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12화 (113/175)

<[Episode 25] 휴가 (4) >

“허억!”

비명과 함께 꿈에서 깨어난 장호원은 경직된 얼굴로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가 전신에서 쏟아낸 식은땀이 이부자리를 적시고 있었다.

'꿈...?'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고리원자력 발전소의 노후 된 2호기가 폭발했다.

그 여파로 원전 부지 내에 임시 저장된 사용 후 핵연료에서 사고가 발생하며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켰고, 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방사선에 의해 고리 원전에 있던 인간들은 물론이고 몬스터들까지 겨우 며칠 만에 급사했다.

그렇게 통제할 사람을 잃어버린 나머지 6기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것들이 차례차례 폭발하며 부산 경남 지역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끔찍한 꿈이었다.

'이건・・・ 정말 그냥 꿈인가?'

장호원이 자신의 꿈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이준혁 파티 소속으로, 예전에 김재현과 종속의 계약을 맺으며 한 가지능력을 각성했다.

그가 각성한 능력은 예지몽(豫知夢).

미래를 예견하는 꿈을 꾸는 능력을 각성했기 때문이었다.

김재현이 직접 말해주었기 때문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평범한 꿈을 꿔 왔던 터라 거의 반쯤 잊혀진 능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꾼 꿈은 무언가 달랐다.

꿈의 질감, 디테일, 생생함.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그냥 꿈이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였다.

‘보고해야 해.’

김다빈은 아주 알차게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다.

휴가 내내 다양한 카페들을 돌아다니며 디저트를 맛보았다.

열정적으로 디저트 집을 찾아다니는 동안은 업무에 대한 압박감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벌써 오늘이구나.”

새벽 일찍부터 눈이 떠진 김다빈은 지난 일주일의 시간을 곱씹으며 음미했다.

'다 맛있었지.'

밥 대신 디저트로 배를 채우며 지난 몇 달간 제대로 된 디저트를 먹지 못했던 한을 풀었다.

덕분에 커뮤니티 게시글에 올라온 카페 말고도 다른 맛 집을 몇 군데 더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팀원들이랑 같이 가야겠어.'

퇴근 이후에 적당한 고깃집에서 회식을하고 카페를 찾아갈 생각을 하니 절로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잠이 안 오네.'

이전보다 수면 시간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봤자 하루에 네 시간 정도가 다였다.

불면증 같은 게 아니었다.

그냥 네 시간 정도가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눈이 떠질 뿐이었다.

그 정도만 자도 무척이나 개운했다.

‘일반적이지는 않지.’

이전에도 느꼈지만, 김재현에게 선택을 받고 능력을 각성하고 난 뒤로 신체 능력이 일반인의 범주를 아득하게 벗어나 있었다.

'재현님의 힘.'

그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웠다.

'더 열심히 일해야지.'

오늘 가자마자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는 그때, 김재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빈씨가 지켜낸 이 풍경, 오래 보고 싶으면 건강하게 살아야죠? 열심히 일하는 것은 정말 감사하지만, 적당히 쉬면서 더 오래 일해주셨으면 합니다.)

적당히 쉬면서 오래 일해달라는 말.

대놓고 오래 부려 먹고 싶다는 그 말이 어딘가 따스하게 느껴져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네네. 적당히 놀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일할게요.'

김다빈은 힘차게 침대에서 내려와 이불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김재현이 바라는 대로 오래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수였으니까.

'지금쯤이면 발전기 시설 재정비가 끝났을 거 같은데. 던전이야 나름 체계가 잡혀 있으니까 혜린씨가 알아서 잘 처리했을 것 같고. 낙동강 쪽에 있는 사람들이랑은 잘 접촉했으려나?'

새벽 조깅으로 적당히 몸을 달군 김다빈은 찬물로 샤워하며 운동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그곳에는 조각 케이크 한 조각을 담은 분홍색 종이 상자가 있었다.

김다빈은 행복한 얼굴로 그것을 꺼내 먹었다.

그때 반쯤 헐거벗은 근육질 덩어리가 거실로 나왔다.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동생을 타박했다.

“옷 좀 입고 나오면 안 돼? 보기 흉해.”

그러자 김민호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혼잣말했다.

“...내 몸 어디가 보기 흉하다는 거야?"

김다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가로젓고는 그를 향해 물었다.

"사냥 가는 거야?"

“어.”

"울산?"

"그렇지."

행정 업무로만 울산의 일을 보고 받았던 김다빈은 문득 궁금한 점들을 동생에게 물었다.

"거긴 좀 어때?"

“뭐가?"

"몬스터들이나 그런 것 말이야. 보니까 흡혈귀들은 거의 퇴치가 끝난 것 같던데.”

"퇴치가 끝났다기보다는 모습을 감췄지. 가끔씩 울산에 있는 생존자 무리 중에서 발견되고는 해.”

"아직도?"

"응."

스트레칭을 하며 대중대중 답변하는 김민호를 향해 김다빈은 계속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지금은 도시가 고블린 밭이 됐다던데 그거 퇴치하러 가는 거야?"

"아니. 고블린들이야 항상 여기저기 넘쳐나는 거고. 오늘은 산에 갈 것 같아."

“왜?”

한창 스트레칭을 하던 김민호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오크 놈들 잡으러. 오늘따라 왜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거야?"

김다빈은 싱글거리며 말했다.

"오늘 누나가 일하러 가는 날이잖아. 업무 관련해서 미리 파악할 수 있는 건 들어두려고 했지.”

“...일하는 게 그렇게 좋아?"

"일하는 걸 좋아한다기보다는..."

잠시 말을 고르던 김다빈은 마지막 남은 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털어 넣고는 말을 이었다.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 거지. 일 끝나면 보람도 있고.”

김재현과의 대화에서 무거운 짐은 내려놓았지만, 책임감마저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는 한 사람이라도 덜 죽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일했다면,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일한다고 해야 할까.

비슷하지만, 달랐다.

이젠 더 이상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김재현의 별것 아닌 위로 몇 마디가 자신을 구원해 주었다.

‘그분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잘하고 싶어졌다.

다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자신의 몸 관리도 열심히 하면서 말이다.

"아무튼. 몸 조심히 잘 다녀와."

그러자 김민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오크 사냥 정도로 조심은 무슨. 누나 누나가 아직 잘 모르나 본데,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그가 선택받은 자들 중 하나이며,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경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흡혈귀 전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정도로 핵심 멤버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김다빈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나가는 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고블린 사냥에 베테랑이었던 사람도 한순간의 방심 때문에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사례들을 자주 접하는 김다빈의 입장에서는 동생의 안위가 아무래도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래. 누나는 먼저 출근한다.”

“어.”

사무실에 출근하니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정시에 맞춰 출근한 덕분인지 대부분의 팀원들이 먼저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다들 좋은 아침."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운 탓인지 다들 약간 어색해하며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나 없는 동안 별일 없었지?"

그러자 팀원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사무실 한 쪽 구석을 바라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작은 회의실.

그 안쪽에 유혜린과 손님들이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다빈은 곧바로 회의실 문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행정관리부 김다빈 이사입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손님으로 찾아온 남자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사했다.

"이준혁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장호원입니다.”

이준혁이라면 자신의 동생인 김민호보다도 끗발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의 파티는 쌓아 올린 공적도 그렇고 개개인의 힘도 그렇고 하동건 파티를 제외하면 가장 급이 높은 파티였다.

'그중에서도 이준혁은 혼자서 B급 던전을 클리어할 정도의 괴물.'

각성자들 사이에서 급을 나누기에는 애매했지만, 언젠가부터 김재현의 안전지대 안에 나타나기 시작한 던전의 등급으로 각성자의 급을 어느 정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나타난 던전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인 B등급 던전을 혼자서 클리에해버리는 괴물은 이준혁이 유일했다.

그런 사람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는 것은 무언가 심각한 일이 벌어졌음을 의미했다.

"무슨 일이죠?"

"실은...."

처음에는 던전 관련으로 무언가 심각한 일이 발생했을 거라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나왔다.

"예지몽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장호원이 꿨다는 예지몽의 내용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그 꿈이 너무나도 현실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는 게 더 문제였다.

'원자력 발전소라니.'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무기에서 파생된 에너지 생산 시설.

엄중한 관리를 받는 데다 지을 때부터 심혈을 기울여 짓기 때문에 사고 발생의 위험성은 극도로 낮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적인 관리를 받았을 때를 가정한 일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대지진이 발생한다거나, 괴물들이 나타나 난동을 부린다거나 하는 일은 고려하지 못했다.

싸이클롭스와 같은 규격 외의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다.

"제일 먼저 재현님께 보고드리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집을 찾았지만, 집에 계시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찾아온 겁니다.”

“잘 하셨어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김다빈이 곧바로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재현님. 비상 상황입니다.]

휴가는 끝났다.

아침 댓바람부터 심각한 보고를 들은 나는 충격에 빠졌다.

'원전 사고라니.’

그때 내 옆에 있던 아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니, 아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선물은 마음에 드세요?"

“그러엄. 누가 해준 선물인데?”

벤틀리를 운전하며 함박 미소를 짓고 있는 아빠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차량을 복구하고 구입하는데 30억이 넘어가는 돈이 들었지만, 아빠의 얼굴을 보니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행이네요.”

“고맙다, 아들.”

“아빠 혹시 다른 차들은 더 필요 없으세요?”

"다른 차?"

“페라리나 롤스로이스 그런 것들이요."

“...어?"

아빠가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진 사이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장호원의 시민 정보를 확인해보니 각성 능력란에 '예지몽'이 떡하니 적혀 있었다.

'막아야 한다.'

예지몽이 진짜라면 곧 원전이 터진다는 소리가 된다.

'투명 장벽이 방사능 정도는 막아줄 것 같지만.'

영역 바깥은 방사능이 가득한 지옥이 될 것이다.

울산과 부산을 포함한 경상도 전체가 방사능에 오염이 될 테고, 사냥은 불가능해지겠지.

그러나 흡혈귀 던전이 업데이트 된 지금, 영역 바깥에서 얻는 경험치보다 내부에서 얻는 경험치가 더 많아진 상태였다.

고립되어도 충분히 성장은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경험치도, 정산금도 모자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이 죽어 나가겠지.'

비단 문제가 있는 원전은 고리 원전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세계에 존재하는 수백 개의 원전.

과연 그것들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을까?

'아니겠지.'

어찌 됐든 당장 위험이 경고된 고리 원전부터 해결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최고 전력을 보내야겠지.'

어떤 몬스터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아빠. 혹시 고리가 어디 있는 지 아세요?”

"고리?"

"네. 원자력 발전소 있는 곳."

"알지. 기장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나와. 그런데 그건 왜?"

"부탁드릴 게 있어요."

<[Episode 25] 휴가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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