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Episode 29] 사이비 (2)
롯데타워의 엘리베이터.
꼭대기 층으로 향하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두 명의 여자가 타고 있었다.
정장을 쫙 빼입은 여자와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
스타일은 달랐지만, 명확한 공통점이 몇 가지 있었다. 두 사람 다 아주 젊고, 매력이 넘치는 미인이라는 것.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은 상태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말했다.
“나리 씨.”
“네, 넵?”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 들으러 가는 길이니까요.”
“……네에.”
“나리 씨는 운이 좋으신 겁니다. 주님과 독대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네, 알고 있어요.”
배나리는 감격에 젖었다.
지금 자신이 만나러 가고 있는 존재는 현세에 강림한 신이었다.
심판의 때가 찾아와 괴물들로 뒤덮인 세상에서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를 믿고 따랐기 때문이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신이 자신을 부른 것이다.
긴장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띵―♪
“도착했네요.”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쪽으로.”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꾸며진 복도를 걸어가자 그 끝에 문이 하나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고급스러운 거실이 나타났다.
복도와 마찬가지로 바닥은 온통 새하얀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고, 적절하게 배치된 가구들이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배나리를 안내하던 여자는 익숙하게 걸어가 안방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준 다음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들어가시죠.”
“은혜 씨는 같이 안 들어가시나요?”
“이 시간은 온전히 나리 씨만을 위해서 마련된 것이니까요.”
“아……!”
배나리는 감격하며 박은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별말씀을.”
박은혜의 따스한 미소에 마주 웃어 주며 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축복이 함께하기를.”
철컥
문이 닫히고 배나리는 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파스텔톤의 조명으로 장식된 안방의 침대 위에 그가 있었다.
인류의 구세주, 정현수.
앉은 자세로 두 눈을 감고 있는 그에게서는 신비한 분위기가 풍겨 왔다.
배나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천천히 눈을 뜬 그가 배나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배, 배나리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셔서 이렇게 직접―.”
“안다.”
배나리의 말을 끊어 낸 정현수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을 가리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리자 배나리는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그가 자연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정현수의 손이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저, 저기…….”
“힘들었겠구나.”
그 순간이었다.
배나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사랑하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여보?”
그날.
자신의 눈앞에서 괴물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던 남편이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그가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여보!”
배나리는 망설임 없이 남편의 품에 안겼고,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
“음?”
배나리에게 입을 맞추고 있던 남편, 아니 남편의 모습을 덮어쓰고 있던 정현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따악!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배나리가 정신을 잃으며 침대에 쓰러졌다.
“쯧.”
그녀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던 정현수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지?”
그러자 그의 그림자에서 남자 하나가 얼굴을 내밀고 나타났다.
직전의 배나리와 마찬가지로 초점 없는 눈을 한 남자가 건조하게 보고했다.
“흑경이 죽었습니다.”
정현수는 그림자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뭐?”
“흑경이 죽었습니다.”
남자가 같은 말을 반복하자.
퍼억!
정현수의 발길질이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내가!”
퍼억!
“이 시간엔.”
퍽!
“방해하지 말라고.”
퍼억!
“했어?”
퍽!
“안 했어?”
퍼억!
“어?!”
뻐억!
남자는 무표정으로 가만히 맞기만 했고, 정현수는 남자의 머리 위에 발을 올려 짓누르며 숨을 골랐다.
“후우. 어떻게 된 건지 보고해.”
“최상현을 죽이려던 순간 이상한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커다란 검은 새를 타고 다니는 여섯 명의 남녀였는데, 그중 하나가 던진 창에 맞고 죽었습니다.”
정현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일격에 죽었다고? 그 검은 고래가?”
“네.”
“허어…….”
검은 고래가 죽는 것이야 그럴 수 있었다.
강력한 놈이었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괴물이야 널리고 널렸으니까.
하지만 단 일격에 검은 고래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무력을 손에 쥐고 있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정현수가 알기로 그런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존재는 서울에 딱 여섯 명 있었다.
짐작이 가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검은 새와 창이라.’
검은 새를 부린다면 용산의 차현승일 것이고, 그만한 파괴력의 창을 던졌다면 부천의 양하영일 것이다.
정현수가 물었다.
“창을 던진 것은 여자였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쯧. 쓸모없는 놈.”
가볍게 관자놀이를 걷어차 준 뒤 창가로 이동했다.
테이블 위에 있는 굵은 담배를 집어 들고 앞부분을 잘라 낸 뒤 필터 쪽을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스읍―, 하아.”
한 모금 깊숙이 빨아들인 뒤 내뱉으며 생각했다.
‘둘이 힘을 합쳐서 나를 친다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여섯 명 모두가 자신을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쯤은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여섯 명 모두가 힘을 합친 건가?’
우연인지 숫자도 딱 맞았다.
‘흐음.’
잠시 생각하던 정현수는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럴 리가 없지.’
차현승과 양하영이라면 몰라도 여섯 명 모두가 힘을 합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섯 명 중에는 이미 원수지간이 되어 버린 이들도 있었으니까.
여러 가지 사정이 얽혀 있는 것을 생각하면 두 사람. 많아 봤자 세 사람이 힘을 합치는 게 한계였다.
숫자가 여섯인 것은 놈들이 한둘씩 부하라도 데려온 것이리라.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잘됐군.’
이곳은 정현수의 영역이었다.
제 발로 이곳으로 들어와 주다니.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판이었다.
‘멍청한 것들.’
놈들의 생각이야 뻔했다.
‘소수 정예로 쳐들어와 내 머리를 딸 생각이겠지.’
처음부터 기습했다면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놈들은 멍청하게도 검은 고래를 사냥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 버렸다.
들킨 순간부터 기습은 기습이 아니게 된다.
‘환영 준비를 해야겠군.’
* * *
문병호는 투명화를 유지한 상태로 롯데타워의 꼭대기 층에 있는 전망대로 순간 이동하여 잠입했다.
‘엄청 높구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풍경은 아찔했다.
도시의 불빛이 사라지며 먼 곳은 어둠 속에 잡아먹힌 모습이었지만, 롯데타워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 덕분에 석천 호수와 근처 건물들의 모습은 잘 보였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을 떠나 본 적 없던 문병호는 처음 와 보는 장소였다.
그래서.
‘꼭대기 층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최상현이 말한 꼭대기 층이라는 것이 70층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덕분에 한참을 전망대에서 헤매고 말았다.
‘여기보다 더 위에 있는 건가?’
고민하던 그때 귓가에서 김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있는 곳은 70층이라고 하네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낀 김재현이 최상현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슈슉―
텔레포트를 사용해 건물 밖으로 이동한 문병호는 건물 벽면을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순식간에 70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슈슉!
유리 안쪽으로 순간이동을 한 순간.
‘으윽?’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에 머리를 부여잡아야 했다.
‘갑자기 무슨……?’
텔레포트를 사용하며 멀미를 느낀 적이야 많았다.
그러나 겨우 1m 남짓한 거리를 이동하고도 이런 멀미가 찾아온 것은 아주 예전에나 겪었던 일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약하고 스킬을 사용하는 숙련도도 많이 떨어지던 시절에나 겪었던 멀미가 다시금 찾아온 것이다.
‘어째서지?’
어찌나 당황스러웠는지 줄곧 유지되고 있던 투명화도 해제된 상태였다.
그리고.
‘어……?’
문병호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서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해.’
길게 이어진 복도.
그리고 양옆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배치된 문의 모습.
평범한 호텔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절대자의 눈을 통해 그를 바라보고 있던 김재현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병호 씨. 뒤를 돌아보세요.]
문병호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어?”
그의 등 뒤에는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복도와 똑같은 모습의 광경이 쭉 이어져 있었다.
“이건…?”
원래라면 자신의 등 뒤에는 바깥 모습이 보이는 유리창이 있어야 정상이었다.
방금 유리창 안쪽을 바라보며 텔레포트를 사용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기다란 복도의 중간에 서 있단 말인가.
“재현 님 이게 도대체……?”
[괜찮습니다. 천천히 탐색을 시작해 보죠. 우선 여기가 몇 층인지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 * *
충격에 빠진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된 거지?’
문병호가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건물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주변 공간이 변화했다.
바깥에서 보이던 70층의 모습은 일반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기다란 복도로 이동된 것이다.
‘실수를 한 건가?’
그럴 리가.
지금까지 문병호가 스킬을 사용하면서 실수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능력일까.’
상대의 능력으로 인한 현상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설치형 능력인가?’
허가받지 않은 침입자에 대한 자동적인 조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처음에 전망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 장현수 교주가 있다는 70층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더 의심스럽다.
이런 능력을 발휘해야 할 정도로 숨겨야 할 비밀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최상현의 말에 무게가 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건 특성상.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겠지.’
용서할 수 없었다.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놈을 처단해야 했다.
‘아무래도 저쪽에서도 우리를 눈치챈 것 같은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상대는 어린아이에게까지 손을 뻗고, 몬스터의 영역에 사람을 던져 넣는 것을 서슴지 않는 악인이다.
그런 인간이 자신의 치부가 숨겨져 있는 공간에 찾아온 침입자를 어떻게 대할지는 불 보듯 뻔했으니까.
“재현 님.”
[네, 말씀하세요.]
“여기,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요?]
“아까부터 이 복도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니 구조가 이상했다.
지금까지 복도를 쭉 따라 걸으면서 오른쪽으로 3번, 왼쪽으로 5번 꺾이는 길이 나왔다.
이렇게까지 비효율적인 복도가 또 있을까?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비상구조차 한 번 나타난 적이 없었다.
문병호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더니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복도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문병호에게 지시했다.
[문을 열어 보세요.]
문병호는 걸음을 멈춘 다음 바로 근처에 있는 문을 열었다.
철컥.
문이 열린 그곳에는.
‘이런.’
또 다른 복도가 쭉 이어져 있었다.