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6] 고리 원자력 발전소 (1)〉
예지몽이 언제 실현될지 모르는 만큼 곧바로 팀을 구성했다.
하동건, 김가영, 문병호, 강덕수, 김건, 서예진, 유혜린, 김다정, 오언주, 이준혁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빠.
기본적으로 하동건 파티에 아빠와 이준혁을 용병으로 기용한 형태였다.
‘이게 현재로써는 최선이다.’
이준혁 파티는 걱정할 것 없었다.
애초에 요즘은 이준혁 혼자서 솔로로 활동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영역 내에 발생하는 자잘한 던전을 공략하며 레벨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파티장인 이준혁을 제외하면 가신으로 받아들인 것은 ‘미니맵’ 능력을 가진 이현찬뿐이었지만, 나머지 19명의 수준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 전원 30레벨을 돌파한 상태로 가신들을 제외하면 시민들 중에서 독보적인 최상위 레벨이었다. 덕분에 웬만한 던전은 그들의 능력으로도 충분했다.
종속의 계약으로 얻은 능력 덕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가진 성향 자체가 던전 공략에 특화되어 있었다.
몬스터를 죽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으며, 주어진 상황에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고, 가진 것들을 잘 활용할 줄 알았다.
한 마디로 유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면 바닥에서 살아남은 거겠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영역을 넓히기 전에 이준혁이 이끄는 파티는 몬스터가 들끓던 서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능력이 좋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 곳에서 선별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 능력이 좋을 수밖에
그때 김다빈이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재현님. 모두 모이셨습니다.]
[지금 갈게요.]
거실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던 아빠를 향해 말했다.
"아빠. 이제 가야 해요."
"그래."
기타를 정리하며 나에게 다가오는 아빠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빠."
"응?"
"조심하셔야 해요."
지금 가는 곳은 어떤 의미로는 흡혈귀들이 가득하던 울산보다도 위험한 장소였다.
사실상 언제 핵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장소에 머리를 들이미는 꼴이었으니까.
'만약 작전 시행 도중에 원자력 발전소가 터진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보장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그것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들. 페라리랑 롤스로이스. 알지?”
"...네.”
“이번에는 아들이 직접 찾아서 아빠한테 선물로 주기로 한 거 맞지?”
"...그럼요."
"기대하고 있으마.”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걱정이 안 되겠는가.
아빠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로 보내는 가신들 모두가 걱정이 되었다.
솔직히 원전에 대한 것을 외면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원전에서 흘러나오는 방사능쯤이야 투명 장벽이 막아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영역 밖에서 아직 생존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원전을 사수한 군인들, 사명감을 가지고 그곳을 지켜낸 연구원들, 아득바득 살아남은 생존자까지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그들을 구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가신들의 상황은 나은 편이었다.
몇 초간의 딜레이가 있기는 해도 가신 소환을 통해 그들을 데려올 수 있었으니까.
사실상 가장 위험한 것은 아빠인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한 번 더 말했다.
"위험해지면 제가 곧바로 북대문을 열어드릴게요. 바로 도망치셔야 해요."
"알겠다. 알겠어.”
"후우... 그럼 갈게요."
절대자의 문을 사용하여 방문을 열자 행정관리부 회의실에 모여 있는 가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회의실 제일 안쪽에 비치되어 있는 화이트보드 앞에 선 김다빈이 말했다.
"재현님께서 도착하셨으니 본격적인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그곳에는 어디서 구한 것인지 부산과 울산을 포함한 경상남도 지도가 있었고, 고리 원전의 자세한 위치가 표기되어 있었다.
"이번 작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리 원전의 폭발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현재 고리 원전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멀지 않은 미래에 원전이 폭발하게 될 상황입니다.”
김다빈은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적어나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큰 위험으로 사료되는 것은 몬스터입니다. 현재 고리 원전에는 그곳을 사수하는 군인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물자 부족으로 인해 몬스터를 막아내지 못한 결과 사고로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해결책은 간단했다.
총으로 막아낼 수 있는 몬스터 수준이라면 지금 이 파티가 도착하기만 해도 모조리 쓸어버리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상점을 이용해 군인들에게 총알을 보급하기만 하면 끝나는 문제였다.
“또는 앞으로 군대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몬스터가 등장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가신들을 파견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이 파티로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몬스터는 정말로 손에 꼽을 테니까.
막말로 진조와 같은 존재만 아니라면 아빠 혼자서도 모두 감당이 가능했다.
'게다가 지금은 별의 힘으로 전체적인 전력이 급상승한 상태다.’
3성까지가 최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한 차원 다른 무위를 보여주고 있는 가신들이었다.
몬스터들이 사고의 원인이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부 분열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상 나와 김다빈은 이쪽이 좀 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고리 원전이 무사했다는 것은 결국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몬스터를 잘 막아냈다는 소리였다. 이제 와서 새로운 몬스터가 출현했다는 것 보다는 내부 분열로 인한 사고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몬스터와의 전투,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해졌을 물자, 언제 나아질지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심리가 무너지면 갈등이나 분란도 생기기 쉬워진다.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야 어렵지 않은 법이다.
그렇기에.
“최악의 경우... 살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각오가 필요했다.
짙은 침묵이 회의실을 감쌌다.
그러나 그리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문제없습니다. 흡혈귀들을 상대하며 알게 된 사실인데, 제 능력은 인간을 죽이는 데에도 특화되어 있거든요."
이준혁의 말에 다른 가신들도 하나 둘 각오를 다졌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능력은 암살에 특화되어 있으니까요.”
문병호.
"저격 실력이라면 나도 만만치 않은데."
김가영.
“되도록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김다정.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오언주까지.
모두가 마음을 다잡는 것을 보며 김다빈이 말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김 건님께서는 먼저 출발해주십시오.”
까망이와 합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김건은 몇 분이면 고리 원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선발대를 맡긴 것이다.
고리 원전을 정찰하는 것과 동시에.
'김 건이 도착하면 북대문을 사용해서 모두를 보낼 수 있으니까.'
사실상 김건과 북대문의 존재만으로 거리에 대한 제약이 상당 부분 사라진 상태였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서는 김건의 등을 바라보며 그를 향한 절대자의 눈을 활성화시켰다.
사무실 밖으로 나간 김 건은 휘파람을 가볍게 불었다.
까악-
그러자 까망이를 비롯한 까마귀 열댓 마리가 그를 향해 날아왔다.
까망이를 제외한 다른 까마귀들이 근처 나무나 창가에 착륙했고, 까망이는 그대로 김건을 향해 날아들었다.
촤락-
까망이가 김 건의 몸에 닿는 순간 그의 전신이 변화하며 한 마리의 커다란 까마귀로 변신했다.
그리고.
펄럭-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대로 하늘 위로 수직상승했다.
그리고 그 뒤를 주변에 있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따랐다.
지이잉-
어느 순간 그의 앞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동대문이 나타났다.
김건은 고민 없이 그 속으로 몸을 던졌고, 순식간에 영역의 중심이었던 서면에서 영역의 끄트머리로 나올 수 있었다.
까악-!
김건의 능력에 의해 강화된 까마귀들도 그에 뒤처지지 않고 동대문을 통과해 왔다.
땅의 70%가 산지인 대한민국답게 울퉁불퉁한 산지가 펼쳐져 있었는데, 까마귀의 눈으로 바라본 산속 풍경은 다양한 몬스터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산속 깊숙이 지어져 있는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영역 밖으로만 나가면 몬스터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여기는 아직 사냥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 곳이니.’
김재현의 영역이 확 넓어지고 난 뒤로 몬스터 사냥은 울산이 주 무대가 되었다.
남대문을 통해서 바로 앞에 있는 전포역에서 울산 전초기지로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처럼 영역 끄트머리 바깥쪽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방치되고 있었다.
‘어차피 재현님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놈들이니 신경쓸 필요 없겠지.’
그때였다.
산 중턱에 고층 아파트가 밀집되어있는 대단지를 지날 때였다.
"응?"
아파트 단지에서 거대한 괴물새 백 여 마리가 동시에 날아올랐다.
-끼에에엑!
돌산을 닮은 이곳 아파트 단지는 켈리칸들의 둥지였던 것이다.
녀석들은 영역을 침범한 김건을 향해 강렬한 적개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놈들의 덩치는 까망이와 합체한 김건보다도 두 배는 더 컸는데, 그런 놈들 수십 마리가 하늘로 떠오르며 위협하자 그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건을 비롯하여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까마귀들 중 어느 한 마리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김 건의 뒤를 따라나설 뿐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급성장'
김건이 급성장을 사용하자 뒤쪽에서 날아오던 까마귀들의 덩치가 급격하게 커졌다.
그렇지 않아도 평범한 까마귀들 보다는 더 큰 덩치를 가지고 있었던 그것들이 일시에 두 배 정도는 덩치가 커진 것이다.
성인 남성과도 맞먹을 만큼 커다란 덩치를 지니게 된 까마귀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리칸들 쪽이 더 큰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숫자에서도, 덩치에서도 꿇릴 것 없는 켈리칸들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앞세우며 무서운 기세로 김건을 향해 날아들었다.
빠른 속도로 서로를 향해 날아가던 켈리칸들은 김건의 까마귀 부대와 격돌했다.
콰직! 콰드득!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끼에에에에에엑!
일방적인 학살.
물론 학살당하는 쪽은 켈리칸들이었다.
고작해야 20레벨대 초반에서 후반정도에 불과한 켈리칸들은 50레벨인 김건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총이나 다른 무기를 들 필요도 없었다.
푸욱!
김건의 손과 날개, 발톱이 휘둘러질 때마다 켈리칸들의 몸이 종잇장처럼 찢겨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김 건의 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쐐애애액!
김건의 뒤를 따르던 까마귀 중 한 마리가 순간적으로 가속했다.
켈리칸은 갑작스레 빨라진 까마귀의 움직임을 놓쳤고, 다음 순간.
서걱!
까마귀의 날개가 켈리칸의 목줄을 스쳤고, 다음 순간 깔끔하게 잘려나간 켈리칸의 목이 허공에서 분리되며 추락했다.
켈리칸의 시체는 땅바닥에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정산되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압도적인 무위.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켈리칸들은 상황을 파악했고, 뒤늦게나마 방향을 꺾어 도망치려 했다.
김건은 굳이 도망치는 놈들까지 쫓지는 않았다.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군.'
겨우 2분.
켈리칸 백 여 마리를 격퇴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수행하고 있는 작전은 한 시가 급했다.
언제 예지몽이 현실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좀 더 가속한다.'
까마귀들이 좀 더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르기 시작했다.
<[Episode 26] 고리 원자력 발전소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