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15화 (116/175)

<[Episode 26] 고리 원자력 발전소 (3) >

고리원자력본부 소속 '알파 분대'는 군대와는 별개로 각성자들만을 모아서 만든 초능력자 집단이었다.

이들의 주 업무는 발전소 주위에 있는 몬스터 소탕.

지금 그들은 고블린들을 상대로 시가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쪽으로 간다!"

"두 마리 놓쳤어!"

도망치는 고블린 두 마리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도끼를 든 남자였다.

"키에에엑!"

“캬아악!"

상처 입은 고블린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했다.

그러나 남자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허세가 통하지 않자 고블린들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곳은 좁은 골목길이었기 때문에 달리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남자의 다리 사리를 노리고 전속력으로 달려가던 순간.

서걱-

선두로 달려 나가던 고블린의 목이 뎅겅 잘려나갔다.

놈의 목이 몸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서걱!

도끼 한 자루가 나머지 한 녀석의 목을 잘라내며 상황을 마무리했다.

고블린들의 뒤를 쫓아오던 중년 아저씨 하나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후아. 깔끔하다, 깔끔해!"

남자가 도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싱글싱글 웃었다.

"하하. 별 것 아닙니다."

“별 것 아니긴! 잘 했다!”

서주원은 남자의 등을 두들겨 주면서 입가에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이 자식, 보통이 아닌데?'

사실 방금 두 마리는 일부러 흘린 것이었다.

당연했다.

몬스터가 나타나고 벌써 몇 달 째 고블린을 사냥하고 있는 베테랑 파티가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었으니까.

최근 새로 들어온 신입을 시험해보기 위한 일종의 테스였는데, 훌륭하게 통과해낸 것이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어.’

서주원이 고블린의 뒤를 바짝 따라 붙은 것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것이었다.

고블린 두 마리 정도는 그의 염력으로 언제든지 멈출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첫 실전임에도 불구하고 신입은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완전 물건이구만.'

특수 능력이 없다고 해서 조금 걱정했었는데,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민준아. 울산 쪽에서 왔다고 했었나?"

"...네."

무심코 말을 꺼냈다가 급격히 어두워지는 이민준의 얼굴을 보고는 서주원은 아차 싶었다.

'이런 깜빡했군.'

울산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은 것인지 그곳의 이야기만 꺼내면 신민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곤 했다.

“크흠. 큼.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고. 민준이 너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포지션 잘 지켜."

"넵!"

그렇게 서주원이 떠나가고 난 뒤, 이민준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사람 좋아보이던 웃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짜증으로 찌그러진 얼굴로 고블린 시체를 흘겨봤다.

'씨발. 내가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먹이에 불과한 인간의 흉내를 낸다는 것도 불쾌했지만, 같잖은 인간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점이 특히나 거슬렸다.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사실 울산에서도 인간들 사이에서 스파이 짓을 해왔던 그에게는 이미 익숙하다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목장에서 가축을 키우는 입장이었고, 동료들 또한 많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조마조마하면서 먹잇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다.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먹을 게 많으니 참아줘야지.’

이민준에게 고리 원자력 발전소는 일종의 뷔페와 다를 바 없었다.

상태가 좋은 먹잇감이 수천 단위로 밀집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절로 침이 고였다.

물론 마음대로 식사가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놈들을 처리해야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을 텐데....'

각성자 또는 초능력자.

예전에는 그들을 무시했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두려웠다.

울산에서 각성자로 보이는 이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동족들을 살해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대학살의 현장에서 이민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능력 덕분이었다.

'한 번 수준 좀 볼까.'

이민준이 자신의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갔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엄지손가락의 피부를 파고들었고.

스르륵-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연기처럼 흩어지더니 그 속에서 자그마한 박쥐 한 마리가 나왔다.

박쥐로 변신한 이민준은 작전을 진행 중인 건물을 향해 날아갔다.

창가를 통해 집 안을 탐색 중인 팀원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초음파를 사방으로 뱉어냈다.

그와 동시에 이변이 일어났다.

“끼릭?”

"끼긱?"

“끽-!”

반경 수백 미터 거리에 있는 모든 고블린들이 반응해온 것이다.

순식간에 고블린 수십 마리가 팀원들이 있는 건물을 향해 몰려들었다.

"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뭐? 갑자기 왜 그래?"

"고블린 놈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뭐야?"

급하게 건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서주원은 염력의 힘을 사용해 고블린 놈들이 이곳을 향해 접근해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서주원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비상! 전원 집합해!"

건물 안을 탐색하던 이들이 급히 밖으로 빠져나왔고,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고블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끼기긱!”

"키륵- 큭!"

"끼익!"

도심 속의 고블린이 위험한 이유는 놈들이 인간의 도구를 활용할 수 있을만큼 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식칼이나 망치와 같은 제대로 된 무기를 들고 있는 고블린들에게 잘못 당하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망해버린 세상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으니까.

항생제 한 알도 구하기 힘든 세상에서는 생각보다 작은 상처조차 치명적이었다.

그렇기에.

"흐읍!"

서주원의 염력은 대부분이 고블린들의 손에 들린 무기에 집중되었다.

"컥!"

식칼 하나가 고블린 손에서 빠져나오며 그대로 옆에 있던 고블린의 옆구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광경이 사방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알파 분대 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르륵!

불덩이 하나가 고블린 한 마리에게 날아가 화려하게 불타올랐고.

"제가 막겠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하나가 소방용 도끼를 휘두르며 정면에서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한 마리씩 제거해 나갔다.

남자의 전신에는 투명한 막 같은 것이 갑옷의 형태로 생겨나 있었는데, 그것은 보기보다 훌륭하게 갑옷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카각-!

고블린의 손에 들린 식칼이 빛의 갑옷에 튕겨져 나갔고, 다음 순간 남자의 손에 들린 소방용 도끼가 고블린의 머리를 찍었다.

갑작스러운 위기였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발판삼아 알파 분대는 훌륭하게 위기를 헤쳐 나갔다.

박쥐로 변한 상태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민준은 이내 그 자리를 멀리 벗어났다.

충분히 멀어진 자리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그는 전력을 다 해 자신의 입을 막았다.

"크 크읍!큭-!"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새어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배를 붙잡고 땅을 구르며 한참을 킥킥거린 뒤에야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겨우 겨우 그 정도 수준이라니!'

우스웠다.

저놈들은 고작해야 울산에서 키우던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던 각성자들과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걸작이군.'

역시.

울산에서 보았던 그때 그 인간들이 비정상적으로 강했던 것이었다.

'그래 먹잇감들이 강해봤자 이런 수준인 거지!'

식욕이 돋았다.

‘여기서 모두 죽여 버릴까?'

그러나 곧이어 고개를 저었다.

수준을 보아하니 이 자리에서 모조리 죽여 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저놈들의 피를 한 번에 다 마시는 것은 아무리 그라고 해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럼 그냥 버려둬야 하는 데 그런 짓은 용납할 수 없었다.

'저런 능력을 가진 인간들이 통상적으로 더 맛있거든.'

될 수 있으면 맛있는 것은 아껴먹고 싶었다.

게다가 저놈들이 죄다 죽어버리면 다시 고리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기도 껄끄러울 것이다.

모든 팀원이 전멸했는데 자기 혼자서 살아왔다는 것도 이상했으니까.

'아. 잠깐만.'

문득 자신이 저지른 짓 때문에 맛있는 피를 가진 인간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떠올린 이민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안 돼!'

곧바로 다시 작전 구역으로 돌아간 이민준은 고블린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꽤애애액!"

"끼에엑!"

쩌억!

고블린들을 박살내며 나타난 이민준을 보며 팀원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한 눈에 보아도 이민준은 한 차원 다른 무력을 선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지않아 이민준의 도끼에 마지막 고블린의 머리가 쪼개졌다.

“다들 다친 곳은 없으세요?”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이민준을 보며 서주원은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곧이어 주변에서 반응이 터져나왔다.

“아니, 민준씨. 이렇게 강했어요?"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와아."

이민준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 것 아닙니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아무도 몰랐다.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는 그가 속으로는 칼날을 품고 있다는 것을.

‘당장 오늘 저녁부터 하나씩 먹어주마.'

원자력 발전소는 우리가 했던 우려 보다 훨씬 더 잘 돌아가고 있었다.

전기는 바로 옆에 있는 태양광 발전 시설과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비상 전력까지 갖추고 있는 시설 이라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전기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원자력 발전소장이 김 건을 향해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귀하가 아니었다면 저희는 모두 굶어 죽어야 했을 겁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얼마든지 더 공급해드리겠습니다.”

울산에서 이런 역할을 한 번 수행했기 때문인지 김건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사용 후 핵연료가 저장된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세요.]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사용 후 핵연료 때문이었다. 수조 안에서 보관되고 있지만 방사성 폭탄과 다를 바 없는 놈이었다.

계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하는 처치 곤란한 폐기물.

'잘하면 처리할 수 있다.'

검은 기운을 이용해 불태워버린다면 그것들을 모조리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를 전초 기지로 설정하지 못하는 만큼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검은 기운의 완전한 사용은 영역 내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사용 후 핵연료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역 안으로 가져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창고를 이용해 그것들을 하나씩 옮겨와 처리할 생각이었다.

'전초기지로 만들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진행이 될 텐데.'

울산의 홈플러스처럼 이곳에 자리를 잡은 중급 흡혈귀 하나만 있어도 해결이 될 텐데.

'몬스터를 억지로 유인한 다음에 퇴치해버리면 가능하려나?'

그때였다.

"응?"

절대자의 눈에 이상한 놈이 하나 보였다.

"아니 본부장님. 신입이 글쎄 혼자서 고블린 수십 마리를 다 때려잡았다니까요?"

"정말입니까?"

"그게. 하하."

가식적인 얼굴로 웃고 있는 중급 흡혈귀 한 마리가 그곳에 있었다.

<[Episode 26] 고리 원자력 발전소 (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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