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5] 휴가 (3) >
[시민 김다빈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김다빈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텔레파시'를 획득합니다.]
김다빈의 텔레파시는 지금까지 얻었던 능력 중에 가장 쓸만한 구석이 많아 보였다.
비슷한 능력으로 소통의 반지가 있긴 했지만, 그것은 오로지 가신들과의 의사소통만 가능했었다.
그런데 텔레파시 능력을 얻음으로 인해 평범한 시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김다빈이 말을 걸어왔다.
"재현님. 시간 괜찮으세요?”
“왜요?"
"제가 잘 아는 디저트 집이 있는데. 재현님께 소개하고 싶어서요. 제가 살게요!”
"그래요? 어디쯤에 있는 곳인가요?"
절대자의 문을 사용하려는 그때 김다빈이 말했다.
“오늘은 좀 걷고 싶어서요. 도시의 풍경을 좀 더 보고 싶어요.”
"그럼 그럴까요? 저도 마침 산책 겸 나온 거라.”
"잘됐네요. 카페까지는 여기에서 이십 분 정도 걸어가야 하거든요. 제가 안내할게요."
김다빈의 안내를 따라 번화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상가는 오히려 몬스터들이 등장하기 이전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집구석 영역이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커져 나갔었다 보니 이곳에 상권이 활성화가 된 것이다.
“횟집이 많네요.”
“그런 편이죠.”
한창 바다 괴물을 사냥감으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인지 바닷가 근처가 아니었음에도 횟집이 자주 보였다.
횟집 다음으로 자주 보이는 것은 고깃집이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오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곱도리탕, 가정식 백반, 돈까스, 라면집 등등.
다양한 음식점들이 즐비했고, 가게 앞에서 웨이팅을 하며 기다리는 손님들도 많았다.
'이렇게 직접 나와서 보는 건 처음인가.'
절대자의 눈을 통해 보는 것과 이렇게 나와서 직접 마주하는 것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대부분 먹어본 것들이기는 한데....'
이곳에 있는 음식점들이 모두 다 초창기에는 거래소에 음식을 올리기 바빴다.
5%의 수수료 정도야 배달료라고 생각하면 되는 데다 등록해 놓은 음식은 상하거나 식지도 않으니 자제비도 상대적으로 덜 든다.
덕분에 편하게 거래소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다.
거래소에는 지금도 수많은 요리들이 올라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었다.
‘왜 굳이 오프라인에 가게를 차리나 했었는데...'
직접 이렇게 나와 보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냐면....”
“나는 아직도 그때를 못 잊어. 왜냐하면..."
"다들 수고 많았어!"
왁자지껄한 분위기.
모두 저 분위기가 그리웠던 탓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소중한 줄도 모르고 영위했던 그 모든 것들.
사람들과 만나고, 술잔을 기울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
그런 사소한 일상이 그리웠던 것이다.
김다빈이 사람들로 꽉 찬 음식점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팀원들 데리고 회식도 하고 그래야겠어요."
"좋죠."
"아."
"왜 그러세요?"
“생각해보니 현금을 들고 오지 않았거든요. 바쁘게 나오느라. 가게에서 먹으려면 현금이 있어야겠죠?”
불안해하는 김다빈을 향해 걱정말라며 설명해주었다.
“현금은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 편이에요."
"정말요?"
"네. 여전히 쓰긴 쓰는데, 그보다는 거래소를 훨씬 애용하는 편이죠.”
대한민국 사회는 카드의 등장과 함께 현금을 잘 사용하지 않는 사회로 변한 지 오래였다.
최근 현금 사용이 급격히 늘어났던 것은 시민들 간의 거래에서 비싼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거래소의 등장으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화했다.
"거래소를 활용한다고요?"
"네."
"어떻게요?"
사무실에 박혀 업무만 처리했던 김다빈이라 그런지 최근 나타난 변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행정에 빠삭한 그녀라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저기 가게에서 나오는 사람들 손에 들린 것 봐봐요.”
"...종이인가요?”
“네. 저게 일종의 영수증이에요. 거래소에 저 종이를 계산서에 적힌 가격으로 올리면, 소비자들이 그걸 사는 시스템인 거죠.”
"아아."
김다빈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대단하네요. 거래소를 그런 식으로 활용할 줄은...."
처음에 어떤 사람이 그 방법을 찾아낸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모든 음식점에 이 방법이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 다빈씨가 가려는 그 카페도 그럴 테니 현금을 챙기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나는 창고를 활용해 방구석에 쌓여 있는 현금 뭉치를 소환시켰다.
"현금이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고요."
전포동 카페거리를 지나 서면에 도착하니 더욱 번화가 느낌이 났다.
건물이 부서지고 시체로 가득 찼던 도로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곳에는 예전처럼 옷 가게도 있고, 핫도그를 팔기도 했으며, 오락실이나 코인 노래방도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평소 가지고 있던 의문을 혼잣말 하듯 내뱉었다.
"그나저나 이것들은 다 어떻게 운영되는 걸까요? 모든 주인들이 살아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절대자의 눈으로 거리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봤지만, 정확한 사정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김다빈의 입에서 거침없는 답변이 흘러나왔다.
"기본적으로는 먼저 그 장소를 선점한 사람들에게 대여 형식으로 나눠주고 있습니다. 재현님이 지시하신 대로 건물이나 집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 만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는 사유 재산으로 인정하고 있고요. 건물주가 나타나지 않은 경우에는 세를 주고 장사하던 가게 주인에게 소유권을 부여하는 중입니다. 상권 활성화를 위해 나온 아이디어였는데, 생각보다 잘 먹힌 것 같아 뿌듯하네요."
일과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김다빈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가게는요?"
"그 가게를 활성화시킨 사람이 이익을 가져갈 수 있게끔 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카페 알바였던 사람이 사장이 되기도 했어요."
“그러다 주인이 나타나면요?”
“기본적으로는 주인에게 권리를 돌려주어야 하지만, 가게를 활성화시킨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요구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면 가게의 지분을 분배해서 운영하도록 하고 있는 편입니다.”
"문제는 없었나요?"
“아직까지 그런 케이스가 몇 건 없어서인지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김다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더 물어보실 것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냥...."
"그냥?"
"다빈씨를 만나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정말이지 김다빈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사회 전체가 전반적으로 삐걱거리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보다는 조준필 부장님이나 이종석 변호사님이 더 고생이 많았습니다.”
시민들 중에는 능력자들이 많았다.
전직 30년 차 공무원이나 전직 변호사, 전직 형사, 전직 소방관, 전직 의사 등등.
"그분들도 물론 대단하지만, 그런 분들의 능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건 분명히 다빈씨 능력이에요."
“...감사합니다.”
김다빈의 노고 덕분에 서면은 번화가였던 예전 모습을 일부 되찾았지만, 아예 모든 상처가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중심부였던 아파트 단지에서 멀어질수록 가게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더니 이제는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된 건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체는 없었지만, 군데군데 핏자국이 남아 있거나 건물 잔해 등이 방치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정말 많이 발전한 거지.'
아직은 아파트 단지 근처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범위가 점점 늘어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기예요."
김다빈이 데려온 카페는 어느 한적한 건물의 2층에 자리 잡은 카페였다.
테이블 10개 정도로 작지 않은 카페였는데 창가에 딱 한 자리 빼고는 전부 꽉 차 있어서 놀랐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나 보네요?"
“네. 여기 케이크가 되게 맛있거든요.”
예전에는 서면 중심지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외곽에 위치한 카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맛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뭐 드실래요?”
“저는 아아로 부탁드립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랑 누텔라 쉬폰 하나요.”
“네, 주문받았습니다.”
몰레 또한 비슷한 계산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카페 명함에 89번이라는 번호를 적어넣고는 거래소에 올렸고, 그것을 김다빈이 찾아 구입했다.
그것을 확인한 사장님은 진동벨을 건네주며 말했다.
“자리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카페 몰레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인형들이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소파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커피와 케이크가 나왔다.
"드셔보세요."
"잘 먹겠습니다.”
포크로 쉬폰을 찔러볼 때부터 이미 기분 좋은 푹신푹신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일부를 잘라내어 입에 넣으니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의 식감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김다빈이 자신하던 대로 디저트가 굉장히 맛있는 카페였다.
"맛있네요."
“그렇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김다빈은 누텔라 쉬폰을 한 조각 잘라서 입에 넣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재현님은 쉬폰이 어디서 처음 만들어졌는지 아세요?"
"네?"
“쉬폰은 프랑스어로 ‘넝마조각’이라는 의미인데 비단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비단처럼 우아한 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1940년대에 처음 생겨난 디저트거든요. 그런데..."
나는 어째서 김다빈이 그토록 꼼꼼한 일처리가 가능했는 지 알 수 있었다.
'되게 똑똑한 사람이구나.'
아무리 디저트에 진심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빠삭할 수 있을까.
쉬폰의 역사에 대해 한참을 듣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러갔고, 어느새 케이크를 모두 처리한 상태였다.
“재밌네요. 이제 슬슬 일어날까요?”
그러나 김다빈은 내 생각보다 더 디저트에 진심이었다.
"하나만 더 먹고 갈까요?"
그렇게 또 다른 케이크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후우. 이제 가시죠.”
"네! 다음 카페는 넉아웃이라는 곳인데, 여기 티라미슈가 진짜 맛있어요!"
아.
그날, 나는 세 군데의 카페에서 총 여섯 가지의 디저트에 대해 공부하고 나서야 그녀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군대는 대부분이 삼팔선 근처의 최전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후방 쪽에는 병력이나 무기 등이 상대적으로 부실했는데, 그래서인지 후방에는 포병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실상 후방은 전투 병력이라기보다는 보조 병력인 셈이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상당히 최전선에 가깝게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후방의 역할은 훈련병 양성, 예비군 교육, 민방위 교육 등이 더 주된 업무였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후방 부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한빛, 고리, 월성, 한울 등.
바로 후방에 배치되어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지키는 일이었다.
원자력 발전소에 무슨 일이 생길 경우 나라 전체가 무너질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다.
몬스터의 등장과 함께 관련된 부대가 전력을 다해 원자력 발전소를 지키려고 한 것은.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오늘.
콰아아아앙!
고리 원자력 발전소에서 무언가 폭발했다.
<[Episode 25] 휴가 (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