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27] 방사능 유출 (3) >
김민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켈리칸을 향해 점프한 다음 그대로 목줄기를 낚아챘다.
콰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켈리칸의 목뼈가 박살나며 머리가 덜렁거렸다.
켈리칸은 잠시 날개를 펄럭이다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으로 낙하했다.
쿠우웅!
[켈리칸(Lv. 25)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시민 김민호의 지갑에 5,431,02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후우.."
상대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몬스터였기 때문에 김민호가 활약하기에는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달려드는 놈이 아니면 처리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놈들의 어그로를 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성철아! 서준아! 한 번 더!”
““네!!””
강성철과 하서준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켈리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투두두두-
총성에 자극받은 켈리칸들이 과민반응을 보이며 낙하해 왔다.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강성철을 향해 수직낙하해 왔다. 그러나 강성철은 두려운 기색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켈리칸의 부리가 강성철의 심장을 파헤치기 직전.
"흐읍!"
콰직!
김민호의 단단한 주먹이 켈리칸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켈리칸(Lv. 24)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시민 김민호의 지갑에 4,322,008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놈의 뒤를 이어 공격을 감행하려던 켈리칸은 주먹 한 방에 동료의 머리가 날아가 버리는 것을 보고는 금세 하늘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김민호가 혀를 찼다.
“쯧. 생각보다 똑똑한 놈들이네."
“...방금 그 모습을 보고도 덤벼드는 게 미친 거 아닐까요?”
입맛을 다시는 김민호의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던 강성철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쟤들은 해리 이모랑 지호 삼촌에게 맡기시죠. 쫄아서 여기는 오지도 않을 거 같은데."
“그럴까.”
사실 김민호가 적극적으로 켈리칸 사냥에 나설 필요는 없어 보였다.
김민호는 고개를 들어 남지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는 암벽을 타듯 아파트 외벽을 타고 오르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향해 발톱을 드러내는 켈리칸들은.
화르륵!
영문도 모른 채 불타올라 잿더미가 되었다.
-끼에에엑!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순식간에 숯덩이로 변한 켈리칸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시체가 증발됐다.
'평소보다 엄청난데? 왜지?'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기 때문에 남지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마음을 먹는다면 저런 화력을 내는 것도 가능했지만, 남지호는 쓸데없이 힘 낭비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켈리칸 놈들이 불에 잘 타는 건가?'
그렇다면 남지호는 놈들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르륵-!
'잘타네.'
남지호가 워낙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김민호가 따로 나서지 않아도 금세 정리될 것 같았다.
그때였다.
"김씨!"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던 문해리가 나타났다.
"응?"
그런데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문해리의 뒤로 거지꼴을 하고 있는 남자 하나와 그에게 꼭 붙어 있는 작은 여자 아이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생존자에요?”
"응. 내가 구했어."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난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오병헌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딸 오예슬이고요. 예슬아, '감사합니다.' 해야지.”
그러자 오예슬이 자그마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김민호가 아빠웃음을 짓던 찰나.
[지금 당장 모든 시민들을 안전 구역 안으로 대피시켜 주세요.]
김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통의 반지를 통한 가신들을 향한 메시지를 뒤이어.
[모든 시민들에게 알립니다.]
[지금 당장 안전 구역 안으로 복귀하십시오. 그리고 당분간 안전 구역 밖으로 나가서는 것을 금지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알리겠습니다. 모든 시민들은 지금 당장 안전 구역 안으로 복귀해 주십시오.]
모든 시민들을 향해 경고하는 내용의 텔레파시가 전달되어 왔다.
"김씨. 이거..."
“네. 뭔가 심각한 일이 발생한 모양입니다. 바로 복귀하죠.”
문해리와 김민호가 심각한 얼굴로 대화하자 오병헌과 오예슬은 영문도 모른 채로 얼어붙었다.
“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그 순간.
쿠구구구-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
쩌적!
그와 함께 바닥이 갈라지더니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것을 본 오병헌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다, 다들 피하세요! 지하에 괴물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콰광!
잔뜩 부풀어 올랐던 땅이 폭발하며 그 주변이 폭삭 주저앉았고, 뿌옇게 피어 오른 흙먼지 속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사사사삭-
박살난 지면의 틈 사이로 무언가 수십 마리가 우수수 기어 올라왔다.
"꺄아아악!"
그것들의 정체를 제일 먼저 확인한 오예슬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고블린 보다 조금 더 큰 덩치를 가진 털복숭이들이 앞니를 드러내며 달려들고 있었다.
김민호가 반사적으로 일행의 앞을 막아서며 그것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흐읍!"
파각!
[랫맨(Lv. 16)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시민 김민호의 지갑에 1,887,63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랫맨?'
그제야 그것들의 정체가 똑바로 눈에 보였다.
커다란 생쥐가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크르르르르
흙먼지가 거두어지며 드러난 그곳에는 랫맨들의 어미처럼 보이는 외형을 가진 거대한 괴물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거대 괴물쥐의 눈빛에 김민호를 비롯한 모두가 얼어붙어 있던 그 순간.
화르르륵-!!
괴물쥐의 면전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폭발했다.
"도망쳐!!"
-크워어어어억!
괴물의 비명 소리에 남지호의 목소리가 곧장 묻혀버렸지만, 그 덕에 모두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김민호가 오병헌을 어깨에 들쳐 맸고, 문해리가 오예슬을 집어 들었다.
-크르륵!
거대 괴물쥐가 두 눈을 부릅떴을 때에는 눈앞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크륵...!
쾅! 콰아앙!
그의 분노가 담긴 몸부림에 애꿎은 땅만 박살날 뿐이었다.
방사능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던 도중 김다빈이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원전만 터진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회의실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됐다.
나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재현님. 일단 백승민 부장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머물렀던 곳은 사고가 발생한 원자력 발전소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입니다.”
김다빈은 화이트보드에 부착된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월성 기지는 이곳이고 백승민 부장이 있었던 강동은 이곳이죠. 거의 10km가 떨어져 있는 곳에서 그런 급격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월성 기지에 있는 모든 농축 우라늄이 한꺼번에 폭발했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녀는 회의실에 참석중인 백승민 부장을 향해 물었다.
"폭발이 있은 지 6시간이 지난 후부터 사람들이 증상을 보였다고 했지요?"
"네, 그렇습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면 그런 급진적인 반응은 불가능합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렇다는 건.."
김다빈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녀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월성 기지에 가신들을 보내겠다는 계획은 전면 철회됐다.
김다빈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다른 무언가'
몬스터가 나타나고, 초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원인부터 파악해야 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사건이 일어난 월성 원자력 발전소를 직접 들여다보는 일만큼 확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마침 척후병에 최적화된 능력을 가진 가신들이 둘이나 있었다.
서예진과 유한길. 두 사람 중에서도 이번 일에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유한길씨. 잠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바로 천리안 능력을 가진 유한길이었다.
평소 유한길의 업무는 불규칙적으로 생성되는 던전을 탐색하는 것이었는데, 그를 위해 영역 중심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내주었다.
눈을 감고 능력을 사용하던 유한길이 두 눈을 뜨며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저와 함께 울산으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어.. 벌써 제 차례였던가요?"
유한길이 말하는 '차례'란 전초기지 유지 업무를 뜻하는 것이었다.
집구석 선포가 된 영역 안이 아닌 바깥에서 전초기지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사]급 이상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시민이 거주하고 있어야만 했다.
이 업무는 현재 유한길과 박새롬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맡고 있었는데, 현재는 박새롬의 순번이었다.
[아닙니다. 설명은 직접 만나서 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오실 수 있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곧바로 유한길을 회의실로 소환했다.
‘가신 소환, 유한길.'
지이잉-
회의실 책상에 가부좌를 튼 자세로 나타난 탓에 당황하고 있는 유한길을 향해 말했다.
“자세한 설명은 다빈씨가 해주실 겁니다.”
유한길이 나타나자마자 내 의도를 파악한 김다빈이 지금 상황과 유한길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이런 상황이므로 유한길씨의 능력으로 월성 기지를 탐색해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하실까요?"
유한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울산 전초기지에서 월성까지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 거죠?"
“대략 20km 정도 됩니다.”
"그 정도 거리는 사용해 본 적 없기는 한데, 아마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이동하시죠.”
자신감 넘치는 그와 함께 울산 홈플러스의 직원 휴게실로 이동했다.
예전 흡혈귀 전을 치를 때 지휘통제실로 사용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그곳에서는.
"아싸 고도리! 쓰리 고!"
“아놔. 누나 또 사기 치는 거죠?”
박새롬이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앗, 누, 누나!"
그들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판을 엎었다.
"야! 싯팔! 너 지금 뭐하는 거냐? 간만에 터지고 있는데 이게 뒤질라고-!"
“누, 누나 저기! 저기 좀 봐!"
"아앙?"
나와 눈을 마주친 박새롬이 순간적으로 돌부처가 되었다.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하하,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뭐냐, 그 항상 쓰던 왕관은 어디로 갔대?"
여담이지만 창고 스킬을 3레벨로 올리면서 더 이상 신기를 직접 착용하지 않아도 효과를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신기를 보관할 수 있는 전용 창고가 생겨났는데, 그곳에 보관을 하면 착용 효과가 발동하는 식이었다.
해당 슬롯은 창고 무게에 포함되지 않아서 더욱 편했다.
굳이 이런 설명을 박새롬에게 해주지는 않았다.
"잠시 장소를 빌리겠습니다.”
"아, 넵!"
그들이 도박판을 호다닥 치워주었고,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은 유한길이 말했다.
"준비 끝났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유한길이 두 눈을 감았다.
유한길은 어렵지 않게 월성 기지를 찾을 수 있었다.
김다빈의 설명이 워낙 친절했던 덕분이다.
그곳은 현재 폭발 사고로 인해 엉망진창이었는데, 곳곳에 피를 토하고 죽은 시체나 불에 탄 것처럼 피부가 빨갛게 익어버린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저건・・・ 뭐지..??'
꾸륵-
폭발로 인한 잔해 속에서, 초록색의 거대한 액체 덩어리 같은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킨 채로 꿈틀거리길 잠시.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초록색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Episode 27] 방사능 유출 (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