라고요.]

"아...."

유혜린이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짓기에 물었다.

[뭔가 짐작 가는 구석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그냥 사무실에서 쭉 지내시는 거 아닐까요? 저번에 새벽에 일이 있어서 사무실에 들렸었는데, 그때 계셨거든요.”

[...사무실에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나요?]

“아니요. 책상에 엎드려서 자면 잘 수 있긴 한데....”

절대자의 눈으로 사무실을 대충 훑어봤는데, 간이 침대 같은 것도 없어 보였다.

'와.’

아무래도 이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다.

김다빈은 눈을 뜨자마자 의문을 가졌다.

'내가 왜 내 방 이불 속에 있는 거지?'

이미 책상에서 쪽잠을 자는 게 익숙해진 그녀에게 이불 속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낯선 감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기절하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재현님께 서버 제작자를 찾아달라고 부탁드렸어야 하는데...!'

그것 말고도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도로 정비, 울산의 몬스터 현황, 발전기 시설 재정비, 던전 현황 보고, 하수처리장 활성화, 낙동강 조직 포섭 등등.

김재현의 영역이 부산 전역으로 넓어지면서 행정부가 처리해야 할 사안들이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생활 편의를 위해 활성화시켜야 할 시설도 많았고, 낙동강에 있는 시민 조직들처럼 지금 자신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시스템을 설명해줄 팀도 필요했다.

모든 방면의 행정 업무가 김다빈을 통해 최종 승인이 나다 보니 그녀가 관여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이다.

정신차렸을 때는 수많은 프로젝트에 깊이 발을 들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거기다 추후 업무 효율성을 위해 서류 작성까지 병행하고 있었는데, 이게 나중에는 효율이 높아질지 몰라도 지금 당장에는 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았다.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잠을 오래 자지 않아도 그리 피곤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김다빈은 대부분의 나날을 잠만 자며 일하고 있었다.

잠을 줄이면 오늘 붕 떠버린 시간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이다.

'7시 30분'

거의 4시간 정도를 기절해 있었던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데려오다니.'

괜한 시간 낭비를 하게 생겼다.

‘일단 사무실에 복귀부터 해야 해.’

이제는 그곳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한 시도 그곳에서 떠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쯧. 사무실에 간이침대라도 하나 놔둬야겠어.'

그래야 이런 일이 생겨도 집이 아닌 사무실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대중 옷을 갈아입고 방문을 열면서, 김재현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재현님. 제가 보내드린 주소는 확인해보셨나요?]

그때였다.

"네, 확인해봤습니다."

보통 김재현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들려온다.

자신의 텔레파시처럼 말이다.

그런데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김재현의 목소리라니.

'어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김다빈은 거실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화려하게 차려진 밥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 가볍게 먹는 스타일인만큼 그것은 굉장히 낯선 장면이었다.

상 주변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제일 먼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하나뿐인 엄마와 동생 김민호.

요즘은 바빠서 거의 얼굴도 마주치지 못했던 가족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등이 보였다.

“대단하더군요. 무슨 생각으로 저에게 보고한 것인지는 압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재현님 재현님이 어떻게 여길...?"

김재현이 웃으며 말했다.

"다빈씨. 다빈씨는 오늘부터 일주일간 휴가입니다.”

<[Episode 25] 휴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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