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집구석절대자-122화 (123/175)

< [Episode 27] 방사능 유출 (6) >

명경지수의 효과로 인해 또렷해진 정신으로 늘어나고 있는 영역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켈리칸의 둥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김건이 고리 원자력 발전소를 향해 날아가던 과정에서 정확한 위치를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저기다.'

영역이 늘어나며 확장되는 과정에서 아파트 단지를 빠르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된 몬스터들이 경직되며 멈추는 것을 확인했다.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보통 안전 구역 안으로 들어오게 된 몬스터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어떤 형태로든 나를 향한 적대감을 가지게 되는 순간 머리가 폭발하며 그대로 정산되는 것이다.

하지만.

'제압해 죽이지 말고!'

흡혈귀 전에서 진조와 대면하며 힘의 사용법을 익힌 상태였다.

무의식적인 대응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시스템의 힘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제압합니다.]

효과는 확실했다.

당장 내가 노리던 랫맨을 비롯한 아파트 단지에 서식하고 있던 모든 몬스터들이 죽지 않고 제압되었다.

반면에 내가 신경 쓰지 않은 모든 영역에서 새롭게 편입된 몬스터들은.

[집구석 절대자에게 적대적인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거합니다.]

일순간에 제거되며 경험치와 정산금으로 변해버렸다.

랫맨들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 둥지를 튼 켈리칸들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게 된 셈이었다.

[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는 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민권을 부여하시겠습니까?]

늘어난 영역에 새롭게 포함되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시민권을 부여하는 작업까지 끝내자 몸의 고통이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그와 함께 명경지수의 효과도 끝났다.

"후우"

눈을 뜨니 서예진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명경지수는 일종의 유체이탈과도 같았다. 고통을 느끼는 쪽과 또렷한 정신을 잠시 둘로 나눠놓는 느낌이어서 육체는 그대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덕분에 지금도 온몸이 식은땀투성이에 영역이 확장되는 동안 계속해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어서 서예진이 걱정하는 것이었다.

"괜찮아?"

"응. 이제 괜찮아."

소매로 식은땀을 닦아 주는 서예진을 향해 말했다.

"예진아."

"응?"

"바로 이동하자."

이제 굳이 아빠를 호위로 붙여서 보낼 필요가 없어졌다.

'동대문 개방'

동대문이 개방되며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과 연결되었다.

"가자."

서예진의 손을 잡고 동대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는 절대자의 눈을 유지 중이어서 주변 시야가 훤하게 보였지만, 서예진의 눈에는 동대문이 개방되며 흘러나오는 빛이 비춰주는 주변만 보일 것이다.

번쩍 -

절대자의 품위 유지 스킬을 사용해 지하 주차장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고 불을 켜자 반쯤 폐허가 되어 버린 지하 주차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오빠 이건...?"

지하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생쥐, 아니 랫맨들이었다.

수십 수백 마리의 랫맨들이 그 자리에서 박제된 것처럼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어때. 이놈들 길들일 수 있겠어?"

서예진은 박제된 랫맨들의 모습을 훑어보던 그때였다.

[시민 서예진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서예진의 충성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서예진의 충성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시민 서예진은 이미 가신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가신 보유 한계치가 늘어납니다.]

'응?'

99에서 멈춰 있었던 서예진의 충성도가 100이 되었다.

그동안 너무 인간적으로 친밀해진 탓인지 신뢰도와 충성도가 정체되어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그것이 뚫린 모양이었다.

서예진이 긴장감에 침을 삼키며 말했다.

“한 번, 해 볼게요.”

서예진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랫맨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더니 품에서 무언가 네모난 것을 꺼냈다.

그것은 자그마한 큐브 모양의 치즈였다.

치즈를 까자 박제되어 있던 랫맨이 곧장 반응을 보였다. 몸이 멈춰진 상태로 눈알이 굴러가더니 서예진의 손 위에 들린 치즈에 고정된 것이다.

잠시 어쩔줄을 몰라하던 서예진이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말했다.

“저, 오빠. 이 녀석 좀 움직이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괜찮겠어?"

서예진은 다시 한 번 랫맨의 반응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을 것 같아요."

"...근데 아까부터 왜 갑자기 말을 높이는 거야?"

"제가 언제...."

"지금도 봐."

내가 다그치자 서예진은 눈을 데구르르 굴리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뭔가, 이런 걸 보니까 오빠가 조금 낯설게 느껴져서..."

"편하게 말해. 평소처럼."

"...네, 아니 응"

"그래. 그럼 준비됐어?"

"...응."

서예진 앞에 박제되어 서 있는 랫맨을 바라봤다.

「랫맨(Lv. 17)」

놈에게서 적대감이나 위협적인 기운은 읽을 수 없었다.

처음 서예진과 조우한 순간부터 기가 꺾여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길들이기도 전인데 서예진에게 순종하는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별 일 없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을 소환한 나는 조심스럽게 랫맨의 제압 상태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꺅!"

억압에서 해방된 랫맨은 곧장 서예진의 손을 덥석 물었다.

보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랫맨의 머리를 박살 내려던 그 순간.

"오빠! 난 괜찮아! 기다려주세요!"

내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본 서예진이 다급하게 나를 말렸다.

내가 물었다.

"손 괜찮아? 안 다쳤어?"

"괜찮아요.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잠시 당황하던 서예진은 자신의 손을 입에 넣은 채로 우물거리고 있는 랫맨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착하다. 착해."

랫맨을 쓰다듬는 서예진의 손길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그와 동시에.

"이제부터 네 이름은 알파-1호야. 알겠지?"

「길들여진 랫맨(Lv. 20)」

절대자의 눈에 비친 랫맨의 설명과 레벨이 변했다.

'3레벨 정도 오르는 건가!'

서예진은 눈을 감았다.

방금 길들인 랫맨과의 교감을 시도해보는 듯했다.

얼마 뒤.

랫맨을 길들이는데 성공한 서예진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성공이에요!"

"잘했어."

서예진은 빠른 속도로 랫맨들을 길들여나갔다.

“너는 이제부터 알파-33호야."

그녀가 랫맨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예진아.”

"네?”

"이름은 원래 그렇게 짓는 편이야?"

"네. 그래야 부를 때 편하거든요."

"그렇구나... 그런데 알파는 무슨 의미야?"

"이러면 그냥 생쥐들이랑 구분하기 쉽지 않을까요?"

그렇게 알파-189호까지 길들이는 데 성공했을 때였다.

'저건...'

지하 주차장 한켠에 여전히 전등이 켜지지 않아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는 공간이 있었다.

천장에 달려 있는 전등이 모조리 박살 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고요한 어둠 속에 거대한 덩치의 괴물 하나가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왕 랫맨(Lv. 43)」

'...여왕?'

순간적으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설명이었다.

왜냐하면 절대자의 눈에 비친 놈은 전신에 근육이 알알이 박혀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여왕보다는 왕이 더 어울리는 거 같은데!'

이름이야 어찌 됐든 대박이었다.

'높다'

무려 43레벨.

몬스터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도 40레벨이 넘어가는 몬스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상급 흡혈귀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가 특정 지역의 우두머리를 해 먹고 있을 정도의 레벨이니 흔하지 않은 게 당연했다.

'이 정도 레벨이면 충분하다!'

서예진이 이놈을 길들일 수만 있다면 방사능으로 오염된 월성 기지에 무난하게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예진아. 이놈은 가능할 것 같아?"

한참 동안 말없이 여왕 랫맨을 올려다보던 서예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서예진은 여왕 랫맨의 덩치와 카리스마에 압도되어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여왕 랫맨의 기세도 심상치 않았다.

평범한 랫맨들과는 달리 여왕 랫맨의 눈빛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제압당한 상태에서도 정신력이 꺾이지 않은 것이다.

두 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속박을 풀어주면 곧장 우리를 향해 달려들 것만 같았다.

"해 볼게요."

"그래, 한 번 해보자."

이 녀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어떻게든 이놈만 잘 제압한다면 방사능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우선 기를 좀 꺾어놔야겠군. 풀어줘'

그 순간.

후웅-

예상했던 대로 놈은 곧바로 우리를 공격해왔다.

날카로운 손톱이 우리를 노려왔고, 나는 놈의 공격을 보이지 않는 손을 활용하여 쳐냈다.

콰아앙!

지하 주차장에 커다란 굉음이 울려댔다.

찍찍!

찍!

서예진에게 길들여진 알파-1호부터 알파-189호가 서예진을 구하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여댔다.

그것들의 움직임을 본 여왕 랫맨이 분노에 가득 찬 외침을 터뜨렸다.

-크허어어엉!

공룡이 눈앞에서 울부짖는 것만 같았지만, 나는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은 나의 영역.

집구석이었다.

'거대화'

콰지직!

내 몸에서부터 뻗어 나온 보이지 않는 손이 그 크기를 불려 나가며 지하 주차장의 천장을 완벽하게 박살 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검은 기운을 주입했다.

검은 기운이 집약된 보이지 않는 손이 그 형체를 드러냈다.

화르륵-

검은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손은 지옥에서 올라온 괴물의 그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잠시 모두가 침묵했다.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짐승처럼 날뛰던 여왕 랫맨 조차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속에서 검은 손바닥이 움직였고, 거대한 덩치의 여왕 랫맨을 머리에서부터 짓눌렀다.

콰아아앙—

여왕 랫맨은 쪽도 못 쓰고 검은 손바닥에 짓눌려 바닥에 엎드린 상태가 되었다.

녀석의 커다란 머리통은 지하 주차장 바닥을 움푹 파고들었고, 나는 마침내 나보다 눈높이가 낮아진 놈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예진이에게 힘을 사용해 보라고 하면...'

그 순간이었다.

[시민 서예진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시민 서예진의 신뢰도가 100에 도달했습니다.]

['강화'를 획득합니다.]

마찬가지로 99에서 정체되어 있던 서예진의 신뢰도가 상승하며 100을 달성했다.

'강화?'

서예진이 직접 길들인 생쥐들을 강화해주는 스킬.

그런데 나의 경우는 길들인 생명체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 스킬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는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서예진을 바라보며 집중했다.

'강화'

그 순간.

화르륵-

서예진의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

그와 동시에 서예진의 존재감이 한층 더 강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빠, 이게 도대체...."

어리둥절해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지금 한 번 시도 해 볼래?"

내가 여왕 랫맨의 얼굴 앞에서 슬쩍 물러나자 서예진은 입술을 앙다문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랫맨을 향해 걸어갔다.

놈을 제압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손마저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놈은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서예진을 눈앞에 두고도 놈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서예진은 놈의 얼굴 한쪽에 불에 탄 듯한 흉터 자국을 찬찬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길들여진 여왕 랫맨(Lv. 43)」

성공적으로 놈을 길들일 수 있었다.

<[Episode 27] 방사능 유출 (6)>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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