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27] 방사능 유출 (4) >
방사능 몬스터.
월성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과 그 이후 비정상적인 방사능 수치의 원인으로 보이는 몬스터가 존재했다.
최악인 것은 놈이 빠른 속도로 증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자력 시설의 폭발을 원동력 삼아 수천 마리로 증식하고 있습니다.”
유한길의 천리안으로 관찰해본 결과 쪼개진 괴물의 파편들은 저마다 자아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으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점차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것에는 약간의 속도 차이가 있었는데, 육지에서 움직이는 파편의 경우 굉장히 느릿느릿하다고 했다.
하지만.
“바다 쪽으로 흘러들어간 괴물의 파편들은 굉장히 빠르게 퍼져나가는 중입니다."
액체의 성질을 띠고 있는 그것들은 바다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백승민 부장이 있던 마을이 순식간에 초토화 된 것도 바다를 인접하고 있던 것이 원인이었다.
바다를 통해 퍼져나간 방사능 괴물의 파편들이 강동해안에 도착한 탓에 빠른 속도로 방사능 피폭이 일어난 것이다.
유한길을 향해 물었다.
"정확히 얼마나 퍼져나간 겁니까?"
"알아보겠습니다.”
잠시 침묵하며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던 유한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색이 되어 갔다.
능력을 극도로 활성화시키며 식은땀으로 젖어가던 그가 코피마저 흘리게 됐을 때.
“허억!"
두 눈을 뜬 유한길이 숨을 고르면서 보고했다.
“허억, 허억. 현재, 땅을 통해 움직이는 것들은 근처 산맥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바다 쪽으로 움직인 것들은 이미 울산의 태화강 하류지역에서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속도라면 앞으로 반나절 안에 부산까지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내 옆에서 유한길의 보고를 함께 듣고 있던 김다빈이 짧게 신음하며 입을 열었다.
“재현님. 그게 정말 사실이라면 한국 전체가 위험합니다.”
그 이유는 나도 짐작할 수 있었다.
“며칠 안에 다른 원자력 발전소들도 위험해지겠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들은 모두 해안가를 따라 설치가 되어 있다.
바다 근처에 원전을 지은 것은 대량의 냉각수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였는데, 이게 그대로 독이 된 상황이었다.
'이 속도라면 최소 며칠 안에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 도착하겠지.'
놈의 파편이 그곳에 도착한다면 월성 기지에서 있었던 일과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다.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에는 대한민국 땅은 방사능으로 가득한 지옥이 될 지도 모른다.
아니, 지옥이 될 게 분명했다.
한국 전체가 죽음의 땅으로 변모할 테니까.
'막아야해.'
최대한 빠르게 방사능 괴물을 처치하는 것이 베스트겠지만, 그 방법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긴 한데...'
확실한 방법이 하나 존재하긴 했다.
‘강림을 사용한다면 상황을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
신격을 사용한다면 방사능 몬스터를 지워버리는 것쯤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다만 이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뢰도와 충성도 모두 100을 찍은 인물이 필요했고, 현재 그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은 문병호, 김가영, 하동건, 김다빈 정도가 다였다.
게다가 강림을 한다면 방사능 괴물 바로 근처까지 접근해야만 할 텐데 당장 파편만으로도 사람을 급사하게 만들 정도로 위험한 놈의 본체에 접근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했다.
'높은 확률로 죽겠지.'
사실상 한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바쳐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가신들의 레벨을 한계치까지 올리고, 별의 힘을 현재 최대치인 3성까지 올려둔 덕분에 몸의 내구도가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한 상태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다.
'정보가 필요해.'
다행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진아."
"응, 오빠."
유한길의 천리안은 무척이나 편리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가 직접 상황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가 본 것을 전달받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서예진의 능력은 다르다.
‘생쥐의 정찰과 동시에 절대자의 눈을 활성화시킬 수 있으니까.’
그녀만큼 절대자의 눈과 궁합이 잘 맞는 능력자는 없었다.
지금까지 내 옆에 붙어서 회의 내용과 유한길의 보고를 모두 들은 그녀였기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월성 기지로 가 줄 수 있을까? 놈을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응. 해 볼게."
서예진이 두 눈을 감고 자신과 연결 된 생쥐에게 링크를 거는 순간,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절대자의 눈의 시야가 급변했다.
정확한 장소는 몰라도 나무가 우거져 있는 산 중턱으로 보였다.
서예진에게 물었다.
“여긴 어디쯤이야?"
길들여진 생쥐들의 대략적인 위치를 느끼는 그녀였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여기서 10km쯤 떨어진 산 속 어딘가인 거 같아.”
"월성기지까지 갈 수 있겠어?"
“음... 사실 모르겠어. 그렇게 먼 거리까지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볼게.”
인간도 순식간에 죽어나가는 마당에 생쥐가 어떻게 거기까지 가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서예진에게 길들여진 생쥐들은 일반적인 생쥐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레벨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스킬 중 하나인 '진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성장하는 놈들이었다.
거대 생쥐로 진화한 놈들은 평균적으로 7레벨을 넘어갈 정도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준이냐하면 시민으로 받아들일 때의 일반적인 성인 남자의 레벨과 맞먹었다.
겨우 생쥐 주제에 성인 남자와 동급이라는 소리였다.
서예진의 레벨이 오르고 강해질수록 그녀에게 길들여진 생쥐들도 강해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강화' 스킬은 생쥐들의 수준을 한층 더 끌어올려준다.
김건의 '급성장' 스킬보다도 급이 높은 스킬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잠시 동안은 방사능을 버틸 수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길들여진 거대 좀비 생쥐(Lv. 16)」
서예진이 다루는 생쥐 중에는 '좀비' 속성을 획득한 놈들이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좀비 속성을 얻은 것들은 다른 놈들보다 훨씬 월등한 생명력을 지는 놈들이었다.
레벨이 16인것만 봐도 겨우 중형견만한 덩치를 가진 이 생쥐가 웬만한 오크와도 맞먹는다는 소리였으니 말도 안 되게 강력한 셈이었다.
사사삭-
거대 좀비 생쥐가 수풀을 헤치며 열심히 달려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스킬을 사용했다.
'가신 소환, 김건.'
행정 본부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건을 데려온 다음 그에게 말했다.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방사능 몬스터에 대한 정보 탐색이 완료되는 동안 손 놓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울진의 한울 기지로 가 주십시오.”
방사능 괴물의 파편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대한민국에 퍼져 있는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접수할 생각이었다.
치지직-
거대 좀비 생쥐는 정체불명의 초록색 액체를 마주하고 있었다.
절대자의 눈은 그 초록색 액체 덩어리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방사능 슬라임(Lv. 26)」
몬스터의 이름과 레벨이 있다는 것.
'잡을 수 있는 놈이란 뜻이다.'
현재 그 초록색 액체 덩어리의 몸속에는 여러 가지 금속 파편이 존재했다.
총알이나 아령 따위가 액체에 녹고 있는 상태였다.
이것은 실험의 흔적이었다.
창고에 저장된 총 수십 발을 슬라임을 향해 쏘아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중력을 활용해 속도를 끌어올린 아령을 사용해 공격해봤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놈의 몸에서 초록색 액체가 터져나가며 덩치만 조금 작아졌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
심지어 놈은 사방으로 기어 다니며 흩어진 자신의 몸의 파편을 흡수하더니 원래의 크기로 돌아와 버렸다.
'물리 공격에는 완전 면역이라고 봐야겠군.'
사실 물리 공격이 통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3레벨이 되며 절대자의 창고의 한계치가 500kg까지 늘어난 상태였다.
흡혈귀 전에서 사용했던 서대문을 활용한 메테오 한 방이면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태를 보아하니 물리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창고 소환.'
다시 한 번 창고를 열어서 놈을 향해 무기를 쏘아냈다.
그것은 평범한 보급형 창이었다.
대신 그 창날에는.
화르륵
검은 기운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동건이 스킬을 사용해 던진 창을 보관해둔 것이었다.
푸확!
그것이 방사능 슬라임의 몸에 꽂힌 순간.
콰아아앙!
화려하게 폭발하며 방사능 슬라임의 몸을 산산조각 냈다.
[방사능 슬라임(Lv. 26)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0,112,754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검은 기운에 잠식된 슬라임은 그대로 절명했다.
'놈들을 없앨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건가'
현재로써는 하동건의 힘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방금 처리한 놈은 겨우 파편에 불과한 놈이라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월성 기지에 있는 본체를 잡을 수 있을까?'
유한길의 묘사에 의하면 방금 마주한 파편보다 수백 배는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놈이었다.
그런 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동건의 창이 몇 발이나 필요할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 방법도 그리 나쁘진 않군.'
느리긴 해도 인명 피해가 전무하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었다.
그때였다.
철퍽!
어두운 숲속을 달리던 거대 좀비 생쥐의 머리 위로 방사능 슬라임 한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치지지직-
어둠 속에서 불길한 형광빛을 내뿜는 그 초록색 액체가 꿀렁일 때마다 거대 좀비 생쥐의 썩은 살점이 녹아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창고 소환. 하동건의 창.'
콰직! 콰아앙-!
하동건의 창을 소환하여 방사능 슬라임과 좀비 생쥐를 한꺼번에 처리했다.
[방사능 슬라임(Lv. 24)을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8,003,127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길들여진 거대 좀비 생쥐(Lv. 16)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502,11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링크되어 있던 생쥐가 죽자 서예진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눈을 떴다.
"괜찮아?"
“응. 좀비 애들은 링크가 되어 있어도 고통이 전해지지 않으니까.”
좀비 속성을 가진 녀석들 덕분에 서예진의 가장 큰 리스크도 완전히 해결이 된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전과 달리 생쥐가 타격을 입는 타이밍이 아니라 완전히 죽는 순간까지 링크를 유지할 수 있어서 활용도가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서예진이 사과했다.
"미안해, 오빠. 머리 위에서 떨어질 줄은 몰랐네.”
"아니야. 충분히 잘 해줬어. 생각보다 얻은 게 많았어. 한 번 더, 가능하겠어?"
"응."
그 이후로도 우리는 몇 번 더 월성 기지 침입을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월성 기지에 가까이 갈수록 슬라임이 등장하는 빈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것도 있었지만,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좀비가 된 몸으로도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된 공기 속에서 얼마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월성 기지 근처에 있는 환경은 지옥이었다.
'조금만 더 내구도가 좋은 생쥐들이 있으면 가능할 것 같은데..'
아쉽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생쥐들이 서예진이 길들인 것들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것들이었다.
'뭔가 방법이 없나?'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김다빈에게 상의했다.
그런데.
[재현님.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예진님께서는 모든 생쥐들을 길들이시는 게 가능한 걸까요?]
방법이 생겼다.
<[Episode 27] 방사능 유출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