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isode 27] 방사능 유출 (5) >
김민호의 보고에 따르면 켈리칸 무리가 둥지로 삼고 있던 아파트 지하에 '랫맨'이라는 몬스터가 있다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기본적으로 생쥐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니 서예진의 능력이 통할 가능성은 있다고 봤다.
[평균 레벨은 16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서예진에게 길들여져 거대 생쥐로 진화한 놈들의 레벨이 10레벨 대 초반인 것을 생각하면 훨씬 높은 스타트였다.
놈들을 길들여 전력으로 삼기만 해도 최소 2~3레벨은 전력이 올라갈 것이고, 거기에 좀비화까지 더하면 레벨이 두 단계는 더 올라갈 것이다.
'나쁘지 않아!'
20레벨 수준에 서예진의 강화 스킬을 덧씌우면 월성 기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괴물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우두머리요?]
[네. 사냥을 한 게 아니라서 정확한 레벨은 알 수 없지만, 덩치나 풍겨 나오는 분위기로 볼 때 낮은 레벨은 결코 아닐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네.]
직접 놈과 마주했던 김민호의 묘사에 의하면 거대 괴물쥐는 신장만 5m 정도에 전신의 근육이 발달해 있는 무시무시한 모습이라고 한다.
'김민호가 그렇게 느낄 정도라고?'
흡혈귀 전을 준비할 때부터 모든 가신들의 최소 레벨은 45레벨로 맞춰둔 상태였다.
거기다 별의 힘까지 모두 3성으로 맞춰놓은 상태였는데, 그런 김민호 파티가 위협을 느꼈을 정도라면 최소 그 근처 레벨에는 근접했다는 소리다.
'잘하면 40레벨이 넘겠는데?'
부하들이 겨우 10레벨 중반인 것을 감안하면 40레벨까지는 안 될 확률이 높았지만, 30레벨만 넘어가도 굉장한 성과였다.
'정말로 예진이가 놈을 길들일 수만 있다면 의외로 쉽게 이 사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방사능을 버텨주기만 한다면 하동건의 창을 사용해 방사능 몬스터를 처치하는 게 가능해진다.
'서둘러야겠어!'
켈리칸의 둥지는 현재 영역의 끄트머리에 맞닿아 있었다.
그 말은 곧 한 번이라도 레벨업 한다면 영역에 잡아먹혀 그대로 경험치로 변하게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레벨업 하기 전에 놈들을 길들여야 해!'
방사능 유출로 인해 시민들을 안전지대 안으로 불러 모은 상태였으니 당분간 레벨업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고블린 던전에서 나오는 경험치야 얼마 되지 않으니 상관없겠지!'
사실상 레벨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고렙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가신들밖에 없으므로 그들만 잘 통제한다면 레벨업 타이밍을 늦추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두 눈을 감은 채 다음 주자가 될 생쥐를 찾고 있던 서예진을 불렀다.
"예진아."
"응?"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무슨 일인데?"
랫맨들에 대한 설명을 들은 서예진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게.”
그녀가 긴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상 이곳에 합류한 뒤로 처음 안전 지대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셈이었으니까.
생쥐와의 감각 링크를 통해 간접 경험은 많이 쌓았어도, 직접적으로 몬스터와 마주치는 경험은 거의 없는 것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 안 해도 돼.”
"하지만..."
정말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우리 아빠가 도와주실 거거든."
"...아버님께서?”
명실상부한 최고 전력이 그녀를 직접 호위할 테니까.
그런데.
'이런'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한울 원자력 본부에 도착해 상황을 살피던 김 건은 굳은 얼굴이 되어 김재현을 불렀다.
"....재현님. 계십니까?"
[...네. 저도 봤습니다.]
한울 원자력 본부는 진즉에 몬스터들의 서식지로 변해 있는 상황이었다.
태백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터라 별다른 지원을 받기도 어려운데다 주변에는 온통 몬스터들로 가득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생존자로 보이는 이들이 존재했다.
물론 몬스터들의 서식지로 변해버린 마을 한쪽 구석에 가축처럼 방치되어있는 꼴을 생존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
김건은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곳을 점령한 몬스터의 존재가 그에게 있어 익숙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뿌득
그곳을 점령하고 있는 몬스터는 바로 '블랙 오크'.
일전에 하동건, 강덕수, 김 건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아파트 단지를 점령했던 놈들과 같은 종이였다.
전산망이 복구되며 자신의 부모님을 찾기는 했지만, 그때의 절망감과 블랙 오크에 대한 적대감은 아직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채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놈들이 인간을 가축처럼 다루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 참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성을 유지한 채 김재현을 먼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보다 몇 배는 원한이 깊을 하동건과 강덕수를 위해서였다.
"...어떻게 할까요?"
[...쓸어버리세요.]
김재현의 허가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김 건은 한울 원자력 본부를 향해 수직 낙하했다.
마침 인간들의 우리 안으로 들어간 블랙 오크 한 마리가 몽둥이를 들고 어떤 남자를 두들겨 패려던 순간이었다.
김건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블랙 오크의 머리를 짓밟으며 착지했다.
콰아앙!
몽둥이를 휘두르려던 블랙 오크는 머리를 땅바닥에 박아 넣은 채로 축 늘어졌다.
[블랙 오크(Lv. 31)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시민 김 건의 지갑에 233,872,992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한 마리를 사냥한 것만으로도 2억 원이 넘어가는 돈이 지급되었지만, 그보다는 블랙 오크 한 마리를 죽였다는 사실 그 자체로의 만족감이 더 컸다.
"허억, 허어억."
블랙 오크의 몽둥이에 맞을까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던 남자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김 건을 보며 더 크게 떨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 건의 외모는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블랙 오크라는 괴물을 일격에 죽여버리는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난 것과 별 다를 것 없었다.
그런데.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서 근무하시던 분입니까?"
그 괴물의 입에서 사람의 언어가 나온 순간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관리는 누가 하고 있는 겁니까? 어떻게 안 터지고 있을 수 있는 거죠?"
"어어? 혀, 현재 가동 중지를 시켜놓은 상태입니다. 임시방편에 불과하긴 합니다만...."
"...그렇군요."
그리고.
지이잉-
남자의 곁으로 물과 초코바와 같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식량들이 박스 단위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헉!"
그 모습을 보고도 사람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배가 고팠지만, 눈앞에 있는 까마귀 남자에 대한 두려움에 움직일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드시고 계세요.”
그동안 블랙 오크에게 동료들이 차례차례 잡아 먹히는 것을 경험하며 공포가 각인되었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옆에서 김 건과 대화를 나누었던 남자만큼은 몸을 덜덜 떨면서도 움직였다.
손만 뻗으면, 먹을 것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목이 너무 말랐다.
비쩍 마른 손으로 500ml짜리 물병을 집어 든 남자는 벌컥벌컥 그것을 마시기 시작했다.
"허억, 헉."
손에 힘이 없어 절반 이상을 흘려버렸지만, 상관없었다.
눈앞에 더 많은 물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남자는 손을 뻗지 못했다.
"흐어어엉."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하던 남자는 뒤를 돌아보더니 울면서 말했다.
"괜찮아요! 다들 이리로......! 크흡!"
거지꼴을 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뗐다.
이내 가축우리 안에 갇혀 있던 모든 사람들이 허겁지겁 물자를 집어 먹으면서도 하나같이 서러운 울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취익—!"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주변에 있던 블랙 오크 수십 마리가 사육장 근처로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히익!"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기겁하며 몸을 떨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수십 마리의 블랙 오크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졸도한 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훑어보며 더욱 더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 김건이 블랙 오크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그 순간.
지이잉—
북대문이 열리며 하동건을 비롯한 파티원들이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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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인간들의 우리를 덮칠 기세였던 블랙 오크들도 하동건 파티의 심상치 않은 기운에 압도되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조용히 노려보던 하동건이 입을 열었다.
"모조리 죽여버려."
그의 말과 동시에.
"일어나라!"
푸부부북!
강덕수가 이끄는 강철의 기사들이 사방에서 나타나 블랙 오크 수십 마리의 심장을 꿰뚫었다.
***
오크들의 특이한 점은 레벨 분포가 무척이나 다양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마주한 오크들 중에서 가장 강한 놈들은 단연코 바로 블랙 오크들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냥 오크들만이 아니라 블랙 오크 전사, 블랙 오크 궁수 따위로 직업까지 나누어져 있는 이놈들의 평균 레벨은 무려 30대 중후반.
덕분에.
[블랙 오크 전사(Lv. 35)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371,009,777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10억이 넘어가는 정산금과 함께 두둑한 양의 경험치가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레벨업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당장 눈앞에서 사람을 가축처럼 기르고 있는 블랙 오크의 존재를 용납할 수는 없었다.
당장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는데 모른 척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뭐,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이대로 레벨업을 하지 않고 서예진이 랫맨들을 길들일 수 있게 되는 게 베스트였지만, 운이 나빠 레벨업을 하게 되더라도 방법은 있었다.
'....가능하겠지?'
아직은 반신반의에 불과했지만,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은 있었다.
[블랙 오크 궁수(Lv. 36)를 사냥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1,709,654,711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성장한 하동건 파티의 힘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력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이 돌아간 강덕수와 하동건의 활약이 가장 인상 깊었다.
블랙 오크로 득실거리던 한울 원자력 발전소가 텅텅 비어버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블랙 오크 전사(Lv. 37)를 사냥하셨습니다.]
[블랙 오크(Lv. 32)를 사냥하셨습니다.]
[블랙 오크 궁수(Lv. 35)를 사냥하셨습니다.]
‘잘하면 레벨업 안 하고 끝나겠는데?'
그러나.
'아!'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지.
다른 블랙 오크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덩치를 가진 우두머리가 하동건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블랙 오크 우두머리(Lv. 41)를 사냥하셨습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집구석 절대자의 지갑에 2,799,355,120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시민 하동건이 '한울 원자력 발전소'의 우두머리를 해치웠습니다.]
['한울 원자력 발전소'에 전초기지 건설이 가능해집니다.]
기어코.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해버렸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영역 확장과 함께 약속된 고통이 찾아왔고,
"흡!"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발동합니다.]
정신이 또렷해졌다.
< [Episode 27] 방사능 유출 (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